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74] 살림 가꾸기



  맑은 바람 큼큼 들이켜며

  푸른 마음 될 때에

  차근차근 가꾸는 하루



  넉넉하고 느긋하게 하루를 맞이할 적에, 내가 나한테 넉넉하고 느긋합니다. 내가 나한테 넉넉하고 느긋할 적에, 아이한테도 이웃한테도 모두 넉넉하고 느긋하게 마주합니다. 누구한테나 넉넉하고 느긋하게 마주할 적에, 살림을 넉넉하고 느긋하게 가꾸면서, 삶도 시나브로 넉넉하고 느긋한 길로 나아갑니다. 4347.11.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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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 민주주의가 강을 살린다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4
박창근.이원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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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1



시멘트밭에 볍씨 심을 수 있니?

―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박창근·이원영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17.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넷째 권으로 나온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2014)는 아흔한 쪽짜리 조그마한 책입니다. 아흔한 쪽짜리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4대강 사업이 어떤 꿍꿍이로 태어났는지 읽을 수 있고, 4대강 사업을 일으킨 무리는 이명박 한 사람이 아니라 ‘토건 마피아’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대목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박창근 님과 이원영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은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를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았고, 예전에 서울시장 자리에 앉기도 한 이명박이라고 하는 분은 ‘토건 마피아’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고.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이 토건 마피아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척척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을 둘러싼 비서와 장관과 국회의원이 다 같이 토건 마피아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뿐 아니라 민주당 사람들도 똑같이 토건 마피아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적잖은 이들이 토목건축으로 밥벌이를 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꾼과 공무원 이런저런 사람들이 짜고 치는 토건 마피아 바보짓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이루는 토건 마피아 바보짓 가운데 하나가 4대강 사업입니다.



.. 우리나라는 강물을 직접 정수해서 먹는데 운하가 생기면 수질이 나빠지잖아요. 배가 왔다 갔다 하면서 생기는 오염 물질과 물을 막았을 때 생기는 문제점 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  (청계천은) 인공 물길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서울 시민들은 도심에 생긴 휴식 공간을 무척 만족스러워합니다 … 서울이라는 도시의 환경이 워낙에 척박하다 보니 인공 자연이라도 시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 우리 국민들도 이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러니까 정부가 자꾸 환상을 주입하잖아요. 마치 대규모 토목사업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로 봅니다. 동네 땅값도 오르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얼마나 좋으냐, 하는 생각을 해요. 부자 만들어 준다는데 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 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지요. 오늘날 토목공사는 사람을 쓰지 않아요. 대부분 기계가 합니다 ..  (12, 46쪽)



  4대강 사업에 앞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새만금이 있습니다. 새만금에 앞서 무엇이 있었을까요? 시화호가 있습니다. 시화호에 앞서는, 또 시화호와 새만금 둘레에는, 그리고 4대강 사업 언저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라는 책에서도 다루지만, ‘하천 정비사업’이 있습니다. 서울을 둘러싼 신문과 방송이 온통 4대강 사업만 쳐다보면서 시끌벅적 떠들 적에, 서울을 벗어난 크고작은 시골에서는 ‘하천 정비사업’을 했습니다. 1킬로미터짜리 냇물바닥을 뒤집으면서 수십억 원을 쓰고, 백 미터 즈음 되는 골짜기바닥을 까뒤집으면서 수억 원을 씁니다. 이런 짓을 ‘하천 정비사업’과 ‘홍수 대비사업’ 같은 이름을 붙여서 벌입니다.


  신문과 방송은 수없이 취재를 하고 온갖 기사를 써서 4대강 이야기를 다룹니다. 신문과 방송은 4대강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기에도 자리가 모자라니 시골 이야기는 못 다룹니다. 지역신문에서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목건설 사업 이야기를 못 다룹니다. 지역에서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목건설 사업으로 서로서로 짬짜미를 이루면서 나눠먹기를 하거든요. 더군다나 시골에서 벌어지는 ‘하천 정비사업’을 취재하는 기자도 없고, 이런 사업을 제대로 살피거나 꼼꼼히 헤아리는 감사원 일꾼도 없습니다.



