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아버지 옆에서 자동차놀이



  아버지가 바닥에 종이를 펼치고 그림놀이를 하면 으레 아이들이 옆에 달라붙어 함께 그림놀이를 한다. 그런데 이날 따라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그림놀이를 안 한다. 둘 다 아버지 둘레에서 다른 놀이를 한다. 뭐 어떠랴. 너는 네 놀이를 하렴. 나는 내 놀이를 할 테니.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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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화 이야기 - 우리어린이 문학 02
이재복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77


 

삶을 살리는 이야기를 어린이한테

― 우리 동화 이야기

 이재복 글

 우리교육 펴냄, 2004.7.15.



  어린이가 즐기도록 지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오랜 나날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아서 이어옵니다. 지구별이 처음 태어난 뒤, 이 지구별에 사람이 살던 첫무렵부터 이야기가 함께 태어났으리라 느낍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나누는 말로 이야기를 짓고, 나무는 나무끼리 주고받는 말로 이야기를 지으며, 풀벌레와 들짐승은 풀벌레와 들짐승끼리 나누는 말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저마다 저희 삶결에 맞추어 이야기를 지어서 물려줍니다.


  이야기를 물려받는 나무와 풀은 어미나무나 어미풀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이어받아서 한결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이야기를 물려받는 풀벌레와 들짐승은 이녁 어미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이어받아서 더욱 씩씩하고 튼튼하게 큽니다. 사람도 이녁 어버이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이어받아서 참으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하루하루 뛰놀면서 철이 들지요.


  사람한테만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다. 지구별 모든 목숨한테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놓고 학자나 지식인은 ‘유전자’라는 다른 이름을 쓸 뿐입니다.



.. 우리는 여기서 방정환의 아동관, 교육관, 문학관을 읽을 수 있다. 방정환은 어떻게든지 선생의 자리에서 아이들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교육을 멀리 하고 있다. 방정환은 아이들보다 낮은 자리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재미의 요구에 답하려 한다 … 방정환의 가슴에는 분명 일제시대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어린 목숨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방정환은 어린 목숨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듣고 또 그 소리를 이야기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  (71, 87쪽)



  먼먼 옛날부터 우리한테는 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제나 이야기가 있어서, 이야기는 꽃처럼 피고 씨앗을 맺습니다. 도란도란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이야기꽃은 환하고 맑아, 어버이와 아이 모두 웃음꽃을 짓습니다. 이야기는 웃음을 짓는데, 웃음은 다시 노래를 짓습니다. 이야기꽃은 웃음꽃이 되고, 웃음꽃은 노래꽃이 됩니다. 이리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잔치는 이야기잔치이고, 이야기잔치에서는 웃음잔치로 거듭나고, 웃음잔치는 다시 노래잔치로 자랍니다.


  들일을 하건 숲에서 나무를 하건, 언제나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가 함께 흐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건, 부엌에서 밥을 짓건,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건, 언제나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가 함께 얽힙니다. 짚신을 삼거나 메주를 띄울 적에도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가 나란히 흐릅니다. 잠을 자거나 고샅에서 놀거나 냇가에서 물을 길을 적에도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가 끊이지 않습니다.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겨레가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를 함께 누리면서 삽니다. 임금님 같은 사람이 없던 곳에서는 으레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입니다. 우두머리 따위는 없는 곳에서는 늘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가 퍼집니다.


  이야기로 말을 가르칩니다. 이야기로 말을 가르치는 동안 삶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로 말을 가르치는 동안 삶을 보여주면서 사랑이 피어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야기는 말이요 삶이며 사랑입니다. 말과 삶과 사랑이 되는 이야기는 우리 넋을 살찌웁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은 이야기를 빌어 아이한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고, 이러한 숨결로 새로운 삶을 지었습니다.



