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찬바람에 얼어붙은 갓잎



  갓잎이 눈과 찬바람에 얼어붙는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갓김치를 먹고 싶다면, 우리 집에서 스스로 돋는 갓잎을 신나게 뜯어서 손수 담글 테지. 아버지가 김치를 못 먹는 몸이다 보니 김치를 담글 생각을 안 하고, 김치 냄새조차 안 맡으려 하는구나. 여린 갓잎일 적에는 나물로 으레 먹었는데, 첫겨울 눈과 찬바람에 그만 꽁꽁 얼어붙네. 눈이 녹고 겨울볕이 다시 들면 얼어붙은 잎도 새롭게 기운을 차릴까. 잎사귀가 얼어붙은 갓풀은 꽃대를 올릴 수 있을까. 4347.12.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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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2014년 12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고흥은 올해가 가기 앞서 어젯밤에 1밀리미터쯤 눈이 쌓였네요 ^^


..



시골도서관 풀내음

― 논도랑 반딧불이는 어디로



  태평양과 맞닿은 남녘은 겨울로 접어들어도 제법 포근합니다. 한겨울에도 볕이 여러 날 포근하면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가만히 터뜨립니다. 전라북도나 충청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테고, 경기도나 서울이나 강원도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일일 테지요.


  찬바람이 불면서 논둑이나 빈들에 유채풀과 갓풀이 돋습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어도 무화과나무와 모과나무는 아직 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유자나무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답니다. 일찌감치 익은 노란 알은 십일월 문턱에 따고, 느즈막히 익는 노란 알은 십이월이 되어서야 땁니다.


  날씨가 폭한 곳이니, 서리가 내리는 날에도 까마중은 하얀 꽃을 피우고 까만 열매를 내놓습니다. 주전부리 삼아 찬찬히 훑습니다. 살살 달달한 까마중을 훑는 동안 아이들은 손에 얼어도 씩씩하게 참고 기다립니다. 입에 들어올 맛난 것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내리기도 하고 얼음이 얼기도 하지만, 우리 시골에서는 아직 가늘게 풀벌레 소리를 살몃살몃 듣습니다. 거의 모든 풀벌레가 흙으로 돌아가거나 겨울잠을 자는데,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겨울잠조차 미루는 풀벌레가 있어요. 부전나비와 노랑나비는 십일월 한복판에도 깨어나 팔랑팔랑 날아다닙니다. 겨울 코앞에 새로 돋는 들풀을 살피면, 또 마당 한쪽에서 돋는 갓풀과 괭이밥풀을 살피면, 풀벌레나 애벌레가 야금야금 갉은 자국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벌레일까요. 어떤 벌레는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먹으면서 푸른 숨결을 이을까요.


  씩씩한 ‘겨울벌레’가 있기에, 따스한 남녘 고장에서 텃새로 지내는 멧새와 들새는 바지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얻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차츰 바람이 차갑게 불면서 딱새와 참새가 우리 집 처마로 조용히 찾아와서 가만히 깃듭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제비가 지내던 제비집에 딱새와 참새가 사이좋게 나누어 깃듭니다. 한쪽 둥지에는 딱새 두 마리, 다른 한쪽 둥지에는 참새 두 마리, 이렇게 새로운 이웃이 들어옵니다.


