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92] 차돌



  “너는 돌이야!” 할 적에 기쁘게 맞아들일 사람이 있고, 섭섭하게 맞아들일 사람이 있습니다. 기쁘게 맞아들일 사람이라면, 돌처럼 단단하고 오래가면서 씩씩하다는 뜻으로 맞아들일 테고, 섭섭하게 맞아들일 사람이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어리석다는 뜻으로 맞아들일 테지요. 그러면 “너는 차돌이야!” 할 적에는 어떻게 맞아들일 만할까요?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차돌’이라는 이름을 아주 기쁘면서 반갑고 멋있는 이름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다만, 나는 이런 이름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나는 “너도 차돌처럼 튼튼해서 아픈 곳이 없으면 좋겠다.” 같은 말만 들었어요. 내 동무 가운데에는 ‘차돌’이라는 이름을 받은 아이가 있고, 이 아이들은 그야말로 단단하고 야무지면서 똘똘하고 씩씩해요. ‘나도 차돌 같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하고 생각하면서 ‘차돌’ 같은 동무하고 놉니다. 함께 놀면서 다시금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참말 야무지구나, 참말 씩씩하구나, 참말 기운차구나, 그래 이러니 그야말로 이 아이는 차돌이지. 어느덧 하루하루 흐르고 흘러 나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지냅니다. 나는 아직 차돌 같은 몸이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마당에서 뛰놀 만큼 다부지고 씩씩합니다. 쉬지 않고 뛰놀며, 겨울에도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차돌순이요 차돌돌이입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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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웃는 매미 문학동네 시인선 25
장대송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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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3



시와 텔레비전

― 스스로 웃는 매미

 장대송 글

 문학동네 펴냄, 2012.9.24.



  손가락을 움직여 또각또각 돌리면 텔레비전 화면이 바뀝니다. 손가락을 놀려 똑똑 단추를 누르면 텔레비전 화면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를 두면 가만히 눕든 앉든 서든 온갖 이야기가 쉬지 않고 흐르는 물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되며, 게다가 밥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멍하니 마음을 다 놓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 저 텔레비전 / 혹시 살아 있는 척하는 거 아냐 /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척하는 것 아냐 ..  (옛날 연속극)



  학교에 가면 교과서를 줍니다. 학교에 가면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 진도를 나갑니다. 학교에 가면 다른 학교로 가도록 시험문제를 알려줍니다. 학교에 가면 다음 학교가 나오고, 다음 학교에 가면 다시 다른 학교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있는 학교까지 나오면, 이제 회사가 우리 앞에 나오고,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서 예순 살 남짓이 될 때까지 시키는 일을 하면 됩니다.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예순 살 남짓 되면, 이제 회사에서 나와 연금을 받으면서 자가용을 몰고 ‘연금 쓰는 삶’을 보내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서 땅에 묻히거나 불로 태워 재가 남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고 난 뒤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어서 땅에 묻히려고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려고 태어난 목숨일까요. 우리는 회사원이 되어 스물대여섯 살부터 예순 살 남짓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일까요.



.. 뻐기는 듯 걸음을 걷는 개에게 끌려가는 저 여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나보다 ..  (풍경)



  텔레비전을 켜면 지구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운동경기가 흐릅니다. 한국에서는 깜깜한 밤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다른 나라는 환한 낮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야구나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골프나 갖가지 운동경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하나만 곁에 두면 온갖 운동선수 이름을 꿸 수 있고, 이름난 선수가 벌이는 묘기에 가까운 몸재주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끄면? 텔레비전을 끄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를 마음 놓고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축구를 신나게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농구나 배구나 탁구나 골프를 할 만한 너른 터는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다는 달리기조차 홀가분하게 할 만한 데가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헤엄을 칠 냇물이나 못이 없습니다. 냇물이나 못이 있어도 냇바닥을 죄 시멘트로 들이부었어요. 시멘트로 들이붓지 않은 냇물이나 못이 있더라도 공장과 발전소에서 뱉은 쓰레기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농약에 찌들었습니다.



.. 벌써 며칠째다. 안개를 잡으려 철사 줄을 비틀다가 내 손가락이 비틀어졌다. 바지 주름을 세 줄로 잡아놓았는데도 헐렁한 자세로 서 있는 안개, 헐렁한 안개를 쳐다보다가 ..  (합성인간)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일하거나 놀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손전화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서 ‘구경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노닥거리는 짓을 구경합니다. 다른 사람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알리는 온갖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 삶은 어디에 있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동네에, 학교에, 마을에, 사회에, 그러니까 이 나라 어느 곳에 삶이 있다고 할는지 알 길이 없어요. 스스로 삶을 찾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지네에 중독된 자네는 / 지리산을 돌아다니는 게 싫증 나면 /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 오곤 했는데, 요즈음도 그런가 / 삼보일배는 자네 마음에 자네가 질려서였겠지 ..  (술 한잔하게나-이원규 시인에게)



  장대송 님이 빚은 시를 엮은 《스스로 웃는 매미》(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이 오늘 누리는 하루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는 하루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음꽃을 피우는 나날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 사랑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삶일까요?



