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73] 손재주



  손으로 살살 실을 자아 옷을 짓고

  손으로 착착 땅을 일궈 밥을 짓고

  손으로 삭삭 글을 써서 책을 짓고



  처음부터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손재주는 손을 놀리는 동안 차근차근 늡니다. 즐거운 숨결을 손에 불어넣습니다. 기쁜 노래를 손에 담습니다. 신나는 꿈을 손에 싣습니다.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면서 두 손에 따스한 기운이 넘칩니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서 두 손에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납니다. 글을 쓰고 책을 지으면서 두 손에 너그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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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1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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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2



위에 있으니 즐겁니?

―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8.7.15.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를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에서 낳아서 키우셨다고 하는데, 나는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이 어떠했는지 아주 어렴풋하게만 그립니다.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곱 살 즈음부터 지낸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여러모로 많이 떠오릅니다. 이무렵 나는 이 집이 ‘집’이라고 여겼습니다. 작은아버지 사는 집을 찾아가고, 고모님이나 이모님 댁을 찾아가고 나서야 ‘다른 집’이 있는 줄 알았고, 집마다 살림살이가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하고 견줄 수 없이 커다란 집을 보았고, 우리 집보다 더 작은 집을 보았습니다. 방과 마루가 따로 없이 한 칸짜리로 이룬 그야말로 조그마한 집을 보았고, 두 층으로 지은 집을 보았어요.



- 지구를 따라 도는 상·중·하층 3개로 구분된 거대한 링 시스템 맨션. 우리들은 그 거대한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6쪽)

-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려선 장소를 찾고 싶다고.’ (34쪽)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른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조그마한 집에서 옹송그리면서 살고, 왜 누구는 커다란 집에서 널널하게 살까요. 왜 누구는 햇볕이 안 드는 집에서 살고, 왜 누구는 마당이 있는 커다란 집에서 살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와 지내면서 우리 집과 다른 집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왜 우리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무는 왜 크고작은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집을 모릅니다. 아기는 커다란 집이든 자그마한 집이든 살피지 않습니다. 아기는 오직 어버이 사랑을 헤아립니다. 오로지 어버이 사랑을 바라봅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혼자 서고 걸음마를 익히며 뛰놀 적에도 그저 어버이 사랑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집이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는 살피지 않습니다.



-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살고 있는 링 시스템 높이가 고도 35000미터나 되는데 그 벽을 닦는 거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있어요. 실제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 목숨 보장, 작업복 관리에 꽤 비용이 들어서, 의뢰인에게 청구하는 금액도 커지고, 그래서 언제나 의뢰하는 쪽은 정부나 상층에 사는 고소득자들뿐이에요. 누나는 창문 닦는 일을 왜 의뢰했어요? 누나는 우리랑 같은 하층 주민이잖아요?” (45∼46쪽)

- “조금 닦인 틈새로 바깥을 봤어. 얼굴 딱 붙이고 말이야. 살짝 보인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 진짜 하늘과 땅. 하층이면 인공 빛밖에 없잖아. 초등학생이 돼서 중간층에 갈 수 있기 전엔, 자연광이 좋은 이유를 잘 모르지.” (47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08) 첫째 권을 읽습니다.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더는 살 수 없어 지구 바깥에 띠 같은 집을 길게 두른 뒤, ‘위·가운데·아래’ 세 층으로 나누어서 지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바깥으로 떠나야 한 사람들은 ‘세 계급’으로 나눈 셈입니다. 사람들은 세 가지 신분으로 갈리는 셈입니다.


  만화에만 나오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지구별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반지하와 옥탑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삯이 밀려 괴로운 사람이 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에도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 집삯뿐 아니라 한 해 집삯에 이르는 돈으로 하룻밤을 묵는 호텔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쓰는 밥값을 어떤 사람은 한 끼니 먹는 데에 쓰기도 합니다.


  먼 앞날, 지구별이 아주 망가져서 더는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때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이곳에서 신분과 계급으로 층이 갈립니다. 위와 아래가 갈립니다. 누군가는 위와 아래에 있고, 누군가는 위로 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 ‘나에게 지금 밝은 방 같은 건 없지만 외롭지도 않아.’ (75쪽)

- “나는 결국 날 위해서 하는 거다. 이 일이 좋아졌으니까. 일단은 좋아하게 되는 게 우선. 그 다음은 스스로 생각해라.” (184쪽)




  위에 있는 사람은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은 흐뭇할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슬플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사랑이 없이 메마르거나 캄캄할까 궁금합니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다 한들 ‘위’라는 자리는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위’라는 자리에 있더라도, 즐겁지 않고 사랑을 모르며 갑갑한 굴레에 갇혀 쳇바퀴질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아래’라는 자리에 있으나,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즐거울까요?