  아침저녁으로 늦가을 들풀을 뜯어서 밥에 얹어 먹습니다. 일찍 해가 떨어지면 깜깜한 하늘에 별이 돋는 모습을 살피다가 슬그머니 마실을 나갑니다. 조용한 들판을 걷습니다. 캄캄한 들길을 걷습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기에 반딧불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텐데, 해가 갈수록 반딧불이 작은 꽁지불은 차츰 사라집니다. 올해에는 고작 두어 마리만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반딧불이는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춥니다. 아마 골짜기에서도 자취를 감추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시골 논도랑이 흙도랑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군청과 도청에서 목돈을 들여 ‘시멘트 들이붓는 토목사업’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시멘트도랑’을 문화사업이나 복지사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제 어느 신문에서나 4대강 사업을 나무랍니다. 한때 4대강 사업을 아주 우러르거나 섬기던 신문과 지식인조차, 이 토목사업 때문에 22조 원에 이르는 나랏돈을 흘려버렸다고 아우성입니다. 돈을 쏟아부어 시멘트를 들이부을 적에는 손뼉을 치면서 부추기더니, 왜 뒤늦게 나무라는 목소리를 내는지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런 짓 때문에 누가 눈먼 돈을 거두어들였고, 누가 밥그릇을 챙겼는지 올바로 따지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식구가 지내는 시골마을에서도 4대강 사업 끄트머리인 ‘시멘트 토목사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을 뒷간 골짜기 바닥을 갑작스레 뒤집어엎으면서 시멘트를 붓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시멘트둑을 쌓습니다. 조그마한 골짜기일 뿐인데 마냥 시멘트를 붓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조그마한 멧길에도 시멘트를 부어서 관광도로를 낸다는데, 이러한 토목사업을 벌써 세 해째 하지만 언제 끝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숲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마시고 논밭에 물을 대는 시골마을에까지 ‘댐에 가둔 물로 수돗물을 잇겠다’는 토목사업을 여러 해째 하는데, 이 토목사업도 언제 끝날는지 모릅니다. 허구한 날 고샅과 큰길을 뒤엎으면서 뭔가 붓고 파내는 일만 되풀이합니다. 해마다 흙도랑이 사라지고 시멘트도랑이 늘 뿐 아니라, 찻길이 더 늘고, 묵은 밭은 바닥을 시멘트로 다지고 쇠기둥을 박아 창고를 세우기 일쑤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정말 자연을 정복한 걸까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리워하잖아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상식에 탐욕에 가려져 온 거예요. 어렵지 않습니다(86쪽).” 같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할 시골 이웃을 그립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논이나 밭을 시멘트로 덮으면 아무 씨앗을 못 심어요. 시멘트 길바닥을 비집고 솟는 들풀이 있지만, 나락도 남새도 시멘트땅에는 심지 못합니다.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면 미꾸라지와 다슬기와 가재와 개구리는 모조리 죽습니다. 게아재비도 물방개도 시멘트덩이 논에서는 삶자리를 못 찾습니다.


  도시로 떠난 어린이와 젊은이를 시골로 다시 부르려면, 시골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면서 가재와 미꾸라지와 냇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반딧불이를 만나고 다슬기를 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아름답게 살자면 서로 흙을 만지고 북돋우면서 풀과 나무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벌나비와 제비와 잠자리와 반딧불이와 사슴벌레와 소쩍새와 뜸부기와 매와 너구리와 멧토끼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골이라면, 참말 너나없이 살고 싶다고 여기리라 생각합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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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138) 정상적 7


므슈 페르는 편지에 쓰인 다음 몇 마디를 고통스럽게 읽었습니다. ‘귀댁의 자제는 정상적인 아이들과 다릅니다. 저희 학교로서는 교육이 불가능한 아동입니다’ …… 집안 식구 모두가, 커다랗게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오! 티쭈는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달라요오!”

《모리스 드리용/배성옥 옮김,최윤경 그림-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민음사,1991) 34쪽


 정상적인 아이들과 다릅니다

→ 정상이 아닙니다

→ 올바르지 않습니다

→ 여느 아이들과 다릅니다

→ 여느 아이와 다릅니다

→ 흔히 보는 아이와 다릅니다

 …



  이 보기글을 보면, 학교에서는 티쭈라는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티쭈라는 아이가 사는 집에서 다른 집안 식구는 “평범한 아이들과 달라요” 하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는 ‘정상적’이라 하고, 집에서는 ‘달라요’라 하는데, ‘평범’이라는 낱말도 씁니다. 한자말인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을 가리키고,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은 ‘평범 → 보통’으로 풀이하고, ‘보통 → 평범’으로 풀이하는군요.


  한국말로 쉽게 생각하면, ‘여느 아이’이거나 ‘수수한 아이’이거나 ‘흔히 보는 아이’입니다. 여느 아이가 아니거나 수수한 아이가 아니거나 흔히 보는 아이가 아니라서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학교에서 말한 셈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를 “정상이 아닙니다” 하고 여긴 꼴이고, “올바르지 않습니다” 하고 윽박지른 셈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정상적’이라는 낱말은 자칫 폭력이 될 만한 낱말이로구나 싶습니다. 4341.5.13.불/4347.12.17.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므슈 페르는 편지에 쓰인 다음 몇 마디를 괴롭게 읽었습니다. ‘이 집 아이는 여느 아이와 다릅니다. 저희 학교로서는 가르칠 수 없는 아이입니다’ … 집안 식구 모두가, 커더랗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와 달라요오! 터쭈는 다른 여느 아이와 달라요오!”


