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82)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개였던 고민 덩어리가 좀 더 커진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은식-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봄나무,2006) 86쪽


 되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되었다 뿐이다

→ 되었을 뿐이다

→ 되었다 뿐, 더도 덜도 아니다

→ 되었을 뿐, 이도 저도 아니다

 …



  한자말 ‘이상(以上)’은 더 많을 때를 가리키고, ‘이하(以下)’는 더 적을 때를 가리킵니다. 한자말 ‘이상’과 ‘이하’를 쓰고 싶으면 쓸 일이지만, 많으면 ‘많다’ 하면 되고, 넘치면 ‘넘친다’ 하면 되며, 높으면 ‘높다’ 하면 되고, 위이면 ‘위’라 하면 됩니다. 적으면 ‘적다’ 하면 되고, 모자라면 ‘모자라다’ 하면 되며, 낮으면 ‘낮다’ 하고, 아래이면 ‘아래’라 하면 될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크지도 작지도 않다”는 뜻일 테지요. 그러니, 처음부터 이 뜻대로 적어야 알맞고 쉬우며 바릅니다. 때와 곳에 따라 “많지도 적지도 않다”라든지 “높지도 낮지도 않다”라든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더도 덜도 아니다”나 “이도 저도 아니다”로 손질하면 잘 어울리고, 아예 이런 말 저런 말 모두 털어도 됩니다. 4339.7.8.흙/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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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었던 걱정덩어리가 좀더 커진 한 덩어리가 되었다 뿐이다


“두 개(個)였던 고민(苦悶) 덩어리”는 “둘이었던 걱정덩어리”나 “둘이었던 근심덩어리”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799) 애로사항


수련의 4년차인 의국장을 먼저 만나 그쪽 입장도 들어 보고 간호사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거나 항의를 하여 문제를 풀어 나갔다

《안재성-김시자 평전, 부르지 못한 연가》(삶이보이는창,2006) 28쪽


 애로사항을 전달하거나

→ 힘든 대목을 알려주거나

→ 어려움을 말하거나

→ 고쳤으면 하는 얘기를 들려주거나

 …



  한자말 ‘애로(隘路)’는 “(1) 좁고 험한 길 (2) 어떤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가리키고, ‘사항(事項)’은 “일의 항목이나 내용”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좁고 거친 길”을 가리켜 ‘애로’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좁고 거친 길”은 그저 “좁고 거친 길”이라 할 뿐입니다.


  어떤 일을 할 적에 걸림돌(장애)이 된다면 ‘걸림돌’이라 말합니다. 걸림돌이 있다면 어렵거나 힘들다는 뜻이니 ‘어렵다’나 ‘힘들다’라 말하기도 합니다. 어렵거나 힘들다면, 이러한 대목을 바로잡거나 고치기를 바라는 만큼 ‘고쳤으면 하는’ 일이나 ‘바로잡기를 바라는’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그 도로의 남쪽 끝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애로가 되어 

→ 그 길 남쪽 끝은 바윗돌로 이루어져 좁고 거칠어

 애로가 많다

→ 많이 어렵다

→ 많이 힘들다

 덕유산까지 들어가기엔 적잖은 애로가 있었다

→ 덕유산까지 들어가기엔 적잖이 어려웠다

→ 덕유산까지 들어가기엔 적잖이 힘들었다


  ‘힘들다’와 ‘어렵다’를 쓰면 되고, 때와 곳에 따라서는 ‘고단하다’나 ‘고되다’를 쓸 수 있습니다. ‘고칠 대목’이나 ‘바꿀 곳’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웃자리에 있는 이들은 으레 “애로사항이 있으면 건의하라”고 말합니다. 이때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로 고쳐서 말해야지 싶습니다. “일하며 어려운 대목은 말하라”로 고쳐서 말해야지 싶어요. 4341.2.16.흙/4347.1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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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네 해째인 의국장을 먼저 만나 그쪽 생각도 들어 보고 간호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려주거나 따지며 일을 풀어 나갔다


‘4년차(四年次)인’는 ‘네 해 된’이나 ‘네 해째 일하는’이나 ‘네 해째인’으로 손보고, ‘입장(立場)’은 ‘생각’으로 손보며, ‘전달(傳達)하거나’는 ‘알려주거나’로 손봅니다. “항의(抗議)를 하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따지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문제(問題)를 풀어”도 그래도 둘 만하지만 “일을 풀며”나 “말썽을 풀며”로 손질할 만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1) 행복지수가 올라가다


