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저고리 검정 치마 - 황명걸 시집
황명걸 지음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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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1



예쁜 사람들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황명걸 글

 민음사 펴냄, 2004.11.29.



  제법 굵은 빗줄기가 퍼붓는 가을 낮에 마을 어귀에 서서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두 아이는 빗속이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비 내리는 가을날 나들이인 터라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따라 오지 않는 군내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틀림없이 들어와야 하는 때에 버스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읍내로 나가기로 하는데, 다섯 군데에 전화를 건 끝에 겨우 한 대 부를 수 있습니다.


  군내버스를 타지 못했으니 찻삯이 더 들기도 하지만, 늘 부르는 택시가 아닌 처음 부르는 택시를 탄 터라, 여느 때보다 찻삯이 더 듭니다. 택시삯을 치르고 내리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다른 택시보다 1/3을 더 받은 오늘 탄 택시를 모는 아재는, 이만큼 삯을 받으면 돈을 얼마나 더 모을 만할까요. 오늘 탄 이 택시처럼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택시를 모는 아재는, 이녁 일삯을 다달이 어느 만큼 모을 만할까요.



.. 모처럼 서울 인사동에 출타 나왔다가 시골 수릉리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하고 여류 최영미가 내뱉은 〈지하도에서〉의 촌철살인적 경구의 적절함에 감탄하면서, 우리 산하의 사계를 간판그림처럼 곱게 그린 구리 어느 아파트를 지나면서는, 어지러웠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진다 ..  (歸路辭說)



  고흥 읍내에 튀김닭 파는 집이 꽤 많습니다. 우리 식구는 고흥 읍내 모든 닭집에 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저곳 가 보기는 했는데, 썩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데는 얼마 앞서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깊은 두멧시골에도 튀김닭을 파는 집이 있어서 아이들과 어쩌다 한 번 갈 수 있구나 싶어 ‘고맙다’고 여겼습니다. 맛으로도 값으로도 이냥저냥 당기지 않았어요. 면소재지에는 튀김닭집이 한 군데 있고, 그곳에서는 우리 마을까지 날라다 주기는 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이 매워 아이들이 먹지 못하고, 제대로 튀기지 않아 핏물이 돌기 일쑤이면서, 값까지 비싸서 더는 그곳에서 시키지 않습니다.


  지난달에 ‘닭집 선물권’을 석 장 얻었습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찾아온 손님한테 취재를 받았고, 취재 이야기가 잡지에 실린 뒤, 취재를 받아 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닭집 선물권’을 우리한테 보내 주었습니다. 백화점 선물권도 아니고 구두 선물권도 아니고 ‘닭집 선물권’이라니, 참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닭집이 고흥 같은 시골에도 있나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살피니 읍내에 한 군데 있습니다.


  와, 고흥도 있을 곳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언제 그 닭집에 갈 날을 손꼽았으며, 열흘 앞서 한 번 찾아가서 선물권을 씁니다. 이날 찾아가서 ‘고흥에 터를 잡아 지낸 지 처음’으로 ‘다시 찾아가서 맛나게 먹을 만한 닭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톡 쏘는 쐬주 한 잔에 / 감칠맛 나는 과메기 한 점을 / 생미역에 둘둘 말아 안주 삼는 / 이 한때의 살맛 ..  (과메기)



  가을비 퍼붓는 날에 바가지 택시삯을 물고 읍내 튀김닭집에 가서 느긋하게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두 아이는 배불리 먹고 더 못 먹습니다. 곁님도 넉넉히 먹습니다. 나는 이렁저렁 즐겁게 먹습니다. 이제껏 읍내 다른 가게에서는 두 마리를 시켜야 비로소 아이들이 배불리 먹는데, 이곳에서는 한 마리를 시켜도 배불리 먹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가게마다 무엇이 다를까요. 가게를 꾸리는 일꾼마다 무엇이 다를까요.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 너무 아름다워 흠갈라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황명걸 님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민음사,2004)를 진작 읽었습니다. 시집을 워낙 드물게 내신 할배(이제는 할배이지요)라,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틈틈이 다시 읽었습니다.


  황명걸 님이 열 해 앞서 2004년에 선보인 세 권째 시집에 붙은 이름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열 해 앞서도 빙그레 웃었고, 열 해가 지난 오늘도 빙그레 웃습니다. 나는 이 시집을 ‘이름만 읽으’면서도 황명걸 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환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겉그림과 책 꾸밈새도 시집 이름을 잘 드러내고, 시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살렸습니다. 멋진 시집입니다.



.. 일제 시대 내가 어릴 적 / 작은 장난감 일본도를 가지고 싶어했던 나에게는 / 일 천황 군모 위의 장식 깃털이 꼭 억새를 닮아 멋있어 보였던 / 부끄러운 기억이 있네 ..  (억새)



  예쁜 아이들은 언제나 예쁩니다. 예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어른이 됩니다. 예쁜 어른은 예쁜 아이를 낳습니다. 예쁜 어른은 예쁜 아이를 낳아 예쁜 말을 물려줍니다. 예쁜 어른은 어떤 일을 하든 예쁜 마음으로 예쁜 손길을 펼칩니다.


