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1.5. 큰아이―먹는 꿈



  그림순이는 날마다 그림을 수없이 그린다. 무슨 그림을 그리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몹시 재미난 그림 하나를 한참 바라본다. 그림순이가 밤에 콜콜 자는데 ‘먹는 꿈’을 꾸는 모습이다. 아하, 그림순이는 자면서 먹는 꿈을 꾸는구나.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려고 이렇게 밤잠을 이루면서도 밥을 또 먹는구나. 배부르게 먹고 다시 먹고, 또 배부르게 먹고 거듭 먹으면서 아주 크게 우뚝 서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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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532)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1


지어 먹을 작물이 하나씩 줄어듦과 동시에 농촌 사람들은 제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선 도시로 떠났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현실문화연구,2006) 61쪽


 하나씩 줄어듦과 동시에

→ 하나씩 줄어들면서

→ 하나씩 줄어드는 한편

 …



  ‘살다’는 ‘삶’이나 ‘살이’나 ‘살기’처럼 씁니다. ‘살다’를 ‘삶’처럼 쓸 적에는 ‘삶터’나 ‘삶짓기’나 ‘삶말’이나 ‘삶노래’처럼 여러모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살다’를 ‘살이’처럼 쓸 적에는 ‘시골살이’나 ‘드난살이’나 ‘한살이’나 ‘겨우살이’처럼 차근차근 쓰임새를 넓혀요. ‘살다’를 ‘살기’처럼 쓸 적에는 ‘죽기 살기’나 ‘함께 살기’나 ‘바르게 살기’처럼 쓰임새를 새롭게 넓히지요. 한국말사전에 오르는 낱말이 아니어도 즐겁게 새 낱말로 삼아서 씁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처럼 “줆어듦과 동시에”처럼 적는 이름씨꼴은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글에서는 이름꼴로 쓸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한국말로 잘못 옮기면서 이러한 말투가 자꾸 불거집니다. 한국말을 옳게 바라보지 못하기에 이러한 말투가 자꾸 나타납니다.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익히지 못한 채 영어를 섣불리 배우니, 영어를 한국말로 옮길 적에 자꾸 얄궂게 쓰고 말아요. 4339.3.30.나무/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지어 먹을 곡식과 남새가 하나씩 줄어들면서 시골사람은 제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선 도시로 갔다


‘작물(作物)’은 ‘곡식’이나 ‘곡식과 남새’로 손봅니다. ‘동시(同時)에’는 ‘함께’나 ‘한꺼번에’로 손질할 낱말인데, 이 글월에서는 덜어낼 수 있습니다. “농촌(農村) 사람들”은 “시골사람”으로 다듬습니다. 보기글 뒤쪽을 보면 “자란 곳을 떠나” “도시로 떠났다”와 같이 ‘떠나다’를 잇달아 넣습니다. 앞자리는 그대로 두고, 뒷자리는 ‘갔다’로 고쳐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04)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2


그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이제 겨우 시작한, 많은 미숙함이 있는 그를 보면서, 그가 곧 새로운 연극의 대지에 입문해 큰 배우로서 성장하길 기대하는 박수를 보냈다

《안치운-추송웅 연구》(예니,1995) 머리말


 많은 미숙함이 있는

→ 많이 서툰

→ 많이 어리숙한

→ 여러모로 모자란

→ 아직 배울 것이 많아 보이는

 …



  ‘미숙(未熟)’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서투름. ‘서투름’으로 순화”처럼 말풀이가 달립니다. ‘서투르다’나 ‘서툴다’로 고쳐써야 합니다. 글흐름에 따라 ‘어리숙하다’나 ‘모자라다’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엉성하다’나 ‘어수룩하다’로 고쳐쓸 수 있어요.


  그런데 ‘미숙함’을 ‘서툼’이나 ‘서투름’이나 ‘모자람’이나 ‘어리숙함’으로 고쳐쓰면 도루묵입니다. “많은 모자람이 있는”처럼 고쳐써도 올바르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많은 넉넉함이 있는”이 아니라 “많이 넉넉한”입니다. “많은 모자람이 있는”이 아닌 “많이 모자란”이에요.