‘고통(苦痛)스럽게’는 ‘괴롭게’로 다듬고, “귀(貴)댁의 자제(子弟)”는 “댁네 아이”나 “아무개 씨 아이”나 “이 집 아이”로 다듬습니다. “교육(敎育)이 불가능(不可能)한 아동(兒童)입니다”는 “가르칠 수 없는 아이입니다”로 손질하고, ‘평범(平凡)한’은 ‘여느’로 손질합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163) 정상적 8


소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정상적 계절 변화에 ‘아, 확 변했군!’ 하며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1년에 꼭 두 번씩은 있었읍니다

《함세웅-삶》(제삼기획,1984) 21쪽


 정상적 계절 변화에

→ 철이 바뀔 적에

→ 철이 바뀌는 모습에

→ 철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 새로운 철에

 …



  보기글 말뜻을 헤아리자면, “정상으로 철이 바뀜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철이 바뀌는 일이 ‘정상적 변화’라는 셈인데, 그러니까 ‘올바르게 바뀐다’, ‘제대로 바뀐다’, ‘저절로 바뀐다’를 가리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쓰신 분은, “정상적으로 어둠이 찾아오는 밤이면”이나 “정상적으로 밝아지는 아침이면”처럼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다시 철이 바뀌자

 때 맞춰 철이 바뀌기에

 새로운 철을 맞이하며


  철이 흐르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철이 알맞게 흐르는 결을 생각합니다. 손수 나무를 심고 숲과 들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철을 몸과 마음으로 나란히 느낄 테고, 철을 몸과 마음으로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철이 흐르는 모습을 느낄 적에 올바르게 이를 나타내리라 봅니다. 4341.5.28.물/4347.12.17.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소신학생 때입니다. 철이 바뀔 적에 ‘아, 확 바뀌었군!’ 하며 새삼스럽게 느끼는 때가 한 해에 꼭 두 번씩은 있었습니다


“소신학생 때의 일입니다”는 “소신학생 때 일입니다”로 손질합니다. ‘계절(季節)’은 ‘철’로 고치고, ‘변화(變化)’는 ‘바뀜’으로 고칩니다. ‘변(變)했군’은 ‘바뀌었군’으로 손보고, “느껴지는 경우(境遇)가”는 “느껴지는 때가”로 손봅니다. ‘1년(一年)’은 ‘한 해’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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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요다 2014-12-17 09:14   좋아요 0 | URL
우리말이 훨씬 아름답네요.

파란놀 2014-12-17 11:50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한국말을 알아보아 주시는 눈길이 고맙습니다~~
 

김치와 책읽기



  모든 먹을거리가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맞을 수 없다. 눈으로 보기에 내키지 않아서 안 먹는다기보다, 몸에서 안 받아들이기에 안 먹는 것이 있다. 밀가루가 안 받는 사람이 있고, 달걀이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며, 쌀이 안 받는 사람이 있고, 소젖이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며, 절이거나 삭인 것이 안 받는 사람이 있다. 일본 한자말인 ‘국민’을 빌어 ‘국민 음식’이라고 내세울 먹을거리는 처음부터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느 먹을거리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면, 이녁은 ‘한국사람이 아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쌀밥이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한국사람 가운데 김치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꽤 있다. 오늘날처럼 ‘빨간 김치’ 모양으로 사람들이 김치를 먹은 햇수는 기껏 백 해쯤 된다. 더 찬찬히 살피면 백 해조차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미치면서 ‘빨간 김치’가 마치 ‘한겨레 옛 먹을거리’라도 되는 양 떠들지만,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기에 이런 바보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는데, 시골에서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서 지낼 적에는 ‘고추밭’을 넓게 두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고추밭이 넓어진 지도 얼마 안 되었다. 한겨레가 두루 고추를 쓴 햇수부터 참으로 짧다.


  지난날 시골에는 아이도 많고 소나 돼지나 염소도 치기 마련인데, 사람이 먹을 곡식과 풀과 열매뿐 아니라 짐승이 먹을 곡식과 풀과 열매도 드물다. 이런 지난날 시골에서 ‘고추’를 얼마나 심었을까? ‘사람 많’고 ‘지을 땅은 좁’은데 고추를 얼마나 심어서 ‘빨간 김치’를 먹으려 했을까?


  배추가 중국에서 들어온 햇수도 참으로 짧다. 배추에 앞서 유채가 먼저 들어왔고. 유채에 앞서 갓이 차츰 퍼지듯이 들어왔다. 어쩌면 갓은 저절로 자랐을 수 있고, 중국을 떠난 배를 거쳐서 남녘(전라남도·경상남도)에 있는 섬으로 퍼져서 자랐을 수 있다.


