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를 하다 보면



  손빨래를 하다 보면 빨래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할 때는 참말 빨래를 미룬다. 하루나 이틀 즈음.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으니,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나 이틀 즈음 빨래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입힐 옷가지가 넉넉하다.


  손빨래를 하다가 내 옷가지는 이튿날 빨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옷이 많아서 미룬다기보다, 아이들 옷과 곁님 옷을 먼저 빨고 내 옷은 나중에 빨자는 생각인데, 일이 많거나 고단하면 으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내 옷가지를 하루 미루고 이틀 미루면, 어느새 내 옷가지 빨래만 잔뜩 모인다.


  가을볕은 아주 짧다. 가을볕은 느즈막하게 올라와서 일찌감치 저문다. 봄과 여름에는 낮에 빨아서 퍽 늦게까지 마당에 널 만하지만, 가을에는 아침이 밝고 나서 얼른 마당에 널어야 하고, 낮 세 시를 넘어가면 바지런히 걷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애써 햇볕을 먹인 옷가지에 다시 축축한 기운이 밴다. 십일월이 무르익는 날씨를 느끼며 아직까지 찬물로 손빨래를 하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권 장만한 그림책



  “어라? 아버지, 이 그림책 두 권 있어.” 일곱 살 책순이가 《쉿!》이라는 그림책을 두 손에 한 권씩 들면서 아버지한테 보여준다. “그래, 그렇구나. 두 권이네. 두 권 다 집에 있으니 도서관에 한 권 갖다 놓아야겠네.” “응, 도서관에 갖다 놓자.” 도서관에 갖다 놓을 한 권을 집어든다. 찬찬히 읽는다. 왜 나는 이 그림책을 두 권 장만했을까?


  처음 한 쪽을 넘기면서 아하 하고 깨닫는다. 그래, 그림도 이야기도 몹시 아름다운 그림책이로구나. 그래서 두 권 장만했구나. 글쓴이와 그린이를 더 알아보니, 타이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이 빚은 그림책 가운데 한국에 알려진 작품은 거의 없다. 그나마 글쓴이 민퐁 호 님 어린이문학이 한 권 한국말로 나왔지만, 이 책은 판이 끊어졌다. 무엇보다 《쉿!》이라는 그림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다.


  이 그림책을 널리 알린 사람이 없었을까? 이 그림책은 어린이도서연구회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제대로 추천을 받은 적이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으나, 한국에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 그림책이 거의 안 나온다. 일본 그림책은 엄청나게 한국말로 옮기지만, 막상 중국 그림책은 몇 권 없고, 대만 그림책도 몇 가지 없으며, 베트남 그림책이라든지 스리랑카 그림책이라든지 타이 그림책은 그야말로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한국에서 번역하는 그림책은 ‘일본 그림책’이거나 ‘미국 그림책’이기 일쑤이고, ‘유럽 그림책’을 그럭저럭 번역하는데, ‘중남미 그림책’과 ‘아시아 그림책’과 ‘아프리카 그림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 흐름과 맞물리는 모습이리라 본다. 한국 사회가 미국바라기이거나 유럽바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요즈음 일본 문화를 아주 많이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얄궂은 틀도 한몫 단단히 한다.


  그림책 《쉿!》은 한국말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타이 어린이문학은 한국에서 더 찾아볼 수 있을까? 아시아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이웃일까?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2-0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4-12-06 14:18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이지만, 헌책으로라도 장만할 수 있으면, 아니 절판된 책을 헌책으로 장만할 수 있으면 대단히 기뻐요. 비록 절판되고 말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과 숨결을 가슴으로 느낄 이웃님은 헌책방에서든 알라딘중고샵에서든 이 그림책을 예쁜 손길로 찾아내실 테지요?

축하해요! 즐겁게 누리셔요 ^^
 
쉿! - 창작 이야기 곧은나무 그림책 9
민퐁 호 지음,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6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 쉿!

 민퐁 호 글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곧은나무 펴냄, 2005.9.1.