.. 이명박 씨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토목계가 들썩들썩합니다. 대형 국책사업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토목 쪽으로 흘러들게 생겼잖아요. 재벌들, 대기업들 이런 곳은 영혼이 없어요. 돈이 목적입니다. 강을 살리든 죽이든, 땅을 파든 덮든 일단 돈이 되면 뛰어듭니다 … 학계에서는 업체들의 입맛에 걸맞은 연구보도 결과를 내놓습니다. 경제 효과 얼마, 미래 성장 동력 어쩌고 하면서 말이지요. 정부도 여기에 호응합니다 … 매년 하천 정비사업에 3∼4조 원씩 들어가는데, 그 돈을 복지나 민생에 쓰면 얼마나 좋아요. 돈 들여서 자연을 훼손하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합니까 ..  (13∼14, 19, 34쪽)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토건 마피아’만 있지 않습니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까지 ‘해양 마피아’는 거의 안 알려졌습니다. 요즈음 들어 하나둘 불거지는 ‘원전 마피아’도 있습니다. ‘마피아’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학벌과 연줄에 따라서 온갖 파벌이 있습니다. 어느 학교를 어느 해에 들어갔느냐를 놓고 온갖 줄대기를 해요. 어느 고장에서 어느 해에 태어났느냐를 놓고 갖가지 줄대기를 합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어느 스승을 섬겼느냐에 따라 수없는 줄대기가 태어납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 대학교를 마치지 않은 사람, 이름난 아무개하고 줄이 닿지 않는 사람, 가진 돈이 적은 사람, 얼굴이 못생긴 사람, 몸 한쪽이 아픈 사람, 시골에 사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 들은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니, 한국 사회는 ‘돈·힘·이름’을 안 가진 사람이라든지, 시골내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높직하게 울타리를 쌓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즐겁게 나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땅빼앗기를 하듯이 다투거나 싸우면서 밥그릇을 챙기는 나라입니다.


  4대강 사업과 토목 마피아 따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바보스러운 한국 사회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 엉터리 짓거리요, 이 가운데 손꼽을 만한 바보짓입니다.



.. 우리의 강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옛 선조들의 그림에 보면 달빛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의 풍경도 나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멱을 감는 모습도 나옵니다 … 홍수가 나도 백사장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이유는 어떤 지점에서 볼 때 쓸려나가는 만큼 다시 쌓이기 때문입니다 … 댐이 생기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집니다. 새로 유입되는 모래도 없고 쓸려나가는 양만큼 새로 채워 주지 못합니다 … 화강암 지대라서 모래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래에는 자연 정수 능력이 있습니다. 화강암이 운모, 장석, 석영 이런 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운모와 장석은 그 안에 모공이 많아서 이물질을 걸러내요. 우리의 강이 스스로 물을 깨끗이 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  (30, 31, 32쪽)



  토목 마피아는 어떻게 몰아낼 수 있을까요. 온갖 차별과 계급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갖가지 학벌과 연줄은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거짓스러운 생각을 치우고 제대로 된 꿈을 품을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를테면, 서울에 있는 청계천 같은 엉터리 냇물을 걷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전기로 수돗물을 끌어들여서 흐르게 하는 바보짓이 아니라, 참말 냇물이 스스로 흐르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냇물이 흘러야 냇물이지, 수돗물을 전기로 끌어들려서 흘린 대서 냇물이 되지 않습니다. 모래바닥이어야 냇물이지 시멘트바닥은 냇물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수돗물을 먹더라도, 시골에서는 냇물과 골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는 도시에서도 수돗물이 아닌 냇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시 터전을 확 뜯어고쳐야 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수돗물 사업을 하느라 들이는 돈은 얼마나 엄청날까요? 이 엄청난 돈을 ‘도시에서도 냇물과 골짝물을 싱그럽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쓰면, 참말 도시에서도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댐을 짓고, 수도관을 묻고, 댐과 수도관을 관리하며, 정화시설을 돌리고,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쓰면서 수돗물을 먹는 오늘날 문명 사회예요. 그러나, 맑은 물이 아닌 터라 집집마다 가게마다 정수기를 달아서 씁니다.


  뭐 하는 짓일까요. 이렇게 엉뚱한 데에 돈을 쓰고 기계를 쓰며 기름을 쓰니, 냇물은 더 더러워집니다. 냇물이 더 더러워지니 다시 돈을 더 들여서 수돗물을 거르는 데에 엉뚱한 힘을 뺍니다.


