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0.17. 큰아이―천막에서



  마당 한쪽에 천막을 친다. 큰아이가 천막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린다. 천막 모기그물로 가을바람이 살랑 들어온다. 풀바람을 쐬면서 그림을 그린다. 마룻바닥에서 그림을 그릴 적하고, 마당에서 그림을 그릴 적에 다르다. 시외버스에서 그림을 그릴 적하고,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릴 적에 다르다. 우리가 어느 곳에 깃드는가에 따라 우리가 드러내는 목소리와 생각과 마음이 모두 다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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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13) 규칙적 1


나는 나의 여자친구가 오는 것으로만 알았다. 흔히 여자친구는 저녁식사 전에 거의 규칙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녕이라고 소리지르고는 곧 그 친구가 언제나 하는 말을 기대하였다

《오리아나 팔라치/박동욱 옮김-사과를 따지 않은 이브》(새벽,1978) 118쪽


 거의 규칙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 거의 꾸준히 나를 찾아왔던

→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왔던

→ 거의 날마다 나를 찾아왔던

→ 바지런히 나를 찾아왔던

→ 거의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왔던

 …



  나한테 ‘자주’ 찾아오는 사람은 ‘꾸준히’ 얼굴을 내밉니다. ‘한결같이’ 나한테 찾아오고, ‘줄기차게’ 내 둘레에 있습니다. 자주 볼 수 있는 사이인 만큼, ‘날마다’ 보거나 ‘거의 날마다’ 볼 테지요. ‘틈만 나면’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규칙적 변화 → 꾸준한 변화

 규칙적인 생활 → 꾸준한 삶

 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 → 딸랑 소리가 꾸준히 울리다


  한자말 ‘규칙’에 ‘-的’을 붙이면 ‘규칙적(規則的)’이 되고, 이 낱말은 “일정한 질서가 있거나 규칙을 따르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꾸준히’나 ‘자꾸’나 ‘잇달아’를 밀어내면서 쓰임새를 넓힙니다. ‘규칙’이라는 낱말은 알맞게 받아들여서 쓰면 될 텐데, 이 낱말에 굳이 ‘-的’을 붙여서 여러 가지 한국말을 밀어내야 할는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4336.2.26.물/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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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여자친구가 오는 줄로만 알았다. 흔히 여자친구는 저녁 먹기 앞서 거의 꾸준히 나를 찾왔다. 그래서 나는 반가워 하고 소리지르고는 곧 그 아이가 언제나 하는 말을 기다렸다


‘나의’는 ‘내’로 바로잡고, “오는 것으로만”은 “오는 줄로만”으로 손봅니다. “저녁식사(-食事) 전(前)에”는 “저녁 먹기 앞서”로 손질하고, “찾아왔던 것이다”는 “찾아왔다”나 “찾아오고는 했다”로 손질하며, “안녕(安寧)이라고 소리지르고는”은 “반가워 하고 소리지르고는”이나 “잘 왔어 하고 소리지르고는”으로 손질합니다. ‘기대(期待)하였다’는 ‘기다렸다’로 다듬습니다.



규칙적(規則的) : 일정한 질서가 있거나 규칙을 따르는

   - 규칙적 변화 / 규칙적인 생활 / 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

규칙(規則)

1.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한 법칙이나 질서

2. 헌법이나 법률에 입각하여 세우는 제정법의 한 형식 


..



 '-적' 없애야 말 된다

 (837) 규칙적 2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데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몸도 많이 쇠약해 있었던 탓이다

《정운현-임종국 평전》(시대의창,2006) 107쪽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데다

→ 때맞춰 밥을 먹지 못한데다

→ 제때 밥을 못 먹은데다

→ 끼니를 못 챙긴데다

→ 끼니를 흔히 거른데다

 …



  군대에서는 으레 “규칙적인 식사와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는 군대 질서와 말투가 박힙니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군사독재가 퍽 길었던 탓에, 군대에 깊이 박힌 일제강점기 군대 말투가 사회 곳곳으로 퍼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제강점기 군대 질서 찌꺼기를 씻어내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도 씻어내지 못하고, 군대 질서 찌꺼기도 씻어내지 못하는 셈입니다.


