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78) -었었- 1


나는 끝방 양은장수 최씨한테서 얻은 작은 냄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면을 끓여 먹었었다

《책과 인생》(범우사) 1995년 5월호 35쪽


 라면을 끓여 먹었었다

→ 라면을 끓여 먹었다

→ 라면을 끓였다

 …



  한국말사전을 보면 ‘-었었-’을 올림말로 다룹니다. “현재와 비교하여 다르거나 단절되어 있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내는 어미”라고 나옵니다. 이러면서, “작년만 해도 이 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적었었다”와 “농구 선수로 활약한 저 선수는 왕년에 배구 선수이었었다”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이러면서 ‘-었었-’이나 ‘-았었-’을 들고, ‘대과거(大過去)’라 하거나 ‘중과거(重過去)’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에는 ‘-었었-’도 없고, ‘-았었-’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이런 말을 쓸 까닭도 없습니다. 서양말을 배우거나 서양 문법을 배운 사람들이 한국말을 살피면서 ‘한국말 문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그만 서양 문법 틀에 한국말을 끼워맞추었습니다. 이러면서 ‘-었었-’ 꼴을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한국말에는 토씨와 씨끝이 있습니다. 서양말에는 토씨와 씨끝이 없습니다. 한국말에서 그림씨는 ‘방글방글’이나 ‘벙글벙글’이나 ‘방긋방긋’이나 ‘벙긋벙긋’처럼 말끝을 살짝 달리하거나 홀소리를 바꾸면서 느낌을 다르게 나타냅니다. 그러나 서양말은 이렇게 쓰지 못합니다.


  나라마다 말이 다르기에 말법이 다릅니다. 서양 문법에서는 ‘-었었-’과 같은 꼴이 될 대과거이든 중과거이든 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한국말에서는 이렇게 쓸 일이 없었으며, 쓸 까닭이 없었어요.


 작년만 해도 이 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적었었다

→ 지난해만 해도 이 못에는 물고기가 적었다

 농구 선수로 활약한 저 선수는 왕년에 배구 선수이었었다

→ 농구 선수로 뛴 저 선수는 예전에 배구 선수였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지은 탓에 학교에서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 가르치거나 엉터리로 가르칩니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쓰도록 가르치기에 한국말이 자꾸 흔들리거나 어지럽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쓸 노릇입니다. 한국말을 살피는 학자뿐 아니라 한국말을 가르치는 교사는, 한국말로 때매김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제대로 살펴서 올바로 쓰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4337.2.5.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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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방 양은장수 최씨한테서 얻은 작은 냄비로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얼마 전(前)까지”는 “얼마 앞서까지”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72) -었었- 2


언어에 관하여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었다

《今村秀子/오영원 옮김-반달의 노래》(삼화인쇄출판사,1978) 18쪽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었다

→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 이러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었다

 …



  오늘 이곳에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어느 때를 떠올리는 자리라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너를 보았고, 너를 만났으며, 너와 사귀었습니다. 지난 어느 때를 나타내고 싶기에 ‘-었-’을 하나 넣습니다. 말장난을 하려 한다면, 뜻을 힘주어 나타내려 한다면, “들었었었었었어”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처럼 말하듯이,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처럼 쓰려는 말투가 아니라면, ‘-었-’은 꼭 한 차례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4337.11.11.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말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은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은 이러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었다

말을 이렇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이렇게 보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言語)에 관(關)하여”는 “말을 놓고”나 “말을 두고”로 손질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나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나 “이렇게 보는 이야기”나 “이렇게 생각하는 이야기”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50) -었었- 3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사고 없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었다. 모든 사람들이 믿었었다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3쪽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었다

→ 그 일을 보여주었다

→ 그 모습을 말해 주었다

→ 이를 알려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믿었었다

→ 모든 사람들이 믿었다

→ 모든 사람이 믿었다

 …



  ‘-었었-’을 쓴 자리를 볼 때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을 텐데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올바로 못 쓸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엉터리로 가르쳐서 아무렇게나 쓰도록 이끌고 말까요?


