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적에는 먹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배울 적에는 따로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배우려고 하면, 배우다가 배가 고파서 힘들지 않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나로서는 무엇을 배울 적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밥은 몸을 살리는 기운이고, 배움은 마음을 살리는 기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살리는 기운을 맞아들이면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잊습니다. 마음을 살리는 기운을 받아들이면 때와 곳을 넘어섭니다. 이를테면, 마음을 살리는 기운을 배울 적에는 시간이 가는 줄 잊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으며, 내 몸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하는 대목을 모두 잊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수 있는 몸이 없습니다. 내 삶을 가꾸는 길을 알려주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배운다고 할 적에는, 오직 내 마음만 있으니 ‘밥을 먹으려 한다 하더라도, 밥을 집어넣을 입이 없는’ 셈입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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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 낳는 글쓰기



  ‘선입관’이나 ‘가치판단’이나 ‘고정관념’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첫머리부터 모든 실마리를 밝힌다면, 선입관과 가치판단과 고정관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이 세 가지는 그저 선입관이고 가치판단이며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온누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습니다. 좋은 것이 있거나 나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온누리는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선입관은 늘 선입관을 낳습니다. 가치판단은 늘 가치판단을 낳습니다. 고정관념은 늘 고정관념을 낳습니다. 선입관을 한 번 가슴에 품으면, 앞으로 이 가슴에는 선입관이 새로 찾아들어서 쌓입니다. 가치판단을 한 번 마음에 담으면, 앞으로 이 마음에는 가치판단이 새로 기어들어 쌓입니다. 고정관념을 한 번 마음에 두면, 앞으로 이 마음에는 고정관념이 새로 밀려들어 쌓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쪽에서 선입관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저쪽에서도 선입관으로 바라봅니다. 이곳에서 가치판단으로 재려는 사람은 저쪽에서도 가치판단으로 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스럽고 싶다면, 사랑을 마음에 담으면 됩니다. 아주 쉽습니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마음에 사랑을 담으면 돼요. 책을 읽고 싶다면? 그러면 책을 마음에 담으면 되지요.


  우리가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책을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겉멋을 부리거나 책으로 이름값을 내세우고 싶어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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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한테는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따로 없다. 내가 ‘하려는 일’이라면, 모두 할 수 있고, 내가 ‘안 하려고 하는 일’이면 모두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쉬워서’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우리 스스로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을’ 때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쉽다고 해서 할 수 있지 않고, 어렵다고 해서 할 수 없지 않다. 어려워서 못 하는 일이 아니라 ‘하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지 않’기에 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쉬운 책을 읽어야 할까,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가? 두 가지 책 모두 읽을 까닭이 없다.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이 있으면 두 가지 모두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을 마음에 심어서 삶을 가꾸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기운을 내게끔 이끄는 책이 바로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이다.


  우리는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없다. 다만,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려고 읽는 책이 있을는지 모르고,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라서 읽을는지 모르며,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서 읽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이런 책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책들은 모두 ‘머리에 지식을 쌓아서 다시 지식을 쌓는 일’이나 머릿속에 철학과 사상과 관념과 가치판단을 심는 일이다. ‘머리에 지식 쌓기’는 ‘책읽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책읽기는 언제나 삶읽기이고, 삶읽기는 삶짓기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남이 읽는 대서 읽을 까닭이 없다. 남이 읽으라고 하니까 읽을 까닭이 없다. 남이 많이 읽으니 나도 읽어야 하지 않는다. 남이 안 읽으니까 오히려 읽겠다고 할 까닭이 없다.


  나는 오직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고르고, 제대로 읽은 뒤, 제대로 마음으로 삭이고 나면, 제대로 느끼셔,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슬기를 갈고닦아서, 제대로 삶을 짓는 길을 걸으면 된다. 어려운 책이나 쉬운 책을 읽을 까닭이 없고, 이름나거나 이름 안 난 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 4348.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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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 한 권



  나는, 내 꿈을 내 말로 외쳐서 내 삶으로 짓는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뜻은 오직 이 하나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는다. 나는, 내가 쓴 책을 읽는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과 책은, 모두 내가 이루려는 꿈을 담은 글이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지으려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책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은 안 읽었는가? ‘사회의식’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을 어마어마하게 읽는다. 그런데, ‘다룬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은 알고 보면, 모두 내 마음속에서 흐르던 이야기이다. 내 마음속에 흐르던 이야기를 내 이웃과 동무인 다른 사람들이 이녁 목소리로 엮어서 글과 책으로 지었다. 너와 나는 언제나 한몸이면서 한마음이기에, 나는 내 책을 읽고, 내 넋을 가꾸어, 내 삶을 짓는다. 내 하루를 누린다. 4348.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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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빨래란



  밀린 빨래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앞으로 해야 할 빨래가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빨래를 해서 옷을 깨끗하게 바꾸면, 나는 앞으로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 옷 한 벌을 깨끗하게 빨면, 나는 깨끗한 몸에 깨끗한 옷을 입혀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 빨래는 오늘 하루에 모두 해치울 수 있지만, 굳이 모든 빨래를 하루에 다 해치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듬날 즐길 빨래를 오늘 모두 해치우면, 이듬날에는 재미난 놀잇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못 해서 빨래가 밀리면, 이듬날 즐길 빨래가 있다는 뜻이다. 이듬날에 빨래를 다 못하면 또 하루 뒤에 즐길 빨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지어서 하루를 누린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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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0 21:49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이 밀려서 민망할 때도 있어요. ㅎㅎ

파란놀 2015-01-21 11:4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렇지요~ ㅋㅋ
빨래란 참 재미난 선물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