  앞으로는 어디에서나 “제때 먹는 밥”을 이야기하면서 “때맞춰 먹는 밥”을 말할 수 있기를 빕니다. “세 끼 밥”이든 “두 끼니 밥”이든 누구나 알맞고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기”와 “끼니를 챙기기”로 나아가면서 우리 둘레에 있는 배고픈 사람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0.2.23.쇠/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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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춰 밥을 먹지 못한데다 공부에 매달리느라 몸도 기운을 많이 잃었던 탓이다


“식사(食事)를 하지 못한데다”는 “밥을 먹지 못한데다”로 다듬고, ‘열중(熱中)하느라’는 ‘매달리느라’로 다듬으며, “많이 쇠약(衰弱)해 있었던”은 “많이 나빠진”이나 “힘이 많이 빠진”이나 “기운을 많이 잃은”으로 다듬습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99) 규칙적 3


할아버지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동네 뒷산의 약수터를 돌고 아침 먹기 전에 돌아왔다

《이준호-할아버지의 뒤주》(사계절,2007) 19쪽


 할아버지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 할아버지는 짜임새 있게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바지런히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반듯하게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바지런하셨다

 …



  규칙을 잘 지키며 산다고 하면 ‘짜임새 있게’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짜임새 있게 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반듯하구나’ 싶어요. 이렇게 사는 분은 작은 틈조차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빈틈이 없어요. 하루 한때 허술하게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부지런하다

 바지런하다


  지난날 독재정권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학교 어귀나 교실이나 길가 알림판에는 ‘근면’과 ‘성실’을 내걸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라에서 윽박지르는 푯말에 맞추어 기계나 군인처럼 척척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삶을 스스로 알차게 가꾸는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착착 따라야 했어요.


  이러한 틀이나 흐름 때문에 ‘규칙 + 적’ 얼거리로 짠 한자말을 자꾸 쓰는구나 싶습니다. 아직 이 나라에 민주와 평화와 평등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에 ‘규칙적’ 같은 낱말이 두루 퍼지기만 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서로 아끼면서 부지런히 삶을 가꾸면 아름답습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바지런히 삶을 일구면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사랑스러움을 꿈꿉니다. 4340.11.8.나무/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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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바지런히 사셨다. 내가 일어나기 앞서 동네 뒷산 약수터를 돌고 아침 먹기 앞서 돌아왔다


‘생활(生活)’은 ‘삶’으로 고치면 되는데, 이 글월에서는 뒷말과 묶어 “바지런히 사셨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동네 뒷산의 약수터”는 “동네 뒷산 약수터”로 손보고, “아침 먹기 전(前)에”는 “아침 먹기 앞서”로 손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91) 규칙적 4


정말 수염 위에는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빨래집게 자국이 나 있었어요

《잔니 로다리/이현경 옮김-치폴리노의 모험》(비룡소,2007) 40쪽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 똑같은 간격을 두고

→ 똑같은 틈을 두고

 …



  빨래집게 자국이 있는데, 이 자국부터 저 자국까지, 또 저 자국부터 그 자국까지, 똑같이 벌어집니다. 자국은 똑같은 틈을 두고 차근차근 있습니다. 그래요, 똑같은 틈입니다.


  한편, 보기글은 통째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가지런히 있어요”라든지 “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나란히 있어요”처럼. 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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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나란히 있어요


‘정(正)말’은 ‘참말’로 다듬고, “수염(鬚髥) 위에는”은 “수염에는”이나 “나룻에는”으로 다듬으며, ‘간격(間隔)’은 ‘틈’이나 ‘사이’로 다듬습니다. “자국이 나 있었어요”는 “자국이 있었어요”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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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이한구 지음 / 눈빛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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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11월호에 함께 싣는 글이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6



온마음 다해 사랑하는 사진

― 군용

 이한구 사진

 눈빛 펴냄, 2012.10.16.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들꽃이 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들꽃이 피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들꽃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들꽃이기 때문입니다.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서 동백꽃이 피는 이른봄을 맞이해야 비로소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백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만 헤아린다면, 옷이나 가방이 새긴 들꽃 그림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찻잔이나 책에 새긴 들꽃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하고 잇닿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꽃을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찻잔에 들꽃 사진을 새기려면, 맨 먼저 들꽃한테 찾아가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을 테지요.