  전기도 물과 똑같습니다. 집·가게·공장마다 자가발전을 하도록 했으면 진작에 모든 곳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장 깨끗한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송전탑도 발전소도 없이 얼마든지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한국전력이라는 회사를 꾸리는 돈, 한수원 같은 회사를 꾸리는 돈, 발전소를 짓고 꾸리는 돈, 석유와 가스를 사들이는 돈, 송전탑을 때려박는 돈, 이런 돈 저런 돈을 처음부터 자가발전과 무한동력을 만들어서 나누는 데에 썼으면, 아주 적은 돈으로 아주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여요. 이명박이 망쳐 놓은 걸 되돌릴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나쁜 방향으로 속도전을 전개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방향도 없고 속도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거예요 …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수질 개선 효과가 겨우 이거냐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22조 원이나 들여가면서 확인한 거예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 〈조선일보〉만이라도 꼭 찍어서 그간의 왜곡 보도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자는 겁니다. 4대강 관련해서 얼마나 극심한 왜곡·편파 보도가 있었는지 국민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 저는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도 생각납니다. 한동안 4대강을 예찬하시더니 지금은 녹조가 가뭄 탓이고, 큰빗이끼벌레는 수질 정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고 계세요. 참 심지가 곧으신 분이에요 ..  (45, 53, 59쪽)



  중앙정부가 전기와 물과 밥을 꽉 움켜쥡니다. 중앙정부가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꽉 휘어잡습니다. 중앙정부가 공무원을 꽉 옥죕니다. 중앙정부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고 경제개발과 무역에 목을 매답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사람들을 길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왜 길들일까요? 시키는 대로 따르는 종이 되도록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길들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나 물이 하루만 끊어져도, 아니 한 시간만 끊어져도, 아니 십 분만 끊어져도, 한국에 있는 모든 도시는 끔찍한 지옥이 됩니다. 한국 사회는 대외무역과 경제개발을 하지 않으면 모두 굶어죽는 얼거리가 되었습니다. 도시사람한테는 돈이 있을 테지만, 가게가 문을 안 열고 이웃나라에서 곡식과 남새와 열매와 고기를 사들이지 않으면, 고작 하루 만에 모두 굶어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아주 싸다 싶은 값’에 대형할인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테지만, 대외무역이 끊어지면 ‘엄청난 바가지(인플레)’를 씌워서 모든 돈은 종잇조각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서 도시사람은 거의 99%에 이르고, 시골사람은 고작 1%밖에 안 되는데, 밥을 어디에서 얻고, 물과 전기를 어디에서 얻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전기와 물과 밥을 자급자족이 되도록 손수 일구어 누리지 못하는 흐름으로 자꾸 나아가기만 한다면, 4대강 사업 같은 끔찍한 토목 마피아 바보짓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4대강 사업만 나무란다고 해서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차윤정이라고 하는 지식장사꾼 몇몇 사람을 꾸짖는다고 해서 일을 덮을 수 있지 않습니다. ㅈㅈㄷ신문 같은 엉터리 종잇조각을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일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을 고쳐야 하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 우리나라 관료들, 똑똑한 사람들이잖아요.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 기술고시 합격해서 들어간 분들이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노후도 보장되고 생계도 보장되는 좋은 직업인데 왜 그렇게 돈에 휘둘리는지 모르겠어요 … 지금은 비록 4대강 사업의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고 있지만 자정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정말 자연을 정복한 걸까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리워하잖아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상식에 탐욕에 가려져 온 거예요. 어렵지 않습니다 ..  (64, 85, 86쪽)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덮으면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좋습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덮으면 씨앗이 자라지 못합니다.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새마을운동 때문에, 시골에서는 ‘자급자족이요 쓰레기 없는 풀지붕’에서 ‘환경공해 석면(슬레트)지붕’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정부에서 돈을 대어 ‘환경공해 석면지붕 철거작업’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거의 안 나옵니다. 아주 조용히 합니다.


  참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요. 참을 어떻게 알아보고 거짓을 어떻게 가려낼까요.


  생각해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콘크리트를 덮은 땅에서는 나락 한 톨조차 안 납니다. 이 땅 구석구석을 콘크리트로 덮어서 공장을 지어 뭔가를 뚝딱 만들면 돈을 번다지만, 돈은 있되 나락 한 톨을 손수 거두지 못하면, 우리는 ‘돈을 씹어먹으며 살 수 없’으니, 다 굶어죽어야 합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가장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실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고, 가장 정갈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논밭과 들과 숲이 있어야 하며, 임대료 때문에 등허리가 휘지 않을 ‘마당 있는 집’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합니다. 개발사업이든 경제개발이든 하고 싶다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룬 다음에 할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시멘트밭에 볍씨를 심을 수 있니? 시멘트바닥에 물고기가 알을 낳을 수 있니? 시멘트숲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니? 시멘트마을에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니?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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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꽃 바라보는 마음



  아이들은 서로 사이좋게 놀기를 바랍니다. 서로 싸우기를 바라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른들은 곧잘 목소리를 높이면서 싸웁니다. 어른들은 서로 사이좋게 바라는 마음이 제대로 안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어른들은 자꾸 금을 긋습니다. 어른들은 자꾸 이쪽과 저쪽을 가릅니다. 이쪽에 있어야 ‘우리’가 되고, 저쪽에 있으면 ‘남’이 되고 맙니다.