한 가지의 최고만이 아닌 백 가지의 최선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면, 분명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그만큼 올라갈 겁니다

《안재구,안영민-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2003) 48쪽


 행복지수는 그만큼 올라갈 겁니다

→ 그만큼 더 행복해집니다

→ 그만큼 더 즐겁습니다

→ 그만큼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



  ‘지수(指數)’는 “물가나 임금 따위와 같이, 해마다 변화하는 사항을 알기 쉽도록 보이기 위해 어느 해의 수량을 기준으로 잡아 100으로 하고, 그것에 대한 다른 해의 수량을 비율로 나타낸 수치”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행복지수’라 한다면, ‘행복(幸福)’을 그림표로 그려서 숫자로 크기를 나타내는 셈이리라 봅니다.


  아마, 즐거움이나 기쁨도 숫자로 크기를 나타낼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이 보기글은 “한 가지 최고”가 아닌 “백 가지 최선”을 말합니다. 한 가지만 빼어나게 잘하기보다 여러 가지를 골고루 즐길 수 있는 삶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를 골고루 즐기는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글에서 ‘행복지수’와 같은 숫자놀이를 빗대어 말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예나 이제나 우리 겨레는 “빨래하기 좋은 날”이라든지 “집 옮기기 좋은 날”이라든지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라든지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라든지 “김매기 좋은 날”이라든지 “김장하기 좋은 날”처럼 말합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합니다. 즐거우면 즐겁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기쁘면 기쁘다고 말합니다.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가 아니라 ‘한결 즐겁다’입니다. ‘더 기쁘다’입니다. ‘아주 즐겁다’요 ‘매우 기쁘다’입니다. ‘활짝 웃으며 즐겁다’이고 ‘노래를 부르며 기쁘다’입니다. 4339.1.23.달/4347.1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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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잘하지 않고 백 가지가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틀림없이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한 가지의 최고(最高)만이 아닌”은 “한 가지만 잘하지 않고”로 손보고, “백 가지의 최선(最善)이 함께 어우러질”은 “백 가지가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질”로 손봅니다. ‘분명(分明)’은 ‘반드시’나 ‘꼭’이나 ‘틀림없이’로 다듬고, “올라갈 겁니다”는 “올라갑니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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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706) 180도 바뀌다


그러던 중 직관적 의사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마타 윌리엄스/황근화 옮김-당신도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샨티,2007) 18쪽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 내 삶은 확 바뀌었다

→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 내 삶은 놀랍게 바뀌었다

→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



  서양 교육제도와 서양 학문과 서양 수학이 이 나라에 들어오면서 ‘180도’라는 말마디를 씁니다. 이런 서양 말투가 이 나라에 들어오기 앞서 쓴 말을 살피면 ‘확’이나 ‘크게’나 ‘놀랍게’나 ‘송두리째’가 있습니다. ‘180도’ 같은 말마디를 쓰면 쓸수록 한국말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숫자를 빌어 가리키는 말마디가 쓰기 좋다고 여기면서 한국말은 뿌리가 뽑힙니다.


  새로운 말투를 새롭게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좋지도 않습니다. 서양 말투를 받아들여 한국 말투를 ‘번역 말투’로 흔드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나, 한국 말투는 그예 흔들리면서 무너집니다.


  이 보기글을 다시 살핍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사람은 삶이 크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예전까지 꽉 막히거나 고단한 삶이었다면, 이제부터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내 삶은 눈부시게 바뀌었다

 내 삶은 활짝 꽃이 피었다

 내 삶은 새롭게 바뀌었다

 내 삶은 기쁨으로 넘쳤다


  좋거나 반갑구나 싶은 쪽으로 바뀐 삶이라면, 좋거나 반가운 느낌이나 모양새를 고스란히 드러내면 됩니다. 나쁘거나 궂구나 싶은 쪽으로 바뀐 삶이라면, 나쁘거나 궂은 느낌이나 모양새를 낱낱이 드러내면 됩니다. 말에 삶을 담고, 글에 얼을 싣습니다. 4340.3.4.해/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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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마음으로 이야기하기를 알면서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러던 중(中)”은 “그러던 어느 때”나 ‘그러다가’로 다듬고, “직관적(直觀的) 의사 소통(意思疏通)이라는 것”은 “직관으로 이야기하기”나 “마음으로 이야기하기”로 다듬습니다. “알게 되면서”는 “알면서”로 손질하고, ‘인생(人生)’은 ‘삶’으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38) 0%


