비천무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04



가을풀내음과 함께

― 비천무 1

 김혜린 글·그림

 대원문화출판사 펴냄, 1997.1.15.



  이 가을에 풀이 새롭게 돋습니다. 가을에 돋기에 가을풀입니다. 풀은 봄에도 돋고, 여름에도 돋으며, 가을에도 돋습니다. 더구나 겨울에도 풀이 돋아요. 추위를 이기고 돋는 겨울풀이 있고, 추운 겨울에도 볕이 포근하게 여러 날 내리쬘 적에 그만 ‘봄으로 잘못 알고’ 깨어나는 풀이 있습니다.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터뜨리는 동백꽃도 겨우내 따순 기운을 받아서 우리한테 찾아오는 고운 숨결입니다.


  풀은 언제나 돋습니다. 그래서, 풀을 먹고 사는 짐승은 언제나 풀을 먹을 수 있습니다. 토끼도 사슴도 고라니도, 철마다 돋는 풀을 즐겁게 누리면서 삶을 잇습니다. 풀을 먹는 사람들도 철마다 새롭게 돋는 풀을 고맙게 얻으면서 삶을 이어요. 봄에는 봄내음을 맡으면서 풀을 먹고, 여름에는 여름내음을 맡으면서 풀을 먹다가, 가을에는 가을내음을 맡으면서 풀을 먹어요.



- “너희들 나빠! 아무리 거지라고 막 그러는 거 아냐.” “설리! 너 또 계집애 주제에!” (28쪽)

- “너도 한족이지? 너도 몽고인 싫어해?” “난 그런 건 몰라. 그래도 엄마랑 아버지가 있다는 건 좋은 걸 거야.” (41쪽)

- “너 이상한 소릴 한다? 나눠 먹는 게 뭐가 나빠서? 우리 엄마가 사람들이 서로 나눠 먹는 건 좋은 거랬단 말야!” (51쪽)




  태평양과 맞닿은 남녘 바닷마을은 가을이 깊은 시월에도 따스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찬이슬이 내리지만, 해가 하늘 높이 솟는 때에는 제법 후끈후끈합니다. 들판을 가득 채우는 곡식한테도 드리우는 햇볕이고, 가을에도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한테도 찾아가는 햇볕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햇볕을 머금으면서 추위를 잊고 따스함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짓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늘 풀을 스치고 나뭇가지를 간질입니다. 풀을 스치는 바람은 풀노래를 부릅니다. 아직 겨울잠에 들지 않은 풀벌레는 군데군데 남아 가을노래를 베풉니다. 밤이 깊으면 멧새도 추위에 웅크리면서 잠이 들지만, 밤에 깨어나 먹이를 찾는 새들이 밤이 깊을수록 한결 그윽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시골마을 곳곳에 이야기를 나누어 줍니다.


  바람은 저 먼 데에서 이곳으로 옵니다. 바람은 이곳에서 저 먼 데로 갑니다. 바람은 이곳과 저곳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실어 나르고, 바람은 저곳과 이곳 사이를 흐르면서 저마다 짓는 냄새와 숨결과 노래를 갈무리합니다.



- ‘난 나만 좋아해 주는 착한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 거야.’ (33쪽)

- “난 춤추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엄만 싫어하시거든. 엄마처럼 되면 안 된대. 그래도, 난 춤이 추고 싶어서 봉이라도 들고 막 뛰어다녀. 한참 빙빙 돌다 보면 내 친구가 되어 버리거든. 햇빛이랑, 바람이랑, 꽃이랑, 나무랑, 그리고 하늘도!” (54쪽)





  가난한 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가멸찬 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어른이 웃습니다. 아이가 웃습니다. 젊은이도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야 소리를 내면서 피가 납니다. 늙은이도 돌이 걸려 꽈당 넘어지면 무릎이 깨져 피가 흐릅니다.


  너나 없이 사랑입니다. 나한테만 포근한 사랑은 없습니다. 나한테 포근한 사랑이라면,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포근한 사랑입니다. 너나 없이 아름다움입니다. 나한테만 즐거운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나한테 즐거운 아름다움이라면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똑같이 즐거운 아름다움입니다.