.. 불 꺼진 부엌, 나는 / 밤마다 방황하나니 / 정수기, 냉장고, 시계, 오븐, 정화기, 가습기…… / 그 푸른 LED 불빛 / 푸른 바다가 되어 나를 감시하나니 ..  (디지털의 흔적)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시는 삶 그대로 나옵니다. 시는 삶에서 고스란히 흐릅니다.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휩쓸리는 넋이 되어 시를 씁니다.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면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눈길로 시를 씁니다.


  숲에 깃들어 숲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숲바람을 시로 길어올립니다. 흙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은 흙내음과 씨뿌리기를 시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이와 함께 짓는 웃음을 시로 그립니다.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서 건네는 사람은 아이와 나누는 밥내음을 시로 엮습니다.



.. 서재 불을 끄고 / 책장의 책들을 더듬으며 빠져나온다 ..  (서재)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밭으로 일구어 씨앗을 심는 넋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며 컴퓨터를 켜거나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마음을 숲으로 가꾸어 바람과 햇볕과 빗물을 머금는 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야, 시가 노래가 되니까요. 이렇게 할 때에, 시가 사랑으로 거듭나니까요.


  노래가 되지 않는 시는 어쩐지 싱겁습니다. 사랑이 되려 하지 않는 시는 어쩐지 무뚝뚝합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일는지 모르나, 참웃음은 겉웃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데에서 따사로이 샘솟는 속웃음이라고 느낍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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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10.

 : 다 함께



- 자전거마실을 가자고 한 마디 말이 떨어지면 두 아이는 아주 부산하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이 아이들은 놀이순이에 놀이돌이인 터러, 더운바람이건 찬바람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순이와 자전거돌이로 바뀐다. 더구나, 작은아이가 손을 야물딱지게 놀리면서 대문 밑걸쇠를 열고, 큰아이는 디딤판을 밟고 올라서서 윗걸쇠를 열 만큼 키가 자라고 힘이 붙었다. 두 아이는 날마다 새롭게 자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 수레에 쓰레기봉투를 싣고 마을 어귀로 끌고 간다. 마을 어귀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내려놓는다. 두 아이를 태우고 논둑길을 빙 돌아 도서관에 먼저 간다. 우체국으로 가서 부칠 책이 있기에 도서관에서 챙긴다. 짐을 꾸린 뒤 도서관에서 나온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웃마을 할매가 고구마를 썰어 잔뜩 널었다. 빼때기를 얻으려고 말린다.


-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는다. 언제나처럼 차근차근 발판을 굴린다. 언제나처럼 큰아이가 먼저 노래를 부르고, 작은아이가 따라 부른다. 앞에서 자전거를 모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노래를 부른다. 다 다른 노래를 부르지만 다 함께 노래를 부른다. 천천히 천천히 발판을 구르면서 늦가을 들길을 달린다. 바람이 제법 찰 텐데 큰아이는 장갑을 안 끼고 맨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는다. 손이 시릴 텐데?


- 우체국을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존다. 읍내 가게에서 빵 한 봉지 샀는데, 작은아이는 손에 빵봉지를 꼭 쥔 채 존다. 동호덕마을로 접어든 뒤 자전거를 세운다. 빵봉지를 뜯어 작은아이 손에 빵조각을 쥐어 주니 부시시 눈을 뜨고는 졸린 몸으로 우적우적 씹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맞바람을 쐬면서 빵조각을 씹는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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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마음 2



  〈어네스트와 셀레스틴(Ernest & Celestine,2012)〉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곰과 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벵상이라는 분이 빚은 그림책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새롭게 일군 작품입니다. 이 만화영화를 보면 첫머리에 아주 뜻있는 대목이 흐릅니다. 작은 쥐 ‘셀레스틴’은 이녁 꿈을 그림으로 그려요. 이녁 꿈은 ‘쥐와 곰이 서로 사이좋은 동무로 웃고 지내는 삶’입니다.


  작은 쥐 셀레스틴은 이녁 스스로 그린 그림을 늘 알뜰히 건사합니다. 늘 생각합니다. 늘 마음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이 그림대로 꿈을 이루지요.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을 그리는 마음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이겠어요? 바로, 사랑을 그리는 마음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이라 할까요? 바로, 이야기를 그리고, 꿈을 그리며, 노래를 그리는 마음입니다.


