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32. 너와 내가 나란히



  두 사람이 나란히 걷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 섭니다. 앞에서 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되고, 뒤에서 보면 오른쪽과 왼쪽이 됩니다. 두 사람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쪽에 있다고 하든 저쪽에 있다고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란히 걷기에 즐겁습니다. 나란히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나들이를 하면서 즐겁습니다.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아야 신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자전거에 태워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어버이와 손을 맞잡고 걸어도 신이 나고, 어버이와 달리기를 하면서 땀을 흘려도 재미가 있습니다.함께 있는 자리가 즐겁고, 서로 웃으며 마주볼 수 있으니 기쁩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안 쥔 사람은 사진기를 바라봅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이녁 눈길로 동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나 남깁니다. 사진에 찍힌 사람은 앞에 마주하던 사람이 찍은 모습에 따라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내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내가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요모조모 이야기를 그립니다. 네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네가 이야기를 담고, 네 앞에 있던 내가 이모저모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한테는 이 느낌과 생각이 있을 테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한테는 다른 느낌과 생각이 있습니다. 둘은 틀림없이 한 자리에 있었으나, 둘이 느끼거나 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는 살짝 다르거나 사뭇 다릅니다. 그리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겼다고 여길 수 있고, 잊고 싶은 지난날을 되새긴다고 여길 수 있으며, 가슴속에 꿈을 품은 젊은 날을 사진으로 아로새겼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사진 한 장으로 새롭게 만납니다. 너와 나는 여태 다른 곳에서 나고 자라 만났지만, 마음이나 뜻이 만나서 함께 사귀거나 어울립니다. 사진 한 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만나도록 잇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너와 내가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도록 이끄는 징검돌이 됩니다.


  나는 너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는 나한테 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이 피어오르고 믿음이 자라며 꿈이 몽실몽실 부풉니다. 사진 한 장을 다르게 바라보는 두 눈길은 어깨동무하는 손이 되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눈빛이 됩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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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3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박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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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1



해를 먹는 사람과 나무

―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박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8.



  해는 언제나 내리쬡니다. 다만, 지구별은 해를 따라 천천히 돌기 때문에 하루 내내 해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지구별 어느 곳이든 낮과 밤이 있어서, 낮 동안에는 해가 비추고 밤 사이에는 해가 저뭅니다. 낮에는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으면서 움직이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느긋하게 몸을 쉽니다.


  사람이든 풀이든 벌레이든 새이든 모두 낮에 일어나서 움직입니다. 해질 무렵 살며시 봉오리를 벌리는 꽃이 더러 있으나, 저녁이 되어 봉오리를 벌리더라도 낮에 잎사귀로 햇볕을 받아들여야 기운을 얻습니다. 사람은 지하상가를 만들고 높다란 건물을 지어서, 한낮에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 한 조각조차 없이 지내기도 하는데, 아무리 햇볕이 없이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이 머금은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살갗으로도 햇볕을 안 쬘 뿐 아니라, 밥으로도 햇볕을 못 쬔 먹을거리를 먹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닭공장에서 자란 닭은 햇볕이 아닌 등불을 쬐며 자랍니다. 쌀은 맨땅에서 햇볕을 먹으면서 자라지만, 쌀이 아닌 웬만한 푸성귀는 비닐집에서 농약과 비료와 수돗물을 먹으면서 자라요.



-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예?” “돈이라면 얼마든 줄 수 있는데.” (7쪽)

- “나랑 같이 살자. 정 안 되면 잠들 때 손이라도 잡아 줘. 손. 이상하지? 돈이라면 넘치도록 있고, 목적도 이룬 셈인데 기쁘지가 않으니. 이상해.” (13쪽)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환하게 웃습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포근한 품으로 숲을 이룹니다.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맑게 노래합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너그럽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그러면, 해를 먹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요? 해를 등지면서 차디찬 교실에서 등불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거쳐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는데 이곳에서도 해하고는 동떨어진 채 돈만 벌어야 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몸과 마음이 되어 지낼까요? 해를 모르면서 지내는데 해님처럼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요? 해를 먹지 않는데 해처럼 따뜻하거나 포근한 넋이나 얼이 될 수 있을까요? 해를 알지 못하는데 이웃한테 해처럼 사랑스러운 손길을 건넬 수 있을까요? 해를 사귀지 않았는데 짝꿍한테 슬기로운 눈빛으로 아름다운 꿈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 “진수성찬? 그런 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먹는 거잖아? 오늘같이 아무 소득도 성과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날에 그런 걸 먹으면 안 될 텐데 왜 하필 그런.” “말이 많다! 가끔은 좋잖아, 이런 날도!” (34쪽)

