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43. 2015.1.2. 숟가락에 하나씩



  누나가 숟가락에 하나씩 얹는 모습을 본 산들보라는 저도 젓가락과 숟가락을 잘 놀린다고 하면서 하나씩 척척 얹는다. 옳지, 옳지, 옳지, 그런데 너무 수북하지 않을까. 먹고 또 얹으면 안 될까. 아무튼, 멋지구나, 밥돌아.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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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휘청휘청



  여덟 살로 접어드는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발판을 구르면 힘을 제법 잘 받는다. 이제는 큰아이 다리힘이 크게 보탬이 되어 세 식구 자전거마실이 퍽 수월하다. 큰아이가 뒤를 돌아보면서 동생하고 수다를 떨며 놀 적에는 자전거가 휘청휘청 흔들린다. 앞으로 큰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혼자 따로 두발자전거를 탈 테지. 언제쯤일까. 앞으로 언제쯤 큰아이는 자전거 홀로서기를 할까. 큰아이가 홀로서기를 한다면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벗어나 샛자전거 자리를 물려받을 테지. 4348.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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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1-06 14:01   좋아요 0 | URL
영화한장면 같아요

파란놀 2015-01-06 23:59   좋아요 0 | URL
삶은 날마다 영화와 같구나 싶어요~

수이 2015-01-06 15:5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닮았을 거 같아요_ ^^

파란놀 2015-01-06 23:59   좋아요 0 | URL
아이는 아이답게 멋있게 크리라 생각해요~
 

우리집배움자리 3. 학교 잘 다녀올게요



  큰아이는 학교에 보낼 뜻도 없고, 큰아이 스스로도 학교에 갈 뜻이 없다. 서류로 이 일을 꾸미자니 여러모로 번거롭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의무교육만 외치기 때문에 ‘학교 안 다닐 자유나 권리’가 아예 없다. 집에서 지내면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누릴 자유나 권리가 없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이제껏 퍽 많은 이들이 이녁 아이를 입시지옥 의무교육에 집어넣지 않았다. 오십 분 앉히고 십 분 움직이도록 하는 꽉 막힌 틀이 아닌, 몇 가지 교과서 지식만 머리에 집어넣는 틀이 아닌, 시멘트 교실에 가두어 하루 내내 보내도록 하는 틀이 아닌, 홀가분하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을 배우도록 하는 길을 아이한테 보여준 어버이가 퍽 많다. 오늘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학교에 갈 짐을 챙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맞추어 ‘우리 집 아이’는 ‘학교에 안 보냅니다’ 하는 뜻으로 서류를 쓰러 가는 길이다.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버스가 안 온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서 자전거를 탄다. 바람이 모질게 분다. 한참 자전거를 달리는데,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한 마디 한다. 바람소리에 묻혀 잘 안 들리지만, “아버지, 바람이, 벼리, 학교 잘 다녀오라고 해요.” 하고 말한다. 그래, 잘 다녀와야지. 너한테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 문턱에 발을 디디는 날이란다. 아니, 서류 때문에 한 번 더 학교 문턱을 밟아야 할는지 모르지만.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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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날



  큰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입학 유예 서류’를 쓰러 간다. 엊저녁부터 아침이 되도록 곰곰이 생각한다. 즐겁게 잘 다녀오자. 서류 한 장 쓰는 일이니 홀가분하면서 차분하게 쓰자. 비는 멎었으나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몰고 다녀올까 하고 살피다가, 마침 읍내에서 마을을 거쳐 면소재지로 가는 버스가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에 지나간다. 이 버스를 타야겠네.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큰아이하고 천천히 걸으면 될 테지. 기쁘게 마실을 하자. 작은아이는 저를 안 데려간다고 서운하게 생각할 테니까, 작은아이 작은 선물도 하나 마련하자. 4348.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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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봄나무 문학선
샐리 그린들리 지음, 정미영 옮김, 문신기 그림 / 봄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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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78


 

‘나쁜 경제개발’에 사로잡힌 한국

― 나쁜 초콜릿

 샐리 그랜들리 글

 정미영 옮김

 봄나무 펴냄, 2012.1.25.



  옛사람이 나무를 살뜰히 아낀 마음을 헤아립니다. 옛사람이 나무로 집을 지은 마음을 돌아봅니다. 옛사람이 집과 마을에 숲정이를 두고, 집과 마을은 언제나 숲 옆에 마련한 마음을 되새깁니다.


