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032) 가운데 4


그 전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숱하게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장승 사진을 찍어나가는 가운데 이 말이 몸으로 직접 느꼈다

《육명심-이것은 사진이다》(글씨미디어,2012) 227쪽


 사진을 찍어나가는 가운데

→ 사진을 찍어 나가는 동안

→ 사진을 찍는 사이

→ 사진을 찍으면서

→ 사진을 찍으며 사는 동안

→ 사진을 찍을 적에

 …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가 섞인 ‘中’과 ‘하고 있다’가 얼크러진 ‘가운데’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가운데’만 ‘동안’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더 헤아린다면, 사진을 찍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어떠한 일을 몸으로 깊이 느낀다고 밝히는 만큼, “사진을 찍을 적에”나 “사진을 찍으며 사는 동안”이나 “사진을 한창 찍는 동안”이나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닐 적에”로 손질할 만합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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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숱하게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장승 사진을 찍는 동안 이 말을 몸으로 바로 느꼈다


“그 전(前)에는”은 “예전에는”으로 손보고, “이 말이 몸으로 직접(直接) 느꼈다”는 “이 말을 몸으로 바로 느꼈다”나 “이 말을 몸으로 물씬 느꼈다”나 “이 말을 몸으로 깊이 느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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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91) 존재 191 : 없는 존재


난 여기서도 없는 존재인 거야? 이렇게 된 이상 출산휴가 기간 동안 엄마의 권위를 되찾고야 말겠어

《니노미야 토모코/장혜영 옮김-주먹밥 통신 1》(미우,2014) 33쪽


 없는 존재인 거야?

→ 없는 사람이야?

→ 없는 셈이야?

→ 없는 그림자야?

→ 없는 자리야?

→ 있으나 마나 해?

 …



  틀림없이 이 자리에 있는데 아무도 나를 바라보거나 살피지 않는다면, 나는 마치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있으나 없는 사람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안 보이는 그림자’나 ‘눈에 안 띄는 그림자’라 할 수 있고, ‘없는 자리’나 ‘안 보이는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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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기서도 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된 만큼 출산휴가 동안 엄마 자리를 되찾고야 말겠어


“-인 거야”는 “-야”로 다듬고, “이렇게 된 이상(以上)”은 “이렇게 된 만큼”으로 다듬습니다. “휴가 기간(期間) 동안”은 겹말입니다. “휴가 동안”이나 “휴가에”로 손봅니다. “엄마의 권위(權威)”는 “엄마 자리”로 손질합니다.


..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92) 존재 192 : 신앙 같은 존재


어머님의 인생을 몽땅 나에게 다 걸었다. 나는 어머님의 유일한 희망이고 또한 신앙 같은 존재였다

《육명심-이것은 사진이다》(글씨미디어,2012) 17쪽


 신앙 같은 존재였다

→ 믿음 같은 아들이었다

→ 하느님 같은 아이였다

→ 믿음과 같은 빛이었다

→ 하느님과 같았다

 …



  어머니가 아이 하나만 바라봅니다. 어머니는 아이 하나한테 모든 것을 겁니다. 어머니는 아이 하나만 믿고 기댑니다. 어머니는 아이 하나한테 온갖 꿈을 키우고, 아이 하나한테 온갖 사랑을 베풉니다.


  아이 하나는 어머니한테 빛이 됩니다. 아이 하나는 어머니한테 하느님이 됩니다. 아이 하나는 어머니한테 가없는 믿음이요 그지없는 믿음입니다. 아이 하나는 어머니 삶을 버티는 밑돌이요 밑바탕이며 밑뿌리입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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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녁 삶을 몽땅 나한테 다 걸었다. 나는 어머니한테 하나뿐인 꿈이고 또한 믿음과 같은 빛이었다


