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겨레말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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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39. 한국말사전이 살릴 말

― 아름다운 말은 쉽다



  흔히 ‘국어사전’을 말하고, 학교에서는 ‘국어’를 가르칩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분은 으레 ‘국민’을 얘기합니다. 한자로 ‘國-’을 붙이는 한자말이 퍽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國-’을 붙인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이런 낱말을 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부터 ‘한복·한식·한옥’ 같은 낱말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옷·밥·집’입니다.


  ‘國-’붙이 낱말 가운데 ‘국민학교’만큼은 몹시 어렵게 ‘초등학교’로 바꾸었습니다. ‘국민(國民)’이라는 한자말에 깃든 슬프며 아픈 생채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國語’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쓰지만, 이 낱말을 앞으로 언제까지 써야 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어’는 한국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어른들은 ‘국민’이라는 낱말을 털어냈는데, 말과 글을 다루는 어른들은 언제쯤 ‘국어’라는 낱말을 털 수 있을까요.


  ‘國歌·國鳥·國花’ 같은 낱말을 곧바로 알아듣는 아이는 드뭅니다. 어른도 곧잘 헷갈릴 만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낱말을 쓰더라도 한국은 한국말이 있으니 이런 낱말을 ‘나라노래·나라새·나라꽃(나랏노래·나랏새·나랏꽃)’으로 새롭게 지어서 쓸 줄 알아야 하고, 이런 낱말을 사전에 담을 수 있어야 해요. 한국말을 담는 한국말사전은 한자말을 담는 사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전들은 한국말을 슬기롭게 담거나 한국말을 알뜰살뜰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어린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며 옆에 놓는 사전조차 교과서에 실은 낱말을 풀이하는 참고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요. 어린이가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깨우치면서 말빛을 가꾸도록 돕지 못합니다.


  푸성귀나 남새나 나물을 제대로 살피는 어른이나 아이는 몇쯤 될까 궁금합니다. 국립국어원 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푸성귀’는 “사람이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하고, ‘남새’는 “= 채소(菜蔬)”라 하며, ‘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채소(菜蔬)’는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이라 하고, ‘야채(野菜)’는 “(1) 들에서 자라나는 나물 (2) ‘채소(菜蔬)’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그런데 ‘야채’는 ‘やさい’라는 일본말에서 비롯했다고들 합니다. 여러모로 살피면, 풀을 먹는(채식) 사람이건 풀을 안 먹는 사람이건, 풀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말을 다루는 사전도 이를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사람이 따로 길러서 먹는 풀일 때에 ‘남새’입니다. 스스로 돋는 풀일 때에 ‘나물’입니다. 남새와 나물을 아우를 때에 ‘푸성귀’입니다. 풀을 먹는 사람, 곧 ‘채식’이란 “푸성귀 먹기”이거나 “풀 먹기”이거나 “풀밥 먹기”예요. 이러한 얼거리를 살핀다면, ‘채식(菜食)’이라는 말을 털면서 ‘풀먹기’나 ‘풀밥’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고, 학자들이 먼저 이런 낱말을 사전에 담을 수 있어요.


  만화영화 〈백설공주〉를 아이들과 보던 곁님이 문득 ‘하얀눈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이야기합니다. 일곱 살과 네 살인 아이들한테는 ‘백설공주’가 어떤 이름이고 뜻인지 알려주기 어렵습니다. 쉽게 풀어내어 이름을 새로 짓습니다. 요즈음 ‘에코백(ECO-BAG)’이 널리 퍼지지만, 나는 늘 ‘천바구니’를 챙깁니다. 시골 읍내에는 없으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으레 ‘네일아트’를 하는 가게를 봅니다. 이런 가게를 스치고 지나가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저곳에서는 손톱에 꽃이 피도록 하는구나 하고. ‘손톱꽃’이라고 할까요, ‘손톱빛’이라고 할까요.


  사전을 보면 풀 빛깔을 가리키는 ‘풀빛’이라는 낱말은 있지만, ‘꽃빛’이나 ‘잎빛’ 같은 낱말은 없습니다. 우리 사전은 어떤 낱말을 얼마만큼 실을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설빔’처럼 ‘잔치빔’이나 ‘돌빔’ 같은 낱말을 즐겁게 지을 수 있으나, 이런 낱말을 가꾸는 학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전을 살펴서는 ‘가엾다·불쌍하다’나 ‘무섭다·두렵다’나 ‘곱다·아름답다’ 같은 한국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말은 쉽습니다. 한국말에 실을 낱말은 아름다워야지 싶습니다. 4347.7.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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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넷째 권에 이르러 ‘거의 어른으로 자란’ 이치노세 카이가 피아노를 친다. 수많은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쇼팽을 찬찬히 친다. 숲에서 나고 자란 카이가 치는 피아노에는 숲바람이 감돌고 숲내음이 흐르며 숲빛으로 밝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다. 다른 아이들도 숲에서 나고 자랐으면 카이처럼 숲바람과 숲내음과 숲빛이 가득한 피아노를 들려줄 수 있겠지. 곰곰이 헤아리면, 우리는 누구나 ‘숲 피아노’를 칠 수 있다. 숲에서 살면 숲 피아노를 칠 수 있다. 섬진강에서 살면 ‘섬진강 피아노’를 치고, 지리산에서 살면 ‘지리산 피아노’를 치며, 제주섬에서 살면 ‘제주섬 피아노’를 친다. 스스로 사는 곳에서 스스로 새로운 노래를 지어 피아노를 들려준다. 이제 이치노세 카이와 ‘숲 피아노’ 이야기는 어떻게 흐를까. 숲을 피아노로 담은 아이는 이웃과 동무한테 어떤 노래를 새롭게 들려줄 수 있을까.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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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4-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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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받고



