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자전거집



  오래된 자전거집은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둔다. 새로 여는 자전거집은 새로운 간판을 건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한글로 된 간판이라면, 새로 여는 자전거집은 으레 영어로 쓰는 간판이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여느 사람이 여느 삶자리에서 타는 자전거를 다루고, 새로운 자전거집은 으레 멧골을 타거나 먼길을 빠르게 달리는 값진 자전거를 다룬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바퀴에 난 구멍을 때우거나 바람 빠진 바퀴에 바람을 넣으려는 사람이 자주 찾고, 새로운 자전거집에는 더 나은 부속을 갖춘 자전거로 갈아타려는 사람이 자주 찾는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골목 안쪽에 호젓하게 깃들고, 새로운 자전거집은 으레 큰길에 크게 연다. 두 가지 자전거집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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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 본다



  골목을 알려면 걸어야 합니다. 이 골목 저 골목 천천히 거닐면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면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온몸으로 마주할 때에 골목을 알 수 있어요. 아파트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파트는 걸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높다란 아파트는 사람들이 걸어서 오가도록 일군 집이 아닙니다. 자동차로 이리 달리고 저리 지나가기 알맞도록 지은 덩어리입니다.


  골목집은 햇볕이랑 바람하고 함께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골목집을 읽으려면 햇볕을 함께 읽어야 하고, 골목집을 사귀려면 바람을 같이 헤아려야 합니다. 이웃집과 햇볕을 나누어 먹는 골목집이요, 이웃집과 어깨동무하면서 찬바람을 막고 시원한 바람을 골고루 누리는 골목집입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서 햇볕과 바람을 느낄 적에 골목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대청마루나 툇마루나 마당에 앉아서, 때로는 담벼락에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고 바람을 쐴 적에 비로소 골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을 이루어 살아온 사람들은 해를 등에 지고 바람을 가슴으로 맞아들이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일구었습니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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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쓰기



  바깥마실을 나와서 한글노래를 쓴다. 시골집에서 동생과 즐겁게 놀면서 아버지를 기다릴 큰아이를 그리면서 한글노래를 쓴다. 조그마한 종이에 찬찬히 한글노래를 쓴다. 우리 집 시골순이한테 들려줄 한글노래이지만, 이 한글노래를 마실길에서 만나는 이웃한테도 선물로 주려고 한다. 우리 집 큰아이한테는 그림엽서 뒤쪽에 더 큰 글씨로 옮겨적어서 줄 생각이고, 이웃한테는 조그마한 종이에 적은 대로 줄 생각이다.


  한글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는 ‘어버이 이야기’요 ‘어버이 삶’이다. 아이가 한글만 익히거나 알도록 하려는 글이 아니라,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살면서 바라보고 지켜보는 이야기이면서, 한글과 함께 삶노래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랑이다. 사랑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들려주는 한글노래이다. 그러니까, 한글을 노래처럼 부르면서, 아니 한글을 노래로 부르면서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하겠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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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9 04:29   좋아요 0 | URL
너무 기쁠 거예요.손으로 만든무엇은
그 마음이 잘 전달된다고 믿어요.

파란놀 2015-01-09 08:34   좋아요 0 | URL
손으로 쓰고 짓고 나누는 모든 것은
언제나 아름답게 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

[그장소] 2015-01-09 08:51   좋아요 0 | URL
아.네~그럼요..물론이죠.
기라노 나쓰오의 메타볼라 에서 그런 부분이
나와요. 얼굴은 못나고 밖에서 딱히 해먹고 살게 없는 청년이 공동숙소 같은데서 생활하며 엽서같은데 손으로 시같은걸 직접 적어 낮에 좌판에 파는거예요.
거의 구걸과도 같은 행위지만 지나 던 한
아가씨(술집에 나감)이거 당신이 직접 손 으로 쓴 거냐고..대단하다고. ..곧 그 청년은
그 말에 으쓱해지죠.베껴쓰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쓰느것을 칭찬받는 일은 아무래도 기분 좋고..싼 값에 팔일 뿐이어도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내 가 뭔가 해 벌었다..하는. 정성과 인정..그걸 서로
소통하게 하는게 글의 일 이라면 전하는 건 글씨의 일. 아닐까ㅡ생각했었어요.
아..메타볼라 가 맞는지 아~ 확인하고 픈데..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누군가 틀리면 정정 해 주겠죠..?
오늘 하루도 화창한 날..보내세요.
함께 살기님.!!^^

파란놀 2015-01-09 09:48   좋아요 0 | URL
시를 써서 좌판에 놓고 파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도
서울 광화문 언저리에서 시를 쓰는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알라딘서재에도 그분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며 찾아보는데
안 나오는군요.