  어른들은 남녘과 북녘 사이에 금을 긋습니다. 금을 그을 뿐 아니라 쇠가시울타리를 놓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금을 모르고, 금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북녘이건 남녘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북녘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과 일본과 러시아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모두 똑같은 동무요 이웃이라고 여깁니다.


  새는 금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새도 한국에만 살지 않습니다. 어떤 새이든 쇠가시울타리쯤이야 가볍게 넘나듭니다. 들짐승도 울타리는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때로는 땅밑으로 파고 넘어갑니다. 바다에서도 물고기는 금을 따지지 않아요. 일본 바다나 한국 바다를 가려서 사는 바닷물고기는 없습니다.


  남녘에서 지도로 보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가 갈립니다. 고흥군과 보성군이 갈립니다. 그러나, 지도에 있는 금은 그저 지도에만 있을 뿐입니다. 이 땅에는 없습니다.


  꽃은 네 땅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꽃은 내 땅에서만 피지 않습니다. 꽃은 씨앗이 떨어지는 곳에서 자라서 핍니다. 이쪽 꽃이 더 곱지 않고, 저쪽 꽃이 더 밉지 않습니다. 함께 아름답고, 서로 즐거우며, 다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숲꽃을 바라봅니다. 그예 활짝 피어나는 숲꽃을 바라봅니다. 어른들이 골짜기를 뒤집어엎은 뒤 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느라 한동안 뿌리째 뽑혀 사라진 숲꽃이지만, 바보스러운 어른들이 물러나고 몇 해가 지나니 다시 피어나는 숲꽃을 바라봅니다. 짓궂은 관광객이 지나가면 숲꽃은 그만 목아지가 꺾이거나 뿌리째 파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숲꽃 한 송이 피어난 둘레에 다른 씨앗이 조용히 잠들면서 기다리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 아름다운 노래가 드리우고, 이 땅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르기를 기다립니다. 서로 아끼면서 함께 보듬는 어른들이 차츰 늘어나기를 기다립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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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3) 하지만 2


하지만 그 뒤에도 한수원은 서류의 위조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 그들에게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울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김성환,이승준-한국 원전 잔혹사》(철수와영희,2014) 36, 37쪽


 하지만 그 뒤에도

→ 그러나 그 뒤에도

→ 그런데 그 뒤에도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 그렇지만 아직 궁금하다

→ 그러나 아직 아리송하다

 …



  ‘하지만’이라는 낱말을 글월 앞머리에 넣는 사람이 많으나,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그런데’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한편,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는 번역 말투입니다.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면 “그러나 질문거리는 여전히 있다”라든지 “그런데 여전히 질문할 것이 있다”쯤으로는 적어야 합니다. 한자말을 털고 싶으면 “그렇지만 아직 궁금하다”라든지 “그런데 궁금한 대목이 아직 있다”라든지 “그러나 아직 알쏭달쏭하다”처럼 손질합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런데 그 뒤에도 한수원은 서류를 거짓으로 꾸몄는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 그들한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아직 궁금하다


“서류의 위조(僞造) 여부(與否)를”은 “서류를 거짓으로 꾸몄는지를”로 손봅니다. “책임(責任)을 모두”는 그대로 두어도 될 테지만, “모든 잘못을”이나 “짐을 모두”로 손볼 수 있습니다. “질문(質問)은 여전(如前)히 남는다”는 “궁금함은 그대로 남는다”나 “아직 궁금하다”나 “아직 아리송하다”나 “아직 알쏭달쏭하다”나 “아직 더 묻고 싶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4) 하지만 3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박창근,이원영-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2014) 4쪽


 하지만

→ 그러나

→ 그렇지만

→ 다만

 …



  이 보기글에서는 “인간의 뜻”이 아닌 “인간 뜻”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한자말 ‘인간’은 ‘사람’으로 고쳐서 “사람 뜻”으로 적어도 되고, “사람들 뜻”으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고쳐써야 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다만’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자연은 사람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人間)의 뜻대로”는 “사람들 뜻대로”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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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2) 하지만 1


