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반 교과서 창비시선 39
김명수 / 창비 / 19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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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9



‘입시지옥 죽음터’인 학교에서

― 하급반 교과서

 김명수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3.5.25.



  노래는 모두 노래입니다. 오래된 노래가 없고 새로운 노래가 없습니다. 즐겁게 부르는 노래라면 모두 새로운 노래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노래입니다.


  꿈은 모두 꿈입니다. 오래된 꿈이 없고 새로운 꿈이 없습니다. 즐겁게 꾸는 꿈이라면 모두 새로운 꿈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꿈입니다.



.. 지금도 허리 끊어진 남북분계선 / 시계 청소를 하는 병사들의 톱에 / 아름드리 소나무는 베어져 나가는데 ..  (그 봄의 식수)



  새롭게 받아들일 때에 노래요 꿈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될 때에 노래를 부르거나 꿈을 꿉니다. 마음이 늘 새로운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마음을 늘 새롭게 다스리는 사람이 꿈을 꿉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할 적에 함께 기뻐하거나 웃지 못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는 이웃이 있을 적에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면 두레나 품앗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일곱살 때였던가 / 삐라를 뿌리며 읍내 상공을 / 커다란 프로펠러 빙글빙글 돌리며 / 버짐난 우리들 머리 위로 날아가던 저 비행기 / 잠자리채 속에 사로잡았던 / 장수잠자리보다 / 더 신기하던 헬리콥터를 ..  (헬리콥터)



  김명수 님이 쓴 《하급반 교과서》(창작과비평사,1983)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난 시집입니다. 서른 해가 지난 예전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라 할 수 있고, 서른 해 앞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을 다룬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야구방망이를 골마루에서 흔들면서 엉덩이를 후려치는 교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졌을까요?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이런 돈을 걷거나 저런 돈을 모으느라 아이들이 고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평화가 자라나요?



.. 소나무는 솔씨를 간직하고 섰으리라 / 지나간 겨울 산에 갔다가 / 내가 보았던 나무들의 작은 씨앗 / 멀리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도 / 비바람에 나무들 작은 씨앗들이 / 제 몸 묻어 푸른 산을 꿈꾸며 섰으리라 ..  (솔씨)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삽을 들고 운동장을 펴는 일 따위는 안 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폐품수집을 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급시설을 갖추느라 바자회를 열면서 학교에 돈을 바쳐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골마루에 엎드려서 양초나 왁스를 문지르면서 반들반들 빛이 나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학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날 학교는 어느 대목이 나아졌는가요? 오늘날 학교는 지난날 아이들이 고단하게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은 사라졌다고 할 만한데, 무엇보다 가장 큰 고단함은 사라졌을는지, 아니면 가장 큰 고단함이야말로 더 커졌을는지 궁금합니다.



.. 봄이 와도 / 봄이 와도 / 고단한 봄날 / 우리 어매 홀로 조밭을 맨다 ..  (노고지리)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크게 짊어지는 굴레는 ‘시험지옥’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학교에 넣지만, 막상 학교는 아이를 가르치는 노릇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입시지옥’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시험점수를 더 받아내도록 하는 데에만 바쁜 학교입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어버이 스스로 ‘삶을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대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까요.


  그나마 예전에는 ‘아이가 동무를 사귀면서 놀도록’ 할 뜻으로 학교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합니다.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학교는 입시시험을 치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 키만 크신 아버지 / 우리집 서 마지기 논농사는 어떤지요? / 제가 사는 영등포는 하늘이 어둡지만 / 흉년든 고향에도 / 하늘은 가을 되어 파랗겠지요 ..  (소액환)



  내 아이가 놀고 싶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학원에 가야 할 테니까요. 학원에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울 뜻이기 때문입니다.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웃학교를 거치고 또 더 나은 웃학교를 지나서 ‘돈을 많이 벌고 몸은 덜 쓰면서 일은 수월한 일자리’를 얻도록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학교라는 곳은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곳인데,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까닭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려는 뜻’ 때문이고,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는 일자리도 ‘나는 몸을 안 쓰고 다른 이가 몸을 쓰도록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 설운 이름 너무 많다 /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 건드리면 끊어질 듯 / 바람불면 쓰러질 듯 /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 우리는 그날을 / 새봄이라 믿는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학교를 더 다닌다고 해서 됨됨이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됨됨이를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학교이니, 더 낫다는 웃학교에 들어가도록 시험점수는 높일 수 있더라도, 착한 마음이나 바른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상냥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나 맑은 마음이나 훌륭한 마음이나 멋진 마음이나 예쁜 마음이나 좋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그 좋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사회에서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터뜨립니다. ‘그 훌륭하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정치나 경제나 문화 같은 행정을 맡을 적에 몹쓸 짓을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더 낫다는 웃학교’에는 들어가도록 길들여졌지만, 마음씨를 올바로 추스르는 길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와 대학원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한테 ‘꿈’을 안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며 ‘믿음’을 안 가르칩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안 가르치고, 동무가 누구인지 안 가르치며, 사람이 누구인지 안 가르쳐요.