  김치를 담갔다 하더라도 모든 옛사람이 김치를 먹었을까?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지난날에도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먹되, 못 먹는 사람은 못 먹는다. 어떤 사람은 풀밥만 먹고 살았을 테고, 어떤 사람은 무밥만 먹고 살았을 테지. 나중에 감자와 고구마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니, 어떤 사람은 감자밥이나 고구마밥만 먹고 살았을 수 있다. 콩밥은 참으로 오랫동안 먹었을 테고.


  아이한테 김치를 먹이고 싶다면, 이는 오직 ‘어버이 생각’이다. 아이가 김치를 받아들일 수 있고, 못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받아들인다면 먹여도 되고, 아이가 못 받아들인다면 억지로 먹이지 말아야 한다. 어른으로서 이녁 몸을 생각해 보라. 어른인 이녁이 ‘못 먹는 밥’이 있을 적에 누군가 옆에서 억지로 숟가락으로 떠먹인다면 어떠한가? 어른은 이녁은 ‘못 먹는 밥’이 하나도 없더라도, 이녁이 낳은 아이는 이녁과 다르다.


  몸에서 안 받아들이는 김치를 어버이가 억지로 먹이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배앓이를 하면서 억지로 삼킨다. 먹지 않고 ‘삼킨’다. 나는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김치를 억지로 ‘삼키’면서 살았다. 국민학생 적에는 뛰놀면서 괴로움을 잊었지만, 중·고등학생 적에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그야말로 죽는 줄 알았다. 아이가 받는 짜증과 괴로움을 어떻게 하려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김치 먹이기 억지’를 부리려 할까?


  아이한테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 하면서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따위를 들먹거리는 짓은 더 나쁘다. 전통 음식이면 다 먹어야 하나? 아니다. 먹을 수 있는 밥을 먹어야지 ‘전통 음식’이거나 ‘한국 음식’이기 때문에 먹어야 하지 않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이기에 다 읽히나? 아니다. 읽을 만하거나 읽힐 만한 책을 읽거나 읽힐 뿐이다.


  한국은 ‘김치’를 외칠 까닭도 없고, ‘김치’를 자랑할 구석도 없다. 발자국이 짧기에 자랑할 구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밥은, 삶을 즐겁게 누리려고 먹을 뿐이지, 무엇을 대표하거나 바깥으로 뽐내거나 문화나 전통이나 역사를 만들려고 먹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우악스러운가. ‘한국 전통 음식’이 몸에 안 받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는가? 서울 한복판부터 전남 고흥 시골마을까지 다 다른 사람이 사는데, 다 다른 사람이 ‘모두 똑같은 밥’을 먹어야 할 까닭이 없다. 4347.12.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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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3
히구라시 키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3



서로 아끼면서 사는 길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3

 히구라시 키노코 글·그림

 최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4.11.30.



  서로 아낄 적에 언제나 느긋하고 너그럽습니다. 서로 아끼는 동무나 이웃하고 잠자리에 들면 아주 포근하게 꿈나라로 갑니다. 이와 달리, 서로 툭탁거리거나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들볶는 사람과 잠자리에 들면 몹시 거북할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마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리라 봅니다.


  평화롭게 삶을 가꾸면 늘 평화롭습니다. 평화로울 적에는 잠자리에 총이나 칼이나 몽둥이를 놓아야 하지 않습니다. 보안장치를 할 까닭도 없고, 불침번을 세울 일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안 평화로운 삶이 되면, 잠자리에 총이나 칼이나 몽둥이를 놓아도 두렵습니다.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합니다. 보안장치를 해도 걱정이요, 불침번을 세워도 잠을 못 이룹니다.




