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와 글쓰기



  들을 사람은 듣도록 하고, 읽을 사람은 읽도록 한다. ‘강의’는 들을 사람이 듣도록 하는 말이다. ‘글쓰기’는 읽을 사람이 읽도록 한다. 교수나 교사나 강사가 나와서 떠들기에 강의가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늘 ‘들을 이야기를 듣도록 말할’ 때에 강의라고 한다. 작가나 지식인이나 학자가 이런 신문이나 저런 잡지에 이것저것 휘갈기거나 싣는다고 해서 글이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늘 ‘읽을 이야기를 읽도록 글쓸’ 때에 글이라고 한다. 4348.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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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늘 기다립니다



  아이는 늘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지켜봅니다. 아이가 놀라운 넋이라고 하는 까닭은, 아이는 늘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내 모습을 돌아보셔요. 어른인 나는 무엇을 하는가요? 어른인 나는 기다리나요? 어른인 나는 지켜보나요? 기다리지 않고 지켜보지 않은 채 아이를 닦달하는 내 모습을 똑바로 똑똑히 느껴야 합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제껏 제대로 못했다면, 그저 이제껏 제대로 못했을 뿐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리지 못했다면, 그저 이제껏 제대로 삶을 누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이는 열 살까지 지켜보고, 스무 살까지 지켜보고, 쉰 살까지 지켜보고, 백 살까지 지켜봅니다. 늘 지켜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와 무엇을 하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그러면 다 됩니다.


  어버이가 밥을 지으면, 밥내음을 맡으면서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어버이가 돈을 벌려고 일터에 가면, 어버이가 돈을 다 벌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어버이가 배움길을 떠나면, 어버이가 잘 배우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어버이가 저를 재우려고 잠자리를 마련해서 누이면 자장노래를 불러 주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사랑스레 기다리는 아이를 사랑스레 품어요. 사랑스레 꿈꾸고 지켜보는 아이하고 두 눈을 맑게 맞추면서 마음을 읽어요.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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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똥



  시골에서 살며 풀을 즐겨먹으면 똥빛이 푸릅니다. 풀을 먹으니 풀빛 똥을 누지요. 고기를 먹으면 고기 빛깔이 감도는 똥을 누고, 라면을 먹으면 라면 빛깔이 흐르는 똥을 누어요.


  그런데 며칠 앞서부터 내가 누는 똥이 새로운 빛깔이 됩니다. 처음에는 갸우뚱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요 며칠 동안 ‘내가 늘 즐겨먹던 풀’을 못 먹었는데, 람타공부를 하러 고흥을 떠나 강화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엿새째 머물면서 풀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고, 어쩌다가 콩나물이나 시금치나 당근 몇 조각을 겨우 먹을 뿐인데, 날마다 고기에 햄에 달걀에 이런 것만 먹는데, 게다가 그동안 몸에서 안 받아서 못 먹던 김치도 먹는데, 어떻게 내 똥빛이 푸른가 하고 갸우뚱갸우뚱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저녁이 되니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는 나한테 말을 걸었어요. 나는 ‘푸른 바람’이 되자고 말을 걸었어요. ‘푸른 바람으로서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파란 별이 되자’는 말을 내가 나한테 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을 내가 나한테 처음으로 한 날부터 나는 푸른 똥을 누었습니다. 내가 푸른 숨결이니 무엇을 몸에 집어넣더라도 푸른 똥이 됩니다.


  내 몸 한곳이 바뀌는 모습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고, 예전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나한테 들려줄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을 씨앗으로 삼아 내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 이 생각이 자라서 움직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누리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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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4 토성 맨션 4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박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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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54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별꽃

― 토성 맨션 4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박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8.



  별이 마치 꽃과 같이 되어 내 마음속에서 피어납니다. 처음에는 한 송이, 곧 두 송이, 이내 세 송이, 이윽고 네 송이, 차츰차츰 늘어 숫자로는 도무지 셀 수 없이 환하고 맑은 별잔치가 이루어집니다. 별잔치는 별꽃잔치요, 별꽃잔치를 누리는 내 마음은 아늑하면서 넉넉합니다.


  아마 내 이웃과 동무도 이렇게 아늑하면서 넉넉한 마음일 테지요. 내 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마음자리가 아늑하면서 넉넉할 테지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잊거나 잃으면서 자꾸 헤매고 또 헤매며 거듭 헤매는구나 싶어요. 즐겁게 나아가는 길보다는 아프게 맴돌이를 하고, 기쁘게 노래하는 길보다는 스스로 괴롭히는 짓까지 일삼아요.



- ‘어쩌면 지금 창을 닦는 게 시험을 위한 연습 때문이라 해도, 난 그저 지금까지처럼 착실히 일에 임할 뿐이다. 평소 손에 익은 감각을 느끼며 늘 그랬던 것처럼.’ (14쪽)

- “맘을 비워. 애초부터 재능 따윈 없었다고 생각해. 물론 얼마만큼 성과를 보이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 하나하나가 모여 앞으로 살아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테니까.” (19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2) 넷째 권을 읽습니다. 《토성 맨션》 넷째 권에서는 ‘별에서 별을 보는’ 이야기와 ‘별에서 별이 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별에서 별을 보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내 마음이 별이기에 내 이웃과 동무 마음도 별이고, 서로 별이기에, 내가 나를 느끼면서 너를 바라보면, 나는 별에서 별을 봅니다.


  별에서 별이 되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내 마음에서 태어난 별꽃은 네 마음에서도 태어나는 별꽃이기에,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 다 함께 별에서 별이 됩니다.