  전쟁은 누구한테 좋을까요. 경쟁과 개발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 전쟁을 벌여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전쟁을 사랑할는지 몰라요.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언젠가 전쟁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할 때를 맞이합니다. 혼자만 전쟁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문에 숲이 망가지고 마을이 무너지면, 지구별에 흐르던 바람에도 핏빛이 실리고 핏내음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 거, 몽고인들만의 탓이 아니죠. 설리랑은 더더욱이 관계 없는 일이고요. 그녀도 피해자여요! 삼촌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면서, 제 자신보다 더 제 마음을 잘 알고 계시면서!’ (96쪽)

- “소저를 시비(하녀)로 착오케 한 것 또한 하늘의 배려인 것만 같은데, 이런 기연이 어디 있겠소? 허니, 너무 허물치 말고 이 몸과.” “하녀는 함부로 대해도 되나, 뿌리 있는 계집은 그렇지 않다, 말씀입니까? 소녀, 하녀와 다름없는 서출이니 공자의 태도 돌변하심이 외려 우습습니다 …… 공자께서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죽리관입니다. 취했음을 가장하여,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네 하고, 만 사람을 비웃으며 맑은 노래를 우롱하셨습니다.” (136∼ 137쪽)



  김혜린 님 만화책 《비천무》(대원,1997) 첫째 권을 읽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수수하게 다루는 만화입니다. 만화에서 다루는 사회나 역사라면 중국에서 원과 명 언저리라 할 테지만,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권력자’나 ‘정치꾼’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숨결을 얻어 이 땅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이 이 만화에 나옵니다.


  다만, 이런 권력자나 저런 정치인이 살몃살몃 고개를 내밀기도 해요. 그러나, 이들은 이 만화를 이루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서로 사랑으로 어우러지고 꿈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로 잔치를 즐기는 ‘우리’입니다.


  총이나 칼이나 창을 든 바보가 아니라, 따사로운 손길로 흙을 보듬으면서 밥과 술과 떡을 서로 나눌 줄 아는 수수한 사람이, 바로 이 만화를 이루는 넋입니다.




- “하지만, 세상을 구제한다는 종교가 어째서 약탈과 살상을 방법으로 삼아야 하죠?” “언제나 문제점은 종교나 사상이 아니라 그걸 운용해 가는 사람들한테 있느니. 해서, 진심으로 애쓰는 사람이 외려 핍박받고 쓰러지는 경우도 많지.” (149쪽)

- ‘삼촌, 사람을 죽였습니다. 나쁜 놈들이었는데, 그런데, 저랑 똑같은 행색을 하고 허옇게 죽었어요! 눈밭 위에 떨어진 피가 빨간 꽃처럼 번졌어요. 토할 것만 같아요!’ (168쪽)

- ‘실없는 화풀이! 사람을 죽여 본 자는 이렇듯 쉽게 살의가 뻗치는 건가.’ (208쪽)



  가을바람이 가을풀내음을 싣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돋는 가을풀은 바람결에 푸른 내음을 얹어서 저 멀리, 전라북도로도, 충청남도로도, 경기도로도, 서울로도, 평양으로도, 신의주로도 보냅니다. 신의주에서 부는 추운 바람은 평양을 지나고 경기도와 서울을 거쳐 다시 충청도와 전라도로 돌아옵니다.


  사랑을 실어 날리는 바람이라면, 우리한테 사랑이 돌아옵니다. 미움이나 싸움을 실어 날리는 바람이라면, 우리한테 미움과 싸움이 돌아옵니다.


  어떤 바람이 불게 하고 싶습니까. 어떤 바람이 불 때에 너와 내가 즐거울까요. 나는 어떤 바람을 맞고 싶은가요? 내 사랑스러운 이웃과 동무는 어떤 바람을 쐬면서 하루를 누릴 때에 즐거울까요?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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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에서나 책읽기



  언제 어디에서나 책을 읽는다. 아이들 눈망울을 바라볼 적에도 책을 읽는다. 개미가 볼볼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책을 읽는다. 아이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다. 개미가 볼볼 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구별을 읽고 숲을 읽으며 이웃을 읽는다.


