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파헤치듯이 읽는 책



  우물을 깊게 파야 겨울에 안 얼고 여름에 시원합니다. 우물을 파기 앞서 어느 곳이 우물 자리로 마땅하거나 알맞은지 살펴야 합니다. 아무 데나 우물을 판다면, 제아무리 깊게 판들 물줄기를 못 찾습니다. 그러니까, 한길을 오래도록 깊이 살피거나 파헤치는 이들이 외려 눈먼 사람처럼 되는 까닭은, 깊이 파고들 줄만 알지, 삶을 두루 헤아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우물을 파거나 한길을 걷자면, 먼저 삶을 두루 살피거나 넓게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두루 살피지 않으면서 한우물만 판다면, 그야말로 한우물은 팔는지 모르나 삶에는 눈이 멉니다. 삶을 넓게 헤아리지 않으면서 한길만 걷는다면, 그야말로 한길은 걸을는지 모르나 삶은 하나도 모릅니다.


  예부터 스승은 아무렇게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스승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할 적에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부터 몸소 익히도록 이끕니다. 솜씨와 재주를 처음부터 가르치는 스승은 없습니다. 손놀림이나 손재주를 익히도록 이끄는 사람은 스승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솜씨와 재주만 가르칩니다. 아니, 솜씨와 재주를 키우는 지식만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열여섯 해에 걸쳐 이녁 삶을 스스로 바라보고 느끼면서 깨닫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못합니다. 머릿속에 온갖 지식을 가득 채우도록 해서 ‘직업인’이나 ‘기술인’이나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교사와 교수일 뿐, 아이들이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즐겁게 맞아들이도록 이끌지 못해요.


  지식인은 많지만 살림꾼은 매우 드뭅니다. 전문가는 많지만 사랑둥이는 아주 드뭅니다. 교사와 교수는 많지만 일꾼은 무척 드뭅니다.


  삶이 이루어지는 얼거리를 몸과 마음으로 두루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는 삶을 몸과 마음으로 고루 돌아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삶과 사랑을 모르고서는 꿈을 짓지 못합니다. 꿈을 짓지 못하는 사람한테 재주와 솜씨가 있다 한들, 재주와 솜씨를 슬기롭거나 아름답게 다루지 못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강의나 강좌를 알뜰히 챙기는 일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과 학교와 강의나 강좌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얽히면서 밑바탕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먼저 바라보고 느껴서 깨달은 뒤에 배울 수 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읽어야 하고,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일굴 줄 알아야 하며, 밥과 옷과 집을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게 건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건너뛰면서 학교와 학원만 다닌다면, 우리는 그저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쳇바퀴 삶을 되풀이할 테지요. 인문책을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삶은 못 지을 테지요.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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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1 13:04   좋아요 0 | URL
절로 끄덕여지는 고개..네..그럼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부모는 자식이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부모˝라는 말과도
일맥이 아닐까...합니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밥을 대신 먹고 배불러 줄 수 없는 것같이...
겨울이나 여름이나 우물의 상시 온도는 같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필요에
의해 변온은 스스로 하고도 우물이 그리 한냥.. 힘을 실어 주는지도 모를 일 입니다.
어릴 때 지하수를 연결한 수도에 물을 틀면
어리던 엹은 수증기..연기 같던..그 물의 마술...오늘도 함께살기 님과 더불어 사는
하루..될 것 입니다. 많이 웃으시길~^^

파란놀 2015-01-11 17:32   좋아요 0 | URL
저희 식구가 사는 마을에는
마을 어귀에 샘터와 빨래터가 있어요.
이곳에 흐르는 물을 보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요.

샘터 물이 겨울에 따뜻한 줄은
시골에서 살며 처음 알았지요.
그래서 예부터 시골에서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기저귀를 빨 수 있기도 했겠네
하고 돌아보곤 해요.

그러고 보면, 겨울에 얼지 않는 물은
따뜻하기 때문일 테지요...

[그장소] 2015-01-11 17:43   좋아요 0 | URL
저도 체험상 겨울물이 특히 지하수를 쓴 경험자기에..알아요..^^
내 경험은 그런데..그랬단 말이지..하게되는 일반 상식..체험을 뚫지는 못하기에 저는 겨울이면 따듯하다는
그 샘터의 물을 믿어요.다른 이는 몰라도 장담하는 거죠.
경험이 과학을 이기는 것도 있고..증명이 안된다 해도 그기억마저 속일 수는 없다고요..
그런 마을은 보통 우물 정자 가 들어가는 이름을 갖던데..그곳 이름이..궁금해집니다.