  그런데, 구태여 ‘미숙’이라는 한자말을 넣고 싶다면 “많이 미숙한”으로 적어야겠지요. 4339.8.18.쇠/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이제 겨우 첫발을 뗀, 많이 서툰 그를 보면서, 그가 곧 새로운 연극밭에 들어서서 큰 배우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손뼉을 쳤다


“이제 겨우 시작(始作)한”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이나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으로 다듬고, ‘미숙(未熟)함’은 ‘모자람’으로 다듬으며, “새로운 연극의 대지(大地)”는 “새로운 연극밭”이나 “새로운 연극 무대”로 다듬습니다. “큰 배우로서 성장(成長)하길”은 “큰 배우로 자라길”이나 “배우로 크게 자라길”이나 “훌륭한 배우로 크기를”로 손보고, ‘입문(入門)해’는 ‘들어서’로 손보며, “기대(期待)하는 박수(拍手)를 보냈다”는 “바라면서 손뼉을 쳤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15)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3


우리네가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어버리고 말았던 더불어 살아나감에 있어서의 소박한 감동들이 어찌 그리 크게 느껴지는지

《우수근-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월간 말,2003) 39쪽


 더불어 살아나감에 있어서의 소박한 감동

→ 더불어 사는 수수함 아름다움

→ 더불어 살며 나누는 수수한 아름다움

→ 더불어 살며 누리던 수수한 아름다움

 …



  번역 말투 한 가지가 다른 번역 말투를 불러들인 꼴입니다. 이름꼴과 ‘-에 있어서’가 섞이고, 여기에 토씨 ‘-의’까지 달라붙습니다. 아주 얄궂습니다. 이런 번역 말투를 쓰니, “크게 느끼는지”처럼 적을 대목도 “크게 느껴지는지”처럼 입음꼴로 쓰고 맙니다.


  수수하게 삶을 짓는 이웃을 만나서 수수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그러면, 수수하게 짓는 삶을 수수하게 쓰는 글로 밝히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수수하게 글 한 줄 쓸 수 있어야지요. 4339.9.6.물/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네가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어버리고 말았던 더불어 사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어찌 그리 크게 느끼는지


‘-ㅁ에 있어서’는 우리 말투가 아닙니다. 여기에 토씨 ‘-의’까지 얄궂게 붙이면 더더구나 얄궂습니다. ‘소박(素朴)한’은 ‘수수한’이나 ‘꾸밈없는’이나 ‘거짓없는’으로 손질합니다. ‘감동(感動)’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름다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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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43) 만들다 1


이 말은 어떤 식물이든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로우/이한중 옮김-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 135쪽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 궁금해 하도록 이끈다

→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이끈다

→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



  ‘만들다’라는 한국말은 아무 자리에나 못 씁니다. 이 낱말은 처음에는 한 가지만 뜻했습니다. 어떤 것을 손이나 연장으로 다루어 새로운 것으로 이룬다고 할 적에 ‘만들다’를 썼어요. “나무를 잘라 걸상을 만든다”라든지 “싸리나무를 꺾어 싸리비를 만든다”처럼 쓰는 낱말이었습니다. 사회가 여러모로 크고 넓게 달라지면서 ‘만들다’라는 낱말도 차츰 쓰임새를 넓히는데, 영어 번역 말투처럼 아무 데에나 쓰면 안 됩니다.


  오늘날 번역을 하는 적잖은 이들은 영어 ‘make’를 섣불리 ‘만들다’로 옮기고 말아요. 말썽이나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할 적에는 ‘일으키다’로 옮겨야 하는데, 그만 ‘만들다’로 옮깁니다. 어떤 일이 생길 적에는 ‘생기다’로 옮겨야 하지만, 그만 ‘만들다’로 옮겨요. “The news made him very happy” 같은 영어는 “즐겁게 해 주었다”로 옮겨야 하지만 “즐겁게 만들었다”로 잘못 옮깁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처럼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같은 번역 말투가 퍼지고 맙니다. 이 자리에서는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고 옮겨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는 “의문을 가져”라고 적은 대목도 번역 말투입니다. 궁금함(의문)은 ‘가질(have, get)’ 수 없습니다. 그저 ‘궁금하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외국책을 한국말로 옮겨 주니 고맙지만, 한국말이 아닌 어설픈 말로 자꾸 뒤틀어 놓으면, 한국말은 한국말 아닌 말이 됩니다. 4338.10.9.한글날/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말은 어떤 풀이든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게 여기도록 이끈다


‘식물(植物)’은 ‘풀’로 다듬고, ‘지금(只今)’은 ‘오늘’로 다듬습니다. “오게 되었는지”는 “왔는지”로 손보며, “의문(疑問)을 가져 볼 수 있다는”은 “궁금해 할 수 있다는”으로 손봅니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이끈다”나 “생각으로 이끈다”나 “이끈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29) 만들다 2


할머니는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밭에서 거둔 채소, 가을에는 산에서 손수 주운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만든 묵을 팔았다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국가인권위원회,2004) 20쪽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만든 묵

→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쑨 묵

→ 도토리가루로 쑨 묵

→ 도토리묵

 …



  나날이 쓰임새를 넓히는 ‘만들다’입니다. 그만큼 쓸 자리가 늘어나는 셈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만들다’가 다른 한국말을 밀어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묵을 만든다”처럼 나옵니다. 요즈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만, 묵은 ‘쑤는’ 먹을거리입니다. 엿은 고고 나물은 무칩니다. 송편은 빚고 누룩은 띄웁니다. 먹을거리마다 다 다른 말로 가리킵니다.


