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1.25. 작은아이―여러 빛깔



  그림순이 곁에 그림돌이가 있다. 그림돌이는 여러 빛깔을 고루 섞어서 그림종이를 가득 채우기를 즐긴다. 작은아이가 바라보는 집과 마을과 숲은 어떤 모습일까. 작은아이가 골고루 섞어서 꾸미고 싶은 빛깔은 어떤 숨결일까. 물끄러미 바라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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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82] 여행길



  눈을 감고 마음자리를 돌아본다.

  눈을 뜨고 마을길을 걷는다.

  다리를 뻗어 지구별을 누빈다.



  어느 여행이든 늘 스스로 나를 돌볼 수 있어야 여행이 되겠지요. 오늘 딛는 걸음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일 테고요. 씨앗을 심듯이 내디딘 걸음마다 새로운 싹이 돋아서 머잖아 활짝 꽃이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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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몸이란


  우리 집 큰아이와 곁님 동생(나한테는 처남)한테 참으로 모질고 끔찍한 일이 터졌다. 이 일을 추스르는 동안 나는 아주 모질면서 끔찍하게 앓는다. 나흘에 걸쳐 밥 한 술과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고, 섣불리 밥 한 술이나 물 한 방울 댔다가 속이 제대로 얹히며, 속에 넣은 밥이 없는데에도 두세 시간에 한 차례씩 물똥을 꽤 누는 나날이었다. 오늘은 똥구멍이 너무 아파서 두세 시간마다 치를 볼일을 겨우 버텨서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에 보기도 했지만, 고되며 힘들기는 참 고되며 힘들다.

  그렇다고, 늘 하던 대로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재우고’ 하던 일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못한다.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이를 악물면서 버티지는 않았다.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견디지는 않았다. 아파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를 온몸으로 느꼈고, 아플 적에 힘겨이 말을 쥐어짜내는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오롯이 깨달았다. 내가 열 살 안팎이던 때이지 싶은데, 똥을 못 가리고 드러누운 할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나와 형과 어머니)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셨다고 떠올린다. 내가 많이 어려서 잘못 떠올릴는지 모른다.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인 만큼 제대로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튼, 몸져누운 할아버지는 말이 아주 드물었고 어쩌다 말문을 열 적에 참으로 부드러웠다. 이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아니, 아픈 할아버지가 어떻게 얼굴도 안 찡그리고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는 틈틈이 몸져누워 끙끙거리다가 아이들을 부른다든지, 밤에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면서,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러웠다. 아마 지난 일곱 해를 돌이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였구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주고받을 목소리요, 이 목소리로 곁님과 다른 이웃 모두를 마주할 삶을 열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나흘이 지나 닷새로 접어들려는 무렵에 살몃살몃 ‘옛 목소리’가 불거지려고 한다. 옛 목소리가 몇 마디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새 목소리’에 눌려서 사라진다. 나 스스로 내 ‘옛 목소리’와 ‘새 목소리’를 느끼면서 빙긋 웃는다. 무엇보다, 요 나흘 사이에 내가 아이한테 들려준 목소리는 바로 내가 ‘열일곱 살’까지 지키던 목소리였다고 불현듯이 알아챈다. 나는 내 ‘마음 시계’를 그동안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멈추어 놓고 살았구나 싶다.

  두세 시간마다 똥구멍이 아프도록 물똥을 눌 적에 ‘내가 아프게 한 이웃’이 누구였을까 하고 마음에 그린다. 자리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펴고 세 가지만 마음에 그렸다. 첫째, 옳게, 둘째, 바르게, 셋째, 아름답게.

  옳게 가고 바르게 가야지, 그런데 아름답게 가야지. 아름답지 않다면 옳지도 바르지도 않아.

  나는 다시 깨어나려고 한다. 몸살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묵은 똥을 내보내어 새로운 몸이 되려고 한다. 헌 몸이 1차원에 있든 2차원에 있든 3차원에 있든 대수롭지 않다. 3차원에 있어도 1차원보다 높지 않다. 3차원에 있는 몸은 곧 1차원으로 떨어지고, 1차원에 있는 몸은 이윽고 3차원으로 올라올 수 있지만, 다시 1차원으로 돌아간다. 4차원을 지나 5차원과 6차원을 그릴 수 없다면, 이리하여 7차원으로 옷을 벗을 수 없다면, 1차원과 2차원과 3차원 사이에서 맴돌이를 하는 몸은 무엇이 될까. 도토리 키재기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 아니라, 깨어나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다.