얼지않느니..부지런하고 따뜻한 물일 거라고..믿습니다.부러운 곳에..사시는...ㅎㅎ

파란놀 2015-01-11 17:51   좋아요 0 | URL
저희 마을은
전남 고흥 도화면에 있는 동백마을입니다.
마을에 샘터와 빨래터가 두 군데씩 있어요.
이제는 빨래터를 아무도 안 써서
제가 두 아이하고 보름에 한 차례씩
물이끼 걷으려고 청소를 하는데,
한겨울에도 맨발로 들어가서 춥지 않게 물이끼를 걷습니다 ^^

마을 할매도 푸성귀를 다듬을 적에 빨래터로 가지고 와서 하시고요~
 
신발 속에 사는 악어 사계절 저학년문고 12
위기철 지음, 안미영 그림 / 사계절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48



잔소리와 사랑 사이에서

― 신발 속에 사는 악어

 위기철 글

 안미영 그림

 사계절 펴냄, 1999.4.3.



  잔소리는 이렇게 꾸민들 저렇게 덧씌운들 언제나 잔소리입니다.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잔소리를 해도 잔소리는 늘 잔소리입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요렇게 꾸미거나 조렇게 꾸미더라도,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잔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안 꾸미거나 저렇게 안 덧씌워도 늘 사랑입니다. 딱히 웃음을 짓지 않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굳이 꾸미지 않습니다. 사랑은 애써 덧씌우지 않습니다. 사랑을 듣는 사람은 한결같이 사랑을 듣습니다.



.. 할머니도 늙고 / 호랑이도 늙고 /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 길고 긴 가래떡 ..  (가래떡)



  위기철 님이 쓴 동시 《신발 속에 사는 악어》(사계절,1999)를 읽습니다. 위기철 님은 ‘잔소리’를 여러모로 꾸미고 덧입히면서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했답니다. 아이한테 늘 잔소리만 늘어놓는 이녁 모습을 돌아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는군요.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을 떠올리자면 아무 말이나 들려줄 수 없습니다. 어버이가 거칠게 말하면 아이도 거칠게 말해요. 어버이가 잔소리쟁이라면 아이도 잔소리쟁이가 될 테지요. 그러니, 위기철 님은 이녁 잔소리에 이야기옷을 입힙니다. 투덜투덜거리는 잔소리가 아니라, 상냥하고 재미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기를 빕니다.



..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 세모들만 살고 있는 세모 나라에 / 세모 아가씨와 세모 총각이 결혼해서 / 네모 부부가 되었대 ..  (세모 나라가 사라진 까닭)



  이야기라는 옷을 입은 잔소리는 새롭습니다. 아이는 여느 때 듣던 잔소리가 아니니 귀가 안 따갑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깨닫지요. 이 이야기도 알고 보면 ‘잔소리’인 줄 깨달아요.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이야기로 짓지 않고, 잔소리에 옷을 입힐 뿐인 말은 ‘새로운 잔소리’입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말을 안 쓰고 ‘글쓰기’라는 말을 쓰지만, 정작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글을 쓰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못합니다. 이름은 ‘글쓰기’로 바꾸더라도 낡은 교육 얼거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해마다 입시제도를 고친다느니 무엇을 한다느니 법석을 떨지만, 막상 입시지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바꾼다고 하면 껍데기가 바뀔 뿐, 알맹이가 바뀌지 않습니다. 알맹이를 바꾸어야 비로소 알맹이가 바뀝니다. 입시지옥을 없애야 아이들이 지옥에서 풀려납니다. 입시지옥은 그대로 두면서, 시험제도만 바꾼다 한들 아이들이 지옥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 너는 참 좋겠다. // 엄마가 비싼 옷을 안 입히니 / 모래 장난도 실컷 할 수 있거, //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 피아노 연습도 안 하겠구나 ..  (누가 더 행복할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지어서 아이한테 들려주어야, 아이도 어른도 즐거울까요? 우리는 아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서로 즐거우면서 기쁘게 웃을까요?


  아주 쉽습니다. 사랑을 이야기로 지어서 들려주면 됩니다. 꿈을 이야기로 지어서 들려주면 됩니다. 사랑을 이야기로 지으면 언제나 사랑입니다. 꿈을 이야기로 지으면 언제나 꿈입니다. 그러니까, 잔소리를 이야기로 지으니 이러한 이야기는 언제나 잔소리일 뿐이에요. 겉보기로는 맛깔스럽거나 구성지거나 재미나 보이지만, 가만히 읽고 보면, 남는 것은 오로지 잔소리입니다.