  잘 자란 나무를 보면 곧게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습니다. 잘 자란 나무는 이백 해나 삼백 해를 묵으면, 또는 오백 해나 즈믄 해를 묵으면, 고맙게 베어서 기쁘게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집을 지을 적에 못 씁니다.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장작으로 패서 땔감으로는 쓸 테지요. 그러나,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장작으로 패기에도 수월하지 않아요. 잘 자란 나무여야 기둥으로도 삼고 장작으로도 삼습니다.



.. 누군가가 파스칼에게 커서 하고 싶은 일을 물을 때면, 파스칼은 집 짓는 사람이나 기술자처럼 손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 파스칼에겐 전쟁이 너무 먼일처럼 여겨졌다. 이 마을에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친구거나 어떤 식으로든 서로 얽혀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  (18, 22∼23쪽)



  오늘날 사회를 보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를 안 아낍니다. 나무가 곧게 잘 자라도록 하는 사람이 무척 드뭅니다. 나뭇가지를 휘거나 나뭇줄기를 뭉텅뭉텅 자르기 일쑤입니다. 이른바 ‘조경’이나 ‘원예’나 ‘분재’라는 이름을 빌어, 나무가 나무답지 못하게 손을 씁니다.


  곰곰이 보면, 조경이나 원예나 분재를 하면, 이 나무는 집을 짓는 자리에서 못 쓸 뿐 아니라, 장작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스러울는지 모르지만, 동물원에 갇힌 짐승과 같구나 싶습니다.

  나무를 왜 심을까요. 나무를 왜 곁에 둘까요. 나무를 왜 바라볼까요. 나무가 왜 있어야 할까요. 나무는 사람 곁에서 무슨 구실을 하나요.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은 어떻게 사나요.



.. 파스칼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데 넌더리가 났다. 괴롭힘을 당하고, 멸시를 받고, 홀대받고, 위협을 당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 올리비에가 소리쳤다. “파스칼, 어서 가야 해. 저들이 우리도 죽일 거야.” 파스칼이 울부짖었다. “아빠!” … 하루하루를 그냥 터벅터벅 걸어왔다. 하지만 이젠 파스칼 안의 무언가가 일깨워지고 있었다. 마지못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귀한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내는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진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  (40, 88∼89, 149쪽)



  한국사람이 나무를 쓸 적에는 으레 다른 나라에서 나무를 사들입니다. 한국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스스로 자란 나무를 얻어서 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곧고 아름답게 자라는 나무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숲이 사라지고, 그나마 있는 숲도 공무원이 자꾸 솎아내기를 한다면서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짓는 집은 나무가 자란 나이만큼 튼튼히 섭니다. 나무로 짓는 집은 나무가 자란 나이가 지나면 허물어 장작으로 쓰거나 다른 자리에 씁니다. 이러면서 다른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을 가꿉니다.


  이와 달리 시멘트로 짓는 집은 시멘트를 부어서 들인 겨를만큼 한 자리에 섭니다. 그리고, 시멘트집은 나중에 모조리 쓰레기로 바뀝니다. 억지로 뒤섞어 억지로 올린 시멘트집은 백 해조차 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쓰레기를 낳으면서 흙을 망가뜨립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뿐 아니라 시멘트를 부어 닦은 길도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를 부어 닦은 길도 죄다 쓰레기입니다.



.. ‘내가 코조까지 신경 쓰진 않아도 돼. 코조도 스스로 자길 보살필 줄 알아야 해.’ 파스칼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친구만 여기 남겨 두고 떠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코조는 파스칼을 의지했고, 집에 남은 자기 형처럼 파스칼을 따랐다. 둘이선 많은 일을 함께 겪었고, 만약 파스칼이 없다면 코조는 돼지 마왕의 동쌀에 못 배겨 날 것이 분명했다 ..  (130∼131쪽)



  샐리 그랜들리 님이 쓴 《나쁜 초콜릿》(봄나무,2012)을 읽습니다. 이 책은 ‘나쁜 초콜릿’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무엇이 나쁜지 따로 밝히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카카오콩이 나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괴롭거나 아픈가 하는 이야기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카카오콩을 다루는 어른이 돈을 그러모으려고 어떤 짓을 하는지 가만히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와 어른은 틀림없이 있는데, 이와 함께 아이를 사랑으로 마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인 이녁을 스스로 바보처럼 굴리는 어른도 제법 많습니다.



