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477) 기타 등등


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두세 가지의 도구, 작은칼, 도끼, 괭이, 손수레, 기타 등등 그리고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등불, 문방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정성호 옮김-숲속의 생활》(샘터,1987) 30쪽


 손수레, 기타 등등

→ 손수레, 그리고

→ 손수레, 이밖에

→ 손수레, 그밖에

→ 손수레, 여기에 

 …



  한자말 ‘기타(其他)’는 “그 밖의 또 다른 것”을 뜻하고, 한자말 ‘등등(等等)’은 “그 밖의 것을 줄임을 나타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타’이든 ‘등등’이든 “그밖에”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한국말로 ‘그밖에’를 쓰거나 ‘이밖에’를 쓰면 되고, ‘그리고’나 ‘여기에’나 ‘여기에다가’를 쓸 수 있습니다. 4339.1.4.물/4347.1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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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내 지난 삶에 비추어 두세 가지 연장, 작은칼, 도끼, 괭이, 손수레, 이밖에 공부를 하는 사람한테는 등불, 문방구


“나 자신(自身)의 경험(經驗)에 비추어”는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이나 “내가 겪기로는”이나 “내가 살아오는 동안”이나 “내 지난 삶에 비추어”로 다듬어 줍니다. “두세 가지의 도구(道具)”는 “두세 가지 연장”으로 손봅니다.



기타(其他) : 그 밖의 또 다른 것

   - 기타 등등 / 공장 지역의 공해가 기타 지역보다 훨씬 심한 것으로

기타(guitar) : 현악기의 하나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37) 불특정 다수


불특정 다수라는 제3자의 벽을 부수려는 소설의 꿈은 거꾸러지기 일쑤다

《김곰치-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2005) 262쪽


 불특정 다수

→ 낯선 이

→ 모르는 이

→ 얼굴을 모르는 이

→ 알지 못하는 이

→ 알 수 없는 이

→ 숨은 이

→ 아무개

→ 아무

→ 모든 사람

 …



  한자말 ‘불특정(不特定)’은 “특별히 정하지 아니함. ‘임의의’로 순화”를 뜻한다 하고, ‘다수(多數)’는 “수효가 많음”울 뜻한다 하며, ‘임의(任意)’는 “대상이나 장소 따위를 일정하게 정하지 아니함”을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는 “특별히 정하지 않은 많은 수효”나 “일정하게 정하지 않은 많은 수효”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 보기글에 나온 “불특정 다수라는 제3자”라면 ‘대중(大衆)’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킬 사람이 ‘불특정 다수’요 ‘제삼자’가 되리라 느낍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인지 모를 만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낯선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숨은 사람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아무개’입니다. 또는 ‘모든 사람’이나 ‘모두’가 될 수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방화

→ 아무한테나 저지르는 방화

→ 아무 집에나 불을 지르는 짓

 불특정 다수가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누구나 위험하다

→ 누구이든 위험하다고 나타났다

→ 모든 사람이 위험하다고 나타났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를 통해 음성 신호를 방송하는 것

→ 누구한테나 전파로 음성 신호를 보내는 것

→ 아무한테나 전파로 음성 신호를 보내는 것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느냐, 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느냐

→ 모든 사람을 손님으로 삼느냐, 몇몇 사람을 손님으로 삼느냐

→ 누구나 손님으로 삼느냐, 몇몇을 골라 손님으로 삼느냐


  ‘불특정 다수’라는 한자말은 반드시 고쳐써야 할 말마디입니다. 아니, 고쳐쓰고 자시고 할 까닭이 없이, 이런 말마디를 쓸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말에는 ‘아무’와 ‘누구’가 있습니다. 딱히 어느 한 사람이나 어떤 무리를 가리키려 하지 않을 적에는 ‘아무’와 ‘누구’라는 낱말을 씁니다. 때와 곳에 따라 ‘모두’나 ‘모든 사람’이나 ‘온갖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4338.9.24.흙/4347.1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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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라는 울타리를 부수려는 소설쓰기는 거꾸러지기 일쑤이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울을 부수려는 소설쓰기는 거꾸러지기 일쑤이다