  쉿. 아기가 잡니다. 조용히 하셔요. 쉿. 아기가 잠들려 합니다. 조용히 하셔요. 손전화도 끄고, 텔레비전도 끄고, 신문도 부스럭거리지 말고, 설거지도 하지 말고, 젓가락으로 접시를 건드리지도 말고, 문도 함부로 여닫지 마셔요. 아기가 새근새근 잘 수 있도록 모두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요.


  쉿. 아기가 잡니다. 노랫소리를 줄이거나 자장노래로 바꾸셔요. 춤사위는 그치고 사근사근 보드라운 손길로 토닥토닥 아기 가슴을 어루만져요. 오토바이는 못 지나가게 하고, 자동차도 못 다니게 하고, 아기 자는 둘레에서 재잘거리면서 수다를 피우지도 마셔요.



.. 쉿! 누가 바람 속에서 우는 걸까? ..  (4쪽)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버스에 탈 적에도, 버스에서 내릴 적에도,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다른 사람은 기다리셔요. 아무리 바빠도 아기를 밀치지 마셔요. 아무리 서둘러야 해도 아기 옆에서는 발걸음 사근사근 찬찬히 지나가셔요. 그리고, 아기 옆을 스쳐 지나갈 적에는 아기한테 빙그레 웃음을 지으셔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요? 왜냐하면, 이녁도 아기였을 적에 이녁 이웃 아재와 아지매 모두 이렇게 했답니다.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도록 모두 마음을 기울였고, 아름다운 숨결이 고이 쉬도록 모두 마음을 쏟았어요.



.. 도마뱀아, 도마뱀아! 그렇게 엿보지 말아라. 아기가 자고 있잖이? 도마뱀아, 도마뱀아!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라. 요 옆에서 우리 아기가 자고 있단다 ..  (8쪽)





  아기가 잘 적에는 컴퓨터도 하지 마셔요. 자판을 두들기거나 다람쥐를 콕콕 누르는 소리조차 아기한테는 안 좋아요. 다만, 창밖에서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괜찮아요.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좋아요. 집 둘레 풀밭과 숲에서 퍼지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름답지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나뭇가지가 한들거리는 소리는 모두 예뻐요.


  아기는 저를 뱃속에서 품은 어머니가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감싸 주었듯이, 이 땅에서도 다른 어른들이 저를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보듬어 주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따스한 손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따스한 손길이 되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살가운 눈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살가운 눈길이 되기를 바라요.



.. 온 세상이 조용하고, 고요하네요. 엄마도 창턱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어요. 달이 나무 위로 떠다닐 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요. 산들바람도 불지 않아요 ..  (31쪽)





  민퐁 호 님이 글을 쓰고, 홀리 미드 님이 그림을 넣은 《쉿!》(곧은나무,2005)을 읽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별 같은 나라 가운데 타이에서 날아온 그림책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자락 사람들 삶이 그림책에 잔잔하게 흐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마을 어머니 사랑이 그림책에 차분하게 감돕니다. 따사로운 빛과 포근한 숨결과 아늑한 눈길이 골고루 어우러진 즐거운 노래가 고즈넉하게 퍼집니다.



.. 아기만 혼자 동그란 눈을 반짝이네요 ..  (32쪽)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이야기로 꿈을 짓습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노래로 삶을 가꿉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웃음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머니는 가까스로 아기를 재웁니다. 이러는 사이 어머니도 살몃살몃 곯아떨어집니다. 이제 모두 조용합니다. 이제 모두 잠이 듭니다. 그런데, 이때에 아기가 말똥말똥 눈을 떠요. 모두 조용한 때에 아기는 혼자 눈을 뜨고는 까르르 웃으며 놀아요.


  이 사랑스러운 아기가 자라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사랑을 받으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 아기가 새롭게 사랑을 꽃피우면서 새롭게 아기를 낳습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고,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사랑을 기쁘게 베풉니다.


  사랑이 흐르고 흘러 삶이 되고, 사랑이 자라고 자라 삶꽃이 핍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묶음표 한자말 202 : 한역(漢譯) 문자(文字)



순수 국어를 한역(漢譯)해 놓은 문자(文字)다. 이 경우에 ‘문자’는 ‘글자’가 아니라 유식한 체하느라고 쓰는 한자 숙어를 뜻한다

《이수열-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 266쪽


 순수 국어를 한역(漢譯)해 놓은 문자(文字)다

→ 한국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토박이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



  한국말을 한자로 옮기니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란 다른 말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자를 빌어서 쓰는 말이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을 알파벳을 빌어 옮기면 영어입니다.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이 말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나라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 “순수 국어”라는 말부터 좀 안 어울립니다. “순수 한자말”이나 “순수 영어”라는 말은 안 쓸 테니까요.