전시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크레용을 찾았어요.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어요. 사이먼은 누나에게 혼나기 전에 얼른 누나를 안았어요

《바바라 매클린톡/문주선 옮김-아델과 사이먼》(베틀북,2007) 19쪽


 하지만

→ 그러나

→ 그렇지만

→ 그렇지마는

→ 그러하지만

→ 그러하기는 하지만

→ 그렇기는 하지만

 …



  오늘날 ‘하지만’이라는 낱말을 아주 널리 씁니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이 낱말을 언제부터 이처럼 널리 썼을까요. ‘하지만’이라는 낱말은 널리 쓸 만할까요? 한국말로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만하니 앞으로도 이대로 쓰면 될까요? ‘하지만’처럼 줄여서 쓰는 ‘해서’나 ‘하여’나 ‘하면’ 같은 말마디도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까요? ‘해서’나 ‘하여’나 ‘하면’ 같은 말마디도 한국말사전에 한 번 올리면 앞으로 스무 해나 마흔 해나 예순 해쯤 뒤에는 널리 쓸 만할까요?



1940. 문세영, 수정증보 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간행회

하지만 : x

그렇지만 : x

그러나 : 그러하지만. 그렇지마는

그렇지마는 : 그러하지마는. 그러하다.

그러하다 : 그와 같다. 맞다. 틀리지 않다. 그대로 있다.



  1930년대에 처음 나오고 1940년에 고침판이 나온 《조선어사전》에는 ‘하지만’이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그러나’만 있고, ‘그러하지만’을 뜻한다고 적습니다. ‘그렇지만’은 안 싣지만 ‘그렇지마는’을 싣습니다. 이를 미루어 살피면,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그렇지만’은 처음에 ‘그렇지마는’으로만 썼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렇지마는’은 ‘그러하지마는’을 줄인 낱말인 줄 헤아릴 수 있습니다.



1956. 언어문학연구소, 조선어소사전, 과학원

하지만 : x

그렇지만 : x

그러나 : 그러하지만

그러하다 : 그와 같이 다름이 없다. (준말) 그렇다.


1957. 한글학회, 큰사전, 어문각

하지만 : x

그렇지만 : x

그러나 : x

그러하다 : 그와 같다. 그와 같이 다름이 없다.


1958. 신기철·신용철, 표준국어사전, 을유문화사

하지만 : x

그렇지만 : x

그러나 : 그러하지만

그러하다 : 그와 같다. 그것과 같다. 그렇다.

그렇다 : ‘그러하다’의 준말


1958. 한글학회, 중사전, 한글학회

하지만 : 그러하지마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렇지만 : x

그러나 : x

그러하다 : 그와 같다. 그와 같이 다름이 없다.

그렇다 : ‘그러하다’의 준말


1959. 홍웅선·김민수, 새사전, 대한교과서주식회사

하지만 : x

그렇지만 : x

그러나 : x



  1950년대에 나온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한글학회에서 펴낸 《중사전》에 처음으로 ‘하지만’이 나옵니다. 1957년에 나온 《큰사전》에는 ‘하지만’뿐 아니라 ‘그렇지만’과 ‘그러나’를 안 다룹니다. 1958년 《중사전》은 오직 ‘하지만’ 한 가지를 다룹니다. 1958년 신기철·신용철 《표준국어사전》은 ‘그러나’를 1940년 《문세영사전》에 이어 올림말로  다룹니다. 한편, 북녘에서 나온 《조선어소사전》에서는 ‘그러나’ 한 가지만 올림말로 다루고, 말풀이를 “그러하지만”으로 붙입니다.



1961. 이희승, 민중국어대사전, 민중서관

하지만 :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지만 : 그렇지마는. 그러하지마는.

그러나 : 그렇지마는. 그러하지만.


1965. 한글학회, 새한글사전, 한글학회

하지만 : 그러하지마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렇지만 : x

그러나 : 그러하지마는

그러하다 : 그와 같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 이희승 《민중국어대사전》에서 ‘그렇지만’을 올림말로 다룹니다. 맨 처음입니다. 이보다 네 해 뒤에 나온 한글학회 《새한글사전》에서는 ‘그렇지만’을 올림말로 안 다룹니다. 그런데, 이희승 《국어대사전》은 ‘하지만’ 뜻풀이를 “그러나. 그렇지만.”으로 적습니다. ‘그렇지만’ 꼴이 처음으로 나오는 한국말사전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그렇지만’은 ‘그렇지마는’과 ‘그러하지마는’을 줄인 낱말인 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국어대사전》은 ‘그러나’와 ‘그렇지만’에 똑같은 말풀이(그렇지마는)를 붙입니다.