‘제삼자(第三者)’는 “일정한 일에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불특정 다수’와 ‘제삼자’는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이지 싶습니다. “불특정 다수라는 제삼자의 벽(壁)”은 “낯선 사람이라는 울타리”나 “아무개라는 울타리”나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울타리”로 손질해 봅니다. “소설의 꿈은”은 “소설을 쓰려는 꿈은”이나 “소설이라는 꿈은”으로 손볼 만한데, 이 보기글에서는 “소설쓰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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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5) 만감이 교차 1


〈오마이뉴스〉에 실린 ‘민관 공동 점검팀’의 기사를 보며 문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율-초록의 공명》(삼인,2005) 146쪽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한 심경

→ 온갖 생각이 엇갈리는 어수선한 마음

→ 숱한 생각이 들며 어지러운 마음

→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섞인 마음

→ 갖가지 생각으로 쓸쓸한 마음

 …


 

  한자말 ‘만감(萬感)’은 “솟아오르는 온갖 느낌”을 가리키고, ‘교차(交叉)’는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다”와 “만감의 교차”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만감의 교차”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로 쉽게 말하면 됩니다. 온갖 생각이 엇갈리니 “온갖 생각이 엇갈린다”고 합니다. 온갖 생각이 들기에 “온갖 생각이 든다”고 하지요. 그대로 바라보고, 꾸밈없이 헤아리며, 고스란히 살핍니다. 4339.1.31.불/4347.1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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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실린 ‘민관 공동 점검팀’ 기사를 보며 말 그대로 온갖 생각이 들며 어지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의 기사를 보며”에서는 ‘-의’만 덜면 됩니다. “문자(文字) 그대로”는 “말 그대로”로 다듬습니다. ‘착잡(錯雜)’은 어수선하거나 뒤섞인 모습을 가리킵니다. ‘심경(心境)’은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고요. 그래서 “착잡한 심경”이란 “어수선한 마음”이나 “어지러운 마음”이나 “뒤섞인 마음”이나 “갈피를 못 잡는 마음”으로 손봅니다. “금(禁)할 수 없습니다”는 “그칠 수 없습니다”나 “안 할 수 없습니다”라든지 “어찌할 수 없습니다”로 풀어내고요.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08) 만감이 교차 2


스산한 바람이 부는 산골짜기 외딴집에 어설픈 남자 하나가 온전히 못한 늙은 어머니를 맞고 있으니, 생각이야 했겠지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전희식-똥꽃》(그물코,2008) 32쪽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 온갖 생각이 들었으리라

→ 이 생각 저 생각 들었을 테지

→ 씁쓸하셨으리라

→ 한숨만 나왔을 테지

 …



  온갖 생각이나 여러 생각은 이렇게도 나고 저렇게도 납니다. 끊임없이 나고 쉴새없이 납니다.


  보기글을 봅니다. 멧골짜기 외딴집에 어설픈 사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신답시고 죽치고 앉았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피붙이 마음이 뒤숭숭했으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딱하거나 안쓰럽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았겠구나 하고 여겼답니다. 속이 쓰리거나 가슴이 시리기도 하며, 한숨만 푹푹 나오면서 씁쓸하게 쳐다보았네 싶기도 했답니다. 4341.3.9.해/4347.1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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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바람이 부는 멧골짜기 외딴집에 어설픈 사내 하나가 제 몸 못 가누는 늙은 어머니를 맞으니, 생각이야 했겠지만 온갖 생각이 들었으리라


‘산(山)골짜기’는 ‘멧골짜기’로 다듬고, ‘남자(男子)’는 ‘사내’로 다듬습니다. “온전(穩全)치 못한”은 “제 몸 못 가누는”으로 손질하고, “맞고 있으니”는 “맞으니”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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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책



  이웃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란, 참 즐거우면서 예쁜 책이로구나 싶어요.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란, 참 기쁘면서 사랑스러운 책이로구나 싶어요.


