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마음



  네 살 작은아이가 요 달포쯤 앞서부터 밥상맡에서 새로운 놀이 하나를 떠올려서 즐깁니다. 무슨 놀이인가 하면, 밥숟가락을 국그릇에 살포시 놓고 보글보글 가라앉도록 하는 놀이입니다. 밥을 먹다가 퍽 오랫동안 이 놀이를 하기에, 밥 좀 먹으라고 이르다가, 문득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그래, 나도 이 나이만 할 적에 이렇게 놀았고, 이 나이뿐 아니라 열 살 언저리에도 이런 놀이를 했다고 떠올립니다.


  밥숟가락을 국그릇에 살짝 놓으면 숟가락이 국물에 뜹니다. 이때 나는 내 밥숟가락을 숟가락 아닌 배로 여깁니다. 수저 손잡이를 살살 밀면 그만 꼬르륵 잠기는데, 이때에 배가 바닷속에 잠긴다고 여깁니다. 이런 놀이를 한참 합니다.


  밥상맡에서 으레 이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래, 이 아이는 저를 지켜보아 주기를 바라는구나 싶어요. 밥상맡이니 밥을 먹으라고 이르거나 다그치거나 이끌 수 있어요. 그런데, 밥상맡에서 얼마든지 밥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뚝 멈추어 개미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든지, 사마귀가 길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가야 할 곳에 빨리 가야 할 수 있지만, 가야 할 곳에 가더라도 1분이나 10분쯤 말미를 내어 찬찬히 둘레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은아이 ‘밥놀이’ 또는 ‘수저놀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기로 합니다. 작은아이 놀이를 두고두고 건사하자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아이 놀이를 지켜보면서 내 어릴 적 놀이를 조용히 그리자는 생각이 퍼뜩 스칩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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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13. 2014.10.17. 밥그릇 국그릇



  어느 날 곁님이 문득 한 마디 한다. 아이들 밥이나 국을 너무 많이 뜨지 않느냐 하고. 그런가 하고 갸우뚱하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참말 아이들 밥그릇과 국그릇에 좀 많이 담았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많이 담을까? 어릴 적에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자라서 아이들한테 밥을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다. 곰곰이 헤아리니, 우리 아이들이 밥 넉넉히 먹고 기운 많이 내어 언제나 씩씩하고 신나게 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에는 좀 적게 담자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으레 많이 담는구나 싶다. 아이들은 배가 부르면 더 안 먹고, 아이들은 더 먹고 싶으면 더 달라 말하는데, 그래도 이 다음에는 조금 더 적게 담자고, 아이들이 더 달라 하는 말이 나올 만큼 주자고 생각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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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2) 과하다過 1


상상력의 내용은 펜타곤 보고서의 내용보다 과하지 않다

《정혜진-태양도시》(그물코,2004) 25쪽


 보고서의 내용보다 과하지 않다

→ 보고서에 담긴 이야기보다 지나치지 않다

→ 보고서보다 지나치지 않다

→ 보고서보다 앞서 가지 않다

→ 보고서만 하지 않다

 …



  누군가 어떤 일을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그리 지나치지 않다고 하면서, ‘펜타곤 보고서’를 건드립니다. 펜타곤 보고서가 더 지나치거나 앞서 나간다는 뜻을 들려주는 셈입니다. 이럴 때에는 “-만 하지 않다”나 “-처럼 막 나가지 않다”나 “-만큼 거짓스럽지 않다”로 적을 수 있습니다.


 씀씀이가 과하다

→ 씀씀이가 지나치다

→ 씀씀이가 헤프다

→ 너무 많이 쓴다

 술이 과하신 듯한데

→ 술이 지나치신 듯한데

→ 술을 너무 드신 듯한데

→ 술을 많이 드신 듯한데

 우리 형편에 이런 옷은 좀 과하다

→ 우리 형편에 이런 옷은 좀 지나치다

→ 우리 살림에 이런 옷은 좀 비싸다

→ 우리 살림에 이런 옷은 좀 안 맞다

→ 우리 살림에 이런 옷은 좀 주제넘는다


  외마디 한자말 ‘過하다’는 “정도가 지나치다”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지나치다’요, 이 한국말을 한자말로 옮기니 ‘過하다’인 셈입니다.


  흐름이나 자리를 살펴 ‘너무하다’라든지 ‘많이 하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값을 살피는 자리라면 ‘비싸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4337.12.23.나무/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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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상력은 펜타곤 보고서보다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생각은 펜타곤 보고서보다 지나치지 않다


‘상상력(想像力)’은 “생각하는 힘”을 가리킵니다. ‘내용(內容)’은 ‘줄거리’로 손질할 낱말입니다. “상상력의 내용”이라면 “이 상상력”이나 “이러한 상상력”이나 “이 생각”이나 “이러한 생각”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뒤따르는 “보고서의 내용”에서도 “보고서에 담은 줄거리”로 손질하기보다는 “보고서”로만 손질할 때에 한결 낫습니다. 왜냐하면, 상상력이나 보고서 모두 ‘속에 담은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과하다(過-) : 정도가 지나치다