- “누군 곱빼기 식단을 짜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인데 먹어 주지도 않고. 복수로다가 식사 명단에서 빼 버릴까 보다.” (54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2)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햇빛도 햇볕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자리에서 살며 말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신분이나 계급인 사람한테는 무엇이 보람이 될까 궁금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만 ‘중간 계층’ 자리에 구경하듯이 올라가서 살그마니 햇볕과 햇빛을 처음 만나고는, 학교를 마치면 다시 아래 계층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또 위쪽 계층에 있다가 중간 계층에 살짝 머문 뒤 다시 위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니, 우리 삶에서 위와 아래를 따질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들은 억지스레 위와 아래를 가르고,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데, 어디가 어디한테 위가 될까요? 어디가 어디한테 아래가 될까요? 지구별에서 위쪽과 아래쪽이 있을까요? 남반구와 북반구로 가르기는 하는데, 참말 남반구는 아래이고 북반구는 위일까요? 우주에서 지구별을 바라볼 적에 어디가 위가 되거나 아래가 될까요? 별에 위와 아래가 있을 수 있을까요? 별에 왼쪽이나 오른쪽이 따로 있을까요?





- “검문에 대한 요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규정 상 다른 목적의 돈은 받을 수도 없고, 전 창문닦이로 온 거니까요. 그렇게 걱정이시면 직접 확인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상층 주민은 하층 출입 제한도 없지 않습니까.” (110쪽)

- “하층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일입니다. 전 역시 창문 닦는 일이 좋아요.” (121쪽)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살랑입니다. 바람을 받은 나뭇가지는 바람결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햇볕을 머금는 나무는 따사로운 햇볕을 맞아들이면서 햇볕노래를 부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노래를 부르는 나무요, 구름이 가득한 날에는 구름노래를 부르는 나무입니다.


  우리들 사람도 철 따라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우리들 사람도 날 따라 다른 노래를 부르던 숨결입니다. 민들레를 먹을 적에는 민들레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도라지를 먹을 적에는 도라지와 같은 노래를 불러요. 보리밥을 먹을 적에는 보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옥수수를 먹을 적에는 옥수수와 같은 노래를 부르지요.


  능금알처럼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배꽃처럼 하얀 아이들이 믿음직합니다. 포도씨처럼 야무진 아이들이 수더분합니다. 감꽃처럼 싱그러운 아이들이 듬직합니다. 우리는 가슴에 꽃씨를 품고 자라는 예쁜 목숨입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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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책밭 가꾸기

35. 책을 읽는 고운 매무새



  나는 어릴 적에 놀면서 자랐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학교에서 공부한 일’은 거의 안 떠오르지만, 동네에서 동무들과 실컷 뛰논 일은 거의 낱낱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연을 날리려고 창호종이와 대나무살과 풀을 마련해서 집에서 한두 시간쯤 낑낑대면서 손수 만들었고, 연을 다 만든 뒤 실로 이어서 신나게 이리저리 달리면서 하늘로 띄우려고 했습니다. 제대로 만들었으면 높이 날면서 5층짜리 아파트 너머로 올라가고, 제대로 못 만들었으면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폭 처박힙니다. 골목에 자동차가 거의 없으면서 노는 아이들만 가득하니 연날리기를 하면서 거리낄 일이란 없습니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온통 연을 날리려고 달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연날리기를 하며 힘을 쪽 뺐으면 딱지를 들고 나와서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쩌렁저렁 길바닥을 울리면서 칩니다. 해가 넘어가면 ‘밤에 하는 숨바꼭질’이 재미있어서 슬금슬금 밖에 모입니다. 으슥한 곳에 숨으면 으레 박쥐가 푸드득 날아올랐는데, 깜짝 놀라면서도 숨소리를 죽이고 술래 눈길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집과 동네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언제나 놀이에 폭 빠집니다. 수업을 할 적에는 교과서를 책상에 펴고 얼굴은 칠판을 바라보되, 마음은 꿈나라로 갑니다. 담임 교사가 신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옵니다. 나는 내 꿈나라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하늘을 난다든지 괴물과 싸운다든지 씨름을 한다든지 달리기를 한다든지, 다음에 공놀이를 할 적에 이리저리 몸을 잘 놀려서 제대로 공을 차 넣어야겠다든지, 온갖 놀이만 생각합니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놀리면서 놀고, 연필로 공책 귀퉁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이렇게 놀다가 들키면 골마루로 쫓겨나가 꾸지람을 받지만, 골마루에 나가서 두 손을 들고 꾸지람을 받아도 마음속으로는 놀이를 그립니다.


