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에누리'에 얽매여 책을 잔뜩 사든 

책을 몇 권 사든 한 모든 이웃들한테 주고 싶어서 쓴 글.


..


마음을 이루는 책 한 권



  우리가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물과 바람을 마시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 생각을 이룬다.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읽는 것이 우리 앎을 이룬다. 어떤 것을 읽느냐에 따라 우리 앎이 달라진다.


  그러면, 마음과 사랑과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마음을 어떻게 가꾸고, 사랑은 어떻게 나누며, 꿈은 어떻게 키울 때에,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ㅈㅈㄷ신문을 읽는 사람은 두 갈래 길로 간다.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대로 멍하니 좇는 길을 간다. 다른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거짓을 알아채면서 ㅈㅈㄷ을 꾸짖거나 손가락질하는 길을 간다. 둘 모두 ㅈㅈㄷ 언저리에서 헤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ㅈㅈㄷ을 끊으면 된다.


  들풀을 보거나 들꽃을 보는 사람은 들풀과 들꽃을 차츰차츰 익힌다. 어느 풀을 뜯어서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시나브로 깨닫고, 어느 꽃을 어느 철에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아챈다. 도감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핀다고 해서 들풀이나 들꽃을 알아채거나 배우지 못한다.


  육아책을 만 권쯤 읽기에 아이를 잘 돌보거나 키우지 않는다. 육아책은 한 권만 읽어도 되지만, 한 권조차 안 읽어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키울 아이는 내 아이인 터라, 내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살가이 보듬으면서 따스히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인문책을 읽는 사람은 인문책 지식을 머리에 담는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줄거리를 머리에 담는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교과서와 문제집 정보를 머리에 담는다. 스스로 찾거나 보거나 읽는 대로 마음을 이룬다.


  어느 책을 찾거나 보거나 읽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러한 모습이 되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러한 모습이 되기에 볼썽사납지 않다. 그저 그뿐이요, 그저 그이 스스로 나아가는 삶일 뿐이다.


  넋이 무엇인지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넋을 바라볼 수 있다. 하루가 걸릴 수 있고 한 해가 걸릴 수 있으며 백 해나 즈믄 해가 걸릴 수 있다.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바라보면서 꾸준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내 제대로 알아채면서 깨닫는다.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도 못 깨닫는다.


  누군가는 야구나 축구를 잘 알 테지만, 누군가는 야구나 축구라는 이름조차 모른다. 바라보는 사람은 차근차근 알면서 깨달을 테지만, 안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알 수 없다.


  마음을 이루는 책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먼저 내가 어떠한 길을 걷는 삶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내 삶길을 생각하면서 내 삶길에 걸맞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말글을 다루는 사람은 말글을 다룬 책과 온갖 사전을 곁에 두면서 말글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릴 수 있다.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역사를 다룬 책과 온갖 자료를 옆에 놓으면서 역사를 누구보다 깊이 돌아볼 수 있다. 보고 다시 보며 또 보니, 잘 알고 깊이 알며 넓게 알 수밖에 없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는다. 좋거나 나쁜 책은 없다. 그저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을 뿐이다. 어느 책을 고를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면서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값싼 책을 살 수도 있고 비싼 책을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내 삶을 씩씩하게 걷는 길에 맞는 책’인지 제대로 살펴서 품에 안아야 한다.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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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9) 휴/휴우 2


그물 터놓으면 / 걸렸던 물고기들 / 냅다 도망가며 / 휴우

《함민복-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2009) 31쪽


 휴우

→ 후유

→ 어휴

→ 아휴

 …



  한국말로 적는 한숨 소리는 ‘후유’이지만, 요즈음은 이를 제대로 깨닫는 분이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일본 책과 영화가 아주 많이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점기에서 풀려난 뒤에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식민지 종살이에서 벗어난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아직 일본말 찌꺼기를 잔뜩 붙잡고 삽니다. 잘못된 정치나 비틀린 사회를 바로잡자고 애쓰는 사람들조차 잘못된 일본 말투와 비틀린 번역 말투를 털지 못하기 일쑤일 뿐 아니라, 잘못되거나 비틀린 말마디를 ‘버릇’으로 몸에 붙이기까지 합니다.


