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은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는가. 함께 놀려고 하는 아이와 손을 맞잡을 수 있는가. 여기 이곳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자동차를 세우거나 발전소를 멈추거나 공장과 학교를 닫거나 청와대와 법원을 없애거나 군대와 전쟁무기를 모두 녹일 수 있는가. 아이들은 공부를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삶을 바란다. 아이들은 대학교나 시험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사랑과 꿈을 바란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한테 공부와 대학교와 시험만 쑤셔넣으려 한다. 어른들은 아이한테 삶과 꿈과 사랑을 물려줄 생각을 그만 잊거나 잃는다. 어린이문학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를 읽으며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교와 동네와 사회에 시달리면서도 씩씩하게 버티며 서로 모여서 오붓하게 노는데, 이 아이들이 놀 만한 빈터까지 모조리 빼앗거나 짓밟으려 하는 어른들 모습은 아닌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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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오카다 준 지음, 박종진 옮김, 이세 히데코 그림 / 보림 / 2006년 1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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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커니 바라본다는 시집을 읽는다. 무엇을 우두커니 바라볼까?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아이들은 시끌벅적한 도시를 우두커니 내다본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들은 꽃을 빙그레 쳐다본다. 아이들은 풀벌레나 개구리나 물고기나 다슬기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마음을 줄 만한 이웃이라면 따사로이 바라본다. 마음을 줄 만하지 않으면서 시끌벅적하다면 넋이 잃은 채 바라본다. 마음을 나눌 만하면 빙그레 웃으면서 마주한다.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면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등을 돌린다. 우리는 오늘 어디에서 누구와 이웃이 되어서 이 지구별에서 사는가.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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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박형권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0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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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씻기면서 나눈 말



  아침을 먹이고 나서 씻긴다. 아침을 차리면서 두 아이한테 먼저 알린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씻자고. 밥을 다 먹으니 두 아이가 쪼르르 달라붙으면서 “씻어? 씻어?” 하고 부른다. “응, 기다려. 다른 일 좀 끝내고 씻자.”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 끝이지만, 아버지는 밥을 먹고 밥상을 치우고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운다. 두 아이를 씻기려면 이제 큰아이는 스스로 ‘갈아입고 싶은 옷을 골라서 가져오도록 할’ 수 있지만, 작은아이는 아직 아버지가 ‘갈아입힐 옷을 골라서 챙겨야’ 한다. 이것저것 다 마친 뒤 보일러를 돌린다. 작은아이가 뽀르르 달려온다. “보라는 내가 벗을래!” 용을 쓴다. 그렇지만 혼자 못 벗는다. “안 벗겨져!” “천천히 하나씩 벗으면 되지. 팔부터 빼고.”


  먼저 작은아이를 씻긴다. 작은아이가 다 씻을 무렵 큰아이가 씻는방으로 들어온다. 작은아이는 다 씻었으니 물기를 훔치고 옷을 입혀서 내보낸다. 이제 큰아이와 둘이 남는다. “등 다 밀었는데 왜 또 밀어?” “응, 더 시원하라고.” 한참 씻기면서 큰아이 다리를 문지르고 때를 벗기는데, 복숭아뼈가 제법 굵다. 이제 내 손아귀로 꽉 잡힌다. “벼리는 복숭아뼈도 많이 굵었네. 이것 봐. 앞으로 더 크겠는걸.” “아버지, 벼리는 이제 아기에서 벗어났어?” “응, 이제 벼리는 더 크려고 아기에서 벗어났지.” “벼리는 아기에서 왜 벗어났어?” “벼리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니, 아기에서 벗어났지.” “아, 그렇구나. 그럼 보라는 왜 아직도 아기야?” “보라는 아직 네 살밖에 안 됐잖아. 보라는 앞으로도 더 자라야 아기에서 벗어나지.” 일곱 살을 마치고 여덟 살로 접어들 큰아이는 ‘아기에서 벗어난 나이’를 차츰 느끼는 듯하다. 서운해 할까? 기쁘게 여길까? 새롭게 맞이할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지. 그러나 큰아이는 스스로 안다. 날마다 몸이 자라서 이제 ‘큰아이가 좋아하던 옷’을 더 못 입고 동생한테 물려주어야 하는 줄 알아차린다. 자라고 다시 자라는 줄 언제나 느낀다.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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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56. 산들보라도 평상자전거 (2014.12.19.)