나를 낳은 어버이를 가리킬 적에는 ‘-님’으로 적지 않습니다. 나를 낳은 어버이는 ‘어머니·아버지’라고만 적습니다. “어머님의 인생(人生)을”은 “어머니 삶을”이나 “어머니는 이녁 삶을”로 손질합니다. “어머님의 유일(唯一)한 희망(希望)”운 “어머니한테 하나뿐인 꿈”이나 “어머니한테 하나 있는 꿈”이나 “어머니한테 오직 하나뿐인 꿈”으로 손보고, “신앙(信仰) 같은”은 “믿음 같은”이나 “하느님 같은”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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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81] 아끼는 마음

― 풀내음 맡는 이곳에서



  톱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 서는 아이들은 톱질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톱은 아직 저희가 손에 댈 수 없는 줄 알아차리면서 바라봅니다. 그러나 톱을 만지고 싶고, 저희도 톱으로 무엇인가 켜고 싶습니다.


  망치질을 하는 어버이 옆에 서는 아이들은 망치질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망치는 아직 저희한테 무거워 망치질을 시늉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망치를 쥐고 싶으며, 저희도 망치고 무엇인가 박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몸에 맞는 것을 차근차근 찾아서 즐깁니다. 단추꿰기를 익히고, 옷입기를 익힙니다. 손발씻기를 익히고, 설거지를 익힙니다. 작은 심부름을 해내고, 제법 무거운 짐을 함께 나릅니다.


  아이들은 작은 손과 몸으로 작은 일을 거듭니다. 아이한테 커다란 일을 맡기거나 짐을 지우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는 조그마한 일을 살짝 거들 뿐이지만, 어른은 아이가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새롭게 힘을 얻습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돌보고 아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모두 돌보면서 아낍니다. 투박하고 커다란 손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집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살짝 큰 손으로 동생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을 키우는 삶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입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뭇가지를 쓰다듬는 까닭도, 내가 나를 아낄 뿐 아니라 한식구와 이웃과 동무를 모두 아끼려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땅을 내가 가꾸면서 두 발로 씩씩하게 설 때에 마음속에서 새로운 씨앗이 움트는 기운을 느낍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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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쉽게 읽기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가 왜 말썽이 될까? 시골에다가 핵발전소를 짓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느 시골이 아니라 두멧자락에다가 핵발전소를 짓기 때문이다. 전남 고흥 끝자락 바깥나로섬에 ‘우주 발사 (시험) 기지’가 있다. 이곳은 ‘발사 기지’가 아닌 ‘발사 시험 기지’인데, 아무튼, 왜 이런 ‘우주 기지’를 한국에서 전남 고흥에 지었을까? 바로 전남 고흥은 아주 외진 두멧자락이기 때문이다. 큰도시에 거의 피해를 안 힙힐 만큼 외진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흥에서도 가장 외진 바깥나로섬에다가 큼지막한 다리를 둘이나 놓으면서 이런 우주 기지를 지었다.


  속뜻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그만큼 나쁜 시설이라는 뜻이 환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런 건물을 시골에 짓기 때문에 시골이 무너지고, 시골이 무너지면서 도시사람도 ‘깨끗하거나 좋은 먹을거리’를 얻기 어렵다. 시골이 무너지는데 무슨 깨끗한 먹을거리를 얻는가?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요즘 같은 한국 사회에서 도시사람은 ‘가장 나쁘고 지저분한 먹을거리’만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갖가지 위험시설과 위해시설을 죄다 시골로 보내는데, 도시사람이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무농약이니 하는 것을 골라서 사다 먹어서야 되겠는가? 도시사람은 가공식품과 유전자조작식품만 먹어야 할 노릇이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바뀌기 때문이다. 도시사람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모두 어떻게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도시사람은 ‘그냥 작은 송전탑이나 전봇대’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우람한 송전탑과 송전선’이 얼마나 그악스럽고 끔찍한지 몸소 겪어야 한다. 도시사람은 농약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겪어야 한다. 도시사람은 골프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데인지 몸소 알아차려야 한다. 도시사람은 시내 한복판에 쓰레기매립지를 두어서, 도시사람이 버리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고 지저분한가를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도시사람은 고속도로와 기찻길과 공항이 얼마나 소음공해덩어리인지 또렷하게 느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달라진다.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에서 모두 스스로 만드는 얼거리가 되어야 비로소 달라진다. 도시에서 쓸 전기를 시골에 큰 발전소를 지어서 큰 송전탑을 수없이 때려박는 얼거리로만 나아가니, 도시가 안 바뀔 뿐 아니라, 원전마피아가 생긴다. 도시에서 손수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바뀔까? ‘아주 깨끗한 발전소’를 도시에 짓겠지. 또는 집집마다 ‘전기 자급자족 얼거리’를 닦을 수 있겠지. 도시에서 먹을 밥도 도시에서 손수 논밭을 일구고, 도시에서 손수 돼지와 닭과 소를 잡으며, 도시에서 손수 능금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심어서 기르는 얼거리로 바꾸면, 참말 도시가 아주 아름다우면서 멋진 곳으로 거듭나리라.


