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울이면서 읽는 책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서 고릅니다. 스스로 찾아서 고른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겨를을 내고,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곳에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엎드려서, 스스로 가장 즐거운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누립니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이 아닌 책읽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서평도서라든지 홍보도서가 되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추천도서와 명작도서라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독후감 숙제나 논술훈련이라면 아름다울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즐거울 수도 없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이나 영화 같은 매체는 우리한테 자꾸 ‘유행’이나 ‘사건 사고’ 같은 데에 얽매이도록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안 하고 빨려들도록 이끌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마음을 깊이 쓰면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예 휩쓸리거나 휘말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책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찾고 고르고 읽고 삭이고 누리고 나누지 않는다면, 멍하니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몸짓하고 똑같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아름다운 책읽기가 됩니다. 마음을 쏟을 적에 사랑스러운 책읽기가 됩니다. 마음을 들이면서 삶을 지으니 즐거운 책읽기가 됩니다. 책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읽어서 누리는 사람은, 종이책이 아닌 나무와 풀과 새와 구름과 해와 바람과 흙을 읽으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을 맛봅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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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2.24. 큰아이―분필그림



  가루가 안 날린다는 분필로 작은 판에 그림을 그린다. 작은 판에 분필로 그리는 그림은 천으로 지워서 언제든지 새롭게 그릴 수 있다. 다만, 이 분필그림은 그때그때 지우고 새로 그리니, 아이가 멋스러이 이루는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손놀림이 그때그때 사라진다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참말 사라질까? 한번 그린 그림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누구나 흙바닥에 엄청나다 싶은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딱히 마음을 더 쓰지 않고 흙바닥 그림을 내버려 두고 다른 놀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풀과 나무는 싱그러우면서 푸르고 아름다운 잎을 맺는다. 그러나 이 잎은 으레 한두 해만 살고 흙으로 돌아가서 거름이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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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2.18. 큰아이―동생 그리기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택시를 부른다. 택시가 올 때까지 볕바른 곳에서 기다리는데, 그림순이가 제 앞가방에서 작은 종이와 크레파스를 꺼내더니 동생을 그린다. 살짝 비는 겨를에 그림을 그린다. 누구보다 동생을 그린다. 참으로 고운 마음씨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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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놀이



  두 아이는 두 목숨이고 두 숨결이니 그만큼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큰아이 숨결이고,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작은아이 숨결이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다른 숨결이면서, 아이들하고 서로 맞닿는 숨결이 있다.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는 큰아이를 바라보면서, 나한테 오랜 옛날부터 깃들던 상냥함을 읽고, 날마다 씩씩하게 크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나한테 참 먼 옛날부터 감돌던 장난스러움을 읽는다. 내가 나이면서 내가 나를 잊은 모습을 두 아이한테서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아하는 모습이고 아니고를 떠나, 언제나 나를 이루던 내가 가장 기쁘며 아름답다고 느끼던 숨결은 ‘상냥함’과 ‘장난스러움’ 두 가지가 어우러진 때이다.


  한 사람이 얌전이와 개구쟁이 두 가지 모습을 건사할 수 있을까? 아무렴, 두 가지 모습을 나란히 건사할 만하다. 그리고, 두 가지 모습은 다른 모습이 아니라 늘 하나이다. 하나는 움직이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지키는 마음이다. 새처럼 하늘을 나는 장난스러움이고, 나무처럼 보금자리를 지키는 상냥함이다.


  따스한 손길로 웃음을 짓고, 너그러운 손길로 노래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손길로 꿈을 짓는다. 아이와 어른은 모두 이러한 손길로 삶을 가꾼다. 먼먼 옛날부터, 먼먼 뒷날까지.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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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어떻게 키워요?
나카가와 치히로 지음, 홍성민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59

 
이야기를 먹고 사랑스레 자란다
―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
 홍성민 옮김
 동쪽나라 펴냄, 2005.7.20.


  ‘이야기밥’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씁니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 나누는 밥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밥 한 그릇이 몸을 살리듯이 이야기 한 타래가 마음을 살린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어른이나 아이 모두 이야기는 밥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먹고 마음을 살찌웁니다. 어른은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먹고 사랑을 키웁니다. 아이는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먹고 생각을 북돋웁니다. 어른은 동무와 이웃이 살가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먹고 꿈씨를 심습니다.