   - 씀씀이가 과하다 / 술이 과하신 듯한데 / 우리 형편에 이런 옷은 좀 과하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06) 과하다過 2


욕심이 과한 사람은 이렇게 적응하는 걸 좀더, 잘, 좀더, 더 잘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신기식-지리산으로 떠나며》(지영사,2005) 40쪽


 욕심이 과한 사람

→ 욕심이 지나친 사람

→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

→ 욕심이 센 사람

→ 욕심이 드센 사람

→ 욕심이 넘치는 사람

 …



  ‘지나치다’고 하는 모습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누군가 지나친 모습이라면, ‘너무하다’ 싶은 모습입니다. 욕심을 놓고 본다면, 욕심이 너무 많거나 세거나 드세거나 거세다고 할 만합니다. 욕심이 넘치거나 넘실거리기도 할 테고, 욕심으로 가득하기도 할 테지요. ‘욕심덩이’나 ‘욕심덩어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욕심으로 똘똘 뭉치거나 욕심이 흘러넘친다 할 테고, 욕심이 끝이 없거나 욕심으로 그지없다고 할 만해요. 그러니까,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은 끝을 모르는 사람이요, 멈추거나 그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4338.8.1.달/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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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이렇게 몸을 맞추려고 좀더, 잘, 좀더, 더 잘 하려고 온힘을 다한다


“이렇게 적응(適應)하는 걸”은 “이렇게 적응하려고”나 “이렇게 몸을 맞추려고”로 손보고, “잘 하기 위(爲)해”는 “잘 하려고”나 “잘 하고 싶어”로 손보며, “온갖 노력(努力)을 한다”는 “온갖 힘을 쓴다”나 “온힘을 다한다”나 “여러모로 애쓴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925) 과하다過 3


낮부터 약주가 과했던 걸까

《김종휘-아내와 걸었다》(샨티,2007) 132쪽


 약주가 과했던 걸까

→ 술이 지나쳤을까

→ 술이 많이 들어갔을까

→ 술을 많이 자셨을까

→ 술을 한잔 걸치셨을까

→ 술을 드셨을까

 …



  낮부터 술 한잔 걸치기를 좋아하는 어르신이 제법 많습니다. 이분들은 퍽 많은 나이에도 술을 잘 드시기도 하지만, 한두 잔에 이내 뻗기도 합니다. 나이와 얼굴을 잊으셨는지, 낮부터 얼굴이 벌건 채 다니시다가 아무 데나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기도 합니다. 보기글은 어르신들이 낮부터 술을 한잔 걸친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술을 ‘술’이라 적지 않고 ‘약주’로 적습니다.


  술이 센 할배라고 해도, 술을 많이 드셨으면 어질어질 할 만합니다. 술을 잘 드시는 할배라고 해도, 술이 지나치면 해롱해롱 할 만합니다. 술이 거뜬하다고 하는 할배라고 해도, 술이 많이 들어갔으면 몸을 못 가눌 만합니다. 4340.7.15.해/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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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술을 많이 했을까


“과했던 걸까”는 “과했을까?”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약주(藥酒)’는 그대로 두어도 될 테지만, ‘술’로 쉽게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8) 과하다過 4


인근 도시의 상점에서 맘에 드는 옷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옷값이 과했다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249쪽


 옷값이 과했다

→ 옷값이 지나쳤다

→ 옷값이 비쌌다

→ 옷값이 셌다

→ 옷값이 엄청났다

 …



  옷값이 ‘지나치다’고 한다면, 값이 세거나 비싸다는 뜻입니다. 값이 세거나 비싸다면, 나로서는 값이 엄청나거나 어마어마하거나 크다는 뜻입니다. 나로서는 주제넘는 값이라 할 만하고, 나로서는 생각조차 못할 만한 값이라 할 수 있습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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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도시 가게에서 맘에 드는 옷을 볼 때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옷값이 비쌌다


“인근(隣近) 도시의 상점(商店)”은 “가까운 도시에 있는 가게”나 “이웃 도시 가게”로 손보고, ‘발견(發見)할’은 ‘볼’이나 ‘찾을’로 손봅니다. “내 기준(基準)으로는”은 “내 잣대로는”이나 “내 눈으로는”이나 “내가 보기로는”이나 “내 생각으로는”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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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78) -맹盲 1


대다수 사람들이 문맹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글 강습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문맹 타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최경봉-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64쪽


 대다수 사람들이 문맹이던 시대

→ 거의 모든 사람이 글을 모르던 때

→ 거의 모두 글장님이던 때

→ 거의 모두 까막눈이던 때

 …



  한국말사전에서 ‘색맹(色盲)’을 살피면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불완전하여 빛깔을 가리지 못하거나 다른 빛깔로 잘못 보는 사람”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컴맹(computer盲)’은 “컴퓨터를 다룰 줄을 모르는 사람”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문맹(文盲)’은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잘 모른다고 할 적에 ‘-盲’을 으레 붙입니다.


