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24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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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6



피아노가 자란 숲

― 피아노의 숲 24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9.27.



  피아노라고 하는 악기는 나무로 만듭니다. 나무가 없다면 피아노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전자건반이 나오기도 하는데, 전자건반은 건반만 똑같이 틀을 잡아서 만들기에 전자건반이기는 하지만 피아노는 아닙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면서 ‘나무를 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싶어요. 노래를 치고 이야기를 친다는 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테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를 얻어서 새로운 소리로 태어나도록 손질한다는 대목을 헤아리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습니다.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너무나도 따스하게 감싸 주는 듯해서, 피아노를, 피아노를 따르자! 이 피아노가 우릴 이끌어 줄 거야! 우린 하던 대로 최고의 연주만 하면 돼!’ (9∼11쪽)

- ‘아, 그렇구나. 이곳은, 이곳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야!’ (18∼19쪽)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만든 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사람들은 손수 숲에서 나무를 베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손질하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말린 뒤에 비로소 악기로 쓸 틀을 짰습니다. 오늘날에는 피아노라는 악기도 공장에서 만들기 일쑤이지만, 제아무리 공장에서 피아노를 만든다 하더라도 숲이 있어야 나무를 얻고, 제대로 말려야 나무를 쓸 수 있으며, 마지막 소리 하나까지 나무결을 살려야 이 악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겨울에 추위를 떠는 아이를 따뜻하게 하려고 피아노를 도끼로 찍어서 장작으로 쓰는 대목이 나옵니다. 너무 추운 나머지 피아노를 그만 도끼로 쩍쩍 찍는데, 막상 피아노를 찍어서 장작으로 쓰려고 해도 나무가 얼마 안 돼요. 피아노는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장작으로 삼을 만큼’ 나무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도록 나무를 많이 자르고 베고 켜고 손질해서 만드는 피아노이지만, 피아노를 다른 데에는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추우면 장작으로라도 쓸밖에 없을는지 모르나, 고작 하루나 한나절 땔감으로 쓰면 사라집니다.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면서 살 수 없겠지요. 추운 겨울날 피아노로 노래를 친다고 해서 추위기 사라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집을 뜯어서 장작으로 삼지 않습니다. 기둥도 지붕도 그대로 둡니다. 장작을 얻으려면 다른 데에서 얻어야 합니다.





- ‘바람이, 풀 향기를 몰고 왔어.’ ‘아니, 이건 나무의 향기다.’ ‘카이, 이곳은 숲이구나. 그리운 피아노의 숲이야.’ (31쪽)

- ‘그렇구나. 일일이 숲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숲의 피아노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 (111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는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4) 스물넷째 권을 읽습니다. 스물넷째 권에서 드디어 ‘이치노세 카이’가 피아노를 칩니다. 어린이에서 씩씩한 푸름이로 자란 카이가, 곧 어른이 될 카이가, ‘숲 피아노’를 칩니다.


  다만, 카이는 이제 ‘숲 피아노’에만 매이지 않습니다.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숲에서 태어났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가 피아노로 바뀌어 여러 나라 골골샅샅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걸상도 되고 책상도 되어 온갖 나라 구석구석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로 바뀌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서 지구별 이곳저곳으로 퍼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숲 피아노’는 카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한테 새로운 숨결로 퍼집니다.




- ‘그때 되선 선생님도 나도 불편한 감정을 품은 채 서로 대치하는 걸 그만두고, 현재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57쪽)

- “그러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거야! 그래서 그걸 매일 반복할 거야!” (66쪽)



  카이는 ‘쇼팽 대회’에 가서 ‘쇼팽’을 피아노로 칩니다. 대회에 나갔으니 1등을 하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카이는 오직 피아노를 치려고 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회에 나갔다기보다는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 이웃들한테 인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섭니다.


  카이가 마음을 쓰는 대목은 오직 하나입니다. 숲에서 나고 자란 피아노가 카이를 비롯한 이웃들한테 아름다운 노래로 스며들어서 꿈과 사랑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 하나를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칩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자라는 푸릇푸릇 새싹과 봄꽃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새와 벌레와 온갖 짐승들 살림살이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올려다보는 구름과 무지개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밤마다 흐르는 고즈넉하고 고요한 별빛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솟아 들을 가로지른 뒤 바다로 나아가는 냇물을 피아노로 칩니다.