  오카다 준 님이 글을 쓰고 이세 히데코 님이 그림을 넣은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보림,2006)라는 책을 읽다가 “전에 살던 데는 보기에는 복닥복닥해도 다들 한 가족 같아서 마음이 편했어. 학교 끝나고 와도 외톨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지. 그랬는데 그 골목이 난데없이 사라진다는 거야. 이유는 나도 몰라. 아무튼 다 허물어 버린다고 해서 골목길 사람들은 죄다 뿔뿔이 흩어져 이사를 갔어(23쪽).” 같은 대목을 봅니다. 나도 이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내가 코흘리개 적부터 함께 뒹굴며 뛰놀던 동무들과 서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한 집 두 집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재개발을 마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 집도 있으나, 우리 집은 예전 동네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뜻하고 어른 뜻은 달랐을 테니까요. 나는 놀이동무를 다시 만나서 어울리고 싶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에서 ‘주택 재개발’을 한다거나 어떤 건물이나 공장이나 발전소 같은 곳을 큼지막하게 짓는다고 할 적에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묻는 일이란 없습니다. 나랏일을 하는 어른은 으레 어른끼리만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재개발이 되는 동네에서 사는 어른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정책을 펴거나 개발을 밀어붙이는 어른은 책상맡에 땅그림을 펼치고 죽죽 금을 그어서 여기는 개발하고 저기는 남기고, 이런 투로 이야기할 뿐입니다.


  재개발을 하는 어른 가운데 ‘재개발 예정 지구’가 된 오래된 골목동네에서 사는 어른은 있을까요? 아마 없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동네를 내가 스스로 망가뜨리거나 허물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내가 안 살고 내 이웃이 안 살며 내 동무가 안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재개발 계획을 세워서 이러한 정책을 밀어붙인다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지구별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는 이웃이요 동무라 하면, 옆나라를 괴롭히려고 쳐들어가는 짓, 그러니까 전쟁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와 이웃이 사는 저 나라가 있으면, 두 나라는 그야말로 ‘이웃’일 테니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사랑하는 길을 갑니다. 이웃이니까요. 이웃이라면 한쪽이 가난할 적에 기꺼이 돕습니다. 이웃이라면 맞은편을 도우면서 돈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받을 적에도 저쪽에서 돈이나 대가를 안 바라고, 내가 저쪽을 도울 적에도 돈이나 대가를 받을 마음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하고 말하는 까닭은, 옆나라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옆나라를 이웃으로 안 여기기도 하고, 우리와 이웃한 옆나라도 우리를 이웃으로 안 여기는 셈이에요. 그래서 남녘과 북녘은 서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엄청나게 키우지요.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도 전쟁무기와 군대를 어마어마하게 키워요. 나라를 이끄는 어른들 마음속에는 ‘이웃’을 살피는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늘 신나게 뛰놀면서 개구진 놀이도 자주 했습니다. 온몸이 그예 땀으로 흥건히 젖으면 땀을 식히느라 나무 그늘에 드러눕기도 하고, 때로는 좀 드문 일이지만 교실이나 집으로 들어가서 낯과 손을 씻은 뒤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놀이를 쉬고 책을 읽을 적에 때때로 배가 살살 고프다고 느낍니다. 한창 뛰놀고 나서 책을 손에 쥐었으니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책을 손에 쥐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주전부리를 쥐고 싶습니다. 이때에 이런 모습을 둘레에서 다른 어른이 보면 늘 따끔하게 한마디를 합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를테면,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지 말라거나, 손에 먹을거리를 쥔 채 책을 읽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손에 다른 것을 들면서 책을 쥐면 책이 지저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다가 책에 무언가를 쏟아서 책을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이나 주전부리를 다 먹고 나서 책을 읽으라 했어요. 둘 모두 하고 싶어서 서운하지만, 이 말을 안 따를 수 없습니다. ‘안 흘릴 수 있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니나 다른 어른이 없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책을 가지고 와서 한손에 주전부리를 쥐고 책을 읽습니다. 이러다가 으레 먹을거리를 책에 톡 떨어뜨립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흘립니다. ‘안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안 흘리고 책을 함께 읽’은 적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른이 된 오늘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른이 된 오늘 나는 한손에 책을 곱게 쥐고 다른 한손에 주전부리를 쥘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만큼 손이 크고 아귀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어른이 된 오늘은 ‘한손으로 책을 쥘 적에 책이 안 다치도록 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익혔습니다. 아직 어릴 적에는 손이 작고 아귀힘도 작습니다. 작은 손인데 책을 한손으로 쥐자면 으레 책이 다칩니다.