  ‘-었었-’을 넣는다고 해서 뜻을 힘주어 나타내지 않습니다. ‘-었었-’을 넣기에 더 먼 지난날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4339.11.26.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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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말썽 없이 이를 말해 주었다. 모든 사람이 믿었다


“아무 사고(事故) 없이”는 “아무 말썽 없이”나 “아무 일 없이”로 손보고, “그 사실(事實)을”은 “그 일을”이나 “그 모습을”이나 “이를”로 손보며, ‘증명(證明)해’는 ‘보여’나 ‘말해’나 ‘알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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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555) -들 3


복음과 신앙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자기네 실천들에서 복음과 신앙을 생활화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

《보프/김수복 옮김-해방신학 입문》(한마당,1987) 22쪽


 자기네 실천들에서 생활화하는

→ 제 삶에서 펼치는

→ 제 삶에서 보여주는

→ 저희 삶에서 누리는

→ 저희 삶에서 나누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 그리스도 신자는

→ 교인은

→ 사람은

 …



  한자말 ‘실천(實踐)’은 “생각한 바를 실제로 행함”을 뜻합니다.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나 서양말에서는 ‘실천’이라는 낱말도 겹셈으로 적을는지 모르나, 한국말에서는 ‘실천’이든 ‘움직임’이든 모두 홑셈으로 적습니다. 그러니까, “하기로 했으면 실천을 해야지”처럼 적을 뿐, “하기로 했으면 실천들을 해야지”처럼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실천이라고 했느냐”처럼 말할 뿐, “그것도 실천들이라고 했느냐”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보기글 뒤쪽에 나오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대로 둘 만합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그리스도 신자”로 적을 수 있고, ‘-들’을 덜어야 한결 매끄럽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라 한다면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입니다. ‘교인’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이야기하는 보기글이니 굳이 ‘교인’으로 안 적고 ‘사람’으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5.22.달/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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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말씀과 믿음에서 새 숨을 받고 날마다 제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펼치는 사람은 가장 어려운 길을 고른다


“복음(福音)과 신앙(信仰)으로부터”는 “복음과 신앙에서”나 “기쁜 말씀과 믿음에서”로 손보고, “영감(靈感)을 얻고”는 “새 숨을 받고”나 “새 넋이 되고”나 “새 기운을 받고”로 손봅니다. “자기(自己)네 실천(實踐)들에서 복음과 신앙을 생활화(生活化)하는 그리스도(Kristos) 신자(信者)”는 “저희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펼치는”이나 “제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누리는”으로 손질합니다. “선택(選擇)하고 있다”는 “고른다”나 “걷는다”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72) -들 4


여름이면 마당 가득 풀들이 우거지고 칡덩굴이며 산머루덩굴이 지붕을 덮어 내렸다. 그 방안에 누워 아주 가끔은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들을 떠올렸고, 그때 혹여 뜨거운 것들이 누선을 타고 흐르기도 했던가

《박남준-나비가 날아간 자리》(광개토,2001) 53쪽


 마당 가득 풀들이 우거지고

→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들

→ 나를 떠나간 이 세상 얼굴

→ 나를 떠나간 세상

→ 나를 떠나간 얼굴

→ 나를 떠나간 이웃 얼굴

→ 나를 떠나간 여러 얼굴

 뜨거운 것들이 누선을 타고

→ 뜨거운 것이 눈물샘을 타고

→ 뜨거운 기운이 눈물샘을 타고

→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



  우거진 ‘풀’은 ‘풀들’이라 하고 지붕을 덮은 ‘칡덩굴’과 ‘산머루덩굴’은 ‘-들’을 안 붙이는군요. 두 자리 모두 ‘-들’ 없이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산과 들에 꽃이 많이 피었다”고 말하지, “산들과 들들에 꽃들이 많이 피었다”처럼 말하지 않아요.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 세상”을 가리킬는지, 아니면 “이웃이나 동무”를 가리킬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느 것을 가리키거나 누구를 가리키는지 또렷이 적어야지 싶습니다.


  ‘눈물’을 “뜨거운 것”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것들이 흐르”지는 않습니다. 눈물이 흐른다고 할 적에는 “눈물이 흐른다”고 할 뿐, “눈물들이 흐른다”고 하지 않아요. 비가 내린다고 할 적에는 “비가 내린다”고 할 뿐, “비들이 내린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자리에나 ‘-들’을 붙인들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4339.12.28.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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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 칡덩굴이며 산머루덩굴이 지붕을 덮어 내렸다. 그 방에 누워 아주 가끔은 나를 떠나간 얼굴을 떠올렸고, 그때 뜨거운 것이 눈물샘을 타고 흐르기도 했던가


“방안에 누워”는 “방에 누워”로 손보고, “세상(世上)의 얼굴”은 “이웃 얼굴”로 손봅니다. ‘혹여(或如)’는 ‘어쩌면’이나 ‘어쩌다가’로 손질하거나 덜어냅니다. ‘누선(淚腺)’은 ‘눈물샘’으로 바로잡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34) -들 5


