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306) 약간의 1


인구구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년 인구가 가임연령층에 들어설 것이므로 이들 국가의 인구는 수십년 간 약간의 증가를 계속할 것이다

《레스터 브라운/이상훈 옮김-맬서스를 넘어서》(따님,2000) 16쪽


 약간의 증가를 계속할 것이다

→ 조금씩 늘어나리라 본다

→ 천천히 늘어나리라 본다

→ 꾸준히 늘어날 터이다

 …



  조금씩 늘어나는 사람들 숫자입니다. 차츰차츰 늘어날 숫자입니다. 천천히 늘어나는 숫자예요. 꾸준히 늘어나는 숫자일 테며, 멈추지 않고 자꾸자꾸 늘어날 숫자입니다.


 약간의 돈이 필요한 모양이다

→ 돈이 조금 드는 모양이다

→ 돈이 조금 있어야 하나 보다

 약간이나마 제 성의니

→ 조금이나마 제 마음이니

→ 모자라나마 제 마음이니

 고개를 약간 수그리다

→ 고개를 조금 수그리다

→ 고개를 살짝 수그리다


  한국말사전에 나온 보기글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약간’ 뒤에 ‘-의’를 붙인 말이든, ‘-의’가 안 붙은 말이든, ‘조금’으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살짝’을 넣으면 알맞을 자리가 있고 ‘모자라다’나 ‘적다’를 넣으면 알맞을 자리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한국말로 알맞게 넣으면, 토씨 ‘-의’는 어디에도 달라붙지 못합니다. 4337.7.28.물/4347.1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인구 얼개에서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는 어린이가 앞으로 아이를 낳을 나이가 될 테니, 이들 나라는 인구가 수십 년 동안 조금씩 늘어나리라 본다


‘구조(構造)’는 ‘얼개’나 ‘얼거리’로 고쳐쓰고, ‘비중(比重)’은 ‘무게’나 ‘자리’로 고쳐씁니다. “유년(幼年) 인구(人口)”는 “어린이”나 “나어린 사람들”로 손봅니다. “가임연령층(可姙年齡層)으로 들어설 것이므로”는 “아이를 낳는 사람으로 바뀔 터이므로”로 손보고요. “이들 국가(國家)의 인구(人口)”는 “이 나라 사람들 숫자”로 다듬고, “수십(數十) 년(年) 간(間)”은 “수십 년 동안”이나 “수십 해 동안”으로 다듬습니다. “증가(增加)가 계속(繼續)할 것이다”는 “늘어나리라”나 “늘어나리라 본다”로 다듬어 줍니다.



약간(若干)

1. 얼마 되지 않음

   - 그는 약간의 돈이 필요한 모양이다 / 약간이나마 제 성의니

2. 얼마 안 되게. 또는 얼마쯤

   - 고개를 약간 수그리다 / 그는 빵을 약간 베어 물고


..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7) 약간의 2


7년 전,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나는 약간의 영어만 할 줄 알았을 뿐, 한국말은 전혀 하지 못했다

《박채란-국경 없는 마을》(서해문집,2004) 178쪽


 약간의 영어만 할 줄 알았을

→ 영어만 조금 할 줄 알았을

→ 영어만 겨우 할 줄 알았을

 …



  한국말 ‘조금’이나 ‘살짝’이 있으나 ‘약간의’를 쓰는 분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글쟁이나 말쟁이가 흔히 이런 말을 씁니다. 영어를 어설프게 배운 분들이 이런 말을 쓰며,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익숙한 분들이 흔히 씁니다.


  “얼마 되지 않음”을 나타내는 한국말은 퍽 많아요. 이 많은 말 가운데 가장 알맞겠다고 생각하는 말을 넣으면 됩니다. ‘조금··살짝·겨우’에다가 ‘손톱만큼·바늘만큼·콩알만큼·좁쌀만큼·깨알만큼·모래알만큼’을 넣을 수 있습니다. 4338.1.16.해/4347.1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일곱 해 앞서,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나는 영어만 겨우 할 줄 알았을 뿐, 한국말은 하나도 못했다


“7년(年) 전(前)”은 “일곱 해 앞서”로 다듬습니다. ‘전(全)혀’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다듬고요.