  내가 쓸 것은 내가 손수 지어서 쓴다는 생각으로 삶을 바꾸어야, 참말 삶이 바뀐다. 삶을 아름답게 누리고 싶다면,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아주 쉬운 말이다.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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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책삶 헤아리기

11. 어떤 길 걸으며 책을 쓰는가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온통 책내음을 맡으면서 책빛을 바라보고 책노래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온통 나무내음을 맡으면서 나무빛을 바라보고 나무노래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갖가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어 입시시험을 치르는 얼거리에 젖어듭니다. ‘학교’라는 이름이 붙는 교육시설은 대학바라기일 뿐이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취업바라기일 뿐입니다. 학교에서는 으레 책으로 공부를 시킨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손수 삶을 짓거나 가꾸거나 일구는 길을 보여주거나 밝히지는 않습니다. 책에 담긴 지식을 더 많이 외워서 시험문제를 더 잘 푸는 길만 보여줍니다.


  오늘날 어른이 된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책읽기’가 아니라 ‘책에 담긴 지식 외우기’만 했습니다. 책을 놓고 즐겁게 삶을 배우는 보람을 누리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보냈기에, 학교를 벗어나면 책을 손에 안 쥐고 싶다고 여길 만합니다.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학교에 있을 때이든 학교에서 벗어난 뒤이든 스스로 즐겁게 책을 사귀어요. 그러니까, 거의 모든 여느 사람들은 책이 짐스럽거나 고단합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보람이나 재미하고는 동떨어진 채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보내야 하거나 대학교까지 쳐서 열여섯 해를 보내야 했으니까요.


  4대강사업을 엄청난 돈을 퍼부어 밀어붙이고 말았습니다. 지난날 이 일을 놓고 아주 훌륭하며 뜻있다고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22조 원이 어쩌느니 하고 나무랍니다만, 이런 일은 앞으로도 다시 되풀이될 듯합니다. 왜냐하면, 대학교를 마치거나 나라밖에서 배우고 온 지식인이나 학자나 벼슬아치(공무원)는 많지만, 정작 숲이나 들이나 멧골이나 시골이나 바닷가에서 지내면서 삶을 누린 지식인이나 학자나 벼슬아치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벼슬아치가 되었어도 언제나 학교 울타리에서만 맴돌았을 뿐, 들일이나 바닷일을 거들면서 학교를 다닌 뒤 벼슬아치가 된 사람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런 몸과 마음인 터라, 삶을 헤아리는 정책을 키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몸과 마음이 아닌 터라, 삶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정책을 펼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어떤 책을 읽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읽든 스스로 삶을 세우지 못했다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 하는 책을 손에 쥐더라도, 아직 삶부터 스스로 튼튼히 세우지 않았으면, 어떤 책이든 부질없거나 덧없기 마련입니다.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삶을 손수 알차게 가꿀 수 있을 때에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생각을 스스로 지어서 삶을 스스로 지을 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때에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책을 읽기 앞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되지 않은 채 손에 책을 쥐기만 하기 때문에, 나중에 학자나 벼슬아치가 되고 나서 바보스럽거나 엉성한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한국 원전 잔혹사》(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보면, “원자력의 경제성에 핵연료 폐기물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원전의 전기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선·송전탑이 번번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170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큰도시 가까이에 안 짓습니다. 원자력발전소는 큰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짓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는 계획은 정부에서 마련합니다. 내로라할 만큼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이들이 계획과 정책을 짭니다. 원자력발전소를 큰도시 가까이에 안 짓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사람들한테 안 좋기 때문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매우 위험한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시골에는 사람이 없을까요? 시골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 이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누가 쓸까요? 시골에서 쓸 일은 없을 테지요? 큰도시에서 전기를 많이 쓰니까, 시골부터 큰도시까지 송전탑을 엄청나게 세워서 송전선을 엄청나게 이어야겠지요? 큰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전기를 걱정없이 쓰지만,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방사능 피해를 입을 뿐 아니라, 송전탑과 송전선 피해까지 받아요.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는 땅에서 살던 사람은 보상금을 조금 받지만, 원자력발전소하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는 사람은 피해가 너무 커서 고향을 등지고 다른 데로 삶터를 옮겨야 해요. 게다가 보상금조차 못 받아요.