  그림은 먼저 종이에 그립니다. 종이가 없으면 흙바닥에 그리면 됩니다. 흙바닥조차 없으면 마음속에 그리지요. 스스로 이루고 싶은 삶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스스로 이루려는 삶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이러고 나서 그림을 바라봅니다.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온마음을 바쳐서 내 그림을 내가 바라봅니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대로 삶을 이룹니다. 나는 내가 그리려는 그림대로 사랑을 찾고, 꿈을 마주하며,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와 춤 모두를 누려요.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기에 아름답게 말합니다. 따스하게 그림을 그리기에 따스하게 이웃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기쁘게 그림을 그리기에 기쁘게 밥을 지어요. 푸르게 그림을 그리기에 우리 보금자리를 너른 숲으로 푸르게 가꿉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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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1-12 11:09   좋아요 0 | URL
아기자기 넘 귀여워요

파란놀 2014-11-12 11:1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도 아이와 함께 그림 그리셔요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29) 각자의 4


해답은 없고 역시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김유미-내 안의 야생공원》(신구문화사,1999) 73쪽


 각자의 선택을

→ 저마다 무엇을 하는가를

→ 제 길을

→ 제 갈 길을

 …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제 길을 걷습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가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스스로 제 길을 찾아서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우리는 우리 길을 갑니다. 이 길을 가기에 더 높이 여길 만하지 않고, 저 길을 가니까 더 낮게 여길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느 길이든 고이 여기면서 바라볼 뿐입니다. 그예 어느 길이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거나 기쁘게 맞이할 노릇이지 싶어요. 풀이법이란 없어요. 우리 길은 우리가 몸소 걷고, 내 길은 내가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1.4.24.나무/4347.11.1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풀이법은 없고 이 또한 제 길을 고이 여길 뿐이다

풀이법은 없고 이 또한 저마다 가는 길을 고이 여길 뿐이다


‘해답(解答)’은 ‘풀이법’으로 다듬고, ‘역시(亦是)’는 ‘이 또한‘이나 ‘어쩔 수 없이’나 ‘그저’로 다듬습니다. ‘선택(選擇)을’은 ‘고른 길을’이나 ‘고른 일을’로 손질하고, ‘존중(尊重)할’은 ‘고이 여길’이나 ‘섬길’이나 ‘높이 살’로 손질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32) 각자의 5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눈 식구들이 밥술 놓자마자 각자의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기도 뭣하고 하여 차나 과일을 나누며

《박완서-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햇빛출판사,1990) 81쪽


 각자의 방으로

→ 제 방으로

→ 다들 제 방으로

→ 저마다 제 방으로

 …



  이 보기글을 곰곰이 살피면, 토씨 ‘-의’만 덜고 “밥술 놓자마자 방으로 쑥 들어가”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따로따로 제 방에 들어간다고 낱낱이 적어도 되지만 “방으로 쑥 들어가”라고만 적어도 뜻이나 느낌은 잘 밝힐 만합니다. 4341.6.21.흙/4347.11.1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저녁밥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눈 식구들이 밥술 놓자마자 제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기도 뭣하고 하여 차나 과일을 나누며


“저녁 식사(食事)”는 “저녁밥”으로 고쳐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66) 각자의 6


“안 오려나 봐.” “오면 뭐하니.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지.”

《김수정-소금자 블루스 1》(서울문화사,1990) 109쪽


 각자의 길을 가야지

→ 내 길을 가야지

→ 제 갈 길을 가야지

→ 서로 갈 길을 가야지

 …



  대중노래 가운데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기창에 “각자의 길”을 넣으면 온갖 말이 줄줄이 뜹니다. ‘함께 가는 길’이 아니고 ‘혼자 가는 길’이라고 할 적에 이러한 말을 퍽 자주 쓰는 듯합니다. 거의 관용구처럼 굳은 말씨로구나 싶습니다.


 내가 갈 길

 내 나름대로 갈 길

 다른 길

 나뉘어진 길

 가고 싶은 길

 따로따로 걷는 길


  곰곰이 따지면, 우리는 “내 길을 간다”고 말할 만합니다. 아니, 예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네 길을 가. 나는 내 길을 갈게.”처럼 말해요. 다시 말해서 “내 길 걷기”를 일본 말투로 ‘-의’를 넣어 “각자의 길”처럼 적는 셈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쓰는 길을 걷지 못하고, 이리 휩쓸리는 한자말을 쓰거나 저리 휩쓸리는 영어를 쓰거나 그리 휩쓸리는 일본 말투를 쓴다고 할까요. 한국말을 슬기롭게 “내 길 걷기”와 같이 가다듬는 사람이 자꾸 줄어듭니다. 4341.7.11.쇠/4347.11.12.물.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3) 각자의 7


나무 모양이 다른 것도 다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야

《손옥희·최향숙-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 41쪽


 다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야

→ 다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야

→ 다 다른 곳에 쓰기 때문이야

→ 저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야

→ 맡은 몫이 다 다르기 때문이야

 …



  ‘역할’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각자’도 일본 한자말입니다. 여기에 ‘-의’를 넣는 말씨는 일본 말투입니다. “각자의 역할”은 껍데기는 한글이지만 한국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맡은 몫”이나 “저마다 맡은 구실”로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나무를 이야기하니, “저마다 맡은 쓰임새”나 “나무마다 쓰는 자리”쯤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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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모양이 다른 까닭도 다 맡은 몫이 다르기 때문이야

나무 모양이 다른 까닭도 다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야


“다른 것도”는 “다른 까닭도”로 손질합니다. ‘역할(役割)’은 ‘구실’이나 ‘몫’이나 ‘쓰임새’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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