  한 번 다친 책은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김칫국물이 묻거나 과자 부스러기가 박힌 책은 예전처럼 깨끗해지지 못합니다. 책을 책대로 아끼려면 책을 읽을 적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아 배가 고프구나’ 하고 느낀다면, 내가 손에 쥔 책에 제대로 빨려들거나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놀이를 할 적에 놀이에 모든 마음을 쏟아서 신나게 누리듯이, 책을 읽을 적에는 책에 모든 마음을 쏟아서 알뜰살뜰 누릴 노릇입니다.


  동무와 놀면서 자꾸 딴짓을 하면 동무는 서운하고 재미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한손을 딴 데에 보내면 책도 우리한테 서운해 하거나 재미없어 하리라 느낍니다. 책은 ‘죽은 물건’이 아닙니다. 책은 ‘숲에서 자란 나무’입니다. 숲에서 자란 나무가 모습을 바꾸어 ‘책’이 되어 우리한테 동무가 되어 줍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면서 곱게 살찌우도록 돕는 기쁜 마음동무가 책입니다. 마음동무와 만날 적에는 오롯이 마음동무한테 사랑을 기울이면서 고운 매무새가 되어야 빙그레 웃으면서 책을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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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잠옷을 벗고 놀이옷을 입는다. 아이들이 입는 옷은 모두 놀이옷이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놀기 때문에, 아이들 옷은 언제나 놀이옷이다. 이쁘장한 옷이든 투박한 옷이든 아이로서는 그저 놀이옷이다. 놀면서 흙을 묻히고, 놀다가 땀으로 적신다. 놀다가 넘어져서 찢어지고, 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튿어진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주섬주섬 모은다. 머리를 감으면서 아이들 옷가지를 적신다. 머리를 다 감고 나서 아이들 옷을 조물조물 비비면서 빨래를 한다. 다 빤 옷가지는 마당에 넌다. 섣달이 저물며 새해가 다가온다. 고흥 시골자락은 겨울볕이 포근해서 아침에 마당에 너는 옷을 낮이 기울 무렵 집에 들이면 조금 뒤 보송보송하다. 포근한 볕을 받아먹는 옷가지에는 싱그러운 기운이 감돌고, 이 옷을 찬찬히 개서 옷장에 두었다가 다시 아이들한테 입힐 적에 내 손으로 햇살 같은 숨결이 흘러나온다. 하루가 새롭게 찾아와서 흐른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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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8



내 마음부터 읽지 못한다면

―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5.



  어릴 적에는 ‘초능력’이 아주 엄청난 힘인 줄 알았습니다. 몇몇 사람한테만 타고난 힘이 초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차츰 나이를 먹고 곰곰이 삶을 배우는 동안 ‘초능력’은 새롭거나 남다른 힘이 아닌 줄 알아차립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들이 여느 자리에서 여느 몸으로 지내는 모습은 ‘여느 힘(능력)’이고, 여느 사람 스스로 여느 자리에서 여느 몸을 키우고 살찌워서 ‘새롭게 내는 힘’을 내면, 바로 이 새롭게 내는 힘이 초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힘만 쓰는 까닭은 언제 어디에서나 여느 자리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내는 힘을 키우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언제나 새로운 삶으로 가꾸고 새로운 넋으로 북돋아 새로운 힘을 스스로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여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힘을 낸다면,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여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새로운 힘을 못 낸다고 여기면 나도 새로운 힘을 못 냅니다. 수수께끼는 아주 쉽습니다.





- “그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형은 지금 홀딱 빠져 있다, 그거지?” “우악!” “그 포스터 되게 귀한 거라며? 용케 손에 넣었네. 입 꾹 다물고 뒤로 호박씨 까는 데엔 뭐 있다니까.” “오,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쿄코 씨가 섹시하고 어쩌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훌륭한 인품 때문이라고.” (8쪽)

- “그런 의미로 당신은 대단합니다. 역에서 화장하지 않은 쿄코 씨를 얼핏 보고 한눈에 본인이라는 걸 알아봤다죠?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람은, 사상 최초입니다.” (26쪽)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새로운 힘(초능력)’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한테는 타고난 재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한테는 몸 깊이 마음 깊이 타고난 재주가 잠잡니다. 사람들 스스로 이녁 몸과 마음에 타고난 재주를 키우지 않으니 자라지 않고 터지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깃든 씨앗을 깨워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힘을 깨우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힘을 쓸까요? 내 힘을 내가 깨울 때에 내 힘이 새롭습니다. 내 힘을 내가 안 깨우니까 내 힘은 언제나 흐리멍덩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때때로 아주 놀라운 힘을 내듯이, 아버지가 아이를 아끼면서 곧잘 매우 눈부신 힘을 내듯이, 우리는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알뜰히 심어서 멋진 힘으로 곱게 키우면 됩니다.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바라보아 내 기운을 내가 북돋우면 됩니다.