  쌀을 빻아 체에 일어 돌을 고르고 물을 맞춰 밥을 짓던 일이 이제는 사라졌기 때문에 ‘일다’라는 낱말도 거의 잊힙니다. 어쩌면, 집마다 손수 묵을 쑤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공장에서 척척 찍는 묵을 사다 먹으니 ‘쑤다’라는 말도 사라지면서 ‘만들다’가 널리 쓰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보면, 할머니가 손수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빻은 뒤 묵을 쑨다고 해요. 그러면, ‘쑨다’고 적어야지요. 더군다나 아이들이 읽을 동화에 쓴 글인걸요. 4339.10.14.흙/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할머니는 봄이면 멧나물, 여름이면 밭에서 거둔 남새, 가을에는 멧골서 손수 주운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쑨 묵을 팔았다


‘야채(野菜)가 아닌 ‘채소(菜蔬)’를 쓰니 반갑지만, ‘남새’로 고쳐쓰면 더 반갑습니다. ‘산(山)나물’은 ‘멧나물’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19) 만들다 3


밀가루가 미국의 원조 물자로 들어오면서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 가정에서는 수제비나 칼국수 따위를 만들어 먹었지

《이임하-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철수와영희,2014) 14쪽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

→ 공장에서 국수나 빵을 만들었고

→ 국수나 빵이 나왔고

→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

 칼국수 따위를 만들어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끓여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삶아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해서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먹었지

 …



  이 보기글은 ‘공장’과 ‘집’을 나누어 말하려고 ‘만들다’라는 낱말을 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 앞쪽에서 ‘공장’이라는 낱말을 넣지 않고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로 적으니 좀 뚱딴지 같습니다. 국수는 ‘삶는다’고 하고, 빵은 ‘굽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손으로 지어서 먹을 적에 쓸 낱말은 ‘삶다’와 ‘굽다’이니, ‘만들다’를 함부로 넣을 수 없습니다.


  공장이라면 기계로 척척 찍습니다. 그래서, 기계로 척척 찍는 모습을 살펴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만들고, 빵공장에서 빵을 만든다”처럼 말할 수 있어요. 다만, 이렇게 공장에서 ‘만든다’고 해도 어딘가 얄궂습니다. 아무래도, 먹을거리를 ‘만든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은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로 손질할 때가 가장 나으리라 느낍니다.


  이 다음으로 집에서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는 대목입니다. 이때에는 집에서 먹는 수제비나 칼국수이니, 이러한 먹을거리를 ‘만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는 ‘끓여’ 먹는다거나 ‘삶아’ 먹는다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또는 ‘하다’를 넣어 “칼국수를 해서 먹었지”처럼 적습니다. 이도 저도 모두 털어낸 뒤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었지”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밀가루가 미국 원조 물자로 들어오면서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 집에서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먹었지


“미국의 원조 물자”는 “미국 원조 물자”로 손봅니다. ‘가정(家庭)’은 ‘집’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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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매트릭스 트릴로지 (3disc) - 매트릭스 + 리로디드 + 레볼루션
라나 워쇼스키 외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영화 〈매트릭스〉는 셋째 이야기까지 나온다. 곧 넷째 이야기가 나올 테지. 어쩌면 안 나올는지 모르나, 어젯밤 꿈에서 이 영화가 꾸준히 나온다면 다음에 누가 어떻게 나올는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내 꿈에 왜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가 나왔을까. 그리고, 꿈에서 본 이야기는 영화와 얼마나 얽힐 만할까. 또는,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삶’과 ‘생각’은 언제나 하나라는 대목을 알려주려는 뜻일까.