- ‘집에서 빈둥빈둥 술 마시는 슈이치는, 일요일의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 그런데, 옛날의 나는 어땠지? 옛날에 우리는?’ (11, 14쪽)

- “뭐 어때. 가끔은 택시도 타는 거지.” (21쪽)

- ‘아무 날도 아닌데 술 마시러 가거나, 가까운 거리를 택시로 가거나, 이런 건 분명히 쓸데없는 일이 아니야.’ (22쪽)



  지구별 어느 나라에서도 똑같은데, 군대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대는 언제나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군대는 언제나 평화를 짓밟거나 깔아뭉갭니다. 군대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합니다. 군대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잔뜩 뿔난 모습이기 마련이요, 작은 일에도 툭탁거리면서 ‘이웃사랑’이 아닌 ‘다툼(경쟁)’만 불꽃이 튑니다.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가 무엇이고 전쟁은 어떠한지를 놓고 찬찬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를 찾는 길과 전쟁을 몰아낼 길을 곰곰이 생각해서 이를 우리 삶으로 녹일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는 입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전쟁무기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부릅니다. 나 스스로 평화로운 마음이 되어 평화로운 넋으로 평화로운 생각을 빛낼 때에, 비로소 평화로운 삶입니다.


  전쟁이 왜 자꾸 터질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니까 전쟁이 터집니다. 교통사고가 왜 생길까요? 자동차를 늘리기만 하고, 찻길을 넓히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줄이고 찻길도 줄이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느긋하게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즐길 수 있도록 하면 교통사고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될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을 즐기자.’ (43쪽)

- ‘패셔니스타에 쇼핑을 좋아하는 리츠코도 사랑하니까, 오히려 내가 등 떠밀 때도 있잖아. 그런 면이 어쩌면 내가 ‘반했던 부분’일지 모르는데.’ (77쪽)

- ‘돈 쓰는 방법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가치관은 비슷하다. 그래서 분명히 10년을 사귈 수 있었나 보다.’( 72∼73쪽)



  히구라시 키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재미있게 읽습니다. 첫째 권이나 둘째 권과는 사뭇 다르게 재미있고, 첫째 권과 둘째 권에 이어 생각을 찬찬히 곰삭이는구나 싶어 새삼스레 재미있습니다.


  만화책에 붙은 이름을 보면, 처음에 ‘먹고 자는’ 두 사람이라 하지만, 뒤에는 ‘함께 사는’이라 합니다. 겉보기로는 ‘먹고 자는’ 두 사람이되, 속으로 살피면 ‘함께 사는’ 두 사람이에요.


  잘 헤아려 보셔요. 오늘날 학교를 보면, 급식실에서 단체급식을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똑같은 밥을 먹’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똑같은 밥’에 ‘똑같은 교과서’에 ‘똑같은 수업’을 받을 뿐 아니라 ‘똑같은 성적’을 받도록 들볶여요. 다 다른 아이들이 함께 배우거나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꿈을 키우는 이야기나 숨결은 하나도 없습니다.





-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너무 달라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며 만나 온 니나를, 겨우 2∼3개월 만난 남자가 전부 빼앗아 가는 것 같아. 그리고 니나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모른다.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섭섭하거나 추월당해 분한 기분은 아니다. 그저 나만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 (104쪽)

- “어린애 같은 소리 그만하고, 미나 기분도 생각해 봐요.” “뭐?” “그 아이, 갈아입을 드레스 한참 고르더니, 결국 마지막엔, ‘아빠가 이 드레스 좋아하니까 이걸로 할게요!’ 그 아이는 당신이 기뻐하길 바라고 있어요.” (159쪽)



  만화책에 나오는 두 사람은 ‘집안 꾸미기’나 ‘밥 차려서 먹기’나 ‘옷 갖춰 입기’ 같은 데에는 그리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어우르면서 누릴 삶’을 어떻게 사랑스럽게 다스리는가 하는 대목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노래할 뜻입니다. ‘함께 사’는 즐거움을 웃음꽃으로 피울 뜻입니다.




- ‘그렇구나. 합리적이든 짜여진 식순대로든, 피로연은 결혼하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구나.’ (165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면 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지켜보고 배우면 됩니다. 가시내와 사내는 서로서로 사랑을 보여주면서 나누면 됩니다. 힘이 닿는 사람이 집일을 맡고,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쉬면 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지친 곁님을 어루만질 수 있으면 됩니다. ‘가시내 = 집일’이 아니고, ‘사내 = 바깥일’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가시버시’라는 낱말을 쓴 까닭을 읽어야 합니다. ‘바깥양반’이나 ‘안사람’ 같은 ‘일본말을 어설피 옮겨서 쓰는 낱말’은 하루 빨리 몰아내면서, 삶이 제자리를 찾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집과 마을을 함께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살림꾼이요 삶지기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둥이요 노래꾼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은 서로 아낄 줄 아는 넋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은 서로 믿고 기대면서 따숩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넷째 권이 언제 한국말로 나올까 손가락을 꼽으면서 기다립니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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