- ‘정신을 차리니, 내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깨닫고 보니, 마음 따뜻한 사람들에게 항상, 항상 둘러싸여 있었다.’ (140∼142쪽)



  숲에서 들리는 피아노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저마다 생각에 젖습니다. 저마다 그리운 생각에 젖습니다. 천천히 눈을 뜨고 천천히 웃음꽃을 피웁니다. 그래요. 숲은 모두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숲은 푸른 바람을 일으켜 모두한테 고운 숨결을 베풉니다. 너와 내가 하나요, 네가 나와 함께 있어 즐거운 삶을 이야기해요.


  피아노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걸상이나 책상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옷장이나 책꽂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빗자루나 젓가락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부챗살이나 연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연필이나 붓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호밋자루나 삽자루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모두들 우리 곁에서 어떤 숲노래를 들려줄까요? 귀를 기울이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4347.10.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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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2014-11-0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에요....


카이가 우승 했어요. ㅠㅠ. 팡웨이가 2위 레프가 4위 안창수창우 형제가 6,8위..

이제 아지노는 카이 곁을 떠나련가.. ㅠㅠ

파란놀 2014-11-04 06:13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를 달지 않으셔도
결과는 뻔하게 다 나왔는걸요 ^^

25권 마지막에 `이변`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나중 결과도 다 보이지요 ^^

일본책으로 보셨나 보네요~

아지노는 카이 옆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늘 마음으로 가르치리라 생각합니다 ^^

고맙습니다~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 -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쓰는 지름길
이수열 지음 / 현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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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9



한자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

 이수열 글

 현암사 펴냄, 2014.10.6.



  이수열 님은 1999년에 처음 낸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를 2014년에 고침판으로 다시 선보입니다. 428쪽에 이르는 도톰한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수열 님은 이 책에서 ‘한국말을 바르게 쓰는 길’을 밝히기보다는 ‘품위 있는 한자말을 알맞게 쓰는 길’에 크게 마음을 기울이는구나 싶습니다.



.. 지식인들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유치한 표현을 하는 현상은, 영어의 수동문을 무턱대고 모방하는 것이 버릇이 된 결과다 … (‘식어지면’은) ‘식으면’이라고 고쳐야 한다. 이를 두고 시적 허용이나 창조적 시어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언어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치졸하게 표현하는 것은 결코 창조가 아니다 ..  (58, 65쪽)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은 ‘한자 문화권’이 아닙니다. 한자 문화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예부터 99%를 웃도는 거의 모든 사람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스스로 삶을 지었습니다. 세 나라 모두 99%를 웃도는 거의 모든 사람은 시골에서 ‘글’이나 ‘책’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로 삶을 지었습니다. ‘한자’를 빌어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은 사람은 1%조차 안 됩니다.


  그러니, ‘한자 문화권’이라는 이름부터 말이 안 돼요. 몇몇 권력자와 지식인이 한자를 썼다고 해서 세 나라가 이러한 한자로 문화권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옳게 말하자면,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또 유럽도 다른 아시아도 중남미도 ‘시골 문화권’이라고 해야 합니다. 지구별 거의 모든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시골자락에서 일구면서 쓰레기는 하나도 없이 살았어요. 글이나 책이 없어도 삶을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 여러 국어사전에 실린 표제어 ‘세련된다’는 무식한 사람들이 잘못 쓰는 표현을 합리화한 것이므로 삭제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 보면, ‘세련한’이라는 관형어보다는 세련한 결과를 드러내는 말을 앞세워, 세련한 작품은 수려(秀麗)한 작품, 세련한 문장은 간결(簡潔)하고 유려(流麗)한 문장, 세련한 말씨는 유창(流暢)한 말씨, 세련한 몸매는 맵시 있는 몸매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  (75쪽)



  우리가 쓰는 말은 옛사람이 슬기롭게 지은 말입니다. 한자로 짓거나 알파벳으로 지은 글이 아니라, 글이 없어도 얼마든지 ‘생각으로 지은 말’입니다. ‘말’이라는 낱말부터 시골에서 흙을 일군 사람이 지은 낱말입니다. 사람, 생각, 하늘, 땅, 흙, 꽃, 풀, 나무 …… 온갖 낱말을 시골사람이 손수 지었습니다.


