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놀이 4 - 마루문에 가득가득



  놀이순이가 먼저 스티커를 붙인다. 하나를 붙이더니 둘을 붙이고, 이내 스티커를 잔뜩 가져와서 동생과 나란히 붙인다. 동그란 스티커를 다 붙인 뒤에는 스티커 판까지 붙인다. 놀이순이와 놀이돌이는 우리 집을 이쁘장하게 꾸미는 꾸밈순이요 꾸밈돌이 노릇까지 한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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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10 - 방 한쪽에 보자기 깔고



  방 한쪽에 보자기를 곱게 깐다. 이러고 나서 소꿉상자에서 소꿉을 하나씩 꺼낸다. 아이들은 제 몫으로 먼저 하나씩 깔고, 인형 몫으로 또 하나씩 깐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소꿉놀이를 한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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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3. 이름 없는 사진



  우리가 찍는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는 사진감(소재)이거나 아니거나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을 다른 사람이 아직 찍은 적이 없든, 앞으로도 찍을 사람이 없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으려는 사진을 그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찍었든, 또 아주 많구나 싶도록 사진책이 많이 나왔든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우리 삶’을 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진감을 다룬다고 할 적에도, 나와 네가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곳은 같아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릅니다.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르니, 우리가 찍는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감돕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든, 풀 한 포기를 찍든, 꽃 한 송이를 찍든, 우리는 늘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실어 다 다른 꿈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야기’와 ‘삶’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더 멋있게 찍으려 하거나 더 남다르게 찍으려 할 적에는 이야기와 삶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누가 찍어도 거의 똑같아 보이거나 아주 닮은 사진만 나옵니다.


  사진은 ‘표현 기법’이 아닙니다. 사진은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기법이나 방법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사진하고 동떨어집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와 같아요. 자꾸 기법이나 방법에 기울면 기울수록 글이나 그림이 아닌 겉치레나 겉짓이 되고 맙니다. 이야기가 없이 기법과 방법에 매달리는 사진이 있으면, 우리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읽을까요? 바로 기법과 방법을 읽습니다. 기법과 방법만 읽는다면, 자꾸 새로운 기법과 방법만 좇기 마련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무쇠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가스불에 냄비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장만한 ‘공장에서 지은 밥’을 물을 끓여서 덥혀 먹을 수 있습니다. 밥짓기도 여러 갈래로 살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밥짓기는 ‘기법과 방법’일 뿐입니다. 무쇠솥으로 지은 밥은 그야말로 맛있습니다만, 편의점에서 산 ‘공장에서 지은 밥’으로도 우리 사랑과 꿈을 따순 손길로 어루만져서 아주 맛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야기란 바로 ‘사랑과 꿈’입니다. 사진에 담는 삶이란 바로 ‘따순 손길’입니다.


  우리가 찍을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와 삶’을 어느 만큼 담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어떤 장비를 쓰든, 어떤 기법이나 방법을 쓰든, 언제 어디에서 찍든, 누구를 찍거나 무엇을 찍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 ‘이야기’를 살피면서 가꾸고, ‘삶’을 노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넋이면 됩니다.


  이름이 있는 사진도 없고, 이름이 없는 사진도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작가도 없고, 이름이 없는 작가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냐, 이야기가 없는 사진이냐, 이렇게 가를 수만 있습니다. 삶이 깃든 사진이냐, 삶이 안 깃든 사진이냐, 이렇게 가르기만 합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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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뜨거운 밥 먹을 적에



  산들보라는 온몸으로 밥을 먹는다. 큰아이 사름벼리도 산들보라만 하던 때에 온몸으로 밥을 먹었다. 자그만 입을 앙 벌리고, 두 팔과 두 다리까지 쓰면서 온몸을 슬슬 흔들며 춤을 추듯이 밥을 먹는다. 고픈 배에 밥을 얼른 넣으려고 뜨거운 밥을 제대로 후후 불어 식히지 않고 덥석 넣고는 “하! 하! 하!” 하면서 입을 하 벌린 채 식히기 일쑤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놀이가 된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아이들만 하던 나이에 이렇게 밥놀이를 했구나 싶다. 그때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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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1-07 17:31   좋아요 0 | URL
아이 표정도 그렇지만, 저는 저 밥상 위 밥과 국에 눈길이 가네요^^
맛있겠다~

파란놀 2014-11-07 19:05   좋아요 0 | URL
하양물감 님도 즐겁게 밥을 누리고
오늘 하루도 예쁘게 마무리지으셔요~ ^^ 고맙습니다~
 

파썰기



  파를 썰 때면 으레 어릴 적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한테 처음 부엌칼을 쥐도록 하던 일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는데, 거의 안 떠오르지만, 아마 파썰기가 아니었을까. 처음 파를 썰던 때에는 큰파는 그야말로 크구나 하고 여겼다. 어쩌면 이렇게 파는 클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서 자라 어른 몸이 된 오늘날, 나는 두 아이를 먹여살리는 밥을 짓는다. 어른 몸으로 큰파를 썰 때면, 큰파라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큰파를 어른 입에 맞게 굵게 썰면, 아이들이 먹기에 퍽 나쁘다. 큰파를 아이들이 먹도록 하자면, 가로로도 썰고 세로로도 썰면서 조그마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작으면서 고운 빛이 어우러지도록 썰면,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뭐 썰어?” “파.” “파?” “응.” “아, 우리 집 마당에도 심은 그 커다란 파?” “응.”


  파를 잘게 썰면서 파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아이들한테 곱게 스며들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맛난 밥이 되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푸른 숨결이 되어 주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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