  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웃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과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사로잡혀 골목에서 놀지 못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골목놀이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골목동네를 밀어내고 들어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 놀이터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러한 것을 빗대어 ‘골목놀이 어린이’ 이야기를 곰곰이 짚을 수 있습니다.



.. 군입대 통지서가 나왔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놀라진 않았으나, 몇 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늘 해 오던 대로 카메라를 들고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어슬렁거렸는데 유독 휴가 나온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






  이한구 님은 《군용》(눈빛,2012)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책에 깃든 군대 모습을 돌아보면, 함부로 찍을 수 없는 모습이라든지, 군대에서 바깥에 비밀로 감추는 모습을 엿볼 만합니다. 이한구 님은 책끝에 몇 마디를 붙이면서 “촬영한 필름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피엑스에서는 흑백 필름의 현상이 불가능했다. 비닐봉지로 싸서 땅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필름에 빗물이 스밀까 봐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하고 밝힙니다. 군대에서 현상이나 인화를 하기 힘들기도 했을 테지만, 현상과 인화를 했더라도 이 사진을 섣불리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군대 바깥에서는 ‘아무것 아니네’ 하고 여길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군사기밀 위반’이라고 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사기밀을 들먹이는 군대에서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급이 있는 간부가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사진을 찍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건 철책에서건 참호에서건 지오피 초소에서건 수색이나 매복을 하는 때이건 깊은 두멧자락에 천막을 치고 여러 날 묵으며 훈련을 할 때이건, 간부들은 거리끼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열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대대장이나 연대장이나 사단장 상장을 줄 적에도 사진을 찍으며, 단체행사나 진급신고를 할 적에도 사진을 찍어요.


  여느 사병은 사진기를 몰래 숨겨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사관이나 중대장이 틈틈이 관물검사를 하지만, 사병끼리 숨긴 사진기는 거의 들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숨깁니다. 서로서로 아주 깊은 곳에 사진기와 필름을 감춥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을 돌이키면, 필름 한 통조차 군대에 못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있던 군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라는 곳에 있었는데, 지도로 보면 남녘 땅이 아닌 북녘 땅이었습니다. 지오피에서 내려와 주둔지에 있더라도 외출이나 외박을 ‘리 단위 작은 마을’ 언저리에서 맴돌았고, 이곳에서 몇 곱에 이르는 바가지를 쓰곤 했습니다.





.. 가자, 최전방으로.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후방에서 뭉개지 말고 최전방을 겪기로 마음을 굳혔다. 역으로 생각하면 입대는 내 삶에서 최전방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군대. 외부에서 주어진 의미 외에,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병이면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군대에서 찍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돈과 이름과 힘이 없으면 모두 끌려가는 군대라는 곳에서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민주다 평등이다 평화다 하고 외치더라도, 군대에서는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켜서 적군을 무너뜨리려는 뜻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줄을 대어 널널한 곳으로 빠지는 사람이 많고, 아무런 줄이 없는 사람은 가장 막다르거나 고된 멧골짜기 추운 곳으로 가기 일쑤입니다. 내가 군대에 있던 1995∼97년만 하더라도 도시 인구가 아주 많았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매우 적었는데, 내가 있던 군대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들어온 사람과 여느 공장 일꾼으로 있다가 들어온 사람이 아주 많아 ⅔를 차지했어요.


  사내는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들어가서 겪기로는, 군대에 가면 거친 말을 배우고 주먹질에 길들며 계급과 신분에 따라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제도권 질서에 얽매입니다. 서로 사람답게 아끼는 사랑이나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기로운 삶을 가꾸는 길을 배우지 못합니다. 게다가 젊은 사내를 꽁꽁 틀어막은 뒤 곧잘 성인비디오를 틀어 주는 군대이니,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성교육이나 사랑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사내는 가시내를 가시내가 아닌 성 노리개로 바라보는 눈길에 젖어듭니다.