  임금님이나 지식인이나 신하나 학자는 어떤 낱말도 안 지었습니다. 이들은 한자를 빌어 저희끼리 권력을 만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수열 님은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라는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련한 한자말’이나 ‘유려한 한자말’이나 ‘유창한 한자말’을 쓰는 길을 밝힙니다. 그러면, 이 책은 “우리말 바로 쓰기”가 아니라 “한자말 바로 쓰기”로 이름을 고쳐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 문화의 지엽적 세목이라 할 주거·복식·음식 등에 문화를 붙여, 주거문화·복식문화·음식문화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양식·법식·양상·방식·종류 등 차원에 어울리는 말로 가려 써야 한다 ..  (234쪽)



  ‘음식문화’처럼 쓰는 말이 올바르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음식양식’이나 ‘음식종류’처럼 써야 할까요?


  ‘문화’라는 한자말이 없던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한자를 알지 못하거나 쓰지 않던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주고받았는지 떠올려야 합니다.


  예부터, 밥이면 ‘밥’이라고만 합니다. 따로 ‘밥 문화’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따로 문화를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니 ‘음식 문화’이든 ‘밥 문화’이든 새로운 말이든 지어야 해요. 이러한 흐름을 살핀다면, ‘밥 문화’란 ‘밥삶’이나 ‘밥살이’처럼 새롭게 낱말 하나 지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란 언제나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녹아내거나 삭힐 때에 비로소 문화예요. 그러니,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음식 문화·밥 문화’처럼 쓰면 되고, 한국말을 쓰고 싶다면 ‘밥삶·밥살이’처럼 쓰거나 그냥 ‘밥’처럼 쓰면 됩니다.



.. ‘좋지 않다’와 뜻이 같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별로 문젯거리가 아닌 듯싶으나 ‘안’을 여러 상태에 두루 적용해 보면 ‘편찮으시다’가 ‘안 편하시다’, ‘귀찮다’가 ‘안 귀하다’가 되는 등 본래 어감을 손상하는 예가 생긴다 ..  (253쪽)



  ‘안’이라는 한국말을 앞에 붙이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으레 ‘안’을 앞에 붙여서 씁니다. 이와 달리, 글을 배우거나 생각을 조금 더 차분히 갈무리하는 어른들은 ‘안’을 앞에 넣기보다는 뒤쪽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나 밥 안 먹어”처럼 말하고, 어른들은 “나는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처럼 말합니다. 이수열 님 말씀과 달리 ‘안’을 앞에 넣는다고 해서 글멋이 사라지거나 글맛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안’을 앞에 넣는 말씨는 ‘어린이 말씨’입니다. 그리고, 뜻이나 느낌을 힘주어 말하고 싶을 적에 ‘안’을 앞에 넣습니다. “안 해!”와 “하지 않아!”는 뜻은 같아도 느낌은 달라요.



.. ‘냉탕’, ‘온탕’은 한자 지식이 짧은 사람이 짜맞춰 놓은 한자음이지 한자어가 아니다. 말다운 한자어도 될 수 있으면 순수어로 바꿔 써야 우리말이 아름다워진다. 참으로 감각적이고 친밀한 ‘찬 물’, ‘따뜻한 물’, ‘더운 물’, ‘뜨거운 물’을 비켜 놓고, 무식쟁이들이 짜맞춰 놓은 한자음을 말입네 하고 쓰는 것은 ..  (265쪽)



  이 글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수열 님은 “말다운 한자어”를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 지식이 짧은 사람”이 아무렇게나 한자말을 짜맞추는 일을 보면 이수열 님은 여러모로 거북하게 여기시는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순수어’란 무엇일까요? 왜 ‘순수어’를 말할까요?


  어느 겨레나 나라에도 ‘순수어’란 없습니다. 그저 ‘말’이 있습니다.


  한자와 한자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자와 한자말 가운데 우리가 쓸 만하다 싶으면 받아들여서 쓰기도 합니다. 나라밖에서 들여온 말은 ‘들온말(외래어)’이라 합니다. 우리가 쓰는 한자말은 모두 ‘들온말’입니다.


  그런데, 굳이 들여올 만하지 않은데 마구 들어와서 함부로 쓰는 말이라면 ‘바깥말(외국말)’입니다. 오늘날 한국에 널리 퍼진 수많은 일본 한자말은 바로 ‘바깥말’입니다. 꽤 예전에 한국사람이 썼다고는 하지만, 몇몇 권력자와 지식인만 쓰던 ‘중국 한자말’도 바깥말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오랜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말에다가 바깥에서 우리 스스로 즐겁게 받아들인 말을 쓰면 돼요.