  학자나 지식인이나 벼슬아치가 된 사람은 책을 꽤 많이 읽었어요. 그렇지만, 삶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학자나 지식인이나 벼슬아치가 된 탓에 원자력발전소를 함부로 짓고, 게다가 시골에 짓지요. 큰도시에는 피해가 적다지만 시골에는 피해가 큰 짓을 저질러요. 시골사람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골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를 모두 망가뜨려요. 여기에서 더 생각을 이어 봐요. 시골이 망가질 적에 도시도 망가질 수밖에 없어요. 도시에는 논밭이 없어요. 쌀을 비롯한 곡식과 모든 남새와 열매를 시골에서 얻어요. 시골이 망가지면, 쌀뿐 아니라 모든 먹을거리가 다 망가져요. 큰도시에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면서 위해시설이나 위험시설을 시골에 지으면, 겉보기로는 큰도시가 피해를 안 입는 듯하지만 막상 큰도시가 더없이 크게 피해를 입는 셈일 뿐 아니라, 시골까지 덩달아 피해를 입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생각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모든 위해시설과 위험시설은 큰도시에 있어야 해요. 큰도시에서 쓸 모든 전기와 물건은 큰도시에서 손수 만들어서 써야 해요. 왜냐하면, 큰도시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도록 생각을 기울여야 비로소 ‘안전한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수 있어요. 큰도시에 쓰레기소각장과 쓰레기매립지를 짓도록 생각을 기울여야 ‘더럽지 않고 안전한 쓰레기소각장과 쓰레기매립지’를 지을 수 있어요.


  큰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 위험시설과 위해시설을 지으려고 하니 ‘더 안전하지 않게’ 아무렇게나 하고 맙니다. 게다가, 사람이 적은 시골에 위험시설과 위해시설을 지으려고 하니 ‘반대하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큰도시에서는 피해를 모르고, 시골에는 사람이 워낙 적으니,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불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이를 거의 안 다루어요.


  책읽기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거의 다 큰도시에 있습니다. 대학교도 거의 다 큰도시에 있습니다. 모든 지식과 학문은 큰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우리가 읽는 거의 모든 책은 ‘도시에 사는 작가’가 글을 써서 ‘도시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 뒤, ‘도시에 있는 책방’에서 책을 팔아요. 책을 사서 읽는 사람도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요.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짓거나 살피지 않고 책만 읽는다면, 지식이나 정보는 무척 많이 머릿속에 담을 수 있더라도, 막상 삶은 모르기 일쑤입니다. 우리 둘레에 숲이나 들이나 바다가 없다면, 자연도감이나 생태도감이나 환경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4대강사업뿐 아니라 온갖 일이 어떻게 터지고 흐르는가를 제대로 못 짚기 마련입니다.


  어떤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거나 쓰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서 삶을 가꾸면서 책을 읽거나 쓰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려는지 생각하면서 책을 손에 쥐어야 합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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