  예쁜 책은 나 한 권 갖고 이웃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사랑스러운 책은 나 한 권 읽고 동무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예쁜 책이기에 내 책을 이웃한테 빌려줍니다. 사랑스러운 책이기에 내 책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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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30 08:22   좋아요 0 | URL
<윤미네 집>을 요즘 다시 보았는데 괜히 반갑네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보니, 독일에서 동생 결혼식에 딸아기를
데리고 잠시 돌아온 대녀에게 선물하고픈 마음이 마구 듭니다~*^^*

파란놀 2014-11-30 09:57   좋아요 0 | URL
예쁜 책은 오래도록 꾸준하게 사랑받을 테지요?
박정희 할머님이 이제 많이 늙으셨는데
올겨울 따스히 나시기를 마음으로 빕니다
 


 우리 말도 익혀야지

 (252) 혹은 1


사람들은 작은 암선에 의지해서 현해탄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고향 땅을 밟기도 전에 병으로 쓰러지거나, 혹은 해난으로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원폭지옥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조선인피폭자에게는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 또한 구사일생의 길이었던 것이다

《이치바 준코/이제수 옮김-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사,2003) 35쪽


 병으로 쓰러지거나, 혹은 해난으로 죽어간

→ 병으로 쓰러지거나, 또는 해난으로 죽어간

→ 몸져누워 쓰러지거나, 바닷물에 휩쓸려 죽어간

→ 몸져누워 쓰러지거나, 바다에 빠져 죽어간

 …



  보기글에서 ‘혹은’은 군말입니다. 덜면 됩니다. 그리고, ‘또는’이나 ‘아니면’을 넣어서 앞뒷말을 이을 수 있어요. ‘혹은(或-)’은 “(1) 그렇지 아니하면. 또는 그것이 아니라면 (2) 더러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니라면’이나 ‘더러는’ 같은 한국말을 써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아들 혹은 딸

→ 아들 아니면 딸

→ 아들이거나 딸

→ 아들 또는 딸

 방 안의 사람들은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눕기도 하였다

→ 방에 있는 사람들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였다

→ 방에 있는 사람들은 앉거나 누웠다


  ‘혹은’뿐 아니라 ‘혹(或)’이라는 한자말도 곧잘 쓰입니다. ‘혹’은 “= 혹시. 간혹”을 뜻한다고 합니다. ‘혹시(或是)’는 “(1)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2) 어쩌다가 우연히 (3) 짐작대로 어쩌면 (4) 주저할 때 쓰는 말”을 뜻한다 하고, ‘간혹(間或)’은 “어쩌다가 띄엄띄엄”을 뜻한다고 합니다.


  뜻을 살피면 잘 알 수 잇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어쩌다가’나 ‘어쩌면’입니다. ‘드문드문’이나 ‘가끔’이나 ‘자칫’이나 ‘때로’나 ‘때로는’ 같은 낱말도 때와 곳에 따라 쓸 수 있어요. 4337.6.21.달/4347.1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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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작은 배를 타고 현해탄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고향 땅을 밟기 앞서 몸져누워 쓰러지거나, 바다에서 휩쓸려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원폭지옥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조선인피폭자한테는 고향나라로 돌아오는 길 또한 죽음을 무릅쓴 길이었다


‘암선’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에 없는 낱말입니다. “작은 암선(?)에 의지(依支)해서”는 “작은 배에 기대어”나 “작은 배를 타고”로 손봅니다. ‘출발(出發)할’은 ‘떠날’로 손질하고, “밟기도 전(前)에”는 “밟기 앞서”로 손질하며, ‘해난(海難)으로’는 ‘바닷물에 휩쓸려’나 ‘바다에 빠져’로 손질합니다. “원폭지옥 속에서”는 “원폭지옥에서”로 다듬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는 ‘가까스로’로 다듬으며, ‘조국(祖國)’은 ‘고향나라’로 다듬습니다. “구사일생의 길이었던 것이다”는 “죽음을 무릅쓴 길이었다”로 고쳐씁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78) 혹은 2