  말을 잘 모른다면 배워야 합니다. 아이만 배울 말이 아니라 어른이 함께 배울 말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이 보기글에서 보듯이, 동시나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동시나 동화를 쓰는 어른이 한국말을 올바르게 모르거나 슬기롭게 깨닫지 못한다면 어떤 낱말과 말투로 동시나 동화를 쓸까요?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어른이 교사가 되기까지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게 익히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어떤 낱말과 말투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는 어른이 아이한테 수학이나 영어나 과학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는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 교수는 어린이와 젊은이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아이는 어른이 쓴 책을 읽습니다. 어른이 쓴 책을 읽으면서 그만 낱말과 말투를 배웁니다. 여느 어버이가 슬기롭게 눈빛을 밝혀 이 보기글이 실린 동시집에 나온 말투를 똑바로 고쳐 준다면, 이 어버이한테서 말을 물려받는 아이는 참답고 올바르게 한국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아이를 슬기롭게 이끌 만큼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우는 어른을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말부터 제대로 배워야 다른 것을 제대로 가르칠 텐데요. 4347.11.2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물 터놓으면 / 걸렸던 물고기들 / 냅다 내빼며 / 후유


‘도망(逃亡)가며’는 ‘내빼며’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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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8) 속 42


사람들은 참 대단해 / 어떻게 공기 속에서 숨을 쉬지 // 철퍼덕, 물속으로 들어간 숭어가 / 꼬르르륵, 공중에서 참았던 숨을 쉰다

《함민복-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2009) 17쪽


 공기 속에서 숨을 쉬지

→ 물 바깥에서 숨을 쉬지

→ 공기가 있는 곳에서 숨을 쉬지

→ 공기에 둘러싸여 숨을 쉬지

 …



  어린이가 읽도록 쓴 시에 적은 보기글을 읽습니다. 어린이는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말을 배울 만한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보기글을 잘 살피면, “공기 속에서”라고도 적지만, “공중에서 참았던”이라고도 적습니다. “공기 속”과 “공중”은 같은 말인 셈입니다.


  ‘공기(空氣)’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라 하고, ‘공중(空中)’은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곳”이라 합니다. 이 보기글을 돌아본다면, 물고기가 보기에 사람은 “공기 속에서 살며 숨을 쉰다”고 할 만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다가 펄쩍 뛰어서 물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이때에 “공중으로 떠올랐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다시 들추어 ‘바람’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예부터 ‘바람’이라는 낱말과 ‘하늘’이라는 낱말만 알고 썼지, ‘공기’나 ‘공중’ 같은 한자말은 알지도 못했고 쓰지도 않았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멎습니다. 바람이 고요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나타내거나 가리킬까요? 바람이란 바로 ‘공기’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들어오고, 바람이 샌다고 할 적에도 ‘공기’를 가리킵니다. 바람이 따스하거나 바람이 춥다고 할 적에는, 흐르는 바람뿐 아니라 제자리에 멈춘 바람을 함께 가리킵니다.


 바람에 둘러싸인 사람

 바람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

 공기에 둘러싸인 사람

 공기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


  사람은 “공기 속”에서 살지 않습니다. “공기에 둘러싸여” 삽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산다”고 하지요. 이때에는 물고기가 ‘물이 고인 곳 안쪽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물속’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물이 아닌 뭍에서 우리는 우리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바람 속”이나 “공기 속”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바람 속에 들어가거나 공기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지구에 사는 우리는 “지구 속에 산다”고 하지 않고 “지구에 산다”고 합니다.지구별 땅거죽에서 살기에 “지구에 산다”고 할 만하지만, 땅거죽 밑을 파헤쳐서 안쪽 깊은 데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구별에 삽니다”처럼 말합니다.


  “나는 서울에 살아요”나 “나는 한국에 살아요”처럼 말합니다. “나는 집에 살아요”나 “나는 내 방에서 책을 읽어요”처럼 말합니다. “서울 속에서 산다”나 “집 속에 산다”나 “방 속에서 책을 읽어요”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속’이라는 낱말은 써야 할 곳이 아니라면 아무 데에나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물 바깥에서 숨을 쉬는 사람

 물밖에서 숨을 쉬는 사람


  이 동시를 다시 생각합니다. 글쓴이는 이 동시에서 물고기 눈길로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그러니, 물고기 눈길로 제대로 바라보려 한다면, “공기 속에서 숨을 쉬는 사람”이 아닌 “물 바깥에서 숨을 쉬는 사람”으로 바라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그리고, 이 동시에서 ‘물속’이라는 낱말을 쓰니, 물고기 눈길에서 볼 적에는 ‘물밖’이라는 낱말을 새로 지어서 쓰면 한결 잘 어울리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물속’이라는 낱말은 사람 눈길로 보면서 지은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보는 눈길이라면, “물고기는 물에서 산다”고 해야 옳습니다. 4347.11.2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람들은 참 대단해 / 어떻게 물 바깥에서 숨을 쉬지 // 철퍼덕, 물속으로 들어간 숭어가 / 꼬르르륵, 물밖에서 참았던 숨을 쉰다


“공기 속”은 “물 바깥”이나 “물밖”으로 고쳐씁니다. “공중(空中)에서 참았던 숨”은 “물밖에서 참았던 숨”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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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에고, 짜다 동시야 놀자 7
함민복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45



너는 무엇을 읽어서 알아채니?