  동시와 동화를 쓰는 어른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쓰는지 제대로 생각하거나 살펴야 합니다. 아이한테 어떤 마음밥을 먹이고 싶은지 올바로 헤아리거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잔소리밥을 먹으면 기뻐할까요? 아이들이 사랑밥을 먹거나 꿈밥을 먹을 적에 기뻐하지 않을까요?



.. 네가 잠이 들면 / 세상도 모두 잠이 든단다. / 텔레비전은 하품을 하고 / 시계는 코를 골고 / 길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 말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 쿨쿨 잠을 잔단다 ..  (잠자기 싫을 때 읽어 봐)



  말재주를 부리는 글은 말재주입니다. 말재주는 동시가 아닙니다. 말장난을 치는 글은 말장난입니다. 말장난은 동시가 아닙니다.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을 줄 아는 위기철 님인 만큼, 잔소리에 옷을 입히려는 몸짓이 아닌, 아이와 함께 사랑으로 짓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엮는다면 아주 아름다울 만하리라 봅니다. 왜 구태여 잔소리를 동시로 써야 할까요? 아이한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뜻이 없기에 잔소리를 가볍게 이야기로 꾸미고 말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아이하고 더 신나게 뛰놀면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려는 삶이 못 되기에 그만 잔소리에 살그마니 손쉽게 덧옷을 입히고 말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 눈물 대신 꿀물이 나오는 / 그런 아가씨가 살고 있었대. // 아가씨가 울 때마다 / 들판에 나비랑 꿀벌들이 날아와 / 꿀을 빨아먹기 때문에 / 아가씨는 슬퍼도 울 수가 없었지 ..  (울고 있을 때 읽어 봐)



  아이와 함께 밥을 지어요. 아이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맡기면서 함께 밥을 지어요. 그러면 아이는 눈을 똘망똘망 밝히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고픈 줄조차 잊으면서 밥짓기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아이와 함께 손으로 척척 비벼서 걸레를 빨고는, 노래하면서 온 집안을 닦아 보셔요. 아이는 눈빛을 환하게 밝히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팔 아픈 줄조차 잊으면서 걸레질에 온힘을 기울입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노래하는 시 한 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삶을 꿈꾸면서 짓는 웃음 한 자락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 어버이가 우리한테 물려준 사랑과 꿈을, 오늘 어른으로 이 땅에 선 우리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즐겁고 기쁘게 다시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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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89] 길은 늘 하나



  너와 내가 있는 이곳에

  날마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부니

  너와 내가 걷는 길은 같네.



  나는 내 길을 걷고, 너는 네 길을 걷습니다. 서로 다른 길입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지만,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사는 이웃이면서, 날마다 똑같이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십니다. 엇갈리는 길이로구나 싶은데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납니다. 엇갈리는 길을 거닐며 지구를 한 바퀴 도니까 서로 만나요. 빗물은 구름을 타고 날다가 냇물을 타고 흐릅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이곳저곳 드나듭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일구지만, 다 다른 삶은 모두 사랑과 꿈이라는 대목에서 곱게 만납니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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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00) 정하다定 10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고, 정해진 순서에 맞춰 차근차근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 178쪽


 정해진 순서에 맞춰 차근차근

→ 주어진 때에 맞춰 차근차근

→ 때와 곳에 맞춰 차근차근

→ 자리에 맞춰 차근차근

→ 차근차근

 …



  한국말사전을 보면 ‘순서(順序)’를 ‘차례’로 풀이하고, ‘차례(次例)’는 다시 ‘순서’로 풀이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두 낱말은 다르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두 낱말은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낱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이러한 한자말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지난날에는 ‘앞뒤·위아래·줄·흐름·하나씩·차근차근’ 같은 낱말을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썼으리라 느낍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정해진 순서에 맞춰”와 “차근차근”을 나란히 적는데, 두 말마디는 뜻이 같습니다. 앞말을 덜든 뒷말을 덜든 글흐름은 같습니다. 4340.11.9.쇠/4348.1.1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렇게 하자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爲)해서는”은 “이렇게 하자면”으로 다듬습니다. “마음을 급(急)하게 먹지 말고”는 “서두르다 말고”나 “마음을 바삐 먹지 말고”로 손질하고, “나아가는 태도(態度)가 필요(必要)하다”는 “나아가야 한다”나 “나아가야 좋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82) 정하다定 11