..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를 억누르고 있는 제도를 위해 봉사하는 문학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고통스럽게 하는 그런 온갖 삐뚤어진 관념에 저항하여 어린이들의 순수한 목숨보다 더 위에 서려는 제도와 싸우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 방정환은 순수하게 식민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계몽의 요구를 간직하고 있었겠지만 그 계몽의 요구가 하나의 작품으로 될 때, 작품에는 작가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당시 역사 현실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이다 ..  (101, 110∼111쪽)



  이재복 님이 쓴 《우리 동화 이야기》(우리교육,2004)를 읽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 평론’입니다. 방정환, 마해송, 현덕, 이원수, 손창섭, 이렇게 다섯 사람 어린이문학을 살피면서, 계급주의 어린이문학도 조금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다섯 사람 어린이문학을 골고루 살피기보다는 거의 방정환 한 사람 이야기를 살피는 흐름에서, 다른 네 사람 이야기와 계급주의 어린이문학 이야기는 가볍게 곁들이는 얼거리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재복 님은 ‘방정환 위인전’을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문학이 ‘현대문학’ 모습으로 처음 드러난 발자국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뿌리가 어떠한 흐름을 타고 오늘날에 이르는가 하는 대목을 밝히려고 하는 ‘어린이문학 평론’이 《우리 동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짜임새나 얼거리나 글을 살핀다면, “우리 동화 이야기”처럼 커다란 이름은 좀 안 어울립니다. ‘방정환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한국 어린이문학 초기 역사’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걸맞겠다고 할까요. 아무튼 다른 나라 동화는 다루지 않고 한국 동화만 다루니 “우리 동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동화작가는 우선 자기 내면의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구원자를 불러내는, 구원자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타계 여행도 마다 하지 않는 샤만(상상력)으 힘이 필요하다. 내면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 많은 나무며 풀이며, 새며 동물들과 이야기가 통하는 영혼의 힘을 간직한 목숨이 되어야 한다 … 이제는 문학의 논리가 운동성보다 상업성을 매개로 한 출판의 논리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 비평가의 언어도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출판의 논리와 관계되고,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대중의 요구와 연결되면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요소를 갖게 되었다 ..  (131, 155∼156쪽)



  삶을 살리는 이야기를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얼거리 가운데 하나가 ‘동화’입니다. 한국에서 글을 쓰는 지식인과 작가는 ‘동화’라는 한자말을 일본사람 입에서 빌어 쓰는데, 이런 ‘문학 전문 낱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요새는 ‘전래동화’라는 말도 쓰지만, ‘옛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따로 가르지 않아도, 수천 해가 아닌 수만 해가 아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해에 걸쳐서 지구별 모든 겨레는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며 살았습니다. 책이나 글이 없어도 입으로 이야기를 건사해서 마음에 담고 가슴에 새기도록 북돋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주 먼 옛날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이야기’만 있었지 ‘비평’이나 ‘평론’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아이나 어른 누구도 딱히 ‘비평’이나 ‘평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이야기를 더 짓거나, 이야기에 살을 더 붙일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지구별 모든 겨레가 ‘비평·평론’을 안 했을까요? 비평이나 평론을 할 까닭이 없으니까 안 하지요. ‘이야기’는 삶을 짓고 사랑을 가꾸며 꿈을 북돋웁니다. 지구별 모든 겨레는 아이가 삶과 사랑과 꿈을 건사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버이도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건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버이와 아이 모두 오직 ‘이야기’를 즐기거나 나누거나 북돋우는 길을 걷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른문학 비평’과 ‘어린이문학 비평’이 따로 있으며, 대학교에서 이를 다루고, 논문이 꽤 많이 나오며, 문학비평을 하는 잡지가 따로 있기도 할 뿐 아니라, 이런 일만 깊이 파고들어서 하는 어른도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대 도시문명 사회가 되다 보니, ‘어린이문학 비평’을 따로 맡아서 해야 하는 사람도 나와야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어린이책’을 가려서 알려주는 몫을 누군가 해야 할 테니 비평과 평론이 있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더 헤아려 보셔요. 왜 아이들한테 ‘좋은 어린이책’을 가려서 알려주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아무 책이나 보면 안 될까요?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 책이나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어린이책’과 ‘사랑스러운 어린이책’을 지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왜 어른들은 어른들 스스로 ‘나쁜 책’과 ‘좋은 책’을 함께 만들면서, ‘좋은 책 가려서 알려주는 비평’과 ‘나쁜 책 뽑아서 밝히는 평론’을 굳이 할까요? 왜 바보짓을 하는 어른일까요?