..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68) 약간의 3


이 글은 국민에게 중요한 약간의 진리를 그들의 머리와 심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체를 사용하여 시도해 본 것이다

《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린하르트와 겔트루트》(광개토,1987) 5쪽


 국민에게 중요한 약간의 진리를

→ 사람들한테 중요한 진리를

→ 사람들이 아로새길 만한 참된 길을

→ 사람들이 알아 두면 좋을 참된 길을

 …



  진리를 ‘약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글쎄. 아리송하네요. 보기글에서는 ‘진리 몇 가지’라고 해야 알맞겠구나 싶습니다. 또는 이도 저도 덜어 “사람들이 알아 둘 만한 진리”나 “사람들이 아로새길 진리”로 손질해야지 싶어요. 한편, “알아 둘 만한”이나 “아로새길”이나 “새길 만한”으로 손질하면, ‘진리’라는 낱말까지 덜어도 됩니다. 4339.4.9.해/4347.1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글은 사람들이 새겨 둘 만한 참된 길을 머리와 마음에 하소연하는 투로, 이야기 말투로 써 보았다 


한국말 ‘하소연’을 한자말로 옮겨 적으면 ‘호소(呼訴)’가 됩니다. “머리와 심정(心情)에 호소하는”은 “머리와 마음에 하소연하는”으로 다듬고, ‘진리(眞理)’는 “참된 길”로 손보며, “이야기체(-體)를 사용(使用)하여 시도(試圖)해 본”은 “이야기 투로 써 본”으로 다듬습니다. ‘국민(國民)’은 ‘사람들’로 손봅니다. ‘중요(重要)한’은 그대로 두어도 되는데, 이 글월에서는 ‘알아두어야 할’이나 ‘알아두면 좋을’이나 ‘새겨야 할’이나 ‘새길 만한’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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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발자취 - 요시즈키 쿠미치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96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8.30.



  나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어른이 됩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숨결을 얻어 이곳에서 하루하루 자랍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치면서 어른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른이 되는’ 사람이지 ‘어른이 된’ 사람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요,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른 나이가 되어 짝을 지은 뒤 아이를 낳습니다. 짝을 짓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야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는 짝을 찾아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아이를 낳습니다.



- “사람은 ‘꿈’조차 살아갈 양분으로 삼을 수 있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16쪽)

- “어머니는 지난달에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럼,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서 힘드시겠네요.” “글쎄요. 솔직히, 괴로운 것도 같고, 마음이 놓인 것도 같고, 복잡한 심정이에요.” (52∼53쪽)



  아이를 낳는 두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면, 이때에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된 사람이기에 어른이지는 않습니다. 어버이가 될 뿐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사람을 어른과 아이로 나누었습니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아이라 했고, 철이 든 사람은 나이가 어려도 어른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값으로 사람을 잴 수 없고 따지지 않습니다. 나이값을 앞세워 높임말을 쓰라고 윽박지른다면 철없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철든 사람은 둘레 사람한테 ‘자네가 나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나를 섬기거나 우러러야지’ 하고 말하지 않아요. 철든 사람은 슬기롭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루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압니다. 높이려면 서로 높일 노릇인 줄 알기에 철이 있어요. 아끼려면 서로 아낄 노릇인 줄 알아서 철이 있어요.



-“제발, 엄마! 나도 언젠가 엄마가 된다고요! 나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줘요!” (66쪽)

- 알아차린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히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히나에게만 보이는 세계, 남보다 무언가가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없는 무언가가 많은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89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서울문화사,2013)를 읽습니다. 《너와 나의 발자취》는 ‘단편집’이 따로 있고, 여러 권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단편집’에서는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바라보는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어머니로 걷는 하루를 보여주고, 아버지로 거니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 “저기, 어, 어떤 곳이야? 내가 모레부터 살게 되는 도시는.” “척 보니 넌 가면 물에 뜬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 거야. 마치, 내가 이 섬에서 겉도는 것처럼.” (99쪽)

- “어때? 마음에 들어? 그 차림.” “놀라서 고추가 쪼그라든 것 같아.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안경과 이 섬이 제격인 것 같아.” (105쪽)

- “그거 입고 내 몫까지 잘 살아. 익숙해지면 아마 도쿄 생활이 엄청 즐거울 거야. ……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걸까?∥ (106∼107쪽)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오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새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발자취를 우리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물려줄까요?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녁 삶을 아름답게 누렸을까요?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느 자리에나 그예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즐겁게 물음표를 찍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걷는 길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즐겁게 가꿀 적에 나는 웃고 노래합니다. 웃고 노래하는 내 삶이면,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 ‘맞아. ‘나’는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의 나로 있고 싶어.’ (111쪽)

- “헤헤, 아주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나 덜렁이거든.” “힘들었겠다. 그러면.” “음, 좀 불편하긴 해. 어른들은 배려해 주지만,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거든. 오늘 사촌오빠네 집에 묵기로 했는데, 그 오빠는 처음 만난 날 내 손목을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어. 그 다음부터는 나도 만나기 좀 거북하더라. 이번에도 그 오빠 만날 걸 생각하니 너무 우울해서, 여기 온 건 좋은데 마음이 울적해서 산책 중이었어.” (151∼152쪽)



  밥을 짓습니다. 나도 먹고 아이들도 먹습니다. 밥을 차립니다. 내 어버이도 먹고 나도 먹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차리는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서로 즐겁게 어우러집니다. 함께 기쁘게 웃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내 가슴에 조그맣게 씨앗으로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서 물려받는 사랑을 저희 가슴에 자그맣게 씨앗으로 심어요.


