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왜 바다일까? 동심원 18
이장근 지음, 권태향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42



바다를 알고 싶으면

― 바다는 왜 바다일까?

 이장근 글

 권태향 그림

 푸른책들 펴냄, 2011.6.20.



  시골에서 살며 하늘과 땅을 늘 마주합니다. 시골이니까요. 밤에는 새까만 하늘을 초롱초롱 밝히는 별을 그득 안습니다. 시골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왜 ‘초롱초롱’이나 ‘반짝반짝’이라는 말마디로 별빛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챕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만하고, 책으로 읽지 않아도 깨닫습니다.


  민물은 답니다. 바닷물은 짭니다. 졸졸 흐르는 냇물이나 퐁퐁 솟는 샘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면 이내 알아차립니다. 냇물이 왜 ‘졸졸’ 흐르고, 샘물이 왜 ‘퐁퐁’ 솟는지는, 스스로 냇물과 샘물을 마주하면 환하게 깨닫습니다. 영화나 영상이나 책으로 배워야 알지 않습니다. 몸소 마주하면 남이 안 가르쳐도 곧바로 배웁니다.


  바닷물은 왜 짤까요? 궁금하면 바다에 가요. 궁금하면 바닷물을 두 손으로 퍼서 입으로 마시고 혀로 맛을 봐요. 그러면 다 알 수 있어요. 머리를 굴리지 말고, 몸을 써요. 지식으로 헤아리지 말고 삶으로 마주하면서 생각을 기울여요.



.. 내가 벤치에 앉아 / 땀을 식히는 오 분 동안 / 개미 열 마리가 지나갔고 ..  (오 분 동안)



  이장근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바다는 왜 바다일까?》(푸른책들,2011)를 읽습니다. 이장근 님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슬기롭게 문학을 가르치고 싶어 이렇게 동시를 쓰기도 하고 청소년시를 쓰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머리를 많이 쓰면서 알록달록 이쁘장한 말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를 읽으면 번뜩이는 재미와 아기자기한 손맛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신나게 되읽을 만합니다. 안쓰러운 여느 학부모 모습이라든지, 답답한 학교 얼거리를 이 동시집에서 낱낱이 돌아보면서, 씩씩하게 기운을 낼 수 있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 숙제 다 할 때까지 / 방에서 나오지 마라 / 쾅! / 방문이 닫혔다 ..  (방에 갇힌 날)



  그런데,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에 흐르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참말 아이들이 누리는 삶일까요? 참말 아이들이 사랑할 삶일까요? 참말 아이들이 앞으로 꿈을 꾸면서 새롭게 지을 삶일까요? 학교교육이 생긴 뒤부터 이 나라 학교에 얄궂게 드리우는 그늘을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말놀이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어버이 아닌 학부모는 아이를 방에 가둡니다. 어버이 아닌 학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습니다. 어버이 아닌 학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오직 학교와 학원에 가야 ‘배웁’니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오직 시험문제만 배우지요. 아이들은 삶을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배웁니다. 아이들은 꿈을 못 배우고 이야기를 못 배웁니다.



.. 우리 가족 그림을 그렸다 / 늦게 들어오는 아빠는 / 그림자를 길게 그렸고 / 공부만 시키려고 하는 엄마는 / 눈을 쭉 찢어지게 그렸다 /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나는 / 축구공을 빵! 차는 모습으로 그렸다 ..  (잘 그렸네)



  아이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빠져듭니다. 어버이 아닌 학부모인 탓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집에서 아이들한테 삶이나 사랑이나 꿈이나 이야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안 가르치거든요. 어버이 아닌 학부모는 아이한테 어느 것도 제대로 안 보여주거든요.


  아이들은 ‘꿈’이 아닌 ‘직업’만 마주합니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나 가수나 연예인만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꿈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빨리 ‘갇힌 집’과 ‘갇힌 학교’에서 벗어나 ‘돈 많이 벌’어서 ‘나 혼자 멋대로 아무것이든 다 하는 직업인’이 될 생각만 합니다.