.. 반군을 잡는 것, 반군을 쫓는 것, 그것이 곧, 반군에게 총을 쏘는 것? “발사!” 그리고 지시가 이어졌다. “자, 뛰어. 달리면서 움직이는 건 닥치는 대로 쏴라. 저들이 죽거나 너희가 죽거나 둘 중 하나다.” 파스칼의 어깨에 투박한 손이 닿았고, 파스칼을 거의 넘어뜨리다시피 앞으로 밀쳤다 … 파스칼은 셉이 들려주는 말을 거의 믿지 않았다. 정신이 말똥말똥한 순간이면, 파스칼은 셉과 그 패거리가 벌이는 일의 목적을 의심했다. 파스칼은 여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아이들의 울부짖음도 들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반군의 가족일까? 반군은 자기들이 하려는 일의 명분이 가족의 목숨보다 소중하단 걸까 ..  (157, 168쪽)



  아프리카에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과 중남미에도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구별 어디에도 ‘국경’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곳과 저곳이 이 나라와 저 나라로 갈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치꾼이 있대서 나라가 갈려야 하지 않습니다.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으니 나라가 나뉘어야 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어른이 하는 짓은 언제나 부질없습니다. 이들, 권력쟁이 어른은 총칼을 내세워 서로서로 바보가 됩니다.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않고, 서로서로 바보가 되지요. 내 나라가 더 세다고 우쭐거리고, 네 나라는 손쉽게 잡아먹을 만하다고 윽박지릅니다. 내 나라에 전쟁무기가 더 많다고 거들먹거리고, 네 나라는 가볍게 쳐들어갈 만하다고 으르렁거립니다.


  일본은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고, 한국도 일본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갔습니다. 중국도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지만, 한국도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중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갔습니다.


  이런 짓을 왜 해야 했을까요. 이런 짓을 무슨 까닭으로 해야 했을까요. 정치권력자 몇몇 때문에 여느 시골사람이 왜 싸울아비가 되어 낯선 벌판에서 왜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을까요.



..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누가 알겠어? 그리고 무슨 상관이야? 이 트럭에서 내리기만 하면, 우리는 자유야.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할 자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설 자유!” “엉덩이가 얼얼해.” … 코조가 문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네가 꿈을 꾸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말했잖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결코 희망을 버린 적이 없었어.” 파스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난 한때 희망을 버렸었어. 내가 악몽만을 꿨던 그 시간 동안 말이야.” ..  (222, 223쪽)



  모든 정치권력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통령과 정치꾼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재벌이나 다국적기업도 정치권력이고, 모든 군부대도 정치권력입니다. 모든 지식인도 정치권력입니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모든 어른은 정치권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권력이 되면 어른과 아이가 따로 없이 바보짓으로 빠져듭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으니 정치권력 바보짓에 얽매이고, 사랑을 가슴에 품을 때에 흙을 가꾸어 숲을 이루면서 마을살이를 북돋웁니다.


  ‘나쁜 초콜릿’은 아프리카에 있다면,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라는 허울이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나쁜 새마을운동’과 ‘나쁜 경제개발’이 춤을 추지요. 왜냐하면, 이런 운동과 저런 개발에는 오로지 ‘돈’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우리를 먹여살렸다는 거짓말을 일삼는 어른이 꽤 많은데, 사람은 ‘돈’으로 먹고살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먹고삽니다. 아니, 사람은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답게 삽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아예 없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서로 ‘이웃사촌’이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하나도 모르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서로 나누면서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조금도 없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언제나 웃고 춤추면서 언제나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은 신문과 방송과 책과 스포츠와 영화와 섹스와 문학과 학교교육 따위를 낳았습니다. 자, 오늘날 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에 가는 어른은 몇이나 있는지요? 오늘날 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서 동무들과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아이는 몇이나 있는지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어른도 아이도 웃음이나 노래나 춤이나 이야기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꿈과 사랑이 하나도 없는 한국 사회입니다. 직업훈련과 대학입시만 있는 한국 사회입니다.


  ‘나쁜 초콜릿’은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는 어떤 ‘나쁜 것’이 있습니까. 4348.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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