  이 보기글을 보면 ‘한역(漢譯)’과 ‘문자(文字)’라는 낱말을 쓰면서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습니다. 왜 이렇게 글을 쓸까요? 이러한 한자말은 한자를 알지 않으면 제대로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자를 밝히지 않으면 말뜻을 알 수 없거나 헷갈릴 만한 낱말은 누가 쓸 말일까요? 이러한 말을 한국사람이 써야 할까요? 이러한 말을 쓰는 일이야말로 ‘많이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거나 ‘잘 아는 체’하는 모양새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따로 ‘한자옮김’이나 ‘한글옮김’ 같은 낱말을 지어서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한자로 옮기다’나 ‘한글로 옮기다’처럼 쓰면 넉넉합니다. 따로 한 낱말로 적어야 한다면 ‘한자옮김’이나 ‘한글옮김’처럼 적어도 되고, 여느 때에는 ‘한역(漢譯)’이나 ‘한역(韓譯)’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글은 ‘글’이라 적으면 되고, 굳이 ‘문자(文字)’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쓰지 않아도 됩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한국말을 한자로 옮긴 글이다. 이때에 이 글은 많이 아는 체하느라고 쓰는 한자말을 뜻한다


“순수(純水) 국어(國語)”는 “한국말”이나 “우리말”이나 “토박이말”로 손질합니다. “이 경우(境遇)에”는 “이때에”나 “이러할 때에”로 손보고, ‘유식(有識)한’은 ‘잘난’이나 ‘많이 아는’이나 ‘잘 아는’으로 손보며, “한자 숙어(熟語)”는 “한자말”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넋 46. ‘익숙한 한자말’이기에 고친다

― 한자말을 왜 바로잡아야 하는가



  책을 읽을 적에 ‘맞춤법 살피기’나 ‘띄어쓰기 바로잡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자면 ‘책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는 ‘이야기나 줄거리 읽기’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 찬찬히 읽고, 어떤 줄거리를 들려주려는지 가만히 읽으려면 그예 이야기와 줄거리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생각하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얽매여 다른 대목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이웃이나 동무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 무엇을 듣습니까? ‘이야기’를 듣겠지요? 말투가 거친 사람이 있고, 어느 고장에서는 사람들이 으레 거칠다 싶은 말씨로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경상도나 전라도에 가서 깜짝 놀라거나 어리둥절할 수 있어요. 말씨와 말투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울내기라 하더라도 말씨와 말투로 ‘사람을 따지거나 재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야기와 줄거리’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서로 오붓하고 즐겁게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돌아볼 노릇입니다. 아직 많이 어린 아이들, 이를테면 서너 살이나 예닐곱 살 아이는 ‘틀린 말’을 곧잘 씁니다. 아직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 바로잡아 주더라도 아이는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자꾸 틀려요. 그런데, 아이가 자꾸 틀린 말을 할 적에 ‘틀린 말 바로잡기’만 끝없이 시키면 어찌 될까요? 둘 사이에 이야기가 될까요? 아이는 그만 입을 앙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할 테지요. 더더구나, 두어 살이나 서너 살 아이가 ‘틀린 말’을 쓰더라도 어버이라면 이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밝히려는 말’을 하는지 이내 알아차립니다. 어버이는 ‘틀린 말 바로잡기’가 아니라 ‘이야기 나누기’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든 이야기를 나누든, 옆사람이 ‘한자말을 섞어서 지식을 자랑하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온갖 영어를 섞어서 쓰든’, 아니면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모두 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몇 가지 알려줄 수 있어요. 글을 다 읽고 나서 이야기와 줄거리를 찬찬히 곰삭힌 뒤 몇 가지 짚을 수 있어요.