  지구 환경을 다루는 책을 넘겨야 ‘책을 읽지’ 않는다. 스스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지구를 읽고, 스스로 흙과 풀과 나무를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보살피면서 숲을 읽는다. 자기계발책을 읽어야 책읽기가 될까? 내 삶을 손수 가꾸거나 일구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누릴 적에는 책읽기가 안 될까?


  요리책을 읽어야 밥을 잘 짓지 않는다. 어떤 밥을 지으면 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온 사랑을 그득 담아 밥을 지을 때에 ‘밥을 잘 짓’고 ‘밥책을 읽는’ 셈이다. ‘역사 인문책’에도 역사가 있을 테지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손과 이마에도 역사가 있다. 내 발과 몸뚱이에도 역사가 있다.


  온 하루에 걸쳐 책이 흐른다. 언제나 책이 감돈다. 너와 내가 일구는 삶에서 함께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책이 태어난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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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50) 최고 1


저 닭 이름은 비행기다. 최고로 잘 난다

《이영득-할머니 집에서》(보림,2006) 48쪽


 최고로 잘 난다

→ 억수로 잘 난다

→ 아주 잘 난다

→ 가장 잘 난다

→ 어느 닭보다도 잘 난다

 …



  이 보기글은 경상도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이라고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쓰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저도 “최고로 무엇무엇이다” 하는 말을 썼는데, ‘최고’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으나 ‘가장’ 어떠하다는 뜻인 줄 알기는 했습니다. 같은 뜻으로 ‘제일(第一)’이라는 말도 썼어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한자말 ‘최고’는 세 가지 있습니다. 한글로만 써 놓으면 헷갈릴 텐데, 말뜻 그대로 “가장 오래된”과 “가장 높은”으로 다듬을 때가 더 낫지 싶어요. 때와 곳에 따라 ‘으뜸’과 ‘첫째’를 넣어 손볼 수 있고요. “세계 최고의 고산 도시”는 토씨 ‘-의’까지 붙이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다듬으면 돼요.


  아이들도 흔히 쓰는 말이라면, ‘최고’이든 ‘제일’이든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으뜸·가장·첫째’ 같은 한국말이 있으니, 이런 말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배워서 쓸 수 있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또한, ‘억수’라는 말이 있어요. 도시사람은 잘 안 쓰지만 시골사람이 흔히 쓰는 말이고, 또 고장말로도 흔히 써요. 보기글이 실린 책은 경상도 시골아이가 쓴 말을 옮겼으니, 이때에는 “최고로 잘 난다”보다 “억수로 잘 난다”가 훨씬 잘 어울리지 싶어요. 그리고 닭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어느 닭보다 잘 난다”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4339.9.27.물/4347.10.26.해.ㅎㄲㅅㄱ



최고(最古) : 가장 오래됨

    -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

최고(最高)

1. 가장 높음

    - 최고 높이 / 최고 속도 / 최고 점수 / 최고 책임자 /

      세계 최고의 고산 도시

2. 으뜸인 것. 또는 으뜸이 될 만한 것

    - 최고 미덕 / 최고 부자 / 자기 분야에 대해서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

최고(催告)

1. 재촉하는 뜻을 알림

2. 상대편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독촉하는 통지를 하는 일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33) 최고 2


더울 땐 / 소나기가 최고다

《유희윤-참, 엄마도 참》(문학과지성사,2007) 18쪽


 소나기가 최고다

→ 소나기가 가장 낫다

→ 소나기가 참 좋다

→ 소나기가 으뜸이다

→ 소나기가 반갑다

 …



  어린이가 읽을 글에서 나타나는 ‘최고’입니다. 어른이라면 이런 한자말을 잘 알 수 있을 텐데, 너덧 살이나 대여섯 살이나 예닐곱 살 어린이도 이런 한자말을 잘 알 만한지 궁금해요. 아이한테 읽히려는 동시에 이 같은 낱말을 굳이 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듣거나 읽는 말을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아이들한테는 ‘익숙한 말’이 아직 따로 없습니다. 둘레 어른이 여느 때에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배우는 말이 달라집니다.