― 바닷물 에고 짜다

 함민복 글

 염혜원 그림

 비룡소 펴냄, 2009.5.22.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해가 어디에서 뜨고, 해를 둘러싸는 구름은 하늘을 어떻게 덮는지 바라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어느 만큼 알아차립니다. 해는 지구에서 아주 먼 곳에 있고, 구름은 지구별 둘레에 찰싹 붙은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 눈은 구름과 해가 그리 멀지 않은 듯 바라보며, 구름이 마치 해를 가린다거나, 해가 구름 사이에 숨는다고 여깁니다.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해가 구름에 가리는 일이란 없는 줄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해가 어떻게 타오르는가를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우리가 두 발을 디딘 이 지구별이 어떠한 얼거리인지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알아채면서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읽으면서 살까요?



.. 뻘은 말랑말랑해 / 발자국이 다 남아 / 어디 갔다 왔는지 / 누구와 놀았는지 / 거짓말할 수 없어 ..  (소라 일기장)



  가을이 되어 잎이 집니다. 가을이 되어 새로운 잎이 돋습니다. 겨우내 앙상한 몸으로 지내는 나무는 늦가을까지 모든 잎을 떨굽니다. 겨우내 푸른 몸으로 지내는 나무는 늦가을까지 새로운 잎을 틔웁니다.


  나무를 알려면 나무를 보아야 합니다. 나무를 제대로 알려면 나무한테 다가가서 나뭇줄기를 만지고 나뭇가지를 쓰다듬어야 합니다. 나무를 똑똑히 알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내내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져야 합니다. 나무를 슬기롭게 알려면 날마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잎과 꽃과 열매를 고루 살펴야 합니다. 나무를 사랑스레 알려면 나무씨앗을 받아서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심어서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나무장사를 하는 이는 꽤 있지만, 나무를 알아서 나무를 사고팔지 않습니다. 나무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나무를 잘 알면서 마당이나 텃밭에 건사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그러니까 화가는 나무를 얼마나 잘 알거나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릴까요?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나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나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은 나무와 얼마나 이웃과 동무로 지내면서 글을 쓸까요?



..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 금방 발에 딱 맞는 / 신발 한 켤레가 된다 ..  (지구 신발)



  동이 틉니다. 마을마다 닭 우는 소리가 퍼집니다. 아직 시골마을에는 닭을 치는 집이 있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와 경운기 움직이는 소리가 함께 퍼집니다. 멧새가 이 나무에 앉다가 저 나무로 옮기면서 지저귀는 소리가 나란히 퍼집니다. 겨울 추위를 앞두고도 새는 이곳에서 씩씩하게 삽니다. 참말 새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아주 씩씩합니다. 시골에서는 농약바람을 이기면서 씩씩합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물결을 견디면서 씩씩합니다. 새한테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가 없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힘차게 삶을 꾸립니다. 새는 농약과 시멘트 때문에 먹이가 해마다 줄어들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새끼를 낳아 알뜰살뜰 돌보고 아끼면서 삶을 가꿉니다.



.. 물고기들은 / 물고기들은 // 비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 동그라미가 온다고 하지 않을까 // 봄동그라미 / 소나기동그라미 ..  (비)



  함민복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2009)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에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가 나오고, 바다 둘레에서 먹이를 찾는 여러 목숨이 나옵니다.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이 이 동시집에 나옵니다. 이를테면, “집게야 / 너는 집이 있어 좋겠구나 // 꼭 / 그렇지도 않아요 // 우린 외식도 못하고 / 외박도 못해요(집게).” 같은 동시처럼, 바다살이를 하는 이웃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똥 싼 물 먹고 / 똥 싼 물에서 놀고 / 똥 싼 물에서 자고 / 똥 싼 물에서 산다고 // 흉보지 말아요 // 왜냐고요? // 사람들은 우리를 / 맛있다고 잡아먹잖아요(볼락의 변명)” 같은 이야기가 가만히 흐릅니다.