  일산 할머니가 보내신 김치꾸러미를 오늘 받는다. 어제는 고구마꾸러미를 받았다. 어제오늘 일산 할머니는 ‘산타 할머니’가 되셨다.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넣은 뒤, 우리 집 뒤꼍으로 통을 들고 간다. 가을볕 먹고 잘 익기 기다리던 유자를 딴다. 가위로 꼭지를 톡 잘라서 사름벼리한테 건네면, 걸상에 올라선 사름벼리는 아래에 있는 산들보라한테 다시 건네고, 산들보라는 누나한테서 받은 유자를 통에 담는다. 유자만 보내기에 상자가 조금 빈다. 그래서 모과나무에서 모과를 두 알 딴다. 며칠 앞서 떨어진 모과가 두 알 있기에, 모과도 두 알씩 나누어, 일산으로 한 꾸러미, 음성으로 한 꾸러미 보내기로 한다. 이제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 우체국에 가면 된다. 몸살이 다 나은 아이들 데리고 마실을 가야지. 4347.10.29.물.ㅎㄲㅅ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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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6) 통하다通 70


생의 소중한 기억들이 바느질을 통해 오롯이 손끝에 집중됐다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94쪽


 바느질을 통해

→ 바느질을 거쳐

→ 바느질을 하는 동안에

→ 바느질을 하는 사이에

→ 바느질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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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야기가 손끝으로 모이는 길에 바느질을 ‘거칩’니다. 그러니까, 바느질을 ‘거쳐’ 어떤 이야기가 손끝으로 모입니다. 한편, 바느질을 ‘하는 동안’ 이야기가 손끝으로 모여요. 바느질을 ‘하는 사이’에 이야기가 손끝으로 모입니다. 4347.10.29.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삶에서 살뜰한 이야기들이 바느질을 하면서 오롯이 손끝에 모였다


“생(生)의 소중(所重)한 기억(記憶)”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먼저, ‘소중’이라는 한자말은 “매우 귀중하다”를 뜻합니다. ‘귀중(貴重)’은 “귀하고 중요하다”를 뜻하고, ‘중요(重要)’는 “귀중하고 요긴함”을 뜻합니다. 다른 한자말을 더 찾아보아도 돌림풀이일 뿐, ‘소중’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요. 그러나, 이 보기글을 가만히 헤아린다면, 살아가면서 애틋하거나 즐겁거나 기쁘거나 반갑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새긴다고 하는 뜻이지 싶어요. 그러면, 이러한 뜻대로 “삶에서 살뜰한 이야기”나 “삶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나 “내 삶에서 살뜰한 이야기”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손볼 수 있어요. ‘집중(集中)됐다’는 ‘모였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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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7) 통하다通 71


편식 같은 건 우리 집에서 통하지 않았다

《사노 요코/윤성원 옮김-나의 엄마 시즈코상》(이레,2010) 88쪽


 우리 집에서 통하지 않았다

→ 우리 집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 우리 집에서 할 수 없었다

→ 우리 집에 없었다

 …



  밥을 먹을 적에 이것만 먹거나 저것만 골라서 먹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요. 골라먹기나 가려먹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밥버릇은 ‘곱게 보아넘기지’ 않은 셈입니다. 따끔하게 나무랐다든지, 모질게 꾸짖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 단출하게 가리킨다면, “우리 집에는 골라먹기 따위는 없었다”쯤 될 테지요. 4347.10.29.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골라먹기 따위는 우리 집에 없었다


‘편식(偏食)’은 ‘골라먹기’나 ‘가려먹기’로 손질하면서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같은 건”은 “따위는”이나 “같은 일은”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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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가을에도 맨치마차림



  사름벼리는 가을이 깊은 날에도 맨치마만 걸치는 차림이 한결 즐겁다. 바람이 제법 쌀쌀하더라도 땀을 흘리면서 달리면 덥다면서 맨치마만 걸치려 한다. 얘야, 한낮에는 그렇게 놀더라도 아침저녁으로는 안에 웃옷 한 벌은 받쳐서 입으렴.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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