  스스로 노래하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웃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스스로 춤추고 꿈꾸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짓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토성 맨션’이라는 곳에서 아래층에 있는 이들이 ‘위층 유리창’을 닦아 주지 않으면, 위층 사람은 늘 어둡고 퀴퀴하면서 차디찬 삶을 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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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장만하려는 마음



  내 넋이 한결 즐거우면서 따스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아무 책이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한 책을 살핍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던 어느 책을 어느 때에 퍽 싸게 판다면 장만할 수 있지만, 내가 장만할 책은 값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로 헤아립니다.


  내 몸이 오늘 하루 기쁘게 기운을 내어 내가 바라는 일과 놀이를 씩씩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밥을 짓습니다. 그래서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 아무렇게나 짓지 않습니다. 가장 넉넉하고 푸지게 누릴 수 있는 밥을 짓습니다.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면서 밥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조용조용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배추를 썹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릇과 접시를 소담스럽게 밥상에 올립니다.


  별을 올려다봅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습니다. 이 가을에 새로 돋는 풀잎에는 어떤 기운이 서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뜯습니다. 가을에 새로 돋은 풀잎은 내 몸에 어떤 숨결로 스며들까 하고 생각하면서 칼로 송송 썰어서 살살 무칩니다. 늦가을 찬바람에도 씩씩하게 돋는 풀처럼, 늦가을 찬바람쯤 기쁘게 맞을 수 있는 몸이 될 테지요. 늦가을 눈부신 별빛과 포근한 햇볕처럼 빙긋 웃는 숨결이 될 테지요.


  내가 즐겁게 일구는 삶이 내 이웃한테 노래가 되어 퍼집니다. 내 이웃이 기쁘게 가꾸는 삶이 나한테 노래가 되어 찾아옵니다. 가는 노래는 오는 노래가 되고, 가는 사랑은 오는 사랑이 됩니다. 책상맡에 놓은 책 한 권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읽는 책은 머잖아 아이들이 읽는 책이 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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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6) 쌍방의 1


어쨌든 내일부터 사전에 정해진 증인이 출두하여 쌍방의 주장을 통해 논쟁을 하게 됩니다만

《고우다 마모라/도영명 옮김-미궁 속의 벚꽃 上》(시리얼,2011) 69쪽


 쌍방의 주장을 통해

→ 두 쪽 생각을 놓고

→ 이쪽저쪽 생각을 놓고

→ 이쪽저쪽 다른 생각을 놓고

→ 둘이 다른 생각을 놓고

→ 서로 다른 생각을 놓고

 …



  한자말 ‘쌍방’은 ‘양방’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양방’은 “이쪽과 저쪽”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느 한자말이든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쌍방의 이해와 협조로 잘 해결되었다

→ 서로 헤아리고 도와서 잘 풀었다

 쌍방이 밀고 밀리는 일대 혈전

→ 서로 밀고 밀리는 아주 피 튀기는 다툼

→ 둘이 밀고 밀리는 아주 피 튀기는 싸움

 양방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 둘 모두한테 책임이 있다

→ 서로 책임이 있다


  ‘이쪽저쪽’을 넣을 때에 알맞다면 ‘이쪽저쪽’을 씁니다. ‘이쪽저쪽’보다 다른 낱말이 알맞다면 ‘둘’이나 ‘두 쪽’이나 ‘두 군데’나 ‘두 사람’을 씁니다. 이 낱말보다 다른 낱말이 한결 알맞구나 싶으면 ‘서로’나 ‘서로서로’를 씁니다.


  보기글을 보면 ‘쌍방(이름씨) + 의 + 주장(이름씨)’ 꼴입니다. 한국말사전 보기글도 ‘쌍방(이름씨) + 의 이해와 협조(이름씨)’ 꼴입니다. 일본말은 이름씨와 이름씨를 ‘の’를 써서 잇습니다. 그런데, 보기글에 나오는 ‘주장’이나 ‘이해’ 같은 한자말은 ‘주장하다’나 ‘이해하다’처럼 움직씨 꼴로 쓰면 ‘쌍방’ 뒤에 ‘-의’가 달라붙지 못합니다.


  한국말이 한국말이 되도록 “쌍방이 주장하는”이나 “쌍방이 이해하고 협조하여”처럼 적으면, ‘-의’가 달라붙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투와 토씨를 가다듬은 뒤, 지나치게 집어넣은 한자말을 사뿐사뿐 털면 말씨나 말흐름이 부드러우면서 정갈합니다.


  그런데 ‘둘’이나 ‘서로’를 쓰더라도 ‘-의’를 붙이는 분이 꽤 많습니다. 낱말은 알맞게 추스를 줄 알지만, 토씨는 제대로 붙이는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살피고 조금 더 헤아리면서 낱말과 토씨와 말투를 모두 알맞고 바르게 가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쨌든 내일부터 미리 부른 증인이 나와 서로 다른 두 쪽 생각을 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만


“사전(事前)에 정(定)해진”은 “미리 부른”이나 “미리 뽑힌”으로 손질하고, ‘출두(出頭)하여’는 ‘나와서’로 손질합니다. “주장(主張)을 통(通)해”는 “생각을 놓고”로 손보고, “논쟁(論爭)을 하게 됩니다만”은 “이야기를 나눕니다만”으로 손봅니다.