  내 마음속에 먼먼 옛날부터 깃들어 오래도록 잠든 넋을 깨우려고 비로소 한 꺼풀을 벗는다. 아니, 예전에도 수없이 많은 꺼풀을 벗었으니, 아직 나한테 남은 꺼풀을 한 번 더 벗은 셈이다. 꺼풀은 벗을 만큼 앞으로 더 벗으리라 본다. 그리고, 굳이 꺼풀을 벗기보다 ‘홀가분한 넋과 얼’이 된다면, 어떤 꺼풀을 뒤집어쓴 몸이라 하더라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을 만하리라 느낀다. 아직 내가 걸을 길은 ‘꺼풀 벗기’이니, 꺼풀부터 제대로 벗자고 생각을 모은다.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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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12.14. 큰아이―연필을 깎아서



  글순이가 손수 연필을 깎았다. 이제는 연필깎이를 쓰지 않고 칼로 연필을 깎고 싶은 듯하다. 무척 울퉁불퉁하게 깎았지만, 손에 쥐어 놀리니 제법 쓸 만하다. 그러나 손에 힘을 꽉 쥐고 놀리려 하면 그만 우지끈 하면서 부러지리라. 어릴 적에 이러한 연필을 그만 힘을 주고 놀리다가 부러뜨린 일이 잦아서 나는 이제 연필을 안 부러뜨리고 쓰는데, 큰아이도 연필을 살살 놀리는 길을 차근차근 익히리라 생각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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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앓으며 아이와 나눈 얘기



  “벼리야, 아버지가 아파서 밥도 못 먹어. 이렇게 누워서 쉬어야 해. 그러니 너희가 아버지가 드러누운 방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시끄럽게 뛰지 말고, 전등을 들고 마당으로 가서 마당에서 뛰면서 불놀이를 해.” “아버지 어떻게 아파?” “응, 온몸이 다 아파.” “그래? 아버지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응, 아버지도 곧 나을 테니까 괜찮아. 아버지가 쉴 수 있게 너희가 옆방에서 놀거나 하면 좋겠어.” “알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차리려고 냄비에 불을 올릴 무렵, 곁님이 다가와서 묻는다. 아플 적에 냄새 맡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 서기도 힘들 텐데 억지로 참느냐고 묻는다. 한 마디 대꾸를 하고 싶으나, 대꾸할 힘이 없어서 미처 말을 못 한다. 다만, 냄새를 맡기 힘든지 헤아려 본다. 아니다. 그야말로 끔찍하게 아프니 냄새는커녕 맛이고 뭐고 하나도 안 들어온다. 무엇보다 너무 아픈 탓에 물 한 방울조차 몸에서 안 받는다. 등허리가 몹시 결려 쓰러질 판이지만 참말 억지로 버티면서 밥을 끓였고, 냄새도 맛도 느끼지 않았다. 간은 아예 볼 수 없으니 느낌으로 얼추 맞출 뿐이다. 찬물이 손에 닿을 적마다 온몸이 쩌릿쩌릿 울리면서 뼛속까지 모질게 시렸지만, 곁님도 아픈 사람이니 곁님더러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주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며칠 더 이 몸을 버티거나 견디면서 밥을 잘 차리면 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잠자리에 눕는다. 비로소 두 아이를 눕히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감자씨〉 노래를 부르니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보라는 왜 〈감자씨〉 노래를 부를 적에 ‘감자씨는’이라 안 하고 ‘아저씨는’이라 하고 ‘묵은 감자’라 안 하고 ‘뿌부 감자’라 해?” “응, 이제는 그렇게 안 하는데,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혀가 짧으니까 예전에 그렇게 했어.” “아, 그렇구나.”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못 하는 것도 많으니까 벼리가 많이 도와줘야 해. 그냥 보라한테 다 줘야 하는 것도 있어.” “응. 그런데 벼리는 아기 아냐?” “응. 보라는 볼도 감처럼 탱글탱글해서 감볼이잖아. 그런데 벼리는 아기에서 벗어나서 배가 ‘슈박(수박) 배’가 아니고, 볼도 감볼이 아니야.” “아, 그렇구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까 했더니 잠들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더 깨어 책을 본다느니 뛰논다느니 한다. 허허 웃으며 그대로 둔다. 아이들이 그야말로 더 놀아서 지쳐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제 더 두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낄 무렵 “자, 이제 불을 끈다. 다 눕자. 쉬 할 사람은 더 쉬 하고.” 큰아이가 먼저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동생이 누나를 따라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자리에 눕는 모습을 보고 불을 끈다. 이불깃을 여민다. 1분 뒤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도 이내 곯아떨어진 듯하다. 십 분쯤 지나서 슬쩍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우리 예쁜 아이들 이제 잠들었나?”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돌아눕는다. 이 말, ‘예쁜 아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눈을 감고 기다렸는가 보다. 자, 자, 이제는 더 기다리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파란 거미줄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꿈누리로 날아가렴.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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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냐옹 2014-12-15 23:39   좋아요 0 | URL
어서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파란놀 2014-12-16 06:38   좋아요 0 | URL
네, 번쩍번쩍 하루 만에 다 나을 수도 있을 테지만,
제 성격으로는 천천히 나으면서
`몸이 낫는 결`까지 곰곰이 살피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유디트 님은 튼튼하게 하루를 즐겁게 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