  씨앗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씨앗입니다. 아이와 어버이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이어받는 사랑을 가슴에 곱게 씨앗으로 심어서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됩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쳐 슬기롭게 삶을 짓고 싶은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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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9. 하늘을 움켜잡는다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물을 밟고 걸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와 함께 보는 영화 〈말괄량이 삐삐〉를 보면, 아홉 살에서 열 살로 넘어가는 ‘삐삐’는 하늘을 날고 물을 밟으면서 걷습니다. 삐삐와 함께 노는 동무는 아무도 하늘을 못 날고, 물을 밟으면서 걷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삐삐는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고, 무엇이든 척척 잘 던지며, 기운이 아주 셉니다. 삐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까요?


  삐삐라는 아이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빙빙 날다가 아니카한테 말합니다. “하늘을 나는 건 말이야, 너는 물론 빗자루가 못 나는 거를 알지만, 빗자루는 그거를 모르기 때문이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알까요? 우리는 무엇을 모를까요? 우리는 하늘을 못 나는 줄 알기 때문에 하늘을 못 날지 않을까요? 우리는 물을 밟으며 걸지 못한다고 알기 때문에 물을 밟으며 못 걷지 않을까요?


  나는 이를 사진을 놓고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는 아름다운 사진을 못 찍을’까요? 잘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사진을 잘 못 찍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말 사진을 잘 못 찍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사진을 잘 찍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말 사진을 잘 찍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찍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찍고 싶은 사진을 이루려고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찍고 싶은 사진을 생각했으면, 찍고 싶은 사진을 ‘어떻게 찍겠노라’ 하고 온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을 움켜잡습니다. 하늘을 움켜잡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품에 안습니다. 바다를 품에 안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무처럼 즈믄 해를 삽니다. 나무처럼 즈믄 해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롯이 사진입니다. 나는 오롯이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옹글게 사진입니다. 나는 옹글게 꿈을 꾸고 생각을 짓기 때문입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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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8. 내 눈길이 가는 곳



  내 눈길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내 눈길이 가는 곳은 내가 바라보는 곳인데,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지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눈길이 가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책방에서 책꽂이 한쪽을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때 우리는 어느 책을 바라볼까요? 그저 아무 책이나 바라볼까요? 이때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을 테고, 내가 코앞에서 바라보지만 내 눈에 안 들어오는 책이 있어요. 내 눈에 들어오지만 내가 딱히 안 바라는 책일 수 있고, 내 눈에 안 들어왔지만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책일 수 있어요.


  어느 한 곳을 바라본다고 할 적에 찬찬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이 참으로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인지, 아니면 그저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본 곳인지, 하나하나 짚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아무 곳에나 사진기를 들이밀면서 찍을 수 없어요. 아무 곳이나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이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두 장 나올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 아무 생각이 없이 찍는 사진은 내 마음에 들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찍겠노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찍어야 비로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스스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에는, ‘바라보기’부터 합니다. 바라보기를 즐겁게 이룬 뒤에 ‘찍기’가 됩니다. 즐겁게 찍기를 하면, 이제 이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에 ‘아로새기기’가 돼요. 바라보기에서 찍기가 나오고, 찍기에서 아로새기기가 나옵니다. 이 다음은 무엇일까요? ‘이야기’입니다. 이웃과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는 이렇게 태어납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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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급식과 추천도서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단체급식을 한다. 더욱이 단체급식이 ‘무상급식’이 되도록 돈을 대단히 많이 쓴다.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교육과 복지가 될 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찜찜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이마다 ‘몸에 맞는 밥’과 ‘몸에 안 맞는 밥’이 다르다. 학교에 학급이 하나씩 있고, 학급 한 곳마다 아이가 스물이 안 된다면, 이럭저럭 ‘다 다른 아이’를 조금은 살필는지 모르나, 한 학교에 백 사람이 넘어가기만 해도 ‘다 다른 아이한테 다 똑같은 밥’을 줄 수밖에 없다. 너무 바쁘고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 학교에서는 ‘거의 강제 우유급식’을 했다. 우유가 몸에 안 받는 아이가 틀림없이 있는데, 학교에서는 ‘강제 우유급식’을 해서 돈을 걷었다. 우유가 몸에 안 받는 아이는 담임교사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억지로 우유를 집어넣어야 했다. ‘마시기’가 아니라 ‘집어넣기’이다.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면 ‘체질이 바뀐’대나 뭐라나.


