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28. 2014.11.8. 단호박 톳국



  단호박을 삶고 톳국을 끓인다. 따끈따끈 김이 오르는 단호박을 긴 접시에 담는다. 우리 몸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아침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이 숟가락을 써서 한 조각씩 뜬다. 맨손으로는 뜨거워서 숟가락을 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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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4-11-28 09:15   좋아요 0 | URL
단호박 뜨겁죠 ㅋㅋ 맛있는 밥상이내요!^^

파란놀 2014-11-28 09:3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아직 고구마를 더 좋아하지만,
단호박 맛을 하루하루 즐기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하리라 생각해요~
 


도서정가제가 된 뒤

나한테

'고마워 주는 우수리(thank to)'가

퍽 늘었다.


몇 해 앞서 쓴 느낌글에도 '우수리 선물'을

해 주는 분이 퍽 많다.


나한테 우수리가 와서 고맙기도 한데,

이보다는

'오래도록 사랑받을 만하다고 여긴 책'이

참말 꾸준하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한다고 느낀다.

'책값'이 아니라 '책'을 보려는 사람이

틀림없이 많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주 고마운 이웃님이요 책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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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엄마 2014-11-28 08:47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파란놀 2014-11-28 09: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도서정가제가 되기 앞서와 견주면
저한테 `우수리`를 주시는 분들이
네 곱쯤 늘었습니다.

@.@
저한테 우수리를 주시는 분들은
모두 멋지고 아름다운 이웃님들이라고 느껴요.
참으로 고마운 책동무입니다~

oren 2014-11-28 11:24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어떤 책을 사들일 때, 함께살기 님이 오래 전에 쓴 리뷰를 발견하고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그 글에 땡스투를 한 적이 있었지요.

제 경우에도 비록 적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땡스투 적립금이 부쩍 늘었어요. 특히 11월 중순 이후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저도 좀 어리둥절하더군요. 그걸 가만 살펴 보면 책을 사시는 분들이 꼭 도서정가제 때문에 급작스레 그런 책들을 사들이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꽤 오래 전에 쓴 글에 대해서도 용케 찾아 땡스투 단추까지 눌러 주신 분들의 성의를 생각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군요.

파란놀 2014-11-28 11:38   좋아요 0 | URL
oren님한테 `우수리(땡스투)`가 늘어난다면, oren님이 쓰시는 느낌글은 `시류를 타지 않고 꾸준히 읽을 아름다운 책`을 다루는 느낌글이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그 `꾸준히 아름다운 책`을 바라는 `아름다운 책동무`인 독자들은 `도서정가제가 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도서정가제가 되고 난 뒤, 비로소 차근차근 `스스로 즐겁게 읽을 책`을 장만하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이제부터는, 책읽기나 `책 장만하기`가 이럭저럭 `차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으로 모두 고마운 노릇입니다~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1318 문고 1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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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0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아요

―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미리암 프레슬리 글

 유혜자 옮김

 사계절 펴냄, 1997.3.2.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가 알고 싶다면 아이들과 지내면 됩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지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여 학교로 보낸 뒤, 낮이나 저녁에 다시 아이들을 만나서 공부를 시키다가 저녁에 밥을 먹이고 재우는 나날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복닥이면서 모든 일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아이들이 저마다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어버이는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에 맡깁니다. 아이들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에 그만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채 학교에 맡길 뿐입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가르치지 못하는 오늘날 얼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일구어 물려주지 못하는 오늘날 틀거리입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입시지식을 배웁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물려받을까요? 입시지옥을 물려받습니다.