..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처지(處地)를 바꿔서(易)  그것(之)을 생각(思)한다’는 순수 국어를 한역(漢譯)해 놓은 문자(文字)다 ..  (266쪽)



  이수열 님은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라는 책에서 이 보기글처럼 한자를 자주 드러내어 묶음표에 자꾸 넣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쓰는 글은 얼마나 “우리말 바로 쓰기”가 될까요?



.. ‘대한다’는 ‘-에 응한다, -에 대항한다’는 뜻의 자동사와 ‘-을 상대한다, -을 맞이한다’는 뜻의 타동사로 긴요하게 쓰는 말이지만, 타동사로 서술할 대상에 관형사형이나 부사형을 덧붙여서 쓰면 말의 맥이 빠져 박력 없는 표현이 된다 ..  (294쪽)



  ‘-에 대하다’는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번역 말투입니다. 영어를 잘못 옮겨 잘못 퍼진 말투입니다. ‘-에 대하다’는 “말의 맥이 빠져 박력 없는 표현”이 아니지요.



.. 이는 일어의 ‘∼ている’와 영어의 ‘be + ∼ing’ 형을 흉내 낸 것이지만, 오래 익어서 우리 어감을 별로 해치지 않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우므로 굳이 절대로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마치 우리말을 서투르게 배워 쓰는 외국인 말 같은 표현은 피해야 한다 ..  (256쪽)



  영어 현재진행형을 잘못 옮긴 ‘-고 있다’가 “우리 어감을 별로 해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이 그만 이런 말투에 길들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고 있다’는 영어 현재진행형뿐 아니라, 일본사람이 ‘中’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쓰는 말투가 뒤섞이면서 아주 얄궂게 퍼졌습니다.


  이러한 말투를 나무라려고 한다면, 이수열 님부터 이러한 말투를 안 써야 할 텐데,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라는 책에서 ‘-고 있다’ 같은 말투를 퍽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모두 바로잡아야지 싶습니다.



- 부추기고 있으니(25쪽)

- 즐겨 쓰고 있으니(62쪽)

- 앉아 계십니다(119쪽)

- 말살이를 시키고 있다(210쪽)

- 길을 막고 있는(328쪽)

- 같이 쓰고 있지만(338쪽)

- 예사로 쓰고 있으니(342쪽)



.. 우리말을 영어 직역투로 쓰는 대표적인 기형 서술어가 ‘-을 갖는다’는 표현이다. 아무거나 ‘갖는다’고 한다 ..  (44쪽)



  한편, ‘갖는다(가지다, 갖다)’가 영어 직역투라고 꼬집는데, 정작 이수열 님도 이 말투에서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갖는다’와 비슷한 꼴로 ‘지니다’를 똑같이 잘못 씁니다. 낱말을 ‘가지다’ 아닌 ‘지니다’로 바꾼다고 해서 영어 직역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 피동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64쪽)

- 일본인만의 고유한 정서를 지닌 것이 아닐(212쪽)

- 명사의 뜻을 가진 한자(275쪽)

- 더러운 뜻을 지니게 되었다(308쪽)

- 하여간 등의 뜻을 지닌 부사(335쪽)



.. ‘저절로, 자진하여, 제 힘으로’를 뜻하는 부사인데, 몇몇 국어사전이 부사 이외에 자기 자신을 뜻하는 명사로도 규정하여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스스로를 보살펴라’ 따위의 예문을 보였으나, 모두 분별 없는 짓이다. 아무 격조사도 붙이지 말고 순수하게 부사로만 써야 한다 … ‘자신’은 ‘자기’와 더불어 한자어임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친숙하게 쓰는 명사여서 ‘스스로’로 바꿔 쓰면 오히려 억지스러운 느낌이 든다 … ‘자기가’, ‘자신이’를 ‘스스로가’로 바꾼다고 자주 정신이 돋보이거나 우리말이 더 순수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유한 어법이 무너지고 말맛만 상하니, 절대로 섣부른 말놀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 ‘스스로도’를 빼어 버리고 “주민도 자구 노력해야”로 고쳐야 한다 ..  (141, 142, 143쪽)



  ‘스스로’를 다루는 이 대목에서도 ‘한자말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 ‘자기·자신’은 널리 써도 되고, 한국말 ‘스스로’는 쓰임새를 넓혀서 즐겁게 쓰면 안 될까 궁금합니다. “주민도 자구 노력해야”처럼 고쳐쓰라고 하는 말도 아리송합니다. 왜 “주민도 스스로 애써야”처럼 쓰면 안 될까요?