  《우리 동화 이야기》를 읽으면 ‘어린이문학 비평을 하는 어른’ 이야기가 제법 나옵니다. 이재복 님은 원종찬 님을 비판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적는데, 이 대목을 보면 ‘오늘날 어린이문학 비평’은 ‘상업주의 출판사와 문단권력’하고 이어진다고 적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어린이책’이 아니라 ‘나쁜 어린이책’을 펴내는 출판사하고 ‘어린이책을 널리 알리는 평론’을 쓰는 평론가하고 서로 손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북돋우는 길을 가기보다는, 아이들한테 책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려는 장사꾼 마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장사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좋다고 할 수 없는 책’을 아이들한테 마구 팔거나 읽혀서 돈만 벌려는 어른들이 늘어난다는 뜻이요,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몰고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꿈하고는 등지도록 하면서 물질문명과 유행과 상업주의에 젖어들도록 떠밀면서 그야말로 어른들 스스로 바보짓을 한다는 뜻입니다.



.. 일제시대 계급주의 아동문학은 ‘민족해방’과 ‘계급모순으로부터 해방’, 이 두 방향으로 치열하게 열려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계급주의 아동문학가들에게 조금 쓴 소리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무엇을 쓸 것인가’는 뚜렷했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는 너무 어른의 자리에서 추상으로, 관념으로만 고민하였다 … 현덕은 아이들이 발딛고 살아가는 놀이공간으로 들어가 현덕은 이야기 안에 놀이리듬을 그대로 살려 놓았다 … 이원수는 〈바닷가의 소년들〉에서 한 연약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삶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는 정신의 뿌리는 결코 힘에 있지 않단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이원수는 동심의 내면에 ‘힘’이나 ‘이념’을 넘어 ‘목숨을 사랑하는 절대적인 자비의 정신’을 심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  (171, 198, 214, 215쪽)



  비평을 하려는 비평은 부질없습니다. 역사를 캐는 일이 덧없지는 않으나, 역사만 좇는 역사가 된다면 덧없기 마련입니다. ‘그리 좋지 않은 책’이고 ‘그리 아름답지 않은 어린이문학’이지만, 이러한 책이나 어린이문학을 ‘껍데기만 부풀려’서 내다팔도록 부추기는 ‘어린이문학 평론가’가 있다면, 이들을 나무랄 만하고, 이들을 나무라는 글도 널리 알려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야기를 지어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몫이 우리 어른이 할 일인 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한테 나누어 주는 ‘마음밥’이 바로 이야기이듯이, 어른이 서로 주고받는 비평이나 평론도 ‘마음밥’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평이나 평론도 ‘이야기’가 되도록 써야 합니다. 딱딱하고 어설프며 얄궂은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가 아닌 한국말로 이야기를 쓰고(비평을 하고), 영어나 한자말을 잔뜩 섞어서 쓰는 논문 흉내쟁이가 아닌 한국말로 이야기를 쓰며(평론을 하며), 어른만 읽는 비평이나 평론이 아닌 어린이도 누구나 읽도록 이야기를 써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문학을 비평한다는 글도 어른문학을 비평한다는 글 못지않게 재미없고 따분하며 알쏭달쏭합니다. 비평이나 평론이라고 하면 마치 ‘한자말과 영어를 뒤섞어서 번역 말투에다가 일본 말투로 어지럽혀’야 하는 줄 잘못 알기 때문입니다. ‘유식한 척하는 논문 글투’가 되어야 논문이 되거나 대학교수가 되는 줄 잘못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써야 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마음밥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물려주면서, 어른들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평이나 평론으로 서로 나무라거나 꾸짖기보다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업주의 출판사’에 돈 때문에 얽매이는 짓은 그만 고리를 뚝 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판사에서 보내는 보도자료에 기대지 말고, 또 출판사에 보도자료를 써 주는 일을 하지 말며, 문단권력 따위는 제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이한테 이야기를 물려주는 어른이 되어야지, 어린이를 볼모로 삼아 ‘책장사’와 ‘글장사’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재복 님이 쓴 《우리 동화 이야기》는 한국사람이 빚은 이야기 몇 가지를 살피는 대목에서는 여러모로 돋보인다고 할 만하지만, 이러한 글이 이야기가 못 되고 비평이나 평론에 그치는 대목은 참으로 아쉽고, 스스로 ‘이야기가 되도록 글을 쓰지 못한 탓’에 현덕 문학이나 이원수 문학이나 손창섭 문학이나 마해송 문학도 한결 깊이 읽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살짝 겉훑는다고 할까요. 어린이문학을 펼친 어른은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었지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문학을 창작’해서 ‘문학상을 받’거나 ‘이름난 작가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창작가’와 ‘문학상 수상작가’하고는 사뭇 다른 ‘이야기꾼’인 현덕이요 이원수요 손창섭이요 마해송이요 방정환입니다.