- ‘남들한텐 모범이 되고,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고, 내 곁엔 이렇게나 가까이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33쪽)

- “그게 미쓰의 좋은 점이잖아요. 소심하니까 고객 마음도 살필 수 있는 거고요.” “누군 못 살핀단 말이냐.” “이번 일을 계기로 일어설 거예요.” (46쪽)



  삶은 아름답지도 안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삶은 언제나 삶입니다. 삶은 언제나 삶인데, 이러한 삶에 옷을 하나 입힙니다. 옷을 하나 입히니 새롭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삶에는 이제부터 아름다움이라는 빛이 생깁니다. 다른 옷을 하나 더 입히면서 다시 새롭고, 다시 새로우면서 새삼스러운 아름다움이 빛으로 자랍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움을 사희의식이나 가치판단이나 법이나 제도 따위로는 잴 수 없습니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데 저것은 안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삶이 삶이 되면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됩니다. 지구별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로 빛납니다.



- “전설의 창문닦이로 남진 못하더라도, 난 좀더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하고 싶어.” (56쪽)

- “미쓰, 나 솔직히 창문닦이 일 같은 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 “네?” “창문 따위 닦는대도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건 혜택 받은 사람들뿐이잖아? 그런데도 창문닦이들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고, 대체 뭘 위해서?” (60쪽)



  삶이 삶이 되도록 가로막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 누군가는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이 누군가는 스스로 사람이 아니기에,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사람다운 넋인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내가 사람됨을 잃으면 나는 내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사람됨을 잃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길로 갑니다. 내가 사람됨을 찾아서, 삶과 사람으로서 사랑을 지을 수 있으면, 나는 이러한 사랑을 둘레에 나누는 숨결이 됩니다.



- “저는 오랜 시간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확인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확인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혼자가 되고 싶스빈까? 저는 아무 지령도 받지 못했고, 단지 이곳에 있을 뿐입니다.” (136쪽)



  꽃을 노래합니다. 별꽃을 노래합니다. 내 마음밭에서 피어나는 별꽃을 노래합니다. 내 노랫소리를 듣고 내 이웃과 동무와 곁님도 마음밭에서 별꽃을 피웁니다. 별꽃을 피운 이웃과 동무와 곁님이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며,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웃습니다. 우리 삶은 별꽃이 피는 아름다운 노래잔치입니다.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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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 - 깊이 생각하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모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저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깊이 생각하기도 하며, 얕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넓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좁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크게 생각하거나 작게 생각할 만하고, 함부로 생각하거나 살가이 생각할 만합니다.


  깊이 생각한다면, ‘깊은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깊이 생각하기에 ‘깊은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깊은생각’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낱말을 안 쓰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를 안 바라는지, ‘깊은생각’이라는 낱말은 안 쓰고 ‘숙고(熟考)’라는 한자말을 써요.


  한자말 ‘숙고’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곰곰이 잘 생각함”을 뜻한다 하고, ‘熟’은 ‘익다’를 가리켜요. 곧, “익은 생각”이 ‘깊은생각’은 셈이니, 익지 않은 날것에 찬찬히 불기운을 넣어서 익히는 일을 빗대어 ‘숙고’라 하고, 익지 않은 생각이 익을 수 있도록 찬찬히 따순 숨결을 불어넣는 일이 ‘숙고’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깊이 할 적에는, 말 그대로 ‘깊은생각’일 수 있으며, ‘익은생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로 쓰면 내 마음을 한결 또렷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저 깊이 생각하기에 ‘깊은생각’이고, 생각이 잘 익어서 따스하도록 하기에 ‘익은생각’입니다. 생각은 ‘넓은생각’이나 ‘너른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큰생각’이나 ‘거룩생각’이나 ‘훌륭생각’이 될 수 있어요.


  생각은 어느 때에 괴롭거나 힘든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때에는 ‘고민(苦悶)’이라고도 하는데, 이 한자말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을 뜻한다고 해요. ‘苦’는 “괴로움”이고, ‘悶’은 “번민”이에요. 그런데 ‘번민(煩悶)’은 “괴로움”으로 고쳐쓸 한자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밑을 살피면, 한자말 ‘고민’은 “괴로움 + 괴로움”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기에 한자말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고민’이나 ‘번민’ 같은 낱말이 일본을 거쳐서 물결처럼 들어오기 앞서 어떤 낱말을 썼는지 헤아리면,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이 있습니다. 될는지 안 될는지 몰라서 애를 태우다가 그만 마음이 괴롭고 마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인 ‘걱정·근심·끌탕’입니다.


  차근차근 돌아봅니다.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실마리를 스스로 얻지요. 수수께끼는 어느 똑똑한 사람이 풀어 주지 않아요. 스스로 똑똑한 마음이 될 때에 수수께끼를 낼 수 있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모든 실마리는 나한테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수수께끼를 못 풉니다. 수수께끼를 못 풀기에 수수께끼를 짓지 못해요. 수수께끼를 스스로 짓지 못하는 사람은 실마리를 스스로 못 얻는 사람이고, 실마리를 스스로 못 얻으니, 언제나 괴롭습니다. 괴로운 마음이기에 수수께끼는 늘 어렵기만 하고, 늘 어렵기만 한 수수께끼인 터라 자꾸 맴돌거나 떠돕니다.


  ‘깊은생각’은 한 가지를 놓고 자꾸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는 마음이 됩니다. ‘깊은생각’은 한 가지가 제대로 풀릴 실마리로 나아갑니다. ‘걱정’은 한 가지를 놓고 제대로 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만 게으르고 말아, 실마리를 푸는 몫을 남한테 떠넘기고 싶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괴로운 데로 나아가는 걱정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우리 몫입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다만, 한쪽은 실마리를 푸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괴롭고 아프면서 힘든 길입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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