  《아델과 사이먼》(베틀북 펴냄,2007)이라는 예쁜 그림책이 있습니다. 그림도 예쁘고 이야기도 예쁩니다. 이 그림책을 찬찬히 읽다가 “둘은 그림 찾기를 포기하고 공원으로 갔어요(7쪽)”라는 대목에서 ‘포기(抛棄)하고’라는 한자말을 ‘그만두고’나 ‘그치고’로 고칩니다. “너 당장 내려오지 못해(8쪽)”라는 대목에서 ‘당장(當場)’이라는 한자말을 ‘어서’나 ‘바로’로 고칩니다. “하루 종일(15쪽)”이라는 대목에서 ‘종일(終日)’이라는 한자말을 ‘내내’로 고칩니다. “제발 조심해(15쪽)”라는 대목에서 ‘조심(操心)해’라는 한자말을 ‘잘 살펴’로 고칩니다. “결국 찾지 못했어요(19쪽)”라는 대목에서 ‘결국(結局)’이라는 한자말을 ‘끝내’나 ‘그예’로 고칩니다.


  예쁜 그림책에 나오는 번역글입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이기에 연필로 죽죽 금을 그은 뒤 바로잡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혼자 읽을 적에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익혀서 곱고 사랑스레 쓰기를 바라면서 바로잡습니다. 그런데, 책에 적힌 이런 한자말은 사람들한테 꽤 익숙한 낱말입니다. 어린이책에까지 쓰는 이런 한자말은 사람들한테 무척 익숙하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이 ‘오늘날 익숙하게 쓰는 한자말’이기 때문에 바로잡습니다. ‘사람들이 익숙하게 안 쓰는 한자말’이라면 구태여 바로잡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익숙하게 안 쓰는 한자말’은 구태여 바로잡지 않아도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이어집니다. 모든 것은 늘 똑같습니다. 익숙하게 널리 쓰는 한자말이기에 안 고쳐도 된다는 생각은, 일제강점기가 서른다섯 해쯤 되었으니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하고 똑같이 이어집니다. 참말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식민지 종살이가 오래 이어지다 보니 아주 많은 분들이 ‘종으로 지내는 삶’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일본말을 쓰고 일본 이름을 지으면서 살았어요. 해방된 지 일흔 해가 되도록 ‘일제강점기 찌꺼기 말투’가 사회 곳곳에 아주 깊이 뿌리내린 채 안 뽑힙니다. 어른들 스스로 ‘익숙하게 쓴다’는 핑계를 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쓸 말은 ‘익숙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쓸 말은 ‘써야 할 말’입니다. 우리가 쓸 말은 ‘생각을 나타내고 마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쓸 말은 ‘삶을 가꾸는 말’과 ‘삶을 짓는 말’과 ‘삶을 사랑하는 말’입니다.


  한국말은 ‘파랑’이고 한자말은 ‘靑色’이며 영어는 ‘blue’입니다. ‘블루’나 ‘청색’ 같은 바깥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은 ‘파랑’입니다. 한국말은 ‘하늘’이고 한자말은 ‘蒼空’이며 영어는 ‘sky’입니다. ‘스카이’나 ‘창공’ 같은 바깥말을 쓰려 한다면 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은 ‘하늘’입니다.


  오늘날 꽤 많은 어른들은 ‘청색’이나 ‘창공’ 같은 한자말이 익숙합니다. ‘블루’나 ‘스카이’ 같은 영어도 익숙합니다. 익숙하니까 이런 바깥말을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떠나, 익숙한 말투가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른들한테는 익숙하더라도 아이들한테는 안 익숙한 낱말입니다. 아이들은 말다운 말을 배워서 생각다운 생각을 키울 노릇이고, 아이들은 말다운 말을 가꾸어서 삶다운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이녁한테 익숙한 말로 늘 똑같은 생각과 삶을 되풀이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나한테 익숙한 말’이 아니라 ‘삶을 가꾸고 사랑을 북돋우며 생각을 키우는 말’을 슬기롭게 찾아서 새롭게 배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면서 받아들일 즐겁고 기쁜 말을 배울 노릇이요, 어른들은 날마다 새롭게 생각하면서 꿈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말을 다시 배울 노릇입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