..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천사 키우는 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 사치는 우선, 혼자서 이것저것 해 보기로 했습니다 ..  (14∼15쪽)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눈망울이 또랑또랑합니다.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은 눈길이 따스합니다. 눈빛을 살려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이야기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머리로 지을 수 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따사롭습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여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나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여야 하지 않습니다. 풀을 뜯는 이야기도 되고, 꽃을 본 이야기도 되며, 나무를 쓰다듬은 이야기도 됩니다. 햇살을 바라본 이야기도 되고, 별을 노래하는 이야기도 되며, 냇물에 손을 담근 이야기도 됩니다. 개미집을 들여다본 이야기도 되고, 돌멩이를 손에 쥐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린 이야기도 됩니다. 제비가 날아가며 노래하는 모습을 본 이야기도 되고, 구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밝히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내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둘레를 따사롭게 바라볼 적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곱게 돌볼 적에 이야기가 자라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곁님을 살가이 보듬을 적에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 그런데, 천사는 무엇을 먹을까요? 장미색 구름? 밤하늘의 별? 꽃에 있는 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사치는 천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 ..  (20∼21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이야기책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천사를 키우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돌보는 ‘귀염둥이 짐승’이 없습니다. 다른 동무는 저마다 이런 짐승을 키우고 저런 짐승이 있다면서 자랑하는데, 오직 한 아이만 아무런 ‘귀염둥이 짐승’이 없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이 아이한테 천사가 찾아와요.

  아이는 천사를 키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다만, 아이가 키운다고 해서 ‘키워질’ 천사는 아니지만, 아이는 천사가 먹고 입고 자는 여러 가지를 걱정하고 생각합니다. 천사는 아이더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야기’만 들려주면 된다고 말합니다.


.. “아하, 알았다. 책이나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좋아해. 특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을 때의 이야기를 좋아해.” ..  (27쪽)


  이야기를 밥으로 삼아서 먹는 천사는 ‘밥을 먹는’ 만큼 똥도 눕니다. 사람도 밥을 먹으면 똥을 누지요. 사람은 흙에서 나온 것을 밥으로 먹어서, 똥을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면 천사는? 천사는 이야기밥을 먹고는 별똥을 누어요. 천사가 먹은 밥은 별로 나와서 온누리를 밝히는 새로운 빛이 됩니다. 아이는 천사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이야기를 밥으로 주면서), 온누리를 밝히는 빛이 자라는 숨결을 키웁니다.


.. 천사는, 사치의 마음속으로 쑥, 하고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퍼냈습니다. 사치가 갖고 있던 마음의 작은 조각입니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아주 두근거렸을 뿐입니다 ..  (87쪽)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먹으면서 사랑스레 자랍니다. 아이만 자라지 않습니다. 어른도 날마다 자랍니다. 날마다 자라지 않는 사람은 죽음길을 걷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자라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자라는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아픔’이란 무엇인가 하면, 생채기나 앙금이나 응어리입니다. 날마다 자라지 못하기에 자꾸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요. 자꾸 아프다 보니 몸과 마음에서 기운이 빠집니다. 몸과 마음에서 기운이 빠질 때마다 삶이 지겹거나 따분하거나 고됩니다. 이리하여 죽음길로 가지요.

  날마다 자라는 사람은 더러 앓습니다. ‘앓이’란 무엇인가 하면, 낡은 몸이나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몸이나 마음이 되려고 몸부림치면서 거듭나려는 몸짓입니다. 생채기나 앙금이나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몸짓이에요.

  앓는 사람은 훌훌 털어내요. 아픈 사람은 늘 안고 살아요. 이야기밥은 우리를 살찌우고 살려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삶이 더욱 삶답게 빛나도록 북돋우는 셈이요, 나 스스로 내 삶을 따사로이 바라볼 적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셈입니다.

  내 마음조각을 읽고, 네 마음조각을 읽습니다. 내 마음조각에 새기는 이야기를 찾고, 네 마음조각에 새길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라면서 이 지구별에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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