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놀이 16 - 신은 벗어던지고 양말차림으로



  한참 달려서 몸에 땀을 낸 아이들은 “더워! 더워!” 외치더니 웃옷을 벗는다. 웃옷을 벗은 뒤에는 신을 벗어던진다. “더워! 더워!” 외치면서 더 달린다. 아니, 끝없이 달린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아이들 달리기놀이는 그치지 않는다. 모든 놀이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달리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마음껏 즐긴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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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놀이 15 - 놀이터는



  놀이돌이가 마당을 빙글빙글 돈다. 두 다리로 마당을 빙글빙글 달린다. 이 아이한테 놀이터라는 곳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곳이다. 놀이기구가 있어도 재미난 놀이터가 될 테지만, 그저 너른 터가 있어도 얼마든지 놀이터가 된다. 땀을 내어 달릴 수 있을 때에 놀이터가 된다. 온몸을 휘저으면서 웃고 떠들 수 있으면 놀이터가 된다. 바람이 쌀쌀한 늦가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릴 수 있어야 놀이터이고, 아이들은 땀을 흠뻑 쏟으며 뛰놀 때에 씩씩하게 자란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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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빈들 책읽기



  도시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기에 ‘빈들’이라고 하면 참말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들’인 줄 알았다. 나이 서른 줄에 접어들어 비로소 시골에서 산 뒤에 ‘빈들’이란 없고, 그저 ‘가을들’이 있을 뿐인 줄 깨닫는다. 왜냐하면, 시골자락을 스치듯이 바라볼 적하고 시골마을에 뿌리를 내려 살 적하고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시골사람이 도시를 바라보는 눈도 비슷하리라 느낀다. 시골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 도시를 스치듯이 바라보는 느낌과 도시에서 태어나 오래도록 사는 사람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며 바라보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 시골사람은 도시에서 재미나 보람을 조금도 못 찾을 수 있지만, 도시사람은 도시야말로 재미와 보람이 넘치는 곳이라고 여길 만하다.


  가을 빈들을 읽는다. 볏포기를 베어 이제 더 볼 것이 없다는 가을 빈들을 읽는다. 나는 이 가을들에서 새로 돋는 여린 볏포기에 눈길이 간다. 목아지가 뎅겅 잘려 싯누렇게 바뀐 볏줄기 사이에서 새롭게 오르는 푸른 줄기에 눈이 간다. 이 여리며 예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가을들을 섣불리 빈들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예전에 나라님이 사람들을 들볶아 먹을거리가 없이 굶주려야 할 적에, 이 여린 줄기를 훑어서 먹었으리라 느낀다. 새로 오르는 여린 줄기를 나물로 삼아서 고마이 먹었겠다고 느낀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푸르게 올라오는 새 줄기는, 언제나 새로 기운을 내면서 이 땅에 두 다리를 붙이며 살아가는 시골내기 단단한 주먹과 같으리라 본다. 쟁기와 호미를 쥘 적에는 야무진 일손이 되고, 아이를 어루만질 적에는 가없이 보드라운 사랑이 되는 시골내기 두 손과 같은.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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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7.

 : 빈들을 천천히



- 빈들을 천천히 달려 우체국으로 간다. 곁님이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손을 놀려 뜨개옷을 한 벌 지었는데, 이 옷을 오랜 동무한테 보내기로 했다.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뜨개옷이다. 뜨개질을 잘하는 이라면 우리 곁님처럼 열흘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새우듯이 손을 놀리지 않았을 테지만, 품이 아주 많이 가는 겨울 털옷이다.


- 이제 고흥 들녘에 샛노란 나락이 남은 논은 몇 군데 안 남는다. 거의 모두 베었다. 나락을 벤 논을 일컬어 ‘빈논’이라 하는데, 막상 시골에서 이 논을 바라보노라면, ‘빈’ 채 있지 않다. 나락은 베었어도 볏모가지가 있고, 볏모가지에 새로운 줄기가 올라온다. 꽁당이만 남은 둘레로 여러 들풀이 돋고, 가을볕을 받으며 유채나 갓도 돋는다. 억새가 바람 따라 나부끼고, 강아지풀이랑 여뀌고 한들한들 춤추기도 한다.