1979. 양주동, 국어대사전, 선일문화사

하지만 : 그러나. 그렇지만. but

그렇지만 : 그렇지마는. 그러하지마는

그러나 : x

그러하다 : 그와 같다. (준) 그렇다


1992.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조선말대사전, 사회과학출판사

하지만 : (말체) 그렇지만

그렇지만 : x

그러나 : 앞의 말에 맞세워서 이어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하다 : 그 모양과 같거나 또는 그와 같다. 그러다.



  1970년대 끝무렵에 나온 양주동 《국어대사전》은 ‘그러나’를 올림말에서 뺍니다. 북녘에서 펴낸 한국말사전을 보면, 1990년대에도 ‘그렇지만’을 올림말로 안 적습니다. 그리고, ‘하지만’은 “말체”라고 못을 박으면서 “그렇지만”을 가리킨다고 풀이합니다.



201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 서로 일치하지 아니하거나 상반되는 사실을 나타내는 두 문장을 이어 줄 때 쓰는 접속 부사.

그렇지만 : 앞의 내용을 인정하면서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대립될 때 쓰는 접속 부사.

그렇지마는 : ‘그렇지만’의 본말.

그러나 :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 ‘그리하나’가 줄어든 말.



  2000년대로 접어든 뒤, 한국말사전에서는 ‘하지만’이나 ‘그렇지만’이 어디에서 비롯한 낱말인지 따로 안 밝힙니다. 이제는 그저 ‘접속 부사’로 다룰 뿐입니다. 사회에 널리 퍼진 말씨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마디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찬찬히 헤아립니다. ‘하지만’은 한국사람이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쓰던 말씨였다고 할 만합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한국말사전에 실리고, 차츰차츰 쓰임새를 넓히는구나 싶습니다. 예부터 한국사람은 ‘그렇지마는’과 ‘그러하지마는’을 썼고, 이 말투가 줄어서 ‘그렇지만’ 꼴이 된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지만’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그러하지마는’이 줄어든 ‘그러하지만’에서 ‘그러-’를 뺄 적에 ‘하지만’이 됩니다.



 해서 → 이리해서 (이리하다) 

 하여 → 이리하여 (이리하다)

 하면 → 이리하면 (이리하다)



  요즈음 여러모로 자꾸 퍼지는 잘못된 말투 가운데 하나가 ‘해서·하여·하면’입니다. ‘이리해서·이리하여·이리하면’으로 적어야 올바른데, ‘이리-’를 빼서 이처럼 엉뚱하게 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줄여서 쓸까요? 이렇게 줄여서 써도 될까요? 이렇게 줄여서 쓰는 말투는 올바를까요? 한국말을 살리거나 새로운 한국 말씨나 말법이나 말투가 될 만할까요?


  줄여서 쓰고 싶다면 ‘이래서’나 ‘그래서’로 줄이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면’이나 ‘그러면’으로 줄이면 됩니다. ‘해서·하여·하면’으로 줄여서 쓰는 일은 모두 알맞지 않고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하지마는’을 줄이면 ‘그렇지마는’이고, ‘그렇지마는’을 줄이면 ‘그렇지만’입니다. 이를 여기에서 더 줄여야 할 까닭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단출하게 쓰는 ‘그러나’도 있는데, 왜 ‘하지만’처럼 줄여서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널리 퍼지거나 두루 뿌리내린 말투라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다면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 쓰는 말투라 할 때에는 올바르게 쓰도록 새롭게 배워서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우리 넋을 담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는 우리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일그러졌기에 일그러진 말씨를 써도 된다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사회가 일그러졌어도 넋을 살리고 말을 살리면서 삶과 사회를 아름답게 되살리기를 바란다면, 잘못 쓰는 말투는 떨치고 올바르면서 아름다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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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크레용을 찾았어요. 그러나 끝내 찾지 못했어요. 사이먼은 누나한테 꾸중 듣기 앞서 얼른 누나를 안았어요


‘결국(結局)’은 ‘끝내’로 다듬고, “혼(魂)나기 전(前)에”는 “꾸중 듣기 앞서”나 “꾸지람 듣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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