  말은 언제나 자랍니다. 고이는 말은 없습니다. 먼 옛날이라면 ‘스스로’도 아주 좁은 틀에서만 쓰면 됩니다. 오늘날처럼 갖가지 문명과 온갖 생각이 넘치는 때에는 한국말도 쓰임새를 차츰차츰 넓혀서 우리 뜻과 넋을 알뜰살뜰 담아낼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 ‘모두’는 ‘서로’, ‘스스로’, ‘그대로’처럼 원래 부사로만 써 본 말인데, 요즈음 표현력이 미숙한 공직자와 언론인이 명사로 둔갑시켜 쓰는 사례가 만연하자, 주요 국어사전이 덩달아 명사로도 풀이해 우리의 언어 생활을 치졸하게 한다 ..  (144쪽)



  ‘모두’를 다루는 대목에서도 이수열 님이 ‘규범주의’에 갇힌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수열 님이 내세우는 ‘한국 말법’은 누가 세운 말법일까요? 예부터 한국사람이 스스로 쓰던 말법일까요, 아니면 몇몇 국어학자가 서양 말법에 따라 한국 말법을 억지로 끼워맞춘 말법일까요?


  “너희 모두 먹었니?”나 “우리 모두 좋아요!” 같은 말마디에서 ‘모두’는 이름씨일까요, 어찌씨일까요? 이런 말마디는 옳을까요, 그를까요?



..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는 ‘감사한다’가 일본말 찌꺼기이므로 버리고 ‘고맙다’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그것은 오해다. 일본인이 ‘감사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이 일본인만의 고유한 정서를 지닌 것이 아닐 뿐더러, 그 뜻과 느낌이 우리말에도 맞는다 ..  (212쪽)



  ‘감사(感謝)’라는 한자말을 정 쓰고 싶으면 쓰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한자말을 쓰려고 한국말 ‘고맙다·고마움’을 밀어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한국사람이 갑작스레 ‘감사’라는 한자말을 부쩍 자주 쓰는 까닭은 일제강점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던 말투에 길들었고,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이 한자말이 어마어마하게 퍼졌습니다. 그러니 이 한자말을 놓고 ‘일본 한자말’이라고 나무랄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던 99%가 넘는 오랜 한겨레가 ‘고맙다’라는 한국말을 썼을까요, ‘감사하다’라는 한자말을 썼을까요? 규범주의에 갇힌 틀과 ‘한자말 사랑’을 내세워서 한국말을 엉뚱하게 밀어내는 일은 안 해야지 싶습니다.



.. “꾸준히 노력하는 가운데 성공의 문이 열린다”, “계절이 바뀌는 가운데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싹튼다”, “바쁜 가운데 용케 틈을 냈다”처럼, 일이나 행동, 때가 나아가는 과정을 뜻하는 ‘가운데’를 아무 데나 버릇처럼 쓰면, 말의 표현 방식이 일정한 틀로 굳어서 졸렬해진다 ..  (158쪽)



  ‘가운데’도 영어 번역 말투입니다. 그리고, ‘中’을 즐겨쓰는 일본사람 말투이기도 합니다. ‘가운데’는 이러한 말씀처럼 쓸 수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말풀이도 잘못입니다. “꾸준히 애써서 성공이라는 문을 연다”, “철이 바뀌니 자연을 새롭게 보는 마음이 싹튼다”, “바쁜데 용케 틈을 냈다”처럼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 살아가는 중에 뜻밖에(277쪽)

- 대학 교수가 강연하는 중에(337쪽)



  “살아가는 중에”는 “살면서”로 바로잡고, “강연하는 중에”는 “강연하면서”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 대목에 나오는 ‘중’을 ‘가운데’로 고친들 올바르지 않습니다.



.. 다음 예문 중 밑금 그은 ‘의’는 말의 매끄러운 흐름을 가로막는 군더더기다 ..  (172쪽)



  한국말을 어지럽히는 잘못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는 ‘-의’를 다루면서, 이수열 님은 그만 ‘-의’를 집어넣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의’는 잘못이고, 이수열 님이 쓴 ‘-의’는 알맞거나 올바른가요? “말의 매끄러운 흐름”이란 무엇일까요?