  그런데, 한국말 ‘까막눈’이나 ‘까막눈이’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그냥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만 뜻풀이를 붙이지 않고 ‘무식(無識)한’을 덧붙입니다.


  왜 한국말에는 ‘무식한’을 덧붙이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한국말은 이렇게 다루기에, 사람들이 ‘까막눈’이나 ‘까막눈이’ 같은 한국말은 안 좋아하거나 안 쓰려 하지 싶기도 합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글을 모를 뿐,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글을 아는 사람은 글을 알 뿐, ‘유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한편, 북녘에서는 ‘글장님’이라는 낱말을 쓴다고 합니다. 이 낱말은 남녘에서도 함께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문맹에서 벗어나다

→ 글장님에서 벗어나다

→ 까막눈에서 벗어나다

→ 글을 깨치다

→ 글을 배우다

 문맹을 퇴치하는 데 힘을 쏟다

→ 글장님을 없애는 데 힘을 쏟다

→ 까막눈을 없애는 데 힘을 쏟다

→ 글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다


  ‘문맹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이제부터 ‘글을 아는’ 일입니다. 그러니, “문맹에서 벗어나다”는 “글을 깨치다”나 “글을 배우다”나 “글에 눈 뜨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문맹 퇴치’는 글을 가르치는 일을 가리키니, “글을 가르치다”나 “글을 일깨우다”나 “글에 눈을 뜨게 하다”처럼 손보면 됩니다. 4338.10.17.달/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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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람이 글을 모르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글 배움모임은 널리 눈길을 끌었고 글 모르는 사람을 없애려 한다는 대목에서


“대다수(大多數) 사람들이”는 “거의 모든 사람이”나 “거의 모두”로 손보고, ‘시대(時代)’는 ‘때’로 손봅니다. ‘강습회(講習會)’는 ‘강습모임’이나 ‘배움모임’으로 손질하고, “사람들의 관심(關心)을 끌었고”는 “문맹 타파(打破)를 목적(目的)으로 한다는 점(點)에서”는 “문맹을 없애려 한다는 대목에서”나 “글 모르는 사람을 없애려 한다는 대목에서”로 손질합니다.



문맹(文盲) :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름

   - 문맹에서 벗어나다 / 문맹을 퇴치하는 데 힘을 쏟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9) -맹盲 2


기계맹인 아내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204쪽


 기계맹인

→ 기계바보

→ 기계를 모르는

→ 기계는 못 다루는

→ 기계는 어수룩한

→ 기계는 낯선

 …



  ‘기계맹’이라는 말보다 ‘기계치(-痴)’라는 말을 더 널리 쓰지 싶습니다. 이런 말은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을 얕보거나 깔보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기계를 잘 모르거나 잘 못 다루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계바보’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이밖에 ‘책바보’라든지 ‘글바보’라든지 ‘축구바보’라든지 ‘사진바보’라든지 여러 곳에 ‘-바보’를 뒷가지 삼아 붙일 만합니다. 이때에 ‘바보’는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 어떤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둘째, 어느 한 가지에 푹 빠진 채 다른 일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요즈음은 두 가지 가운데 뒤엣것을 퍽 널리 씁니다. 아직 한국말사전에는 이러한 쓰임새로 말풀이를 더 붙이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이 쓰임새대로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늘려야 한다고 느껴요.


  이 보기글에서는 “기계를 모르는”이나 “기계를 못 다루는”으로 손보면 됩니다. “기계는 어수룩한”이나 “기계는 낯선”이나 “기계는 어려운”으로 손볼 수 있어요. 4347.11.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기계를 모르는 아내로서는 잘 헤아릴 수 없지만


“상상(想像)이 되지 않았지만”은 “헤아릴 수 없지만”이나 “생각할 수 없지만”이나 “그릴 수 없지만”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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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아니, 우리가 스스로 역사이다. 대통령이나 임금이나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스스로 역사이다. 커다란 건물이나 궁궐이나 전쟁이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먹는 밥과 우리가 입는 옷이 역사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야기가 역사이고, 우리가 짓는 하루가 역사이다. 남이 만드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일구는 역사이다.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라는 책을 읽는다. ‘남’이 만들거나 ‘위’에서 짜는 역사가 아닌, ‘우리’가 스스로 가꾸는 길에서 역사가 태어나는 흐름을 가만히 살핀다. 조금 더 ‘수수한 사람 곁’으로 스며들어서 역사를 읽고 말하면 훨씬 아름다운 책이 되었으리라 느끼는데, 이만큼 몸을 낮추어 역사를 들려주려고 한 책도 드물다고 느낀다. 정부 성명서나 신문 기사도 역사 가운데 하나로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가 제대로 살피면서 알아야 할 역사,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걸어온 길’과 ‘우리가 남긴 발자국’은 너와 내가 어우러져 이룬 삶과 사랑과 꿈이어야지 싶다. ‘문화’, 그러니까 ‘삶’을 바탕으로 읽을 때에, 역사나 사회나 정치나 경제 모두 슬기롭게 헤아릴 수 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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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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