.. 칙칙 / 압력 밥솥이 달린다 / 폭폭 / 쌀을 가득 싣고 / 어디로 갈까 ..  (압력 밥솥의 여행)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학교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는 시험문제 말고는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도 학교 문제와 집 문제를 찬찬히 건드립니다. 그러나, 건드릴 뿐입니다. 제대로 짚지 못합니다. 제대로 짚을 겨를이 없을 수 있고,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압력 밥솥이 나오고 칙칙폭폭 기찻길 나들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작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가 하는 이야기는 이 동시집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 대목을 글쓴이부터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건드릴 수조차 없는지 모릅니다. 글쓴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한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틀에서 이 동시를 쓸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바다는 왜 바다일까요? 바다가 궁금하면 바다에 가야 합니다. 책상맡에서 머리를 굴리지 말고, 온몸으로 바다를 껴안으면서 마음속으로 느낀 뒤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바다를 눈앞에서 마주하지 않으면서, 바다를 두 손과 온몸으로 껴안지 않으면서, 어찌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어요.


  별을 보지 않고 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볍씨를 땅에 심지 않고서 벼가 자라는 흐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무를 네 철 내내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겨울눈과 봄꽃과 여름잎과 가랑잎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 이상한 일이지 / 벽에 / 정민♡희진 / 요렇게 쓰여 있을 뿐인데 ..  (얼레리 꼴리리와 ♡)



  동시는 머리로 쓸 수 없습니다. 동시는 온몸으로 씁니다. 온몸으로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즐기고 누려서 가꾸는 온삶으로 쓰는 동시입니다. 아이들은 동시를 온몸으로 읽습니다. 아이들은 머릿속으로만 동시를 읽지 않아요. 아이들은 모든 것을 쪽쪽 빨아먹습니다. 어른들이 쓰는 예쁜 말과 거친 말을 아이들은 통째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이 거친 말을 쓰는 까닭은, 가까이에서는 어버이가 거친 말을 쓰고, 둘레에서는 다른 어른들 모두 거친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만 켜도 알지요. 연속극이고 우스개이고 연예인 뒷이야기이고 영화이고 뭐고 온통 거친 말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어떤 말을 쓰나요? 학교에서 모든 교사가 모든 아이들 앞에서 예쁘면서 사랑스러운 말을 쓰나요?


  온삶으로 부대끼면서 온넋으로 삭히지 않는다면 동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말재주 부리기가 아니라, 온삶을 녹여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는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동시는 글잣수 맞추기로 말장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기에 자꾸 글잣수 맞추는 말장난이 되고 마는 동시입니다. 이야기를 담을 온삶을 부대끼지 않으니, 자꾸 머릿속으로 뚝딱뚝딱 짜맞춘 재주놀이가 되고 마는 동시입니다.


  아무쪼록, 이장근 님 다음 동시집에서는 이녁 삶과 아이 삶을 한결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사랑이 어린 즐겁고 따사로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삶을 짓고, 지식이 아닌 생각으로 사랑과 꿈을 밝히는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90) -의 : 고향의 냄새


추수가 끝난 빈 논이 보인다 / 칙칙폭폭 치-익- / 압력 밥솥이 돌아왔다 / 구수한 밥 냄새 / 고향의 냄새 / 온 가족이 모인다

《이장근-바다는 왜 바다일까?》(푸른책들,2011) 42쪽


 고향의 냄새

→ 고향 냄새

→ 고향에서 흘러온 냄새

→ 고향에서 가져온 냄새

→ 고향에서 흐르는 냄새

→ 고향 마을 냄새

→ 고향이 보낸 냄새

 …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시에 나온 “고향의 냄새”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구수한 밥 냄새”로 적습니다. “구수한 밥의 냄새”로 적지 않아요.


  밥에서 나는 냄새를 단출하게 적으면 “밥 냄새”입니다. “밥의 냄새”가 아닙니다. 고향에서 흐르는 냄새를 단출하게 나타내면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고향 냄새”로 적어야지요.