  그러면, 그러면 말이지요, 안 예쁜 어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가운데 안 예쁜 아기가 있을까요? 아장아장 걷고 옹알이를 하는 아기 가운데 안 예쁜 아기가 있을까요?


  무시무시한 독재와 전쟁과 폭력 따위를 일으킨 이들도 갓 태어났을 적에는 아주 예뻤으리라 생각합니다. 안 예쁠 수 없습니다. 핵무기를 만들고 핵발전소를 세우는 이들조차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까요. 지구를 쥐락펴락 갖고 논다는 재벌 우두머리도 두어 살 꼬맹이였을 적에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까요.



.. 내 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있다 / 내 안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있다 / 이빨을 드러내는 일촉즉발의 대치, 독사의 눈같이 싸늘한 반목 /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얼려 뒹구는 이전투구 / 남북의 팽팽한 긴장, 여야의 치사한 대결이 / 내 안에 있다. 시뻘겋게 살아 있다 ..  (내 안의 사라예보)



  우리는 모두 예쁜 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다 함께 예쁜 이웃입니다. 이 책도 예쁘고 저 책도 예쁩니다. 이 신문도 예쁘고 저 신문도 예쁩니다.


  고흥 읍내에 있는 우체국에 가면, 몇 가지 주간잡지를 여러 권 놓습니다. 가져가서 보고픈 사람은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주간잡지는 한두 달이 가도 안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잘 안 가져갑니다. 나도 이 주간잡지를 안 가져갑니다. ㅈㅈㄷ에서 내는 주간잡지가 아니지만, 이른바 ‘진보’ 쪽에 선다고 하는 이들이 엮는 주간잡지이지만, 읍내 우체국에 들러서 소포를 부친 뒤 살짝 숨을 돌리면서 이 주간잡지를 손에 쥐어 차례를 보고 몸글을 죽 살피는데, 시골사람한테 눈길을 끌 만한 이야기는 한 꼭지도 없습니다.


  시골사람한테 ‘시사’나 ‘논쟁’이나 ‘초점’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시골사람한테는 ‘땅을 가꾸는 이야기’나 ‘들을 돌보는 이야기’나 ‘숲을 사랑하는 이야기’나 ‘풀을 먹는 이야기’쯤 되어야 눈길이 갈 만합니다. 그런데,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책이든, 이런 이야기를 거의 안 다뤄요.


  대통령 아무개를 나무라는 이야기를 열 쪽 스무 쪽 채운들 나라가 달라질까요? 어처구니없는 짓이 늘 터지는 한국 사회이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열 쪽이든 스무 쪽이든 다룰밖에 없기도 할 테지만, 백 쪽 남짓 엮는 잡지 가운데 한두 쪽쯤은 ‘삶을 밝히고 삶을 손수 가꾸며 삶을 기쁨으로 짓는 이야기’를 실을 만하지 않느냐 싶어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주간잡지이든 일간신문이든 시골에서 읽히거나 팔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 하지만 악수하고 싶어라 / 저들의 손 뜨겁게 잡고서 / 저들의 생생한 기를 받고 싶어라 ..  (손에 관하여)



  흰 저고리가 이쁩니다. 검정 치마가 이쁩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사람은 그지없이 이쁩니다. 한겨레 옷이기에 이쁘다기보다, 이쁘니까 이쁩니다.


  가시내는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이쁩니다. 사내는 바지저고리를 입으며 이쁩니다. 그리고, 가시내도 바지와 저고리를 입을 수 있고, 사내고 치마와 저고리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옷차림이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쁜 생각으로 이쁜 손길을 뻗어 이쁜 삶을 일구면 언제나 이쁩니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는 군내버스를 탑니다. 네 살 작은아이는 군내버스에 잠들고,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린 뒤 한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잠든 아이를 가슴에 품어 집으로 걸어서 오는데, 집에 닿으니 작은아이가 눈을 번쩍 뜹니다.


  큰아이도 이랬고 작은아이도 이렇습니다. 아마, 나도 어릴 적에 이랬을 테지요. 아이들도 나도 모두 이쁜 사람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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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96. 밥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받습니다. 내가 손수 지은 밥을 손수 밥상에 올려 기쁘게 수저를 듭니다. 한집에 사는 곁님이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고, 내 어머니나 곁님 어머니가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며, 바깥에서 밥 한 그릇 사다 먹을 적에 다른 사람이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합니다. 어느 때이든 기쁘게 받는 밥 한 그릇입니다.