그렇지만 인종주의자는 외국인이 열등한 인종에 속한다고 스스로 믿거나 혹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도록 한단다

《타하르 벤 젤룬/홍세화 옮김-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상형문자,2004) 30쪽


 스스로 믿거나 혹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 스스로 믿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 스스로 믿거나, 더러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 스스로 믿거나,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 스스로 믿거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



  낱말이나 글월을 이을 적에 이음씨를 넣습니다. ‘혹은’은 이음씨 구실을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은’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린다면 이러한 말마디를 이음씨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사람은 다른 낱말로 제 생각을 드러내어 낱말이나 글월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은 때와 곳에 맞게 씁니다. 어느 한 가지 낱말이 어느 한 자리에서 이것도 뜻하거나 저것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토씨 ‘-의’가 한국 말투가 아닌 까닭은, 이러한 토씨를 붙이면 이 뜻도 저 뜻도 아닌 두루뭉술한 말씨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에 나온 ‘혹은’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더러는’일까요? ‘때로는’일까요? ‘또는’일까요? 아니면 그냥 앞말과 뒷말을 이을 뿐일까요? 어느 쪽인지 뚜렷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는지 똑똑하지 않습니다.


  ‘더러는’이나 ‘때로는’이나 ‘또는’ 같은 말마디는, 바로 이 말마디로 가리키거나 나타내려는 뜻이 또렷합니다. 한국말인지 아닌지를 가리거나, 우리 말투인지 아닌지를 살피자면, 말마디 하나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읽으면 됩니다. 4339.1.9.달/4347.1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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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인종주의자는 외국사람이 덜떨어진다고 스스로 믿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도록 부추긴다


‘외국인(外國人)’은 ‘외국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으로 다듬고, “열등(劣等)한 인종(人種)에 속(屬)한다고”는 “덜떨어지는 사람이라고”나 “덜떨어진다고”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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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알통
서홍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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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6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 어머니 알통

 서홍관 글

 문학동네 펴냄, 2010.3.30.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안고 밤오줌을 누입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엊저녁에 퍽 일찍 곯아떨어졌습니다. 낮잠을 거르고 신나게 뛰놀다가 저녁밥조차 못 먹고 곯아떨어졌습니다. 배고픔과 졸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졸음이 먼저라면서 잠듭니다. 이러다 보니 밤에 쉬를 누러 혼자 일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잠든 지 여섯 시간쯤 지난 뒤 잠자리에서 크게 몸을 뒤척일 때에 귓속말로 살짝 “보라야, 쉬하러 가자. 쉬.” 하고 속삭인 뒤 살포시 안습니다.


  잠든 아이를 그냥 안으면 깜짝 놀라서 으앙 하고 웁니다. 잘 자다가 움직여야 하니까요. 잠든 아이를 안을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느긋하게 몸을 맡깁니다.



.. 입관을 하는데 / 어머니는 뼈만 남은 몸으로 말없이 누워 계시고 / 관에 못질을 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 얼굴을 감싸쥐었다 / 차가워진 어머니의 볼을 내 손으로 따스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  (어머니, 하관하던 날)



  밤오줌을 누이고 나서 다시 아이를 안으면, 아이는 으레 한손으로 내 어깨나 등 언저리를 톡톡 칩니다. 고개를 다시 가누어 폭 기댑니다. 자면서도 할 짓은 다 합니다. 아니, 어쩌면, 밤오줌을 누여 주어 고맙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누러 나오면 오줌그릇이 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줌그릇을 비우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별이 얼마나 돋았는지 헤아리고, 구름이 어느 만큼 있는지 살핍니다. 별빛과 달빛과 구름을 모두 보면서 이튿날 날씨와 바람을 몸으로 가누어 봅니다.