- 그 법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한(5쪽)

- 이 책의 결점(6쪽)

- 자신의 일을 말하는 것인지 상대편의 일을 말하는 것인지(21쪽)

- 종래의 국어사전(25쪽)

- 위의 표에서(32쪽)

- 일반인의 대화에서(35쪽)

- 일본어의 특유한 표현법을 모방한 것이어서(61쪽)

- 조상의 숭고한 얼이 깃든 우리의 고유한 말본을 망가뜨리는(90쪽)

- ‘の’의 용례 ‘君への手紙’의 번역문이다(181쪽)

- 앞의 보기에서 말한 것처럼(184쪽)

- 이상의 예는 각각의 시기를 나타내는 말이므로(196쪽)

- 밥의 양이 적을 경우에(197쪽)

- 말의 품위를 떨어뜨린다(208쪽)

- 대중의 언어 생활(219쪽)

- 형용사의 뜻을 지닌 한자나 한자어(275쪽)

- 단편소설의 한 장면이다(325쪽)

- 신문 기사 속의 용례를 살펴보자(342쪽)

-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낸다(342쪽)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라는 책에서 몇 군데만 들었는데, 이 보기글에서 한자말을 한자로 바꾸고, ‘-의’를 ‘の’로 바꾸면, 일본사람이 쓴 글하고 똑같습니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나 “앞의 보기에서”는 아주 일본 말씨입니다. 일본사람이 원고지를 쓸 적에 으레 보여주던 말씨예요. “위의 표에서”는 “앞서 든 표에서”나 “이 표에서”로 바로잡고, “앞의 보기에서”는 “앞서 든 보기에서”나 “이 보기에서”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125쪽을 보면 “이웃으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 이웃의 눈총을 받았다”처럼 손질한 보기글이 있는데, “이웃한테서 눈총을 받았다”로 바로잡아야지요. 127쪽을 보면 “스승으로부터 글을 배운다 → 스승께서 글을 배운다”처럼 손질한 보기글이 있는데, “스승한테서 글을 배운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 영어 직역투로 쓰는 대표적인 기형 서술어(44쪽)

- 영어의 영향을 받은 표현 형식의 대표적인 예다(179쪽)

- 전면적으로 다시 만들어야 할(283쪽)

- 습관적으로 마구 쓴 것이다(324쪽)

- 부분적인 소유격을 뜻하는(343쪽)



  ‘-의’ 못지않게 한국말을 어지럽히는 ‘-的’이 있는데, 이수열 님은 ‘-的’붙이 낱말은 아예 안 건드립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말투를 곳곳에 씁니다. “손꼽히는 말”, “손꼽힌다”, “모조리/몽땅/모두”, “버릇처럼”, “살짝/조금”으로 고쳐쓸 노릇입니다.



.. ‘-화한다’는 고속·국제·도시·미·민주처럼 동사의 어근이 될 수 없는 한자어에 붙어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자동사와 ‘무엇을 어떻게 되게 한다’는 타동사를 이루는 접미사로, 다음같이 쓴다 … 요즈음 지식인들은 이처럼 간명한 논리를 모르고, 아무 말에나 ‘-화한다’를 붙여 쓰며, 써야 할 말에 붙일 때에는 ‘-화시킨다’, ‘-화된다’, ‘-화되어진다’ 따위로 꼴사납게 쓴다 ..  (82쪽)



  ‘-化’를 붙이는 말버릇도 한국말을 어지럽힙니다. 이런 말버릇도 일본사람 말버릇입니다. 이수열 님은 이 일본사람 말버릇도 스스로 바로잡거나 가다듬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고쳐 본다면, 더 빠르게 한다고 할 때에는 ‘고속화한다’가 아니라 ‘빠르게 한다’나 ‘빨라진다’라 적으면 됩니다.