“이 약초는 아주 깊은 산에서 캔 것이니 딴 데 것보다 갑절은 받아야 하오.” 할머니는 아주 당당하게 값을 정했습니다

《권정생-밥데기 죽데기》(바오로딸,1999) 9쪽


 값을 정했습니다

→ 값을 매겼습니다

→ 값을 붙였습니다

→ 값을 불렀습니다

→ 값을 말했습니다

 …



  예부터 한국사람은 값을 ‘매기’거나 ‘붙이’거나 ‘부르’거나 ‘말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때부터 이 모든 말을 잊고 ‘定한다’처럼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합니다. 4341.4.9.물/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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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풀은 아주 깊은 멧골서 캤으니 딴 데 것보다 갑절은 받아야 하오.” 할머니는 아주 다부지게 값을 불렀습니다


‘약초(藥草)’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약풀’이나 ‘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심심(深深)’이라 하지 않고 “아주 깊은”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도라지 노래에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처럼 노랫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한국말은 ‘심심’이 아닌 ‘깊은’입니다. “캔 것이니”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캤으니”로 손볼 만합니다. ‘당당(堂堂)하게’는 ‘다부지게’나 ‘야무지게’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89) 정하다定 12


이처럼 지켜야 할 몇 가지 약속이 있지만, 그밖에 하고 싶은 것들은 아이들 스스로 정합니다 … 마음에 드는 재료를 모으고 뭘 만들지 정하렴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53, 83쪽


 아이들 스스로 정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생각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다짐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세웁니다

→ 아이들 스스로 찾습니다

→ 아이들 스스로 고릅니다

 뭘 만들지 정하렴

→ 뭘 만들지 생각하렴

→ 뭘 만들지 헤아리렴

 …



  아이는 누구나 놀거리를 제 힘과 머리와 손과 몸으로 찾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손수 찾습니다. 놀이뿐 아니라 일과 공부도 아이가 얼마든지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른은 곁에서 아이를 따사로이 이끌면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힘을 북돋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듯이, 모든 놀이와 일과 공부를 아이가 스스로 찾도록 이끌어야, 이 아이는 나중에 씩씩하게 설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찾습니다. 스스로 헤아리고, 스스로 고릅니다. 알맞게 쓸 말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나눌 말을 스스로 찾습니다. 사랑스레 주고받을 말을 스스로 헤아립니다. 4341.4.17.나무/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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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켜야 할 몇 가지가 있지만, 그밖에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합니다 … 마음에 드는 것을 모으고 뭘 만들지 생각하렴


“몇 가지의 약속”이 아니라 “몇 가지 약속”으로 적으니 반갑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면, ‘약속(約束)’도 ‘다짐’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재료(材料)’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것’으로 손볼 만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07) 정하다定 13


부모가 정해 준 여자와 마지못해 사는 처지에서 볼 때,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엔도오 슈우사쿠/윤현 옮김-예수 지하철을 타다》(세광공사,1981) 6쪽


 부모가 정해 준 여자

→ 어버이가 고른 여자

→ 어버이가 알아본 여자

→ 어버이가 맞선을 보게 한 여자

→ 어버이가 선을 보인 여자

 …



  함께 살아갈 짝을 스스로 고를 수 있고, 누군가 골라서 맺어 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만나고 어울리면서 함께 걸어갈 테지요. 첫눈에 반하든, 마음에 깊이 닿든, 제 꿈에 걸맞다 싶은 사람이라고 느끼든, 고이 여기며 살아갈 때에 즐거우리라 봅니다. 4341.5.13.불/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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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가 고른 여자와 마지못해 사는 내 삶을 볼 때,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부모(父母)’라는 낱말은 딱히 한자말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낱말은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밝힐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우리가 5월 8일을 ‘부모날’이 아닌 ‘어버이날’이라고 하듯이, ‘어버이’라는 말 쓰임새를 더 넓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못해 사는 처지(處地)”는 “마지못해 사는 내 삶”이나 “마지못해 사는 내 모습”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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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발자취 5 - 시간여행 카스가연구소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50



너한테 다가서는 길

― 너와 나의 발자취 5

 요시즈키 쿠미치 글·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4.12.28.



  이 길을 따라서 천천히 가면 지구별을 한 바퀴 돌 수 있을까요. 이 길을 따라서 가면 막다른 골목이 나올까요. 이 길 끝에는 바다나 냇물이 저쪽으로 건너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을까요.