.. “네 엄마한테는 아주 힘든 고비가 많았어. 그런데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한 거야.” 도대체 그것이 무슨 고비였는지 이모는 내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고통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면 왜 날 그렇게 학대한 거죠?” … 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걸음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그 아저씨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어머니를 한번 생각해 봐요! 평생 아저씨를 씻기고 먹였을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분명히 입맛도 아주 까다로운 아들이었을 거예요.” ..  (15. 25쪽)



  사랑을 가르칠 수 있어야 비로소 ‘학교’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비로소 ‘배움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라는 곳을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을 길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의무교육이 된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을 길들이기만 합니다. 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이 저마다 꿈과 사랑을 물려받아서 키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등과 중등과 고등 모두 입시지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학 교육조차 삶과 등집니다. 대학 교육에서 사랑이나 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시사람만 낳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속품이나 톱니바퀴를 만드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기르는 학교여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합니다. 꿈을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학교여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소시지 한 조각 줄까?” 주인 여자가 물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것을 제일 좋아하지?” 주인 여자가 다시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그냥 아무거나 주지 않는 걸까? 주인 여자가 날 놀리려는 걸까? 소시지를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 기숙사에서는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조심하지 않으면 돈이나 사탕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수채물감이라든가 편지지처럼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없는 물건들도 그렇게 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연필에 각자 표시해 두곤 한다. 또 어떤 것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게 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벳의 인형이나 내 담요 같은 것들이다. 남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뭘 하겠는가 ..  (30∼31, 95쪽)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넣지 않으면 벌금을 물립니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는 학교에서는 몽땅 대학바라기 입시지도만 해요. 시골에서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거나 회사에 보내려고만 해요. 이런 학교에 아이를 안 넣겠다고 하면 법에 따라 벌금을 물려요.


  오늘날 같은 학교는 폭력입니다. 교과서를 척 펼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지 않으면 ‘문제 아이’나 ‘낙오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니, 이런 오늘날 학교는 폭력입니다. 게다가, 얼마 앞서까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두들겨패거나 거친 말로 짓밟았습니다. 참말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돈을 거두는 세무소’ 노릇을 했습니다. 고작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방위성금과 새마을운동과 동원행사 소모품 구실을 했습니다. 웅변대회와 충효작문 따위로 아이들을 꽁꽁 틀어막은 학교입니다. 1970년대까지는 교실마다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고, 1980년대에는 전두환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습니다. 북녘에서 김일성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킨다고 뭐라 할 일이 없습니다. 남녘도 똑같으니까요.


  아이들은 왜 머리카락을 기르면 안 될까요. 어른들은 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회사나 공장을 다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똑같은 옷을 맞춰서 입고 똑같은 신발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똑같은 서양옷을 갖춰 입어야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똑같은 틀에 갇히고, 학교를 마친 뒤 회사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판박이에 소모품밖에 안 되는 사회입니다.



.. 나도 도마뱀이 되어 따뜻한 돌 위에 누워 햇빛을 쬐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더구나 숲 속의 빈 터 같은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모든 것이 싫었다. 방도 기숙사도 싫었고, 특히 엘리자벳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꾹 참아 오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 애는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단지 자기는 부모가 있고 가끔 소포를 받는다는 것 때문에? 나보다 반 뼘쯤 더 크다는 이유 때문에? ..  (116, 143쪽)



  미리암 프레슬리 님이 쓴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사계절,1997)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만 아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모질게 때리기만 할 뿐 ‘한 번’도 사랑한 일이 없어 탁아시설에 온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덤덤히 말합니다. 참말 어머니한테서 사랑받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참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럴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학대만 받았으니, 학대는 알아도 사랑은 모릅니다. 학대만 받았기에 누가 저를 괴롭히려고 하면, 이러한 짓도 ‘학대’인 줄 곧바로 깨닫습니다. 다만, 누가 저를 따순 눈길로 바라보거나 따순 손길을 내밀면 어쩔 줄 모릅니다. 이것이 ‘사랑’인 줄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 “너네 엄마가 너한테 잘해 준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다고?” 레나가 못 믿겠다는 투로 물었다. 그걸 왜 자꾸만 물어 보는 걸까? 나는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아무한테도 잘 대해 주지 않았지. 내 생각에 엄마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로우 이모까지도. 자기 친언니인데도 말이야. 이모한테는 특히 더 못되게 굴었어. 이제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셨던 모양이구나.” … 나는 사감을 바라보았다. 사감이 언제나 기숙사에만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생각났다. 내가 오기 훨씬 전에 이곳에 온 사감은 내가 떠나고 나도 언젠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감은 절대 떠나지 않으리라. 절대로. 해마다 있던 아이들이 떠나고,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이 오지만 사감은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 ..  (160∼161, 183쪽)