옆집 할머니 호미질에 게들이 야단이 났어

《도토리 엮음-야 미역 좀 봐》(보리,2004) 8쪽


 게들이 야단이 났어

→ 게가 큰일이 났어

→ 게한테 큰일이 났어

→ 게가 아주 바빠

→ 게가 시끌벅적해

 …



  이 글월에서는 “게들”로 적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게”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찬찬히 헤아려 보면, “게”라고 적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글월은 바닷가에서 할머니‘들’이 갯벌에 나와서 콕콕 뻘흙을 쪼면서 일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옆집 할머니’는 한 분일 수 있어서 ‘할머니’라고만 적었다고 할 수 있으나, 갯벌에서 호미질을 하는 할머니는 여럿 있거나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글로 적으면서 “할머니들이 호미질을 할 적에 게들한테 큰일이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할머니가 호미질을 할 적에 게한테 큰일이 났다”고 할 때에 글흐름이 매끄럽습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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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 호미질에 게한테 큰일이 났어


“야단(惹端)이 났어”는 “큰일이 났어”나 “시끌벅적해”나 “시끄러워”나 “아주 바빠”나 “왁자지껄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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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97
안노 미츠마사 글, 그림 | 송해정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0



작은 사랑도 큰 사랑도 모두 같다

―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안노 미쓰마사 글·그림

 송해정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9.8.10.



  우리 집 큰아이는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아이라서 큰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둘레 어른처럼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어른하고 똑같이 움직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 큰아이는 다섯 살 적부터 ‘어른이 쓰는 큰 젓가락’을 씁니다. 아이 스스로 큰 젓가락을 쓰겠노라 외쳤습니다. 아이를 말릴 수 없으니 큰 젓가락을 쓰라 했고, 아이는 아이한테 아직 무거울 만큼 큰 젓가락을 씩씩하게 놀리면서 손힘과 아귀힘을 늘립니다. 이제 여느 어른 못지않게, 때로는 여느 어른보다 야무지게 젓가락질을 합니다.



.. 옛날 어느 나라에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커다란 것만 좋아하는 임금님은 지붕보다 더 높은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적에 ‘큰 것’을 집기도 하지만, 굳이 큰 것을 안 집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큰 것을 집어 보아도 먹기에 안 좋은 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은 ‘작은 것’을 집어야 집기에도 수월하고 먹기에도 한결 나은 줄 깨닫습니다. 게다가 아주 조금 남은 먹을거리를 둘레에 나누어 줍니다. 한 줌이나 한 조각조차 아닌 조그마한 조각을 나누어 주지요.


  아이들은 주머니에 10원이 있어도 이 쇠돈을 동냥꾼한테 건넵니다. 아주 즐거우면서 씩씩하게 건넵니다. 돈이 크고 적고를 떠나, 이 돈이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건넵니다.


  10원 한 푼은 작다면 작다고 할 테지만, 열 사람 10원이 모이고 백 사람 10원이 모이며 만 사람과 십만 사람 10원이 모이면 안 작습니다. 작은 10원이 모이고 모여서 어마어마하게 큰 숲과 바다를 이룹니다.




.. “그렇게 작은 집게로 이를 뽑는 건 싫어!” 임금님은 더욱더 크게 울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대장장이들이 모여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집게를 만들었습니다 ..  (10쪽)



  안노 미쓰마사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시공주니어,199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곧잘 ‘큰 것’을 노리는 우리 집 큰아이는 이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습니다. 임금님이라는 사람이 큰 것만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조그마한 튤립꽃 한 송이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덤덤합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지나칩니다.


  일곱 살 아이는 큰 것을 노려도 혼자 차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작 이십 킬로그램을 조금 넘는 몸무게로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다든지, 설거지를 거든다든지, 걸레질을 함께 한다든지, 빨래터 물이끼를 막대솔로 걷는다든지, 짐을 나른다든지, 마늘을 빻거나 풀무침을 섞는다든지 …… 온갖 일과 심부름을 하고 싶습니다. 옷가지를 잘 개고, 동생이 옷을 입기 힘들어 하면 양말과 신까지 발에 꿰어 줍니다. 몸뚱이는 작아도 마음은 너르며 고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임금님이라는 사람은, 몸뚱이는 크지만 마음은 조그맣습니다. 좁쌀보다 작고 깨알보다 작으며 풀씨보다 작습니다. 흙알보다 작을 테며, 이웃이나 동무는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 임금님은 또 대단한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정원을 파서 넓은 연못을 만들고, 파낸 흙으로 커다란 화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 임금님은 커다란 낚싯바늘에 커다란 찌를 매단 아주 커다란 낚싯대를 연못에 드리우고, 일주일 내내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  (19∼20쪽)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려 할 적에, 다른 사람은 무엇을 누릴 수 있을까요?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도록 하려고 심부름꾼이 잔뜩 달라붙어야 합니다.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쉬지 못합니다.