- 우리말은 끝없이 저질화할 것이다(61쪽)

- 잘못 쓰는 표현을 합리화한 것이므로(75쪽)

- 너무 치졸해서 도저히 생활화할 수 없다(79쪽)

- 더 빠르게 한다고 할 때에는 ‘고속화한다’고 해야 한다(83쪽)

- 더욱더 저질화하는 처사를 보니(283쪽)



  이수열 님은 한자말을 너무 사랑하는 탓에 외마디 한자말도 즐겨쓰고, 쉽지 않거나 묶음표에 넣는 한자말도 자꾸 씁니다. 몇 가지 보기글을 옮겨 봅니다. 이러한 보기글을 바로잡지 않으면서 “우리말 바로 쓰기”를 할 수 있을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뿐입니다. ‘납득’ 같은 낱말은 일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한국말 ‘닿소리·홀소리’가 있는데, 굳이 묶음표를 치고 한자까지 밝히면서 ‘자음·모음’을 써야 하는 까닭도 아리송합니다.



- 격려해 주신 데 대해 충심으로 감사한다(5쪽)

- 의미가 서로 통하는(25쪽)

- 똑같은 범주에 속한다(79쪽)

- 전혀 감이 안 잡힌다(325쪽)

- 주체성 상실을 겸해서(342쪽)

- 쓰임이 자재로운 데 반해(344쪽)


- 일순간에 구별할 수가 없다(21쪽)

- 알맞은 순수어로 쓰자(204쪽)

- 납득(納得)한 학생이 설득한 학생에게(207쪽)

- 필자는 이 말들의 뜻과 문법 기능을 골똘히 연구한 끝에(210쪽)

- 기승을 부린다(329쪽)

- 그녀를 연발할 때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329쪽)

- 우리말과 표현 방식이 판이한 외국어(329쪽)

- 지식인들이 애용하는 단골말(337쪽)

- 우리말로 오인하고 예사로 쓴다(340쪽)

- 정중하고 융숭하게 대접하기도 하고(344쪽)


-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할 것임을(5쪽)

- 자음의 발음은 모든 모음(母音)과 자음 중에서(23쪽)

- 미흡한 교육과 무관심한 언중(言衆)(34쪽)

- 지식인의 말병(言語病)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약(46쪽)

- 어느 정도의 자의(自意)가 있으므로(198쪽)

- 일본 의태어 ‘きら’의 취음한자(取音漢字)다(337쪽)

- 악화(惡貨)에 밀려난 양화(良貨) 신세가 되었다(339쪽)



  이밖에, “옥의 티”처럼 으레 쓰는 말투를 “옥에 티”처럼 쓰시는데, 우리는 그냥 “티”라고만 적으면 됩니다. 티라면, 옥에 묻은 티만 있지 않아요. 어디에서나 티는 티입니다. “인식함인지”처럼 이름씨 꼴로 끝맺는 말씨는 번역 말투입니다. “위와 같이”도 “앞의 보기”나 “위의 표”처럼 일본 말투입니다. “이와 같이”로 고쳐써야 합니다. ‘-지다’를 아무렇게나 쓰지 말라 이야기하시면서 “생각이 틀려지나 보다”처럼 적은 글줄도 알맞지 않습니다. “필요성을 느껴서”는 “필요를 느껴서”로 바로잡거나 “해야 한다고 느껴서”로 바로잡습니다. “위 기사”는 “이 기사”로 바로잡고, “예로부터”는 “예부터”로 바로잡습니다.



- 옥에 티(8, 63쪽)

- 외국어 교육에나 하는 것으로 인식함인지(21쪽)

- 위와 같이(162쪽)

- 많이 배울수록 생각이 틀려지나 보다(197쪽)

- 필요성을 느껴서 일부러 하는 행위가 아니므로(198쪽)

- 위 기사에서(340쪽)

- 예로부터(341쪽)



  끝으로 두 가지를 붙입니다. 쉽게 쓰면 될 말을 퍽 어렵게 쓴 글월을 두 가지만 뽑아서 손질해 봅니다. “우리말 바로 쓰기”가 참답게 한국말을 바르게 쓰면서 즐겁게 살찌우고 아름답게 밝히는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으면 쓰되, 지나치게 한자말을 내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다 함께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한국말을 가꿀 수 있는지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 의미가 서로 통하는 ‘창(窓)’과 ‘구(口)’가 겹쳐서 구상명사와 추상명사의 뜻을 함께 지닌 창구는 (25쪽)