쌍방(雙方) = 양방(兩方)

   - 이 분규는 쌍방의 이해와 협조로 잘 해결되었다 /

     전선은 일주일 전까지도 쌍방이 밀고 밀리는 일대 혈전

양방(兩方) : 이쪽과 저쪽 또는 이편과 저편을 아울러 이르는 말

   - 그 일은 양방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97) 필사의 2


그때 필사의 각오로 일본에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시카와 이쓰코/손지연 옮김-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 225쪽


 필사의 각오로

→ 죽을 다짐으로

→ 죽을힘을 다해

→ 죽음을 무릅쓰는 마음으로

→ 목숨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 이를 악물고

 …



  일본군한테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분이 할머니가 되어 일본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분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는 일이 끔찍하고 무서웠지만, 지난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고 해요.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말하자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목숨을 바쳐야 할는지 모른다고도 생각하셨으리라 느껴요.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씩씩하게 가자고 생각하셨으리라 느낍니다. 새롭게 힘을 내셨을 테고, 이를 악무셨겠지요. 입을 앙다물고 두 주먹 불끈 움켜쥐셨을 테지요. 4347.11.1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때 죽음을 무릅쓰는 마음으로 일본에 오신 줄 알고 나니 절로 고개를 숙였어요


‘각오(覺悟)’는 ‘다짐’이나 ‘마음’으로 다듬고, “일본에 오신 것이라는 사실(事實)을”은 “일본에 오신 줄”로 다듬습니다. ‘숙연(肅然)’은 “고요하고 엄숙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엄숙(嚴肅)’은 “장엄하고 정숙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장엄(莊嚴)’은 “씩씩하고 웅장하며 위엄 있고 엄숙함”을 뜻한다 하고, ‘정숙(靜肅)’은 “조용하고 엄숙함”을 뜻한다 합니다. 낱말풀이가 여러모로 돌림풀이입니다. 다만, 이 낱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아무 말을 하지 못하면서 거룩하다는 느낌이 들 만하지 싶어요. 이 보기글에서는 “절로 고개를 숙였어요”쯤으로 손질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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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에서 새로운 문명이나 물건이나 문화를 받아들일 적에

한국말을 바탕으로 새말을 지으면 될 텐데,

한국말을 바탕으로 새말을 짓기보다는

바깥말을 그대로 들여와서 쓰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사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잊거나 잃은 탓입니다.


..


접시·그릇

→ ‘접시’에는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그릇’에는 먹을거리도 담지만, 여느 물건도 담습니다. 그러니까, ‘접시’는 여러 가지 그릇 가운데 한 가지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접시’와 ‘쟁반(錚盤)’은 같은 것을 가리켜요. ‘접시’는 한국말이고 ‘쟁반’은 한자말입니다. 어른들은 ‘접시’와 ‘쟁반’을 다른 자리에 쓰기도 해요. ‘쟁반’을 다른 물건으로 여긴다면, 처음부터 ‘접시’와 얽힌 새로운 낱말을 지어야 올바릅니다. 이를테면 ‘받침접시’나 ‘네모접시’나 ‘둥근접시’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어요. ‘찻접시’라든지 ‘나무접시’ 같은 낱말을 지을 만합니다.


접시

1. 납작하게 반반한 그릇

 - 꽃무늬를 새긴 접시에 봄나물을 담습니다

 - 동그란 접시를 설거지한 다음에 바깥에 말립니다

 - 앞접시

2. 먹을거리를 담은 접시를 세는 이름

 - 밥상에 김치 한 접시만 있어도 좋아요

 - 너희들 몫으로 떡을 한 접시씩 줄게

3. 저울에서 무게를 달 것을 올려놓는 판

 - 밀가루를 접시에 올려서 무게를 재자

그릇

1. 밥이나 물건을 담는 것

 - 비누거품이 가시도록 그릇을 잘 부신 뒤 살강에 얹으렴

 - 어머니가 쓰시는 바느질 그릇이 어디에 있더라

 - 저쪽 시렁에 씨앗을 갈무리하는 그릇을 올려놓았어요

 - 꽃그릇 . 밥그릇 . 물그릇

2. 어떤 일을 할 만한 힘이나 마음이 넉넉히 있는 사람

 - 내 동생은 그릇이 커서 앞으로 훌륭하게 자라리라 생각해요

 - 큰일을 맡길 만한 그릇이 안 된다고 여기기만 하면 발돋움하지 못해요

 - 둘 가운데 누가 그릇이 클까

3. 밥이나 물건을 담는 그릇을 세는 이름

 - 벌써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구나

 - 저쪽 밥상에 밥과 국을 세 그릇씩 날라 주렴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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