.. 광주에 사는 내 친구 시인 / 김장독을 파묻다가 삽날에 나온 것은 / 찢어진 비닐봉지 조각이라나 / 묻혀서도 썩지 않는 비닐봉지라나 ..  (기정사실)



  시집 《하급반 교과서》를 찬찬히 읽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가르치는 이 얼거리를 그대로 잇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앞날을 밝힐 등불이나 별빛’이 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교과서 시험지식만 가득 채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잘못을 더 저지를 슬픈 굴레’가 되고 맙니다.



.. 어느새 자라난 아들의 머리를 / 뒷마당에 나와서 잘라주고 있다 / 헌 신문지로 목둘레를 여미고 / 눈을 덮는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 무엇이든지 잘 잘리는 / 어머니 쓰시던 큼직한 가위 ..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만 가르치려 하니 뒤틀리거나 비틀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학교는 다니되 삶은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배우며 꿈이나 믿음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배우지 못하니 바보스럽거나 미련한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가 없는 학교는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마을음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일터와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는 모두 죽음터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손수 길어올려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흘러야 합니다. 노래가 태어나야 하고, 노래가 자라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어야 하고,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교과서가 사라지기를 빕니다. 교과서 아닌 사랑으로, 어버이가 아이를 기쁘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금자리라는 사랑터에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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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밥그릇 글쓰기



  한국말사전에서 ‘수수하다’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1) 물건의 품질이나 겉모양, 또는 사람의 옷차림 따위가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제격에 어울리는 품이 어지간하다 (2)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로 풀이한다. 제법 길게 풀이말을 달았지만 오히려 알쏭달쏭할 뿐 아니라, 말느낌을 못 살리는구나 싶다. 북녘에서 펴낸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수수하다’를 풀이하면서 ‘(1) 평범 (2) 소박’ 이렇게 두 가지 한자말을 쓴다. 한자말을 넣어 풀이를 하더라도 차라리 이 말풀이가 낫구나 싶다. 왜냐하면, ‘수수하다’라는 낱말은 꾸미지 않는 모습과 거짓이 아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기에 좋거나 나쁘다고 따질 수 없다. 거짓이 아니기에 틀림없이 ‘참’이지만, 스스로 참이면서 참을 내세우지 않는 만큼 어느 자리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모습이 바로 ‘수수하다’이다. 다른 한자말을 빌자면 ‘은근’하고 어울린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예부터 널리 쓰던 막사발이라든지 민무늬 밥그릇을 두고 “수수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한겨레가 입던 하얀 빛깔 옷도 “수수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널리 읽고 사랑하며 아끼는 시나 노래를 헤아려 본다. 이래저래 꾸민 시나 노래를 사람들이 널리 읽거나 사랑하거나 아낄까? 아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고 부르는 시와 노래는 한결같이 ‘수수하’다.


  무엇보다 들꽃과 들풀이 수수하다. 숲이 수수하다. 바다가 수수하다. 하늘이 수수하다. 우리가 늘 마시는 바람이 수수하다. 아침마다 찾아오고 저녁마다 지는 해가 수수하다. 나락 한 줌이 수수하다.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래잔치가 수수하다. 숲에 둘러싸여 포근하게 안긴 조용한 시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수수하다.