  사회에 환하게 드러나지 않은 군대 모습이라고 할 텐데, 영화를 찍는 이는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를 무대나 장치로 되살려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군대에서 겪은 대로 머릿속으로 되살려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군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이루는 이야기인 사진은, 사진기도 필름도 못 들여오도록 하는 군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군대에서 1회용사진기를 썼습니다. 소대나 분대에서 돈을 모아 1회용사진기를 한 대 장만하기로 말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누군가 휴가를 나가거나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올 적에 1회용사진기를 챙겨서 가져와야 하는데, 휴가자나 외출자가 부대로 돌아올 때에 경계근무를 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찬찬히 따집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가까운 사이라면, 이녁한테 줄 선물을 미리 챙겨 사진기를 봐 달라 말합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깐깐하다면, 1회용사진기를 비닐봉지로 싸서 땅에 파묻고 부대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밤에 경계근무를 서러 나올 적에 ‘아까 파묻은 자리’로 몰래 조용히 가서 캡니다.





..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승리부대에 배치됐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작고 애잔한 것들이었다 ..



  분대와 소대마다 몰래 들여와서 찍은 사진은 다시 몰래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문방구에 맡겨서 필름을 찾고 사진을 뽑습니다. 원본필름은 문방구에서 바로 불살라 없앱니다. 우리는 사진 몇 장만 챙깁니다. 비무장지대 안쪽 지오피와 선점에서 내내 있었기 때문에, 사진기나 필름이 사열이나 검열이나 검사에서 걸리면 바로 영창으로 잡혀갔어요. 그런데, 몰래 사진기를 들여와서 몰래 찍고 몰래 찾은 사진은 하나같이 ‘금강산을 뒤로 하고 손가락 브이를 그린 모습이거나, 눈을 쓸다가 찍은 모습, 비가 내려 길이 깎였기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길을 다시 닦으려고 일하던 모습, 얼굴을 재로 새까맣게 발라서 야간행군을 하다가 찍은 모습, 내무반에서 깔깔거리며 놀던 모습’입니다. 이른바 군사기밀에 걸릴 만한 모습은 처음부터 찍을 일이 없습니다. 젊은 사내들이 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데에 갇혀서 쓸쓸하게 지내며 끼리끼리 웃고 노는 모습만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거친 말과 주먹과 발길이 오가지만, ‘군대 기념’으로 찍는 사진에는 웃고 놀며 까부는 모습만 가득합니다. 고작 스물을 살짝 넘긴 앳된 사내들이 개구지게 뒹구는 모습입니다.






.. 결국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상병이 되고 나서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이한구 상병의 방독면은 카메라인가? 카메라가 너를 살려 주나?” 방독면 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화학전 대비 야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 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은 온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면서 찍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가 깃든 《군용》에도, 사진가 아닌 여느 군인이던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웃고 울며 찍은 ‘기록’에도 애틋한 삶이 흐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군대에서 온갖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군인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고 스스로 군대살이를 사진으로 담으라 하면 어떤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을 수 있을까요. 군대는 전쟁훈련을 시키는 곳이라 평화와 동떨어지지만, 군인이 되어야 하는 젊은 사내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면, 평화나 사랑이라는 싹이 살짝 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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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푸는 글쓰기



  오랫동안 엉킨 실타래를 푼다. 아마 이 실타래는 스무 해 동안 얽혔으리라 느낀다. 스무 해에 걸친 실타래가 어젯저녁에 비로소 풀린다. 아니, 엊저녁에 비로소 나 스스로 실타래를 푼다.


  어떤 실타래를 풀었는가 하면, ‘짓다(짓기·지음)’와 ‘만들다(만들기)’가 서로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실타래를 풀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는 ‘글짓기 숙제’와 ‘만들기 숙제’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썼지만, 글을 짓도록 하지 않았다. 글을 억지로 짜맞추거나 만들도록 시켰다. 예나 이제나 똑같은데, 학교에서 시키는 짓은 ‘글 짜맞추기’나 ‘글 만들기’이다. 그러니, ‘공작 숙제’만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일 노릇이 아니라, ‘글 쓰는 숙제’도 ‘글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여야 올바르다.