나는 아이들에게 경쟁이 0%인 놀이를 더 많이 만나게 해 주고 싶다

《편해문-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소나무,2007) 66쪽


 경쟁이 0%인 놀이

→ 경쟁이 없는 놀이

→ 서로 겨루지 않는 놀이

→ 겨루지 않고 즐기는 놀이

 …



  어떤 광고에서 ‘2% 모자라다’라는 말을 내세웠습니다. 1%도 3%도 아닌 2%라는 말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광고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곳에서 ‘2% 모자라다’ 같은 말을 씁니다.


  그런데 ‘2% 모자라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 말마디는 뜻이나 느낌을 제대로 담은 말마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자라다면 ‘모자라다’고 하면 되지, ‘2% 모자라다’는 무엇일까요?


  조금 모자랄 적에는 “조금 모자라다”라 말합니다. 살짝 모자랄 적에는 “살짝 모자라다”라 말합니다. 그냥 “모자라다”라고만 말해도 됩니다. 모자란 모습을 크기나 숫자로 밝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모자라다”고만 할 노릇이고, 앞에 꾸밈말을 알맞게 넣을 일입니다.


 사고율 제로 목표

 사고율 0% 목표


  건설이나 건축이나 공사를 하는 이들은 으레 “사고율 제로”나 “사고율 0%”를 외칩니다. “사고 없는 일터를 목표로!”나 “사고 없는 나라가 목표로!”를 외치지 않습니다. 으레 ‘0%’나 ‘제로(zero)’입니다. 하나도 없거나 바닥이 났을 때에도 ‘없다’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0%’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 요즈음 한국사람입니다.


 경쟁이 깃들지 않는 놀이

 경쟁하지 않는 놀이

 겨루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는 놀이

 겨루지 않고 서로를 감싸는 놀이


  나라에서는 “성장율 0%”를 말하기도 합니다. 왜 ‘0%’ 같은 말마디를 써야 할까요. “성장율 제자리걸음”이나 “성장율 제자리”처럼 말할 줄 모르거나 잊었을까요. 삶을 가꾸고 넋을 가꾸면서 말을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41.6.7.흙/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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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한테 서로 안 겨루는 놀이를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

나는 아이들한테 안 겨루고 즐기는 놀이를 더 많이 물려주고 싶다


‘경쟁(競爭)’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겨룸’이나 ‘서로 겨룸’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만나게 해 주고 싶다” 같은 말마디는 틀리지 않지만, “알려주고 싶다”나 “물려주고 싶다”나 “보여주고 싶다”로 손질해야 말투나 말빛이 제대로 살아나리라 느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78) 100% 1


사진기자는 누구이며 신문 사진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사진을 100% 감상하지 못한 채 막연히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정경열-사진기자 정경열, 사진을 말하다》(조선일보사,2004) 머리말


 100% 감상하지 못한 채

→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한 채

→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 오롯이 살피지 못한 채

→ 낱낱이 돌아보지 못한 채

 …



  오늘날에는 푼수(%)를 써서 일이나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숫자를 따지는 사회이고, 등수나 계급을 가르는 경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푼수로 마음이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100%’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99%나 101%라면 무엇을 가리킬까요? 110%나 90%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렇게 푼수를 써야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한결 잘 나타낸다고 할 만할까요?