- “당신의 계획을 위한 무의미한 추가시험이나 보충수업도, 그걸 치러야 한 학생들조차 모두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 대학의 꽃이자, 학생들의 우상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그런 학생들에게 치한 행세를 하고, 대학생활에 공포를 줬어요! 당신은 어느새 대학교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거예요. 이제 이 대학에 있을 자격도 없어!” (46∼47쪽)

-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야. 자기 소개할 때 ‘회사를 경영합니다’가 아니라 ‘사장입니다’ 하는 놈은 재수없어. 성격 재수없는 건 둘째치고, 사람 마음이 약해졌을 때를 노려 접근하는 야비한 놈이기도 하지.” (74∼75쪽)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빚은 만화책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여러모로 남달리 끄는 기운이 있어서, 읽고 덮은 뒤 다시 읽고 덮다가 또 읽습니다.


  책이름에 그대로 나오듯이, 만화책에 나오는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는 거짓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다기리 쿄코’라는 사람은 ‘영능력’을 선보이지 않으니, ‘영능력을 펼친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오다기리 쿄코’는 영능력이 아닌 머리를 씁니다. 머리를 빠르게 돌립니다. 머리를 신나게 씁니다. 그러면, 오다기리 쿄코라는 사람이 쓰는 ‘머리힘’은 왜 ‘영능력’처럼 보일까요? 여느 자리에 있는 여느 사람은 여느 힘조차 안 쓸 뿐 아니라 ‘여느 머리힘’조차 제대로 안 쓰기 때문입니다.




- “나는 방송에서 심령수사를 곧잘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쁜 놈을 잡아 없애자는 게 아니에요. 내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구하는 것이죠.” (53∼54쪽)

- “진짜 효도는, 본인이 행복해지는 거죠. 어떤 부모라도, 자식의 행복이 첫째 가는 기쁨이니까요. 부모를 위해라고 하면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참으면, 그거야말로 최대의 불효예요.” (88쪽)



  우리 머리를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여느 자리에서는 알아채지 못할 이야기를 숨김없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머리를 제대로 쓰고 또 쓰면, 어느새 ‘머리힘 쓰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힘 쓰기(초능력이나 영능력 쓰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다만, 머리만 써서는 새로운 힘이 솟지 않습니다. 머리를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갈고닦아야지요. 머리를 깨우면서 마음과 몸을 함께 깨워야지요.


  머리는 쓸 줄 알지만 마음과 몸을 깨우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힘’을 내지 못해요. 이때에는 ‘꾀 부리기’만 합니다. 마음을 맑게 깨우고 몸을 튼튼하게 깨우는 동안 머리를 슬기롭게 깨우면, 이때에 비로소 새로운 힘이 싱그럽게 터져나옵니다.




- “당신, 지금 오다기리 쿄코 씨가 왜 이렇게 인기인지 알아요? 그 사람의 예언이 번번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에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이 그 사람의 상냥한 말 한 마디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기 때문이죠.” (109쪽)

- “당신이 옳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이, 당신이 걱정돼서 죽겠다구요!” (110쪽)



  내 마음부터 먼저 읽어야 합니다. 내 마음부터 못 읽는다면,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마음인지 하나도 못 읽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짜증인지 노래인지 웃음인지 눈물인지 고단함인지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시샘인지 제대로 읽지 않으면,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머리를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어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어느 놀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


  새로운 힘을 쓰는 까닭은 ‘지구별 우두머리 되기(지구 정복)’ 때문이 아닙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스스로 기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내 보금자리를 내가 손수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내 하루가 언제나 새로우면서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만화책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은 바로 이 대목을 살살 건드립니다. 내가 내 마음부터 제대로 못 읽는 바보가 아닌지 살그머니 건드립니다. 내가 이웃과 동무뿐 아니라 우리 집 살붙이가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읽으려면, 바로 내 마음부터 옳게 읽고 아름답게 북돋우는 길을 걸어야 하는 줄 넌지시 건드립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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