  아이들은 둘레에서 차린 밥을 받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손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아이더러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라고 이르는 어른은 없습니다. 더욱이, 아이더러 빈 그릇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시키는 어른은 없으며, 아이더러 벼를 베거나 볏섬을 나르라고 시키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가 걸음을 떼고 제법 높은 데까지 손을 뻗을 수 있으면, 들딸기는 손수 조금 훑을 수 있습니다.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손수 따거나, 밭자락 오이쯤 손수 딸 수 있어요. 이무렵에도 아이들은 어른이 딴 열매를 받아서 먹습니다.


  아이들은 칼질을 거들거나 마늘빻기를 거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저를 들며 방긋 웃고 노래하는 목소리로도 밥짓기를 함께 하는구나 싶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콩콩 뛰면서 노는 몸짓과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밥짓기를 거드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베푸는 기운을 받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넌지시 나누는 숨결을 얻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짓는 밥 한 그릇입니다. 함께 찍는 사진 한 장입니다. 함께 이루는 삶입니다.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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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11.17. 큰아이―감아이 노래



  읍내에서 감을 한 꾸러미 장만하기도 했고, 이웃님한테서 감을 한 상자 선물받기도 했는데, 두 아이가 하루에 먹는 감알이 꽤 많다. 나는 하루에 두 알쯤 먹지만, 두 아이는 하루에 열 알쯤 먹는다. 어느 날은 열 알도 더 먹는다. 먹고 먹으며 또 먹어도 자꾸 먹고 싶단다. 참말 감나무를 여럿 두어야 하는구나 싶다. 두 아이가 하도 감을 좋아하며 잘 먹기에, 감알을 노래하는 글을 짤막하게 써 본다. 그런 뒤 큰아이한테 살짝 건넨다. 큰아이는 ‘단감’이라는 이름을 붙인 짤막한 글이 마음에 드는지 곧잘 이 글을 쓰고, 손수 가락까지 입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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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50. 가을볕 아이들 (2014.10.25.)



  두 아이가 가을볕을 듬뿍 받는다. 가을볕을 듬뿍 받는 아이들은 가을아이가 된다. 얼굴도 팔다리도 가을볕으로 그을린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가을아이, 시골아이, 자전거아이였네 하고 새삼스레 바라본다. 자전거순이와 자전거돌이가 나란히 서서 가을볕을 받는 모습은 그지없이 따스하면서 포근해 보인다. 아이들은 햇볕만 받아도 튼튼하다. 어른들도 햇볕을 받을 때에 튼튼하다. 아이들은 햇살을 먹으면서 자란다. 어른들도 햇살을 먹으면서 씩씩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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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25.

 : 우리 들, 이웃 들



- 시골에 살지만, 이 시골에 우리 땅은 없다. 그래서 ‘우리 들’을 누리지 못하고, 가을날 샛노란 들빛을 더 살가이 껴안지 못한다. 자전거를 달리며 ‘이웃 들’ 사이를 누비는데, 이 들이 우리 들이라면, 우리 손길을 타며 자라는 들이라면, 참말 그때에는 어떤 느낌이 될까. 아름답게 물결치는 들이 우리 들이라 한다면, 들내음을 맡으러 날마다 참 오랫동안 들녘에 서리라 느낀다. 나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우리 들’이나 ‘내 들’을 누릴 수 있다면, 서로서로 더욱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오늘날에는 ‘내 아파트’를 누리는 사람은 많아도 ‘내 들’을 누리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 집’이 있는 듯하지만, 정작 ‘내 땅’을 제대로 가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땅바닥에 두 발을 디디지 못하는 하늘에 붕 뜬 시멘트조각을 마치 ‘내 집이나 보금자리’인 듯 가진 셈 아닐까. 우리 집도 그렇지만, 이 나라 어여쁜 이웃들이 저마다 ‘내 땅’과 ‘내 들’을 누릴 수 있다면,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정치도 경제도 아주 크게 달라지면서 아주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믿는다.


- 쓰레기봉투를 마을 어귀에 내려놓느라 두 아이더러 자전거를 붙잡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영차 들어서 내려놓은 뒤 자전거로 돌아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가을볕이 아주 곱다. 자전거를 붙잡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두 아이 모습이 더없이 이쁘다. 이런 모습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붙잡으라 말하지 않았다. 아주 뜻밖에 새삼스러운 빛물결을 느낀다. 빛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 논둑길 한복판에 선 짐차를 본다. 저 짐차는 왜 이 길에 설까. 이 길에 경운기가 지나가려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세웠을까. 어떤 마음으로 논둑길 한복판에 저 혼자 차를 세우고 어디론가 볼일을 보러 갔을까. 외길에 차를 세우고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한참 돌아서 간다.


- 가을들을 옆에 끼고 달리는 군내버스를 구경하려고 자전거를 세운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가끔 만난다. 한두 시간에 한 차례 어쩌다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만나는 일도 여러모로 재미나다. 우리는 서로 어떤 끈으로 이어졌기에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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