  숫자로 쳐서 ‘100%’라 한다면 ‘빈틈없다’는 뜻입니다. 빈틈없다고 한다면 ‘오롯하다’거나 ‘옹글다’는 뜻입니다. 오롯하거나 옹글다면 ‘제대로’ 보거나 느끼거나 살피거나 한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어떤 일을 한다면 ‘낱낱이’ 다룬다는 뜻입니다. 낱낱이 다룰 수 있으면 ‘있는 그대로’, 또는 ‘꾸밈없이’ 마주한다는 뜻입니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글을 마주할 적에 빈틈없이 바라보면서 즐길 수 있다면 ‘모든’ 모습을 샅샅이 본다고 할 만합니다. ‘모두’ 보고 ‘다’ 본다는 소리입니다. 4339.7.6.나무/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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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는 누구이며 신문 사진은 무엇인가 같은 정보가 제대로 없어 사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어떤 것인가에 대(對)한”은 “무엇인가 하는”이나 “무엇인가 같은”으로 다듬습니다. ‘기초적(基礎的)’은 ‘밑바탕’이 될 만한 것을 가리키고, ‘구체적(具體的)’은 ‘깊은 데를 건드릴’ 만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말하는데, 이 글월은 “밑바탕이 되면서 꼼꼼한 정보”로 손질할 수 있을 테지만, “제대로 된 정보”쯤으로 손질하면 한결 잘 어울리지 싶습니다. ‘감상(鑑賞)하지’는 ‘느끼지’나 ‘누리지’나 ‘즐기지’로 손보고, ‘막연(漠然)히’는 ‘어렴풋하게’나 ‘얼렁뚱땅’이나 ‘엉성하게’나 ‘이냥저냥’이나 ‘두루뭉술하게’로 손보며, “평가(評價)하는 경향(傾向)이 있는 게 사실(事實)이다”는 “이야기하곤 한다”나 “바라보곤 한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786) 100% 2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기술에 대해서도 100%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세상이다

《정혜진-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 51쪽


 100% 안전하다고 자신할

→ 늘 안전하다고 믿을

→ 빈틈없이 안전하다고 믿을

→ 하나부터 열까지 안전하다고 말할

→ 언제까지나 안전하다고 내세울

→ 어떤 일이 있어도 안전하다고 할

 …



  ‘100%’를 쓰는 일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사회 흐름에 따라 이런 말투도 나타날 만합니다. 다만, 이렇게 푼수나 숫자를 써서 가리키는 말이 하나둘 늘면서, 때와 곳에 맞추어 우리 느낌을 살짝살짝 다르게 나타내던 말씨가 자꾸 수그러들거나 자취를 감춥니다. 어느 하나를 100으로 쪼개었을 때 “100% 안전하다”고 한다면, “하나부터 백까지 안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전하다”고 하는 셈이기도 하고요.


  이만큼 안전할 적에는 “빈틈없이 안전하다”거나 “물샐 틈 없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어느 곳도 모자람 없이 안전하다면, 앞으로도 “한결같이” 또는 “언제까지나” 또는 “늘” 안전한 셈이겠지요.


  보기글에서는 앞쪽에 “어떤 기술에 대해서도”라 나오니, 요 말을 받아서 뒤쪽에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처럼 적어도 좋습니다. 이렇게 추수르면,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기술을 놓고도 어떤 일이 있어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처럼 새롭게 고쳐쓸 수 있습니다. 4340.12.20.나무/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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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누구도 어떤 기술을 놓고 늘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오늘날이다


“어떤 기술에 대(對)해서도”는 “어떤 기술을 놓고도”나 “어떤 기술을”로 다듬고, ‘자신(自信)할’은 ‘믿을’이나 ‘말할’로 다듬습니다. ‘세상(世上)’은 이 자리에서는 ‘오늘날’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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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반 레인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9
미하엘 보케뮐 지음, 김병화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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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3



그림에 흐르는 빛과 숨결

― 렘브란트 반 레인

 미하엘 보케뮐 글

 김병화 옮김

 마로니에북스 펴냄, 2006.4.25.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는 겨울눈을 맺습니다. 겨우내 조그마한 눈이 추위를 견디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겨울눈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보들보들 싱그러운 잎이 단단하게 뭉친 모습이 참 야무지구나 싶습니다. 언제 찬바람이 그치고 언제 따스한 볕이 드리울까 하고 기다리면서 살짝살짝 바깥을 엿보는구나 싶어요.


  아주 조그마한 씨앗을 곳곳에 퍼뜨리는 들풀은 겨울에도 여러 날 포근한 볕이 드리우면 어느새 싹이 틉니다. 다시 찬바람이 불고 꽁꽁 얼어붙어서 그만 어린 싹이 시들어 죽어도, 풀씨는 겨울에도 곧잘 싹을 틔웁니다.


  나는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겨울눈이랑 풀싹을 눈여겨봅니다. 아니, 내 눈에는 겨울눈과 풀싹이 아주 잘 보입니다. 도시에 나들이를 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에도 언뜻선뜻 스치는 길나무 겨울눈을 알아채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사람들이 손전화를 켜고 수다를 떠느라 시끄러워도, 시내버스 닫힌 창문 바깥에서 흐르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알아채면서 방긋방긋 웃습니다.