  “소나기가 으뜸이다”나 “소나기가 첫째이다”처럼 말하는 어른이 둘레에 있으면, 아이는 ‘으뜸’과 ‘첫째’를 마음에 담아, 아이 스스로 언제나 ‘으뜸’과 ‘첫째’를 말합니다. “소나가기 가장 좋다”나 “소나기가 가장 낫다”처럼 말하는 어른이 옆에 있으면, 아이는 ‘가장 좋다’와 ‘가장 낫다’를 마음에 실어, 아이 스스로 늘 ‘가장 좋다’와 ‘가장 낫다’를 말해요.


  더울 때에는 소나기가 반갑습니다. 네, “소나기가 반갑습”니다. 더울 때에는 소나기가 고맙습니다. 네, “소나기가 고맙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을 동시라면, 아이가 말을 한껏 북돋울 수 있도록 더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라요.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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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3] 풀빵



  일곱 살 어린이가 ‘풀빵’을 만듭니다. 밀반죽을 틀에 넣고 굽는 풀빵이 아니라, 네모난 빵조각에 풀을 얹어서 ‘풀빵’을 만듭니다. 일곱 살 어린이가 네 살 동생하고 빵을 먹고 싶다 하기에, 네모난 빵과 풀버무리를 밥상에 올려놓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잼도 바르고 풀도 척척 얹어서 ‘풀빵’을 만들어 동생하고 맛나게 먹습니다. 게다가 아버지한테도 ‘풀빵’을 하나 만들어서 건넵니다. 풀을 넉넉히 즐기면서 먹기에 ‘풀밥’이고, 풀을 맛나게 누리면서 먹으니 ‘풀빵’입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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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엄마도 참 문지아이들 84
유희윤 지음, 조미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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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0



빨래터 물놀이 하며 시읽기

― 참, 엄마도 참

 유희윤 글

 조미자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7.3.30.



  대나무를 베어 마당에 놓으니, 아이들이 이 대나무를 ‘출렁다리’로 삼으면서 오르락내리락 놉니다. 대나무를 베면서 잔가지를 몇 건사했더니, 대나무 잔가지는 잔가지대로 아이들이 휘휘 휘두르면서 노는 놀잇감이 됩니다.


  출렁다리 대나무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평상에 앉아 인형놀이를 합니다. 아이들 놀이는 천천히 달라집니다.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로 가고, 저 놀이를 하다가 이 놀이로 오며, 다시금 새 놀이로 건너뜁니다.


  어디에서나 놀고, 무엇으로든 놉니다. 언제나 놀고, 하루 내내 뛰놉니다.



.. 밟지 말랬는데 / 고양이가 밟았다 // 발자국은 / 꽃 모양 ..  (고양이 발자국)



  아이들더러 ‘뛰지 말라’거나 ‘달리지 말라’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다그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기운차게 뛰면서 놀고,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기 어렵습니다. 학교이든 집이든 동네이든,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면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슨 말을 할까요?


  아이들한테 놀이터를 마련해 준 뒤, 집이나 동네나 학교에서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하나요? 아이들이 마음껏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워서 가슴이 후련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얌전히 있거나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나요?



.. 왼쪽에 한 개 / 오른쪽에 한 개 // 주머니에 귤 넣고 / 만지작만지작 학교에 가며 ..  (귤)



  어제 낮에는 마을 빨래터를 치웁니다. 막대솔을 어깨에 짊어지고 셋이 빨래터로 갑니다. 아버지는 신나게 빨래터를 치우고, 두 아이는 하염없이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샘터를 치우는데, 샘터를 치우면 두 아이는 작은 샘터에 둘이 함께 들어가서 놀아요. 아버지가 땀을 흘리면서 빨래터를 거의 다 치울 무렵, 슬슬 두 아이가 다가와서 “아버지 도와줘야지!” 하면서 거드는 시늉을 합니다.