  수수한 빛이란 삶빛이다. 수수한 삶이란 넌지시 오가는 사랑이 샘솟는 하루이다. 도드라질 까닭도 뒤떨어질 까닭도 없으면서, 언제나 있는 그대로 즐거운 사랑이 바로 수수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수수한 밥그릇처럼 찬찬히 쓰는 글일 적에 마음을 건드리면서 밝힐 만하리라 느낀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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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2.16. 큰아이―벼리순이와 편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림순이는 제 모습을 빨간 매직으로 벽에 그렸다. 여덟 살이 되기까지 한 달을 앞둔 그림순이는 제 모습을 무척 맵시있고 깔끔하게 그릴 수 있다. 날마다 수없이 그리고 또 그렸으니 어느 그림보다 제 모습을 잘 그리리라 느낀다. 아버지더러 아프지 말라면서 또박또박 연필에 적어서 건넨 쪽글을 ‘벼리순이’ 그림 위쪽에 척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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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책 한 권을 쓴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느낀다. 책 한 권을 펼치면서, 책 한 권을 엮은 사람이 흘린 땀방울을 헤아린다. 책 한 권을 장만하면서, 책 한 권이 태어나기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내가 책 한 권을 쓴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웃과 동무한테 퍼진다. 내가 책 한 권에 이르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면,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 어린 씨앗이 톡톡 터진다. 내가 아이한테 베푸는 이야기는 아이가 받아먹는 마음밥이 되면서, 내가 나한테 다시 아로새기는 따사로운 다짐말이 된다.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은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이 된다. ‘내가 이룬 삶’은 ‘내가 스스로 쓰는 글’이 된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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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d 2014-12-19 09:19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아이곁에 앉아 함께 들여다보고싶은 충동이 이네요 ^^

파란놀 2014-12-19 13:43   좋아요 0 | URL
책순이 옆에 앉으면 하루 내내 함께 놀 수 있습니다 ^^
 
오즈의 마법사 : 스페셜 에디션 (2disc) - True Classic
빅터 플레밍 감독, 주디 갈랜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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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1939



  어릴 적에 텔레비전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차례 보았다. 만화영화로 나온 〈오즈의 마법사〉도 즐겨보았다. 두 아이와 함께 새삼스레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이 영화에 흐르는 ‘노래’는 거의 귀여겨듣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집이 날아가고, 도로시가 동무를 만나고, 도로시네 동무들이 무슨 일이든 두려움에 벌벌 떨고, 날개 달린 원숭이가 하늘을 까맣게 덮고, 두 마녀가 뜬금없다시피 바보스레 사라지고, 빨간 구두를 톡톡톡 치고, 이런 모습만 드문드문 떠오른다.


  나는 어릴 적에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어릴 적에 영화를 보기는 보았을까. 내가 뛰놀고 사는 우리 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채,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나날은 아니었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본다.


  영화에 나오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집채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던 까닭은 제 꿈을 노래에 담아 늘 부르면서 언제나 마음에 담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살가운 동무를 바랐기에 동무를 만나고, 동무들과 어떤 일을 이루고 싶기 때문에 동무들과 사이좋게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루는가 하고 알아차렸기에 도로시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다시금 ‘새로운 곳(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마법이란 무엇일까. 남이 못하는 일을 짠 하고 하루아침에 해내는 솜씨가 마법일까? 어느 모로 본다면 이렇게 볼 수 있을 테지만, 마법이란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 삶을 바꾸는 하루라고 느낀다.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 삶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기쁘게 웃고 노래할 테지. 삶을 스스로 바꾸면 아주 기쁘고 신이 나면서 춤을 추고 기운이 넘칠 테지. 어떤 부자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처럼 넉넉하거나 너그럽지 못하다. 어떤 권력자도 ‘웃고 춤추는 사람’처럼 기운차거나 씩씩하지 못하다. 어떤 글쟁이나 지식인도 ‘웃으며 노는 사람’처럼 멋스럽거나 아름답지 못하다.


  ‘무지개 저편’이나 ‘무지개 너머’를 헤아려 본다. 이곳에서 보기에 저곳이 무지개 너머가 될 텐데, 저곳에서는 바로 이곳이 무지개 너머이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내가 저곳을 그린다고 하면, 저곳에 있는 너는 바로 이곳을 그린다. 내가 그리는 저곳, 그러니까 무지개 너머로 가자면 나는 마음속에 깃든 앙금이나 응어리를 스스로 지우거나 털면서 새로운 넋이 되어야 한다. 가방을 싸들고 내뺀다고 해서 일이 풀리거나 말썽이 사라지지 않는다. 똑바로 바라보면서 마주하고 지켜보아야 비로소 스스로 거듭난다. 뛰어난 마법사한테 찾아가야 이루는 마법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꾸어야 이루는 마법이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어릴 적에 여러 차례 보았어도 어느 대목이든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날개 달린 원숭이’만 무서워 할 뿐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이 영화를 다시 볼 적에는 ‘내가 나답게 거듭나는 길’을 어느 만큼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나한테 사랑스럽고 반가우면서 아름다울 무지개 너머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새벽별이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빛나는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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