  이 보기글은 동시입니다. 동시는 으레 글잣수나 가락을 살핍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앞쪽에 있으니, 뒤쪽에서는 “고소한 고향 냄새”라든지 “그윽한 고향 냄새”처럼 적을 만합니다. “향긋한 고향 냄새”라든지 “따스한 고향 냄새”처럼 적을 수 있어요. ‘-의’를 덜고 “고향 냄새”처럼 수수하게 손질하든, 여러 꾸밈말을 앞뒤에 알맞게 넣으면서 손질하든 할 노릇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가을걷이 끝난 빈 논이 보인다 / 칙칙폭폭 치-익- / 압력 밥솥이 돌아왔다 / 구수한 밥 냄새 / 고향 냄새 / 온 식구가 모인다


‘추수(秋收)’는 ‘가을걷이’나 ‘벼베기’로 바로잡고, ‘가족(家族)’은 ‘식구’로 바로잡습니다. ‘추수’와 ‘가족’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17) 하면 2


하면 어찌해야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한영우-율곡 이이 평전》(민음사,2013) 199쪽


 하면

→ 이러하다면

→ 그러하다면

→ 이렇다면

→ 그렇다면

 …



  어찌하면 뒤틀린 말을 바로세울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떡하면 잘못 쓰는 말버릇을 바로잡을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찌하면’이나 ‘어떡하면’처럼 적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마디는 이렇게 말해야 알맞고 바르기 때문입니다. ‘어찌-’나 ‘어떡-’을 줄여 ‘-하면’처럼 글 첫머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이러하다면’이나 ‘그러하다면’으로 적어야 합니다. 이렇게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쓴 분은 ‘하면’으로 적습니다. 얄궂습니다. 잘못 쓴 글입니다.


  한국말에는 준말이 꽤 많습니다. 다른 겨레나 다른 나라도 준말을 퍽 많이 씁니다. 어느 겨레나 나라도 준말을 참으로 많이 씁니다. 그렇지만, 어느 겨레나 나라도 이녁 틀에 맞추어 알맞게 줄여서 씁니다. 아무렇게나 줄인다든지 엉터리로 줄이지 않습니다. ‘조그마하다’를 ‘조그맣다’처럼 줄여서 쓰기도 하는 한국사람입니다만, ‘이러하다면’이나 ‘이러하면’을 ‘하면’처럼 얄궂게 줄여서 쓰지는 않습니다. 말이나 글에 임자말 없이 부드러이 쓰는 한국사람이지만, 이 보기글마냥 ‘하면’으로 쓰지는 않는 한국사람입니다. 줄이면서 즐겁게 말을 북돋우는 자리가 있고, 줄이지 않으면서 말을 보듬는 자리가 있습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저녁햇살 쬐는 마음



  가을이 깊을수록 해가 짧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해는 더 짧습니다. 아침이 늦고 저녁이 짧습니다. 바야흐로 일을 쉬고 몸을 포근히 눕히는 철입니다. 한두 달 앞서까지만 해도 느즈막한 낮이라고 할 만한 때이지만, 이제는 이슥한 저녁입니다. 저녁해는 늦가을일수록 더 짧고, 짧은 저녁해가 기울어 멧자락 너머로 사라지면 벌써 쌀쌀한 바람이 마당 가득 돌아다닙니다.


  멧자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저녁해를 보면서 빨래를 걷습니다. 밥을 끓이고 국을 덥힙니다. 마루에서 햇살조각 받으면서 노는 아이는 마룻바닥을 콩콩 굴리면서 웃습니다.


  우리는 모두 해와 함께 움직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쬘 적에 까르르 노래하면서 뛰고, 해가 아스라히 사라지면 조용히 눈을 감고는 꿈을 꿉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해님 기운이 가득합니다. 해님과 같이 따스하고, 해님과 같이 고르며, 해님과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녁햇살을 쬐면서 저녁밥을 짓다가, 저녁놀이를 즐기는 저녁아이 몸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글 읽기

2014.11.4. 큰아이―‘가’ 만들기



  글순이가 그림종이를 긴네모로 자른다. 가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접은 뒤 꾹꾹 눌러서 천천히 자른다. 이러고 나서 다시 반듯네모 꼴로 접더니, 작은 반듯네모 종이가 되도록 자른다. 한참 뒤 글순이는 반듯네모 종이를 모아 ‘가’라는 글씨를 꾸민다. 작게 자른 그림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앞서 글놀이를 살짝 즐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글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