  누나가 평상에 세발자전거를 올려서 타니, 산들보라도 누나를 따라서 평상에 세발자전거를 올리더니 영차영차 한 바퀴를 돈다. 그런데 한 바퀴를 돈 뒤 막다른 벼랑에 몰린다. 뒤로 가지는 못하고 어라 어라 하면서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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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 오불관언 1


요전날에 시장에서 장삿군에게 아가씨라고 불리운 것 등을 열심히 기억해내 봐도 거울 속에 있는 얼굴은 별 수 없는 서른을 넘어 버린 여자인 것이다. 콤팩트에 초조하게 손이 가는 게 당연하다는 내 주장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 아내의 위급지경에도 여전히 오불관언인 것이다

《이순-제3의 여성》(어문각,1983) 109쪽


 여전히 오불관언인 것이다

→ 그대로 모르는 척이다

→ 그저 남 일인 듯이 여긴다

→ 그냥 강 건너 불 구경이다

→ 콧방귀조차 안 뀐다

→ 먼 나라 일이다

→ 마음 쓸 생각이 없다

→ 딴 데를 볼 뿐이다

→ 본 척도 안 한다

→ 눈길 한 번 안 보낸다

 …



  네 글자로 된 한자말 ‘오불관언’을 곧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말뜻을 알려주어도 못 알아차릴 사람이 있습니다.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낱말을 잘 알 테지만, 어린이한테는 너무 어려운 말일 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안 쉬운 말입니다. 더욱이, 한국말로는 ‘딴청’이나 ‘딴전’이 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딴짓’이라는 낱말을 쓸 수도 있습니다.


 설법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오불관언이었다

→ 이야기를 귀로는 듣되 마음은 딴청이었다

→ 말씀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자네가 오불관언할 수야 없지 않은

→ 자네가 모른 척할 수야 없지 않은

→ 자네가 딴전을 부릴 수야 없지 않은


  “마음이 콩밭에 있다”나 “마음이 젯밥에 있다”고도 합니다. 다른 데에 눈길이 간다는 소리입니다. 이리하여, 말 그대로 “다른 데에 눈길이 가다”라든지 “눈길 한 번 없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살펴서 알맞게 쓰려고 하면 그야말로 끝없이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합니다. 4336.4.15.불/4347.12.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요 앞날에 시장에서 장사꾼한테 아가씨라고 불리웠다고 애써 떠올려 봐도 거울에 비친 얼굴은 하는 수 없는 서른을 넘겨 버린 여자이다. 콤팩트에 애타게 손이 가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 바쁘고 아슬아슬한 아내한테 눈길 한 번 안 보낸다


“요 전(前)날”은 “요 앞날”로 손보고, “불리운 것 등(等)은”은 “불리웠다고”로 손보며, “열심(熱心)히 기억(記憶)해내 봐도”는 “애써 떠올려 봐도”로 손봅니다. “거울 속에 있는”은 “거울에 비치는”이나 “거울로 보는”으로 손질하고, “여자인 것이다”는 “여자이다”로 손질하며, ‘초조(焦燥)하게’는 ‘애타게’로 손질합니다. “손이 가는 게 당연(當然)하다는 내 주장(主張)이다”는 “손이 가야 마땅하는 내 생각이다”나 “손이 갈수밖에 없다는 내 생각이다”로 다듬고, “아내의 위급지경(危急地境)에도”는 “아내가 바빠고 아슬아슬해도”나 “바쁘고 아슬아슬한 아내한테”나 “아내가 바빠맞아도”로 다듬습니다.



오불관언(吾不關焉) :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 설법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오불관언이었다 /

     친조카인 자네가 오불관언할 수야 없지 않은


..



 살가운 상말

 626 : 오불관언 2


그러나 전체 역사학계는 그야말로 오불관언이었음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강만길-역사가의 시간》(창비,2010) 503쪽


 오불관언이었음은

→ 못 본 척했음은

→ 강 건너 불 구경이었음은

→ 남 일로 여겼음은

→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



  내 일로 여긴다면 가만치 바라봅니다. 내 일로 삼는다면 찬찬히 살펴봅니다. 내 일로 느낀다면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내 일로 여기지 않으니 안 봅니다. 내 일로 삼지 않으니 안 쳐다봅니다. 내 일로 느끼지 않으니 고개를 홱 돌립니다.

  내 일로 여기면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 일로 삼으면 손을 잡습니다. 내 일로 느끼면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함께 하거나 조금이나마 도울 길을 찾으려 합니다.


 딴전만 부렸음은

 딴청만 했음은

 딴짓만 했음은

 딴 데만 보았음은

 딴 곳만 살폈음은


  딴전을 부리든 딴청을 하든 딴짓을 하는 까닭은 “남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일과 네 일을 가르고, 우리 일과 너희 일을 자르니, 딴 데만 보거나 딴 곳만 살핍니다. 고개를 돌리기도 할 테고, 눈을 감기도 할 테지요. 4347.12.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역사학계는 모두 그야말로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전체(全體) 역사학계는”은 “역사학계는 모두”나 “역사학계는 온통”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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