  《바닷물 에고 짜다》는 함민복 님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바다에서 살거나 바다 둘레에서 먹이를 얻는 여러 목숨과 얽혀 재미나게 ‘말놀이’를 펼칩니다.


  그런데,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는 함민복 님이 함민복 님 삶을 아이들한테 보여주려는 책이 됩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외식이나 외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민복 님이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함민복 님이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집이 있어 좋겠구나” 같은 생각도 함민복 님 생각입니다.


  집게는 집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라 해서 이러한 이름을 사람들이 붙입니다만, 집게가 참말 ‘집’을 달고 다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집게한테는 ‘집’이 아니라 ‘갑옷’일 수 있고 ‘옷’이나 ‘방패’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집게는 ‘집’에서 밥을 차려 먹지 않습니다. 집게는 언제나 ‘바깥’에서 이곳저곳 다니며 먹이를 얻습니다.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바다에서 똥을 누겠지요. 물고기라 해서 똥을 ‘싸’지 않습니다. ‘똥 싸다’는 똥오줌을 아직 못 가리는 아기가 바지에 똥을 누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고기이든 새이든 모두 ‘똥 누다’로 말해야 올바릅니다. 화들짝 놀라서 얼른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면서 똥을 뽀직 누는 새라면, 이때에는 ‘똥 싸다’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나저나, 사람은 어디에 똥을 눌까요? 요즈음 도시사람은 모두 변기에 똥을 누고, 변기에 눈 똥은 냇물로 흘러가고 바다로 스며듭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 똥은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 똥은 냇물과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눈 똥으로 더러워지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 사람이 먹지요. 바다에서 물고기가 눈 똥은 ‘바다에서 사는 작은 목숨’들이 즐겁게 받아먹습니다. 또는 바다밑으로 가라앉아서 ‘바다밑 새로운 흙’이 됩니다.


  더 헤아린다면, 사람은 스스로 눈 똥으로 흙을 살찌워 밥을 얻습니다. 사람이야말로 똥을 먹으면서 산다고 할 만합니다.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는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그림을 잔뜩 넣은 이 동시집은 아이들한테 어떤 꿈과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바다에 사는 이웃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마주하거나 바라보도록 이끌 만한 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함민복 님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알아채거나 배우셨나요. 함민복 님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알아채거나 배운 것 가운데 어떤 이야기를 이 땅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가요.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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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나오는 동시집에는 그림이 퍽 많이 들어간다. 시 하나마다 그림을 하나씩 붙여서 동시집을 내놓지 싶다. 시를 더 깊거나 넓게 살피기를 바라면서 붙이는 그림일 수 있고, 시를 더 가까이 맞아들이기를 바라면서 붙이는 그림일 수 있다. 그러면, 어른시를 묶는 시집에는 왜 이처럼 그림을 넣지 않을까? 왜 그림이 함께 있는 시집은 드물까? 아이들이 읽는 동시집에는 이렇게 그림이 많이 있어야 할까? 시 하나마다 그림을 붙여야 아이들이 시를 읽으면서 한결 즐겁거나 재미있을까? 어느 모로 본다면 동시는 ‘글로 적은 이야기’를 그대로 읽으면 된다고 여기기에, 아이들이 생각을 밝혀서 읽도록 하기보다 ‘글에 나오는 줄거리’를 고스란히 그림으로 그려서 재미있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요즈음에는 아이들이 이것저것 몸소 겪거나 만날 수 없으니, 동시집에 온갖 그림을 잔뜩 넣을 수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 아이들이 몸소 바다에 가서 수많은 ‘바다 이웃’을 만나지 않고, 동시집에 나오는 그림만으로 바다 이웃을 만나도 될까. 아이들이 꽁치를 두 눈으로 보고 나서 그림을 볼 적하고, 아이들이 그림을 먼저 보고 나서 꽁치를 두 눈으로 볼 적을 헤아려 본다. 어느 쪽을 먼저 겪어도 마음을 열어 마주할 수 있으면 깊거나 넓게 살필 텐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이웃’을 마주하도록 풀어놓는지 알 길이 없다. 그나저나 그림이 너무 많은 동시집은 글보다 그림에 먼저 눈이 간다. 글은 마치 그림에 곁달린 듯하기까지 하다. 그림책이 아닌 동시집이라 한다면, 동시집은 좀 다르게 엮어야 하리라 느낀다. 글을 읽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키우거나 넓히도록 이끌면서 그림을 넣어야 하리라 느낀다. 어쩌면, 글이 그리 알차지 못하기에 그림으로 덮는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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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에고, 짜다
함민복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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