  빨래터를 드디어 다 치우면, 두 아이는 가을에도 옷을 적시면서 물장구를 칩니다. 물을 서로 끼얹고 스스로 물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놀던 아이들을 햇볕 잘 드는 곳에 서서 몸을 말리도록 합니다. 젖은 옷을 벗고 해바라기를 하면 추운 몸에는 어느새 따순 기운이 감돕니다. 알몸이 된 아이들은 시골마을 빨래터에서 마음껏 더 놉니다.



.. 옆자리 병구가 / 내 손 펴게 하고 / 올려놓았다, 꼭 쥔 제 주먹 // 주먹을 풀어 / 사탕 한 개 내려놓고 / 내 손 꼬옥 오므려 주었다 ..  (병구의 손)



  유희윤 님이 빚은 동시집 《참, 엄마도 참》(문학과지성사,2007)을 읽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낱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이 낱말 ‘엄마·아빠’는 아이들이 아기일 적에만 쓰고는 너덧 살이나 예닐곱 살부터는 ‘어머니·아버지’로 고쳐서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열 살을 넘고 스무 살을 넘기도록 말을 고쳐 주지 못해요.


  아기한테 ‘맘마’ 먹자고 하던 어버이가 열 살 어린이한테도 ‘맘마’ 먹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더러 ‘맘마’ 먹으라 하면 스무 살 젊은이는 무엇을 느낄까요? 나를 언제까지 아기로 여기느냐고 투덜거릴 테지요.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앞서 예닐곱 살부터 ‘어머니·아버지’라는 낱말을 쓰면서 ‘아기에서 벗어나 아이가 된 삶’을 깨닫도록 돕고, 열 살 뒤부터는 ‘오롯한 사람’으로 마주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말다운 말을 가르치는 일이란, 삶다운 삶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아기 말’에서 ‘아이 말’을 거쳐 ‘어른 말’을 들려주는 일이란, 아이가 앞으로 손수 삶을 가꾸도록 이끌면서 가르치는 일입니다.



.. ‘안경아, / 너도 쉬렴.’ // ‘아빠 깰 때까지 / 조용히 쉬렴.’ ..  (눈길 한 번 더 주고)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귀여운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학습이나 교훈이나 시험공부나 대학입시로 달달 볶아야 할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받아야 할까요. 입시교육과 학원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 시골집엔 / 콩을 좋아하는 콩쥐가 / 할머니랑 살지요 ..  (할머니 댁 콩쥐)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에는 사랑을 실어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즐길 동시에는 어른 스스로 짓고 가꾸며 보살핀 사랑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숨결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쁘장한 말을 쓴대서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와 즐겁게 나누려고 하기에 동시가 됩니다. 짧게 쓰거나 가락을 맞추어 쓰기에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가꾸는 하루를 찬찬히 담아서 짓기에 동시가 됩니다.



.. 바람 부는 밤 / 함석지붕에 풋감 떨어진다 // 쿵. 쿵. / 잠들만 하면 또 쿵그르 // 할머니도 / 그러려니 / 할아버지도 / 그러려니 // 외양간의 누렁소도 / 멍멍이도 꼬꼬닭도 / 그러려니 ..  (산골의 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은 살짝 아쉽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는 눈길이 된다면, 아이와 함께 가꿀 삶과 마을과 지구별을 더 넓게 살피는 마음결이 된다면, 한결 따사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리라 느껴요.


  어른이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낄 때에 동시를 씁니다. 아이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른 누구나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꾸어야 동시를 쓸 수 있어요. 유희윤 님은 이러한 ‘사랑’을 잘 건사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 사랑을 아이와 어디에서 어떻게 나누면서 꽃으로 피울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까지는 아직 못 짚지 싶어요.


  빨래터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손을 말린 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을 읽었습니다. 이 동시집에 이어 선보일 다른 동시집에는 ‘즐거운 놀이’와 ‘기쁜 노래’와 ‘맑은 사랑’과 ‘따스한 꿈’이 골고루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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