  내 숨을 살리는 나무와 풀은 내 동무입니다. 내 넋을 깨우는 나무와 풀은 내 이웃입니다.





.. 렘브란트의 작품은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대략적인 것에서 정확한 것으로, 밑그림에서 완성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또 그 반대도 아니다. 상징과 서사, 인물, 공간적 차원, 빛, 심지어 시간적인 사건과 같은 그림 속에 포함된 모든 것이 관찰하는 현실을 향한다. 요컨대, 이해하는 것 자체가 보는 행위로 바뀌는 것이다 ..  (11쪽)



  아침이 밝으면 언제나 마당으로 내려서서 아이들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 집 나무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을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뒤꼍으로 올라가서 뒤꼍 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나무를 둘러싼 흙을 밟고, 우리 집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을 누리고, 우리 집 나무 우듬지에 앉아 노래하는 멧새를 바라봅니다. 마당과 뒤꼍을 천천히 거닐면서 멧새를 바라보면, 멧새는 우듬지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서로 마주보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습니다.


  날마다 나무를 바라보면, 겨울에도 날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느낍니다. 날마다 나무를 쳐다보면, 여름에도 잎이 날마다 바뀌는 모습을 느낍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놓고 보면, 나무 한 그루는 늘 다른 빛깔이요 모양이며 무늬이고 결입니다. 나무를 그리려 한다면 삼백예순다섯 장을 그릴 만하고, 나무 한 그루를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날마다 한 장씩 그려서 ‘나무도감’으로 묶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아직 이런 도감을 선보이거나 이런 그림을 그린 이는 없지 싶은데, 이렇게 해야 제대로 된 ‘나무도감’이 되리라 느껴요.





.. 이런 초상화들은 모든 측면에서 극도로 정확하고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이 젊은 화가에게 저명인사들의 작품 의뢰가 갈수록 많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완벽한 묘사 때문이었다 … 렘브란트는 그저 의뢰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작품 몇 점을 완성한 뒤, 그는 관례적인 표현 방법을 포기하고, 역사화를 그릴 때 구사했던 방식으로 초상화를 구성했다 ..  (39쪽)



  미하엘 보케뮐 님이 글을 써서 엮은 《렘브란트 반 레인》(마로니에북스,2006)을 읽습니다. 타셴에서 펴낸 멋진 ‘그림 이야기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이라는 분이 지난날 일군 그림에 어떤 넋과 숨과 빛과 사랑과 노래와 꿈이 깃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짚으며 들려주는 책입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에 실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미하엘 보케뮐 님이 붙인 글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이 우리한테 남긴 그림에 서린 이야기는 바로 ‘우리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을 쓴 미하엘 보케뮐 님조차 우리한테 ‘그림읽기’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미하엘 보케뮐 님은 미하엘 보케뮐 님 나름대로 읽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 렘브란트의 작품을 돌이켜 살펴보면 그가 초심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화, 초상화, 몇 안 되는 풍경화까지도 모두 사건이나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라는 것의 성격이 변해 그것 자체가 설명적인 것이 된다 … 멀리서 보면 색채는 얼룩덜룩하고 불분명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편견 없이 바라보면 그것이 순수하고 따뜻한, 내면에서 빛이 비치는 듯한 붉은 색조임을 감지하게 된다 ..  (77, 87쪽)



  그림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삶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노래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글과 책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밥 한 그릇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읽습니다. ‘잘 읽’거나 ‘못 읽’는다는 틀을 가를 수 없습니다. 제대로 읽는다거나 엉터리로 읽는다고 틀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이녁 나름대로 읽습니다. 저마다 읽을 만큼 읽습니다.