→ 뜻이 서로 이어지는 ‘창(窓)’과 ‘구(口)’가 겹쳐서 꼴있는이름씨와 꼴없는이름씨로 함께 쓰는 창구는

: ‘의미(意味)’는 ‘뜻’으로 다듬습니다. ‘구상명사(具象名辭)’는 ‘꼴있는이름씨’로 손보고, ‘추상명사(抽象名詞)’는 ‘꼴없는이름씨’로 손봅니다. “-의 뜻을 함께 지닌”은 “-로 함께 쓰는”으로 손질합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앞에서는 한자말 ‘의미’를 쓰다가 뒤에서는 한국말 ‘뜻’을 쓰는데, 앞뒤 모두 한국말 ‘뜻’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최현배 씨가 쓴 《우리 말본》에 보조 동사가 자동사와 어울리는 예로, ‘날씨가 따뜻해서 산의 눈이 녹아진다’, ‘신라가 고려에 망하여졌다’를 들어 놓았으나 너무 치졸해서 도저히 생활화할 수 없다 (79쪽)

→ 최현배 씨가 쓴 《우리 말본》에 도움움직씨가 제움직씨와 어울리는 보기로, ‘날씨가 따뜻해서 산의 눈이 녹아진다’, ‘신라가 고려에 망하여졌다’를 들었으나 너무 어설퍼서 도무지 쓸 수 없다


: ‘예(例)’는 ‘보기’로 손봅니다. ‘치졸(稚拙)하여’는 ‘어설퍼서’나 ‘엉뚱해서’로 손질하고, ‘도저(到底)히’는 ‘도무지’나 ‘아무래도’로 손질합니다.



  한국말은 한국말입니다. 한국말 뿌리는 시골말에서 찾아야 합니다. 지식인들이 잘못 쓰는 말은 그만 건드리고, 먼먼 옛날부터 이 나라에서 시골사람이 손수 짓고 손수 가꾼 말을 슬기롭게 살피면서 알차게 북돋우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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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번쩍 놀이 1 - 이얍 들면서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놀던 산들보라가 문득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상자를 번쩍 든다. 빈 우유상자인데, 일산 할아버지가 예전에 하나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빈 우유상자를 발판으로 삼아 올라서면서 놀기를 즐기는데 산들보라는 이 우유상자를 들면서 “나 힘 세!” 하고 외친다. 4347.10.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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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무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무개가 이러저러한 뒷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사람 수준이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알라딘이라는 곳에서

'알라딘 서재지기'라는 이들이

독재와 똑같은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면서

언제나

일방통행과 일방결정과 일방통보만 하는 짓을

벌써 참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까닭도

바로

알라딘에서 서재를 쓰는 '우리들 수준'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알라딘 '서재지기'라고 하는 '관리자(나라로 치면 공무원, 쇠밥그릇)'를

나무라는 일은 참으로 부질없다.

이들을 나무라 봤자

바로 나 스스로를 나무라는 꼴이니까.


'서재지수'라고 하는 것을

알라딘 회사에서 바꾸면서

알라딘 회원한테는

한 마디도 알리지 않았다.

그냥 바꾸었다.


몇몇 사람이 궁시렁(?)거리니

비로소 알림글을 띄운다.


그러나, 서재지수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아직 안 밝힌다.

예전에도 안 밝혔고 오늘도 안 밝힌다.


굳이 예스24를 들 것은 없지만,

예스24는 '예스24 블로그 지수'를 어떻게 셈하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그리고 '이야기 나누기(피드백)'가 된다.


알라딘은 무엇을 할까?


독재를 한다.


..


나는 알라딘이라는 회사를 보고 이곳에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믿는

아름다운 책을 생각하고,

내가 믿는

작고 튼튼하며 사랑스러운 출판사를 생각하면서,

이런 글 저런 글을 쓴다.


..


독재 짓거리를 그치지 않는

알라딘 회사 서재지기들 바보스러운 짓을 놓고

앞으로 더 토(?)를 달거나 딴죽(?)을 걸고 싶지 않다.

이런 글을 쓰는 시간조차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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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서재지기님의 "[공지] 서재 지수 변경 안내 "



그렇군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을
서재를 쓰는 사람한테
미리 한 마디도 알리지 않고
어떠한 논의나 토론이나 이야기도 없이
`일방 결정`에 `일방 통보`만 하는군요.

이것은 완전히 독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용자도 소비자도 서재 사람들도
모두 무시하는 짓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린 것은 죄송해 할 줄 알면서,
서재를 쓰는 사람들 마음이 어떠한가는 살필 줄 모르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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