  내 꿈에서는 아주 어린 가시내가 나온다. 둘레에서 흔히 볼 만한 어린 가시내일 수 있으나, 이 가시내는 예전에 이 땅에서 살던 어떤 사람 넋이 새 옷을 입고 태어난 목숨이다. 이 가시내는 예전 삶을 떠올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 몸’이라는 새 옷을 입고 태어나면서 예전 삶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기억 지우는 프로그램’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어린 가시내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 이 아이를 알아보는 눈은 이 아이한테 어두운 그림자가 씌지 않도록 데리고 움직이는데, 오랜 나들이에 지친 아이를 좁은 곳에 숨기면서 한 마디를 들려준다. ‘네가 생각을 하면 너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 네가 생각하지 못하면 너는 어디로든 갈 수 없어.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머릿속에 똑똑히 그려야 너는 네가 가려는 데에 갈 수 있어. 기운 내.’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모든 것은 ‘프로그램’이라는 대목을 알려줄까. 그러면,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누군가 짠 틀에 맞추어 모두 똑같이 움직인다는 뜻인가. 하품조차 프로그램이고, 입시지옥조차 프로그램이며,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조차 프로그램이라는 뜻인가. 그러면, 프로그램대로 짜인 삶이란 무엇인가. 프로그램을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참답게 삶이 되려면, 누군가 짠 틀에 따라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종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지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곰곰이 돌아보면,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 생각을 심지 않는다.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길들이기만 한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은 그저 교과서 지식만 머릿속에 똑같이 집어넣는 짓을 한다. 때로는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이나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프로그램 틀을 깨도록 이끌지 못한다. 교사도 스스로 프로그램에 갇힌 톱니바퀴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간다는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은 뒤로는 돈 버는 굴레에 갇힌다. 즐겁게 누리는 ‘일’이 아니라, 돈을 안 벌면 굴러떨어지는 ‘굴레’ 같은 지옥에 휩쓸린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생각을 짓지 못하는 사회 얼거리요, 모든 사람이 이리로 휘둘리고 저리로 휩쓸리는 흐름이다.


  스스로 생각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스스로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없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해야 한다. 흰말 탄 왕자님이나 공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사랑을 스스로 가슴에서 끌어내어 곱게 꽃으로 피울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 이루고 싶은 꿈도 스스로 생각해서 지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짓지 않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거나 어떤 꿈을 이루겠는가.


  가만히 보면,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수많은 ‘싸움 모습’은 우리가 쳇바퀴처럼 구르면서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려는 아귀다툼하고 똑같다 할 만하다. 우리가 늘 벌이는 맴돌이가 바로 영화에 나오는, 이른바 ‘액션 씬’이라고 할까? 영화에서 ‘더 짜릿한 액션 씬’을 바라듯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스스로 생각을 지우거나 잃거나 잊으면서 ‘남이 보여주는 틀에 길든’ 하루를 되풀이하기만 한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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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읽는 책



  사랑을 깊이 생각해서 나 스스로 오롯이 사랑이 되면, 언제 어디에서나 즐거운 하루를 지을 수 있어요. 꿈을 넓게 헤아려서 나 스스로 옹근 꿈이 되면, 늘 한결같이 기쁜 하루를 지을 수 있어요. 생각하는 대로 사랑과 꿈이 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책을 읽습니다. 어느 책을 손에 쥐든,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어느 책을 읽더라도 마음속에서 사랑이 피어납니다. 어느 책을 손에 잡든, 내 마음이 어둡다면, 어느 책을 읽더라도 마음속은 그저 새까맣게 어둡습니다.


  따사롭고 아름다운 줄거리를 다루는 책을 읽어야 내 마음이 따사롭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퀴퀴하거나 지저분하다는 줄거리를 담은 책을 읽기에 내 마음이 퀴퀴하거나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마음을 스스로 어떻게 건사하느냐에 따라, 어느 책을 읽든 내 마음이 거듭나고, 내 생각이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니, 어느 책을 읽더라도 사랑으로 읽을 노릇입니다. 마음을 사랑으로 보듬지 않은 채 책을 손에 쥐면, 책을 아무리 많이 장만해서 아무리 많이 읽어도 생각을 사랑스레 짓지 못합니다. 예부터 ‘많이 배운 지식인’이 옳지 않은 길을 자꾸 걸어간 까닭은, 마음짓기를 하지 않은 채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똑똑하다는 이들은 으레 겉똑똑이였기 때문에, 책은 읽을 줄 알지만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덧없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책 한 권 읽은 적이 없거나 학교 문턱을 밟은 적이 없지만, 언제나 맑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책이라는 지식’은 하나도 모르지만,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돌볼 줄 알기에, 삶을 늘 아름답게 보듬으면서 가꿉니다.


  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톨스토이를 읽든 박경리를 읽든 최명희를 읽든, 아무것도 내 가슴에 안 남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낱말만 가득한 한국말사전을 읽더라도 내 가슴에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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