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는다


  큰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곧바로 물려받는다. 작은아이는 큰아이한테서 물려받는다. 어버이는 큰아이한테 무엇이든 곧바로 물려준다. 큰아이는 이제 무엇이든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자리에 선다.

  그런데, 큰아이로서는 무엇이든 동생한테 물려주는 일이 가끔 못마땅하다. 동생한테 주고 싶지 않아서 얼굴이 굳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곁님과 나는 큰아이한테 이야기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무엇이든 다 주었단다. 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너한테 무엇이든 다 주었단다. 그리고 너는 네 동생한테 무엇이든 다 줄 때란다.’

  주면 사라지지 않는다. 주지 않기에 사라진다. 주면 없어지지 않는다. 주기에 더욱 커지고 아름답게 거듭난다.

  작은아이는 누나 옷을 물려입고, 작은아이는 누나 몸짓을 따라하며, 작은아이는 누나 말씨를 고스란히 좇는다. 누나가 가는 곳마다 꽁무니에 따라붙어 달린다. 누나가 하는 놀이마다 저도 같이 하겠다면서 엉겨붙는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11-12 01:20   좋아요 0 | URL
주면 사라지지 않는다. 주지 않기에 사라진다. 주면 없어지지 않는다. 주기에 더욱 커지고
아름답게 거듭난다.-

참말 맞는 말씀이세요~
하루의 마무리를 하며, 아름답게 거듭날 꿈을...저도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평화롭고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4-11-12 01:39   좋아요 0 | URL
하루 마무리를 하고 잠드실 적에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즐거운 이야기를 그리면서
사랑스러운 꿈 꾸셔요~~~

하늘바람 2014-11-12 11:12   좋아요 0 | URL
님과 곁님 두아이들 아름다워서 눈물나네요

파란놀 2014-11-12 15:03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도
아이들과 언제나 아름다우셔요
 

손빨래를 하다 보면



  손빨래를 하다 보면 빨래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할 때는 참말 빨래를 미룬다. 하루나 이틀 즈음.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으니,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나 이틀 즈음 빨래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입힐 옷가지가 넉넉하다.


  손빨래를 하다가 내 옷가지는 이튿날 빨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옷이 많아서 미룬다기보다, 아이들 옷과 곁님 옷을 먼저 빨고 내 옷은 나중에 빨자는 생각인데, 일이 많거나 고단하면 으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내 옷가지를 하루 미루고 이틀 미루면, 어느새 내 옷가지 빨래만 잔뜩 모인다.


  가을볕은 아주 짧다. 가을볕은 느즈막하게 올라와서 일찌감치 저문다. 봄과 여름에는 낮에 빨아서 퍽 늦게까지 마당에 널 만하지만, 가을에는 아침이 밝고 나서 얼른 마당에 널어야 하고, 낮 세 시를 넘어가면 바지런히 걷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애써 햇볕을 먹인 옷가지에 다시 축축한 기운이 밴다. 십일월이 무르익는 날씨를 느끼며 아직까지 찬물로 손빨래를 하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권 장만한 그림책



  “어라? 아버지, 이 그림책 두 권 있어.” 일곱 살 책순이가 《쉿!》이라는 그림책을 두 손에 한 권씩 들면서 아버지한테 보여준다. “그래, 그렇구나. 두 권이네. 두 권 다 집에 있으니 도서관에 한 권 갖다 놓아야겠네.” “응, 도서관에 갖다 놓자.” 도서관에 갖다 놓을 한 권을 집어든다. 찬찬히 읽는다. 왜 나는 이 그림책을 두 권 장만했을까?


  처음 한 쪽을 넘기면서 아하 하고 깨닫는다. 그래, 그림도 이야기도 몹시 아름다운 그림책이로구나. 그래서 두 권 장만했구나. 글쓴이와 그린이를 더 알아보니, 타이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이 빚은 그림책 가운데 한국에 알려진 작품은 거의 없다. 그나마 글쓴이 민퐁 호 님 어린이문학이 한 권 한국말로 나왔지만, 이 책은 판이 끊어졌다. 무엇보다 《쉿!》이라는 그림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다.