  그림책을 보다가 자꾸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4대강사업을 벌인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평화의댐 성금을 모아 가로챈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이며 시골을 와르르 무너뜨린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평화가 아닌 전쟁을 외친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 할 일은 ‘크지’ 않습니다. 큰 일은 안 해도 됩니다. 게다가, 큰 일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손수 밥을 얻고 손수 집을 지으면서 손수 아이를 보살피고 가르치면 됩니다. 세금이란 아예 없이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조그마한’ 마을과 보금자리를 사람들 스스로 이루도록 함께 땀을 흘리면 됩니다.



.. ‘화분이 크니까 틀림없이 아주아주 커다란 튤립이 필 거야.’ 임금님은 이렇게 생각하며 날마다 꽃이 피기를 기다렸습니다 ..  (24쪽)



  작은 사랑이나 큰 사랑은 따로 없습니다. 사랑이면 모두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작으니까 모자라지 않아요. 저 사랑은 크니까 훌륭하지 않아요. 사랑은 모두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두 따스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어린 노래는 모두 즐겁습니다. 사랑이 어린 이야기는 모두 기쁩니다. 사랑이 어린 웃음은 모두 해맑습니다.


  몸뚱이가 작은 아이들 손을 잡고 사랑노래를 불러요. 몸뚱이가 큰 어른들은 이웃을 한껏 아끼고 돌보는 마음을 키워요.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아름다운 숨결이 되도록 이 지구별에서 사랑을 꿈꾸어요.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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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40) 시작 62


“크레펠 부인에게 들었습니다만, 해결사 사무소를 시작한다고.” “이미 영업은 시작했어요.”

《카사이 수이/강동욱 옮김-지젤 알랭 1》(대원씨아이,2011) 48쪽


 사무소를 시작한다고

→ 사무소를 연다고

→ 사무소를 한다고

→ 사무소를 꾸린다고

 이미 영업은 시작했어요

→ 이미 영업은 해요

→ 이미 일은 벌였어요

 …



  가게를 열고 닫습니다. 사무실을 열고 닫습니다. 회사를 열고 닫습니다. 가게나 사무실이나 회사를 열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려고 일터에 갑니다. 일터에 가서 아침에 하루 일을 열고, 저녁에 하루 일을 마무리합니다.


  사무소나 사무실을 처음 열 적에 요즈음에는 ‘개소식’을 한다고 ‘開所式’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쓰는데, 아무래도 한국말로는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귀로 듣기에 낯설거나 얄궂거나 엉뚱하게 들릴 만한 말’은 안 씁니다. 한자를 억지로 붙여서 쓰려고 하니 말느낌이나 말투가 뒤틀립니다. 사무소나 사무실을 처음 열 적에는 ‘처음잔치’나 ‘첫잔치’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해오름잔치’나 ‘해오름맞이’ 같은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해가 오르는 아침을 빗대어 ‘해오름’이라 하거든요. 4347.11.2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크레펠 씨한테서 들었습니다만, 해결사 사무소를 연다고.” “이미 일은 벌였어요.”


“크레펠 부인(夫人)에게”는 “크레펠 씨한테서”나 “크레펠 아주머니한테서”로 손질하고, ‘영업(營業)’은 ‘일’로 손질합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40) 시작 63


“시작할 때 신중하게 불어. 오늘은 그것만 조심해.” 가요코 선생님은 손끝으로 모두의 눈길을 모으고 그 손가락을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가요코 선생님의 손가락 끝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리코더를 불기 시작했다

《후쿠다 다카히로/이경옥 옮김-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다림,2008) 48쪽