  마당을 빙글빙글 돕니다. 낮에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마당을 돌고, 밤에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마당을 돕니다. 구름을 올려다볼 적에는 파랗게 눈부신 낮빛이 내 몸으로 스미고, 별을 올려다볼 적에는 하얗게 부서지는 밤빛이 내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함께 사는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는 낮밤으로 구름빛과 별빛을 늘 나란히 받으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같은 바람을 마시고, 같은 볕을 쬐며, 같은 달빛을 받습니다.



- “너는 얼굴도 예쁘니까, 웃으면서 꽃을 기르면 아마 다들 널 좋아할 거야.” (13쪽)

- ‘사랑했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애가 탔기 때문에 망설이고,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네 행복을 빌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사키, 너의 대답. 네가 9년에 걸쳐서 만든, 널 대변해 주는 이 광경. 이 광경을 본 덕분에, 난 이제야 겨우 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27쪽)





  너한테 다가서는 길은 내 마음을 여는 길입니다. 나한테 다가오는 길은 네가 마음을 여는 길입니다. 서로 만나려면 서로 마음을 엽니다. 서로 사귀려면 서로 마음을 덥힙니다. 내 마음에 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열고, 내 품에 네가 포근히 안기도록 내 마음을 덥혀요.


  꽃길을 걸으면서 꽃내음을 맡습니다. 내가 가는 길도 네가 오는 길도 언제나 꽃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숲길을 걸으면서 숲빛을 먹습니다. 내가 가는 길도 네가 오는 길도 노상 숲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있기에 즐거운 지구별이고, 같이 살기에 아름다운 지구마을이라고 느낍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이든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이든, 캐나다라는 나라이든, 칠레라는 나라이든 모두 즐거우며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 별에서 같은 숨을 쉬면서 같은 꿈을 꿉니다.



- ‘난 결국, 사람에게 완전히 절망할 수조차 없었어. 언니, 미안해. 애써서 잃어버린 도시와 같이 연구소를 건립했지만, 나에게는 무리였어. 하지만, 우유부단한 나치고는 혼자서 많이 노력했지? 조금은 칭찬해 줄 거지? 언니.’ (40∼41쪽)

- “기뻤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미소가 이렇게나, 이렇게나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줄은.” “‘이유’ 같은 건 없어. 인간의 행복은 무조건적으로 기쁜 거야!” (88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 《너와 나의 발자취》(서울문화사,2014)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시간이 서로 엇갈리면서 두 번 다시 못 만날 수밖에 없던 두 사람이, ‘엇갈린 시간을 겹치게 하는’ 시간장치를 만들어서 만납니다. 과학이라는 힘을 빌어서 만나는데, 과학이라는 힘을 쓰려면, 기술이 발돋움해야 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써야 합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뼈대 가운데 맨 위쪽에 있는 머리를 써서, 온힘을 기울이면, 비로소 과학이 힘을 냅니다. 그러니까, 뇌를 많이 쓸 만큼 힘을 낼 때에 과학이 발돋움하는데, 뇌를 모두 쓸 수 있다면 따로 과학이라는 힘을 빌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뇌를 모두 쓸 때에는 사람들 누구나 입이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테니까요. 눈을 감고 입을 닫아도 마음으로 서로 만나고 사귀면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서도 기쁘게 이야기꽃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요.




-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얼마든지 있는걸! 저렇게 사람을 비웃는 놈보다 난 널 믿어!” (120쪽)

- “내가 너 같은 태양처럼 멋진 사람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연도 기적도 아닌 여동생이 그 장소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야.” (173쪽)



  웃음은 과학으로 재지 못합니다. 웃음이 왜 기쁨을 불러일으키는지 과학으로 밝히지 못합니다. 노래는 과학으로 따지지 못합니다. 노래가 왜 즐거움을 북돋우는지 과학으로 캐내지 못합니다.


  시 한 줄이나 춤 한 자락을 과학으로 짓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가락이 시로 태어납니다. 마음에서 일으킨 사랑스러운 숨결이 춤으로 거듭납니다.


  너한테 다가서는 길은 이런 까닭이나 저런 핑계가 아닙니다.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너한테 다가섭니다. 나한테 다가오는 길은 이런 구실이나 저런 실마리가 아닙니다. 가없이 밝은 사랑으로 나한테 다가옵니다. 서로 아름답게 만나고, 서로 기쁘게 사랑하고 싶어서, 마음을 가꾸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4348.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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