  단체급식도 이런 ‘논리’가 되리라 느낀다. 어느 아이는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될 수 있고, 어느 아이는 달걀을 먹으면 안 될 수 있으며,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몸에서 안 받기 때문이다.


  나는 김치가 몸에 안 받는다. 어쩌다가 한 점 집어먹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먹어도 뱃속이 더부룩하다. 나는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찬국수를 한 점 잘못 집어먹다가 여러 날 배앓이를 하기 일쑤이다. 고작 한 점 집어먹고 말이다. 찬국수뿐 아니라 비빔국수도 똑같다.


  그러면, 이렇게 사람마다 다 다른 몸을 ‘단체급식’은 얼마나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나물을 좋아하는 아이한테 나물 반찬을 넉넉히 줄 수 있을까? 누런쌀로 짓는 누런밥을 좋아하는 아이한테 따로 누런밥을 줄 수 있을까? 보리밥을 좋아하는 아이가 보리밥을 먹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도시락을 손수 싸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은 아직 이르다 할 텐데, 열 살 나이가 되면 이때부터 도시락을 손수 싸서 먹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교육’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손수 밥을 짓는 삶을 배워야 한다. 어른들은 손수 밥을 짓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밥짓기’와 ‘도시락 싸기’를 차근차근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아이는 집에서 ‘밥짓기’와 ‘도시락 싸기’를 즐겁게 배워서, 동무들과 학교에서 기쁘게 밥 한 끼니 누리는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어야겠지. 왜냐하면, 교육이기 때문이다.


  복지로 헤아린다면, 집집마다 아침에 아이 도시락을 느긋하게 싸서 내줄 수 있을 만한 겨를을 누려야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일터(회사)에서 ‘아이 도시락을 싸서 챙긴 뒤 일터로 오는 겨를’을 한 시간쯤 챙겨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일터에서 아침 한 시간을 ‘늦게 출근하도록’ 법이나 제도를 마련해야 올바르다. 한 시간 늦게 학교에 가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도, 학교 울타리에서만 끝낼 노릇이 아니라, 회사에서 어른들도 똑같이 이에 맞추어야 올바르다. 왜냐하면, ‘복지’이기 때문이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과 몸에 맞추어, ‘제 몸에 맞는 밥을 스스로 챙길’ 수 있어야 즐겁고 아름답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쯤 다니면, 아주 마땅히 제 도시락은 손수 싸야 맞다.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이나 되고서도 밥짓기도 못한다면, 이 아이는 ‘반쪽짜리 삶’조차 아니다. 제 밥을 제가 차려서 못 먹는다면, 이 아이는 그동안 무엇을 배운 셈일까. 삶과 사랑과 살림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저녁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는 즐거움을 아이들도 학교에서 누려야 즐겁고 아름답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급식실에서 ‘스텐 밥판’을 쨍그랑 소리 나게 들면서 허둥지둥 입에 집어넣어야 하지 않다. 단체급식은 군대질서와 똑같다. 단체급식을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자꾸 늘리는 짓은 군대질서를 학교와 사회로 자꾸 퍼뜨리는 짓과 같다. 단체급식을 하는 데에 들일 돈은, 집집마다 ‘도시락 쌀 돈’으로 돌려주어야 맞다. 무상급식을 하느라 돈을 쓰지 말고, 이 돈을 집집마다 주어야 옳다. 집집마다 ‘도시락 쌀 돈’과 ‘도시락 쌀 겨를’을 주어서, 집집마다 ‘참다운 교육과 복지’가 즐겁게 피어나도록 이끌어야 올바르다.


  내가 나한테 ‘내 밥을 짓는 겨를’을 내지 못할 만큼 사회 얼거리에 얽매인 채 일을 해야 한다면, 이러한 일이 나를 얼마나 가꾸거나 살찌울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도시락 하나 쌀 겨를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메마른가? 아이들이 손수 도시락을 못 싼다면, 이런 교육은 무슨 보람이 있는가?


  아이들은 밥을 사랑으로 먹어야 한다. 그저 ‘배만 부르게 채우는 밥’이나 ‘사랑을 받아 즐겁게 먹는 밥’을 느끼고 배우고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추천도서가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 똑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이 건네는 책이 아니라, 다 다른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즐겁고 아름답게 ‘책’을 ‘사랑’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단체급식도 추천도서도 모두 사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1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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