 시작할 때 신중하게 불어

→ 처음에 

→ 첫머리에

→ 처음을 열 때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 천천히 흔들었다

 리코더를 불기 시작했다

→ 리코더를 불었다

 …



  일본사람이 아주 자주 쓰는 한자말로 ‘시작’이 있습니다. 일본말에서는 ‘시작’이라는 한자말이 없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일본 어린이문학을 옮긴 이 보기글을 보면, 몇 줄 사이에 ‘시작’이라는 한자말이 세 차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 ‘시작’이라는 한자말은 더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작할 때 신중하게 불기 시작해”, “눈길을 모으기 시작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처럼 세 군데에 더 넣을 수 있어요.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면서 ‘시작’을 쓸 일이 없습니다. 일본사람이 자주 쓰는 한자말 ‘시작’을 제대로 못 옮긴 탓에 이 보기글처럼 세 군데에나 적을 뿐입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처음을 열 때에 잘 불어. 오늘은 여기에만 마음을 써.” 가요코 선생님은 손끝으로 우리 눈길을 모으고 손가락을 천천히 흔든다. 우리들은 가요코 선생님 손가락 끝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리코더를 분다


한자말 ‘신중(愼重)’은 “매우 조심스러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조심(操心)’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씀”을 뜻한다고 합니다. “신중하게 불어”는 “잘 불어”로 다듬고, “그것만 조심해”는 “여기에만 마음을 써”로 다듬습니다. “모두의 눈길”은 “우리 눈길”로 손봅니다. “선생님의 손가락 끝”은 “선생님 손가락 끝”으로 손질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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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284 : 단단히 결심



10년 간이나 유학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자고 단단히 결심하면서 시작한 ‘방랑’이었다

《최광호-사진으로 생활하기》(소동,2008) 169쪽


단단히 결심하면서

→ 결심하면서

→ 단단히 다짐하면서

→ 다짐하면서

→ 마음 단단히 먹으면서

 …



  한자말 ‘결심’은 “마음을 굳게 먹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굳은 결심”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그러나 “굳은 결심” 같은 말마디가 겹말인 줄 느끼거나 깨닫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더군다나 한국말사전까지 “굳은 결심”을 보기글로 올립니다.


 굳은 결심 → 굳은 다짐

 결심이 서다 → 마음이 굳게 서다

 결혼을 결심하다 → 혼인하기로 마음을 굳히다

 집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 집을 짓기로 다짐하였다


  한국말사전을 엮는 학자조차 겹말을 모르니, 여느 사람들은 겹말을 더욱 모른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부터 한국말을 쉽고 바르면서 알맞게 쓰려 한다면 “굳은 결심”이나 “단단한 결심” 같은 겹말을 쓸 일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학자가 한국말사전을 엉터리로 엮더라도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올바로 살피고 슬기롭게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2.11.1.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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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나 나라밖에서 배우며 보고 느낀 것을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보자고 단단히 다짐하면서 한 ‘떠돌기’였다


“10년(十年) 간(間)이나”는 “열 해 동안이나”나 “열 해나”로 다듬고, ‘확인(確認)하자고’는 ‘돌아보자고’나 ‘살펴보자고’로 다듬습니다. ‘시작(始作)한’은 ‘처음 한’이나 ‘처음으로 했던’으로 손질해 봅니다. ‘방랑(放浪)’이나 “느낀 것을”이나 ‘유학(留學)하면서’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떠돌기’나 ‘헤매기’라든지 ‘느낀 여러 가지를’이라든지 “나라밖에서 배우면서”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결심(決心) :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 굳은 결심 / 결심이 서다 / 결혼을 결심하다 / 이곳에 집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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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50 : 들판과 초원



창밖으로 들판과 초원이 스쳐 지나갔고, 감자를 캐고 있는 아낙들과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도 보였다

《미리암 프레슬리/유혜자 옮김-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사계절,1997) 211쪽


 들판과 초원이 스쳐 지나갔고

→ 들판이 스쳐 지나갔고

→ 들과 숲이 스쳐 지나갔고

 …



  한국말은 ‘들’이나 ‘들판’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옮기면 ‘초원(草原)’입니다. 그러니 “들판과 초원”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좀 얄궂지요. 일부러 같은 말을 되풀이하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하나만 적어야 마땅합니다.


  시골을 기차나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면, 들을 지나기도 하고 숲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에서는 아무래도 “들과 숲”으로 고쳐서 적어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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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들과 숲이 스쳐 지나갔고, 감자를 캐는 아낙과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아저씨도 보였다


“감자를 캐고 있는”은 “감자를 캐는”으로 손봅니다. ‘농부(農夫)’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보기글을 보면 한쪽에서는 ‘아낙’이라 적는 만큼, ‘농부’는 ‘아저씨’나 ‘아재’로 손보아야 한결 잘 어울립니다.



초원(草原) : 풀이 나 있는 들판

   - 끝없이 펼쳐진 초원 / 드넓은 초원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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