  평화를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화를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를 모르니 전쟁무기와 군대를 갖추어서 ‘평화를 지키자’고 바보스러운 말을 내뱉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으로 가는 길이고, 군대도 전쟁으로 가는 길입니다. 더욱이 군대는 독재정치와 맞닿습니다. 지구별 모든 독재정치는 군대를 앞세워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이요, 군대는 독재입니다. 경찰도 군대와 마찬가지예요. 군대와 경찰을 거느리는 나라는 독재로 사람들을 짓밟는 얼거리입니다.


  평등을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등을 모릅니다. 그래서, 평등을 모르니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푸대접을 합니다.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계급과 등급을 짭니다. 돈이 있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있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똑똑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대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할 뿐이고, 슬기로운 사람이 슬기로울 뿐입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꿈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 곧이어 시골길이 나왔다. 창밖으로 들판과 초원이 스쳐 지나갔고, 감자를 캐고 있는 아낙들과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도 보였다. 그렇게 많은 농부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도 전에는 미처 몰랐다 … 제대로 곰곰이 생각을 모으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던 로우 이모의 말은 틀린 말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본 것들은 전혀 모르던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 나는 우어반 사감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로우 이모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통화가 길었다. 우어반 사감은 열심히 듣다가 간간이 웃었다. 로우 이모가 웃을 때 안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침내 통화를 끝낸 우어반 사감이 말햇다. “좋아, 가도 돼. 친구 한 명도 함께 갈 수 있지. 그 친구가 누구인지 내가 한번 맞혀 볼까?” ..  (211, 234쪽)



  걸상이 넓을 때에 함께 앉지 않습니다.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좁은 걸상에도 함께 앉거든요.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아예 걸상을 치우고 땅바닥이나 풀밭에 함께 앉거나 드러눕습니다. 함께 앉기 싫으니 혼자 앉습니다. 함께 앉을 생각이 없으니 아예 걸상을 없애고 모두 서야 하는 얼거리로 만듭니다.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는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 하나를 들려주고, 꿈 하나를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두 사람이 얼마나 즐겁게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좁은 걸상에 함께 앉아요. 좁은 걸상에 함께 앉고 보면, ‘좁은 걸상’이 아니라 ‘그냥 걸상’인 줄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시나브로 ‘함께 누리는 즐거운 사랑’인 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 웃을 때에 즐겁습니다. 함께 즐거울 때에 노래가 흐릅니다. 함께 노래할 적에 오늘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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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1.18. 큰아이―넉 장 그림



  그림순이가 네 식구를 넉 장 그림으로 빚는다. 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본 뒤 한 사람씩 그린다. 노는 동생을 그리고, 생각하는 그림순이를 그리며, 일하는 아버지와, 공부하는 어머니를 차근차근 그린다. 처음에는 네 식구만 그렸는가 했는데, 그림순이는 네 식구를 넣은 그림에다가 뭉개뭉개 피어나는 구름으로 석 장을 이어붙여서 ‘넉 장 그림’을 꾸몄다. 네 사람이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어우러지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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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1.18. 큰아이―빨간머리 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본 큰아이가 종이를 작게 잘라서 앤이랑 다이아나랑 매튜 아저씨랑 마릴라 아주머니를 하나씩 그린다. 만화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만히 떠올리면서 그린다. 그런 뒤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와 모자를 한 칸씩 꼬물꼬물 보고 그린다. 다른 그림을 보고서 따라 그리는 그림은 내키지 않지만, 이렇게 그림놀이를 해 볼 수도 있을 테지.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린다 하더라도 그림순이는 제 그림결을 잃지 않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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