.. 중학교 친구한테서 / 전화가 왔다. //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 영안실을 못 잡았다고, / 너희 병원 영안실은 비어 있느냐고 ..  (영안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큽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꿈을 물려받으면서 새롭게 큽니다.


  아이와 함께 먹을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밥솜씨가 찬찬히 늡니다. 어버이와 함께 밥을 먹는 아이는 수저질이 찬찬히 나아집니다. 아이와 함께 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는 일 매무새가 차츰 늡니다.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지켜보는 아이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큽니다.


  아이 앞에서 할 만한 일을 하자고 다짐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 곁에서 일을 배우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돕고 가르치고 배우고 기대면서 하루하루 삽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 벨기에 방향표시와 국기를 보면서 기뻐하는 앤느가 / 벨기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던가. / 동대문시장에서 / 고운 녹색 한복 한 벌 사서 맞춰입고는 / 빙글빙글 돌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  (앤느)



  서홍관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어머니 알통》(문학동네,201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이 시집을 읽으니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책이름 다섯 글자를 읽습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어머니 알통? 어머니 알통이 뭐야?” 큰아이는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리라 여기면서 조그마한 시집이 궁금합니다. 아버지한테서 조그마한 시집을 건네받은 아이는 시집을 조금 읽다가 어딘가 어려운지 내려놓습니다. 그렇지만 책겉에 적힌 다섯 글자를 네 살 동생한테 가르칩니다. 동생더러 책겉을 보라고 부르면서 한 글자씩 차근차근 짚으면서 읽어 줍니다.



.. 누런 밀밭과 / 키 큰 포플러들이 / 바람 따라 길게 뻗은 시골길. // 버스를 잘못 내려 / 갑자기 걷게 된 / 서양의 작은 마을. / 방울새가 나를 안내한다 ..  (방울새가 없는 풍경)



  어머니 알통은 아이가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씩씩하고 튼튼한 알통을 키워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낳은 아이가 자라면서 알통을 물려받습니다. 새롭게 자라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 새로운 어른이 되고, 새로운 어른이 된 아이는 새삼스럽도록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어머니 알통이란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 사랑이란 어머니 삶입니다. 어머니 삶이란 어머니 노래입니다. 어머니 노래란 어머니 숨결입니다.



.. 고문과 학살과 일인독재의 시대가 / 태평성대였다고 /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니 // 일기장 구석에 이십구 년째 숨어 있던 표어들을 꺼내어 / 광화문 네거리에 / 플래카드로 다시 걸어놓아야겠네. // 국회를 대통령이 맘대로 해산하고 / 국회의원 삼분의 일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 이게 싫다고 말하면 / 고문하고 구타하고, 감옥에 처넣던 시절이 / 그렇게 좋았더냐고 ..  (10월 유신)



  서홍관 님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조곤조곤 노래합니다. 슬프며 바보스러운 사회 얼거리를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시집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바보스럽고 슬픈 독재자를 바라보는 서홍관 님 눈길은, 어쩌면, 이 또한, 어머니 사랑과 같지 않을까 하고.


  어머니한테는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바보스럽고 우악스럽던 독재자조차 ‘누군가한테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아니, 바보스럽고 우악스러운 독재자로 끔찍한 나날을 보낸 그이도 어릴 적에 어머니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어머니 사랑으로 젖을 물었으며, 어머니 사랑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새록새록 되새긴다면 바보짓을 할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가 물려준 사랑’을 한결같이 되돌아본다면 바보짓이 아니라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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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30 08:31   좋아요 0 | URL
어머니 알통이란 제목도 예쁘고 조각보의 고운 빛같은 표지도 예쁘네요~
거기다 함께살기님의 느낌글을 살포시 읽으니 미처 읽기도 전에 즐겁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4-11-30 09:56   좋아요 0 | URL
이 시집을 사 놓고 몇 해째 잊고 지냈더군요 ^^;;
며칠 앞서 집안 책꽂이를 치우다가
비로소 알아보고는
바지런히 읽었습니다 ^^;;

예쁜 마음이 찬찬히 흐르는 노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