- 늦가을을 맞이한 시골들이 고즈넉하다. 벼 베는 기계도 없고, 논을 돌아볼 할배도 없다. 논에 마늘을 심는 바지런한 분이 더러 있지만, 해마다 나이를 먹는 시골지기는 이제 마늘심기를 많이 줄인다. 마늘을 심을 기운이 모자라기도 하고, 마늘값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다. 군청에서 벌이는 경관사업 때문에 빈논에 기계를 끌고 나와서 골을 내어 유채씨를 뿌리는 할배가 몇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 일을 마치고 가을들이 아주 호젓하다.


- 바람을 타고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갔다가, 바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온몸에 가을바람을 묻힌다. 오늘 저녁에 지을 밥은, 그래, 가을밥이겠네. 늦가을밥.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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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존감 -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배움책 28



아이와 나무를 심는 어버이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글

 안진희 옮김

 양철북 펴냄, 2013.9.9.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합니다. 앞마당과 뒤꼍에 있는 나무한테 찾아가서, 나무 앞에 섭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지내니, 내가 나무한테 찾아갑니다. 나무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나무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는다든지, 겨울을 앞두고 찬찬히 돋는 겨울눈을 어루만집니다.


  우리 집 나무가 있어 인사할 수 있으니 무척 기쁩니다. 우리가 돌보는 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그늘을 누리는 나무요, 열매를 얻는 나무이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우리 집 나무는 누구보다 우리한테 맑고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마당과 뒤꼍에서 나무한테 인사하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집 나무’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처음 태어난 뒤에도, 열 살이 지난 뒤에도, 스무 살을 넘고, 서른 살이 흐르도록 ‘우리 집 나무’를 누리지 못했어요.



.. 건강하지 않은 통제는 평생토록 손실을 남긴다. 이러한 양육 방식은 아이를 우울, 불안, 자기 비하, 중독, 자기 파괴적 행동, 그리고 스트레스와 관련된 건강 문제 등에 시달릴 위험에 빠뜨린다 … 몇 대에 걸쳐 내려온 통제의 패턴에 대해 탐색하는 일은 절대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 전가를 멈출 수 있는 첫걸음이다. 당신은 가정 안의 건강하지 않은 통제의 패턴들을 살펴봄으로 이 패턴들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는 할 수 없었던 혹은 하고 싶지 않았던 중대한 선택을 바로 당신이 내리는 것이다 … 부모와 달리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당신은 상처를 무시하거나 숨는 대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  (8, 19, 20쪽)



  나무가 없는 삶은 싱그럽지 않습니다. 나무가 없는 삶은 즐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넋이 깃든 몸뚱이는 늘 숨을 쉬는데, 우리 몸뚱이가 숨을 쉬려면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없으면 어느 누구도 숨을 못 쉽니다. 숨을 못 쉬면 몸뚱이는 목숨을 잃고, 우리 넋은 갈 곳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나무를 누려야 합니다. 나무를 누리지 못한다면 삶을 못 누립니다. 나무를 누릴 때에 비로소 삶이고, 나무와 함께 있을 적에 바야흐로 사랑이 깨어납니다.


  그러면, 내 어버이는 왜 나한테 ‘우리 집 나무’를 베풀지 못했을까요. 내 어버이는 왜 나한테 ‘우리 집 나무’를 누리도록 이끌지 못했을까요.