  이 그림책을 널리 알린 사람이 없었을까? 이 그림책은 어린이도서연구회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제대로 추천을 받은 적이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으나, 한국에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 그림책이 거의 안 나온다. 일본 그림책은 엄청나게 한국말로 옮기지만, 막상 중국 그림책은 몇 권 없고, 대만 그림책도 몇 가지 없으며, 베트남 그림책이라든지 스리랑카 그림책이라든지 타이 그림책은 그야말로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한국에서 번역하는 그림책은 ‘일본 그림책’이거나 ‘미국 그림책’이기 일쑤이고, ‘유럽 그림책’을 그럭저럭 번역하는데, ‘중남미 그림책’과 ‘아시아 그림책’과 ‘아프리카 그림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 흐름과 맞물리는 모습이리라 본다. 한국 사회가 미국바라기이거나 유럽바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요즈음 일본 문화를 아주 많이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얄궂은 틀도 한몫 단단히 한다.


  그림책 《쉿!》은 한국말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타이 어린이문학은 한국에서 더 찾아볼 수 있을까? 아시아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이웃일까?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2-0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4-12-06 14:18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이지만, 헌책으로라도 장만할 수 있으면, 아니 절판된 책을 헌책으로 장만할 수 있으면 대단히 기뻐요. 비록 절판되고 말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과 숨결을 가슴으로 느낄 이웃님은 헌책방에서든 알라딘중고샵에서든 이 그림책을 예쁜 손길로 찾아내실 테지요?

축하해요! 즐겁게 누리셔요 ^^
 
쉿! - 창작 이야기 곧은나무 그림책 9
민퐁 호 지음,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6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 쉿!

 민퐁 호 글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곧은나무 펴냄, 2005.9.1.



  쉿. 아기가 잡니다. 조용히 하셔요. 쉿. 아기가 잠들려 합니다. 조용히 하셔요. 손전화도 끄고, 텔레비전도 끄고, 신문도 부스럭거리지 말고, 설거지도 하지 말고, 젓가락으로 접시를 건드리지도 말고, 문도 함부로 여닫지 마셔요. 아기가 새근새근 잘 수 있도록 모두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요.


  쉿. 아기가 잡니다. 노랫소리를 줄이거나 자장노래로 바꾸셔요. 춤사위는 그치고 사근사근 보드라운 손길로 토닥토닥 아기 가슴을 어루만져요. 오토바이는 못 지나가게 하고, 자동차도 못 다니게 하고, 아기 자는 둘레에서 재잘거리면서 수다를 피우지도 마셔요.



.. 쉿! 누가 바람 속에서 우는 걸까? ..  (4쪽)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버스에 탈 적에도, 버스에서 내릴 적에도,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다른 사람은 기다리셔요. 아무리 바빠도 아기를 밀치지 마셔요. 아무리 서둘러야 해도 아기 옆에서는 발걸음 사근사근 찬찬히 지나가셔요. 그리고, 아기 옆을 스쳐 지나갈 적에는 아기한테 빙그레 웃음을 지으셔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요? 왜냐하면, 이녁도 아기였을 적에 이녁 이웃 아재와 아지매 모두 이렇게 했답니다.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도록 모두 마음을 기울였고, 아름다운 숨결이 고이 쉬도록 모두 마음을 쏟았어요.



.. 도마뱀아, 도마뱀아! 그렇게 엿보지 말아라. 아기가 자고 있잖이? 도마뱀아, 도마뱀아!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라. 요 옆에서 우리 아기가 자고 있단다 ..  (8쪽)





  아기가 잘 적에는 컴퓨터도 하지 마셔요. 자판을 두들기거나 다람쥐를 콕콕 누르는 소리조차 아기한테는 안 좋아요. 다만, 창밖에서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괜찮아요.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좋아요. 집 둘레 풀밭과 숲에서 퍼지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름답지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나뭇가지가 한들거리는 소리는 모두 예뻐요.