네이버에서 `광화문시인 정재완`으로 찾아보시면
그분 이야기를 보실 수 있고 동영상도 있습니다.
이분 시집이 두 권 나온 적 있는데
모두 절판이로군요 ㅠ.ㅜ

저는 광화문시인 정재완 아저씨를
예전에 서울서 살 적에 으레 길에서 만나
(2003~4년) 음반도 사고 부채도 사고 사진틀도 사고 했습니다 ^^

[그장소] 2015-01-09 09:55   좋아요 0 | URL
추억이네요..그 시절! 예전에는 관광지나..유적지 에서 가능한 일.왜..사람이 입간판처럼 앞뒤로 판자를 덮어쓰고..거기에 엉성한 싯귀를 나뭇잎위에..화선지랑 ..나름 꾸며서..
8~90년대 초반 이웃엘 가면 어느 방 이든
시 적힌 세필로 쓴....그런게 있었는데..
그걸 서울 한 복 판에서 무려 2000년대에 보셨다는 거죠?..
생각만 해도 정겹네요.

파란놀 2015-01-09 10:24   좋아요 0 | URL
이분은 요즈음도 광화문에서 그대로 노점을 하면서 시쓰기를 꾸준히 하시는 듯해요. 저는 너무 멀어서 가 볼 수 없지만, 그장소 님이 서울 둘레에 계신다면,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시간에 광화문 네거리 둘레를 어슬렁거려 보시면, 광화문시인 아저씨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장소] 2015-01-09 10:55   좋아요 0 | URL
아..지금의 광화문은넓게 개방된 곳.노점을 하시려면 아무래도 골목..암튼 언젠간 그 한복판을 걷게되면 둘러 찾아 볼 요량..
제겐 남는게 시간이므로..

파란놀 2015-01-10 02:57   좋아요 0 | URL
사람들 북적이는 데에는 안 계실 듯하고, 호젓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쬐면서 노점을 하고, 그동안 그곳에서 시를 쓰실 테지요
 

한글노래 43. 선물하려고



이웃한테 선물하려고

동생과 함께 가을유자

치마 가득 따서

우둘투둘 샛노란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초피나무는 노란 가랑잎

찬바람 따라 솨르르 떨구고

올겨울에는 실컷 눈놀이 하도록

함박눈 소복소복 쌓여

온통 하얀 나라 되기를

기쁘게 기다립니다.



2014.1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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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 일반판 (1disc)
이안 감독, 이르판 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파이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



  ‘파이’라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 하루를 지었고, 어른이 된 뒤에도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지었다. 다만,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을 뿐인데, ‘파이’는 드넓은 바다에서 꽤 오랫동안 떠돌아야 하던 무렵에 천천히 철이 든다. 삶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이제껏 겪거나 누리지 못한 숨결을 헤아린다.


  밥이란 무엇인가. 목숨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이고, 이 지구별은 무엇인가. 하늘은 어떤 빛이고, 바다는 어떤 물결인가. 나와 범은 서로 어떤 사이요, 나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어떤 사이인가.


  ‘파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름이 있지만, 이 이름 말고 스스로 제 넋을 담은 이름을 새롭게 짓고는, 이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씩씩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 이 다른 길은 파이가 스스로 거듭나는 철든 사람이 되는 길이요, 이 길을 걸어가면서 파이는 다른 어느 누구도 겪거나 누리지 못한 새로운 빛물결을 맞아들인다.


  그러니까, 파이한테는 파이 이야기가 있다. 파이로서 이녁 삶이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나한테는 내 삶이 무엇이라 할 만한가. 내가 걷는 길은 어디이고, 내가 걷는 길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겪고 헤아리는가.


  하늘이 열리는 길을 걸어간 파이는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는가. 내가 겪는 삶은 내 이웃한테 ‘하늘이 열리는 길’을 밝히거나 알릴 만한 이야기가 흐르는가. 비쩍 말라 뱃가죽이 들러붙은 범을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쓰다듬는 파이는 두 손에 따스한 사랑을 지어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났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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