  이재복 님이 공부가 얕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공부만 너무 깊다는 소리입니다. 공부는 조금 내려놓고 어린이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삶놀이를 누려 보시기를 빕니다. 그러면, ‘말에서도 힘이 빠지’고 ‘말마다 새로운 사랑과 꿈’이 슬기롭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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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개 삽사리 (이가을·곽영권) 사계절 펴냄, 2005.9.26.



  이 지구별에는 수많은 목숨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살아간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괴롭히거나 들볶으면서 얽히지 않는다. 서로 맞물리고, 서로 어우러지며,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간다. 어느 목숨이든 다른 목숨을 먹어야 비로소 살아가는 얼거리이기 때문에, 밥과 삶을 헤아린다면 언제나 슬픈 노릇이다. 고기를 안 먹고 풀을 먹더라도 ‘풀 또한 숨이 있는 넋’이다. 풀을 먹는대서 다른 목숨을 안 먹는 셈이 되지 않는다. 그림책 《사자개 삽사리》는 지구별에서 뭇목숨이 어우러진 실타래와 수수께끼를 어느 만큼 밝히거나 보여줄 수 있을까. 사자와 개와 스님, 아니 온갖 짐승과 사람은 서로 어떻게 어울릴 때에 아름다움과 사랑이 빛나는 삶을 이룰까.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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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개 삽사리
이가을 지음, 곽영권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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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와 봐 (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사, 2003.6.30.



  빛깔이 고운 종이를 가위로 살살 오리면 누구나 멋진 종이인형을 빚을 수 있다. 종이인형에 실을 꿰어 보꾹에 매달면 살랑살랑 춤을 추면서 언제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누릴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밴 어머니가 으레 빛종이를 오리고 실에 꿰어 보꾹에 붙이면서 아이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언제부터 했을까. 빛종이가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텐데, 일본사람은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을까. 일본사람이 하기에 따라한다기보다 한국에서도 아이를 밴 어머니라든지 곁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가 빛종이를 오려서 실에 꿰어 보꾹에 붙이면 집안이 어떻게 달라질까. 돈을 치러서 장만하는 장난감이 아닌, 두 어버이가 손수 짓고 가꾸면서 돌보는 집이 된다면, 이 보금자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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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와봐
하야시 아키코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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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끙끙, 컴퓨터 펑, 신나게 걸레질



  몸살을 끙끙 앓고 일어나니 컴퓨터가 펑 하고 터졌고, 컴퓨터가 펑 하고 터진 김에 방과 마루와 부엌을 조금 치우면서 걸레질을 신나게 했다. 아직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울 적에 걸레질을 하니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큰아이가 걸레질을 거들기도 했고, 오늘 따라 볕이 따스하고 좋아서 담요를 말리기에도 좋았다. 컴퓨터가 펑 터진 터라 형한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는데, 형과 한참 쪽글을 주고받다가 올 한 해를 마감하면서 형한테 고맙다는 묵은절을 아직 못했구나 싶어, 부랴부랴 묵은절을 쪽글로 보냈다. 컴퓨터는 전원만 터졌기에 4만 원 값을 치르고 고친다. 새로 붙인 전원상자는 이 컴퓨터에 잘 맞을까?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조금 크지 않나 싶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신나게 잘 뛰어놀았고, 오랜만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두 아이와 함께 본다. 큰아이가 네 살 무렵에 처음 보았지 싶은데, 그동안 이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을 안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았기 때문인지, 예전에는 못 보았구나 싶은 모습을 새롭게 살피면서, 영화를 참 빈틈없이 멋지게 만들었다고 깨닫는다. 영화에 나오는 찰리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름답고, 춥고 좁지만 포근한 보금자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쉼터인지 곰곰이 돌아보기도 한다. 이제 섣달그믐이 다가온다. 전화나 쪽글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곳곳으로 퍼져서 고마운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포근한 시골바람이 번지기를 빈다.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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