  아기는 저를 뱃속에서 품은 어머니가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감싸 주었듯이, 이 땅에서도 다른 어른들이 저를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보듬어 주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따스한 손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따스한 손길이 되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살가운 눈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살가운 눈길이 되기를 바라요.



.. 온 세상이 조용하고, 고요하네요. 엄마도 창턱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어요. 달이 나무 위로 떠다닐 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요. 산들바람도 불지 않아요 ..  (31쪽)





  민퐁 호 님이 글을 쓰고, 홀리 미드 님이 그림을 넣은 《쉿!》(곧은나무,2005)을 읽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별 같은 나라 가운데 타이에서 날아온 그림책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자락 사람들 삶이 그림책에 잔잔하게 흐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마을 어머니 사랑이 그림책에 차분하게 감돕니다. 따사로운 빛과 포근한 숨결과 아늑한 눈길이 골고루 어우러진 즐거운 노래가 고즈넉하게 퍼집니다.



.. 아기만 혼자 동그란 눈을 반짝이네요 ..  (32쪽)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이야기로 꿈을 짓습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노래로 삶을 가꿉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웃음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머니는 가까스로 아기를 재웁니다. 이러는 사이 어머니도 살몃살몃 곯아떨어집니다. 이제 모두 조용합니다. 이제 모두 잠이 듭니다. 그런데, 이때에 아기가 말똥말똥 눈을 떠요. 모두 조용한 때에 아기는 혼자 눈을 뜨고는 까르르 웃으며 놀아요.


  이 사랑스러운 아기가 자라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사랑을 받으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 아기가 새롭게 사랑을 꽃피우면서 새롭게 아기를 낳습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고,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사랑을 기쁘게 베풉니다.


  사랑이 흐르고 흘러 삶이 되고, 사랑이 자라고 자라 삶꽃이 핍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묶음표 한자말 202 : 한역(漢譯) 문자(文字)



순수 국어를 한역(漢譯)해 놓은 문자(文字)다. 이 경우에 ‘문자’는 ‘글자’가 아니라 유식한 체하느라고 쓰는 한자 숙어를 뜻한다

《이수열-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 266쪽


 순수 국어를 한역(漢譯)해 놓은 문자(文字)다

→ 한국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토박이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한국말을 한자로 옮기니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란 다른 말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자를 빌어서 쓰는 말이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을 알파벳을 빌어 옮기면 영어입니다.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이 말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나라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 “순수 국어”라는 말부터 좀 안 어울립니다. “순수 한자말”이나 “순수 영어”라는 말은 안 쓸 테니까요.


  이 보기글을 보면 ‘한역(漢譯)’과 ‘문자(文字)’라는 낱말을 쓰면서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습니다. 왜 이렇게 글을 쓸까요? 이러한 한자말은 한자를 알지 않으면 제대로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자를 밝히지 않으면 말뜻을 알 수 없거나 헷갈릴 만한 낱말은 누가 쓸 말일까요? 이러한 말을 한국사람이 써야 할까요? 이러한 말을 쓰는 일이야말로 ‘많이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거나 ‘잘 아는 체’하는 모양새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따로 ‘한자옮김’이나 ‘한글옮김’ 같은 낱말을 지어서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한자로 옮기다’나 ‘한글로 옮기다’처럼 쓰면 넉넉합니다. 따로 한 낱말로 적어야 한다면 ‘한자옮김’이나 ‘한글옮김’처럼 적어도 되고, 여느 때에는 ‘한역(漢譯)’이나 ‘한역(韓譯)’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글은 ‘글’이라 적으면 되고, 굳이 ‘문자(文字)’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쓰지 않아도 됩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한국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이때에 이 글은 많이 아는 체하느라고 쓰는 한자말을 뜻한다


“순수(純水) 국어(國語)”는 “한국말”이나 “우리말”이나 “토박이말”로 손질합니다. “이 경우(境遇)에”는 “이때에”나 “이러할 때에”로 손보고, ‘유식(有識)한’은 ‘잘난’이나 ‘많이 아는’이나 ‘잘 아는’으로 손보며, “한자 숙어(熟語)”는 “한자말”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