  요즈음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두루 쓰는데, 요즈음 학교나 사회나 문학에서 떠도는 ‘글쓰기’도 참다운 글쓰기는 아니다. 요즈음 떠도는 글쓰기는 허울만 글쓰기일 뿐, 속살을 살피면 ‘글 엮기’라고 느낀다.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글을 엮도록 이끄는 요즈음 ‘글쓰기 교육’이다. 많이 읽히거나 잘 팔리는 글이 되도록 글을 엮게끔 가르치는 오늘날 ‘글쓰기 강의나 교재’이다.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엉터리로 썼다면, 오늘날에는 ‘글쓰기’라는 이름을 엉뚱하게 쓴다. 예나 이제나 똑같다. 이름은 바꾸었으나 속살이나 알맹이는 그대로라 할 만하다.


  글짓기는 삶을 새로 짓듯이 쓰는 글이다. 글쓰기는 삶을 수수하게 밝히면서 쓰는 글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모르고서 글을 만지겠다고 한다면, 언제나 ‘글 만들기’나 ‘글 엮기’ 두 가지 가운데 하나에서 맴돌고 말리라.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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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63) 속의 11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 책이름


 타임 캡슐 속의 필통

→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

→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

→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

→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

 …



  토씨 ‘-의’를 붙이면 뜻이나 느낌이 두루뭉술합니다.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는지 제대로 안 드러납니다. 이 글월은 무엇을 말하려는 뜻이었을까요?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일까요?


  ‘-의’를 붙이면 이 모두를 뜻하지 않습니다. ‘-의’를 붙여서 이 모두를 뜻하려 했다면, 글을 엉터리로 쓴 셈입니다. 이것도 뜻하고 저것도 뜻하며 그것도 뜻하는 말씨란 없습니다. 타임 캡슐과 필통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 제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4) 속의 8


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김황/김정화 옮김-황새》(우리교육,2007) 100쪽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

→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

→ 숲에서 자라는 나무

 …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어떤 나무를 가리킬는지 궁금합니다. 알쏭달쏭합니다. “자연 속의 나무”도 아닌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설마, ‘自然中の成長の木’을 고스란히 한글로만 옮겨적은 글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이 글다우려면 “자연 속에서 자라는 나무”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자라는”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자라는”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나무가 ‘자연’에서 자라지, 어디에서 자랄까요? “자연에서 자라는 풀”이나 “자연에서 자라는 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또는 “들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때로는 “시골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

 숲에서 자라는 나무

 들에서 자라는 나무


  이 보기글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황새나 동물원에서 돌보는 황새 이야기를 다룹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사람이 부러 심지 않고 스스로 자라난 나무에서 보금자리를 튼 황새 이야기를 하려고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적었구나 싶습니다만, ‘숲’이라고 적어야 제대로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4341.6.16.달/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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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자연(自然)’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하지만, ‘사람이 따로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공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보기글이니, ‘숲’으로 손볼 때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7) 속의 9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에 대략적인 순서를 부여해 봤다

《드레이튼 해밀튼/권희종 옮김-한 미국인이 렌즈로 바라본 20년 간의 한국풍경》(생각의나무,2008) 9쪽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

→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들

→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들

→ 이 책에 실은 사진들

→ 이 책에 담은 사진들

 …



  사진책이니 사진이 실립니다. 사진책이니 사진을 싣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사진책에 실린”이나 “사진책에 실은”으로 고쳐야 알맞을 텐데, 사진책에는 으레 사진을 담기 마련인 만큼, ‘사진책’이라 하지 않고 ‘책’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이리하여 “이 책에 실은 사진”이나 “이 책에 싣는 사진”처럼 적으면 한결 단출합니다. 4341.11.18.불/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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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은 사진에 얼추 차례를 매겨 보았다


‘대략적(大略的)인’은 ‘얼추’나 ‘엉성하나마’나 ‘성기게’로 다듬고, “순서(順序)를 부여(附與)해 봤다”는 “자리를 잡아 보았다”나 “차례를 매겨 보았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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