  장미나 튤립을 보면서 마냥 ‘이쁘다’ 하고만 읽는 사람이 있고, 장미나 튤립을 어떻게든 집에서 키우려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이 있으며, 어릴 적부터 이쁘게 바라본 장미와 튤립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오늘 마주하는 장미와 튤립이 어떻게 얼마나 이쁜가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땅 풀꽃과 장미랑 튤립을 나란히 놓으면서 서로 어떻게 이쁜가를 헤아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렘브란트 그림이 대단하려면, 렘브란트 그림을 읽는 사람이 대단해야 합니다. 그림읽기를 누리려는 사람 스스로 대단한 눈썰미와 대단한 마음가짐과 대단한 사랑으로 마주해야 비로소 렘브란트 그림이 대단합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렘브란트 그림이든 말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게 뭐야? 종이로구나. 불쏘시개로 쓰면 딱 좋겠네.’ 하고 여기면, 렘브란트 그림이라 하더라도 불쏘시개일 뿐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눈높이 그대로 그림‘값’이 달라집니다.


  아주 훌륭하거나 멋진 책이 있어도, 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훌륭하거나 멋집니다. 잘 팔리는 책이기에 훌륭하거나 멋진 책이 아닙니다. 훌륭히 알아보는 사람 손을 타면서 훌륭한 책이 됩니다. 멋지게 알아차려서 멋진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람 손길을 받을 적에 멋진 책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잘 팔리는 책은 ‘잘 팔리는 책’이 될 뿐입니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책’이 되지요. 사랑스러운 책은 ‘사랑스러운 책’으로 거듭나요.





.. 오로지 감상자가 자신이 가진 감상력과 이성의 힘을 동원해 예술작품이 제공하는 가능성 게임에 참여할 때만 비로소 색채와 형태의 주목할 만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게 하려면 그는 예술작품의 개별적 요소와 전체성 양쪽을 모두 파악해야 하며, 그림이 부여하는 원칙에 따라 그것들을 결합해야 한다 … 렘브란트는 자신만의 화면구성으로 감상자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후기에 그린 〈포목상인조합의 임원들〉에서는 감상자가 장면의 맥락을 이해할 때 그림에 묘사된 과정에 자신이 개입돠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는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림 안에 보이는 것에도 해당한다. 렘브란트의 그림 양식을 통해 감상자는 구성자의 역할을 배정받았다 ..  (90쪽)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꾼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림지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림쟁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우리는 모두 따사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삶을 담아서 내 숨결을 노래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화가’라는 사람만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을 그립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이 그림을 그려서 우리한테 남긴 까닭을 돌아봅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짓고 싶은 꿈으로 그림을 그렸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나는 렘브란트 그림을 왜 읽을까요? 나는 렘브란트 그림을 읽으면서 내 삶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아름답게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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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뜯은 풀꽃이야



  “아버지, 빨래터에 꽃 피었는지 보러 가도 돼요?” 일곱 살 시골순이가 동생을 이끌고 마을 빨래터를 다녀온다. 세 차례쯤 집과 빨래터 사이를 오가던 시골순이가 문득 손을 내민다. “자, 아버지 먹어요. 풀꽃 뜯었어요.” 얘야, 우리는 아무 데에서나 뜯은 풀은 안 먹지. 우리 집만 농약을 안 칠 뿐, 마을 곳곳은 마을 할매와 할배가 엄청나게 농약을 뿌려대어 아예 쳐다보지도 않잖니. 그 아이들은 풀숲에 갖다 놓아 주렴. 우리 집 풀을 뜯어서 먹자.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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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누나 바지 물려입었어



  일곱 살 큰아이한테 이제 작은 꽃무늬바지를 네 살 작은아이가 물려입는다. 큰아이는 꽃무늬바지를 더 입고 싶지만 어쩌는 수 없다. 너한테 작으니 이제 못 입지. 그만큼 네가 무럭무럭 자랐어. 누나가 그동안 입던 어여쁜 꽃무늬바지를 물려입은 작은아이가 함박웃음을 짓고 춤을 춘다 누나 옷을 입어서 참으로 기쁘구나.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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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2-01 08:30   좋아요 0 | URL
참 예쁩니다~12월의 첫 날을
산들보라의 환하고 예쁜 웃음으로 시작하니
참 좋습니다~~*^^*

파란놀 2014-12-01 08:33   좋아요 0 | URL
저도 늘 아이들 웃음을 보면서 하루를 열기에 새롭게 기운이 나요.
appletreeje 님도 appletreeje 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새 기운이 샘솟으실 테지요~~~

후애(厚愛) 2014-12-01 17:59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 많이 자랐네요.^^
참 귀엽습니다!!!!

파란놀 2014-12-01 20:43   좋아요 0 | URL
많이 자라고 날마다 자라는데...
아아... 이 개구쟁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