.. 완벽주의 가정의 가장 유해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외모 관리와 수행 능력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슬픔, 의심, 비탄, 분노, 두려움과 같은 완벽하지 않은 감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 사회·정치 집단 혹은 회사에서 유명한 가정 또한 광신도적 성향을 띤다. 유명한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사회·정치적으로 지위가 높아질 수 있는 부모의 기회에 누를 끼치는 일은 큰 죄로 여긴다 ..  (63, 74쪽)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값진 옷을 입거나 넓은 집에 깃들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온갖 학교를 나왔거나 갖은 책을 읽었어도 나무가 없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사람 몸뚱이는 바람과 볕과 빗물,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구별은 바람과 해와 물, 이 세 가지가 밑바탕이 되어 모든 물질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무엇일까요? 바로 바람과 해와 물이 어우러진 먹을거리입니다. 쌀 한 톨이든 고기 한 점이든 모두 바람과 해와 물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려는 어버이라면, 우리 몸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가 먹는 밥을 이루는 바탕을 잘 헤아려야지 싶어요. 몸을 살찌우면서 마음을 가꾸는 길을 알아야 하고, 몸을 다스리면서 넋을 북돋우는 길을 깨달아야지 싶어요.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나무를 그렸지 싶어요. 나무를 그리워 하고, 나무를 바라며, 나무와 함께 살 집을 마음으로 품었어요.



.. 우리는 언어적 학대와 정서적 폭압의 힘을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아마 눈으로 볼 수 있는 멍 같은 것이 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매질이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말이 우리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 통제적 부모들은 그 자신 또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가 많다 … 트라우마로부터 최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 … 통제적 부모가 된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여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  (106, 175, 177, 178쪽)



  댄 뉴하스 님이 쓴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양철북,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버이가 물려준 생채기를 고스란히 짊어지는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생채기를 짊어진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뒤, 이녁 아이를 새롭게 낳을 적에 다시금 생채기를 물려줄 생각인지, 아니면 이 생채기를 이제 끊고 사랑을 물려줄 생각인지 묻는 이야기책입니다.


  자,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이한테 생채기를 입히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를 사랑하겠습니까.


  이 말은, 남이 나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아프게 할 적에도 똑같이 살필 수 있어요. 남이 나를 괴롭혔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괴롭힌 그이를 죽여야 할까요? 남이 나를 들볶았으면 나는 어찌 해야 할까요? 나를 들볶은 그 녀석을 족쳐야 할까요? 남이 나를 아프게 했으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요? 나를 아프게 한 그놈을 두들겨패야 할까요?



.. 잘못된 감정이란 없다. 감정은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통제할 수는 있어도 어떤 감정을 느낄지 통제할 수는 없다. 당신이 통제를 받으며 자랐다면, 감정에 대한 의무 사항을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이제 그 의무 사항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치유를 시작하게 도와준 역할을 한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아 버리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자신이 어떻게 상처를 입었고 어떠한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버리는 느낌을 줄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 바란다 ..  (230, 259, 264쪽)



  나는 어버이한테서 나무를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퍽 오랫동안 이 대목을 아예 잊은 채 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내 가슴에 이 이야기가 흘렀어요. 이리하여 나는 마흔 살을 앞두고 ‘우리 집 나무’를 비로소 누릴 수 있었고, 시골마을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나무를 보듬으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서른 해 남짓 자란 제법 우람한 ‘우리 집 나무’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심은 ‘우리 집 나무’도 있습니다. 모두 사랑스럽고, 하나같이 애틋합니다. 앞으로 이 나무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이녁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려주고 또 물려주면서, 물려받고 또 물려받으면서, 나무가 크고 사람이 클 테지요. 나무와 함께 보금자리는 한결 푸르게 우거질 테고, 나무는 차츰 가지를 키워 온 마을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베풀리라 생각합니다.



.. 당신은 몇 세대에 걸친 문제 때문에 고통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 당신이 게임의 말을 멈추어야 할 때다. 통제의 고통 속에서 연마된 감정들을 이용하라. 당신은 정보도 동맹군도 없는 가혹한 통제 아래에서 세뇌를 당하며 자랐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이 사실은 당신이 어떠한 역경에도 맞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324쪽)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무엇을 물려주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곱게 돌보면서 예쁘게 키워, 우리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주면 됩니다.


  내가 이 땅에 서서 하루하루 맞이할 수 있는 몸뚱이야말로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몸뚱이가 바로 사랑입니다. 이밖에 다른 어떤 사랑이 더 있어야 할까요? 아름답게 태어난 내 몸을 아끼고, 아름다이 맞이하는 새 하루를 품으며, 아름답게 얼싸안을 새로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는 어버이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나무 심는 어버이’로 곁에 있을 생각입니다. 나를 살리고 살찌우는 길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습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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