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2 말과 넋과 삶



  사람은 누구나 삶을 가꾸는 넋을 말로 짓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나라와 겨레는 다르지만, 다 다른 나라와 겨레에서 ‘제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넋을 짓고, 말로 지은 넋으로 삶을 짓습니다. 그래서, 말을 가꾸는 삶은 넋을 가꿀 수 있고, 넋을 가꾸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말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넋을 가꿀 수 없으며, 넋을 가꿀 수 없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누구나 스스로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손수 생각을 북돋우면 마음에 환하게 그림 하나 그릴 수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거나 캐내서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쓰며 핀란드사람은 핀란드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한국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사람이 일본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핀란드사람이 핀란드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토박이말’일 텐데, ‘그냥 토박이말’이 아니라, 내 생각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는 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글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한글로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담을 수 있습니다. ‘굿바이’는 영어를 담은 한글입니다. ‘사요나라’는 일본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쎄쎄’는 중국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이러한 ‘한글’은 말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쓸 말은 그예 수수한 말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이고, 시골과 도시에서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쓰고, 지식이 적은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 나란히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많이 배우거나 책을 꽤 읽은 사람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이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은 ‘조금도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로는 넋을 가꾸지 못하고, 이런 말로는 삶을 가꾸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을 털어내고서,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이러한 말로 넋을 가꿉니다.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아니라면, 말부터 못 가꾸니까 넋을 못 가꾸지요.


  신분이나 계급을 가르는 말도 ‘껍데기 한글’입니다. ‘말’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입니다. 그래서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인 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알아차리고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슬기롭게 보고, 말을 언제나 새롭게 배울 적에, ‘나는 말을 가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을 가꾼다’고 될 때에 비로소 ‘나는 넋을 가꾼다’가 되며, 이때에 저절로 ‘나는 삶을 가꾼다’가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말을 꾸미거나 치레하는 일은 ‘말 가꾸기’가 아닙니다. 말을 이쁘장하게 꾸미거나 말을 그럴듯해 보이도록 치레하는 일은 ‘말 꾸미기’나 ‘말치레’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넋 꾸미기·넋치레’가 아니고 ‘삶 꾸미기·삶치레’일 수 없으니, 우리는 꾸미기나 치레가 아닌 가꾸기를 할 노릇이요, 말을 제대로 바라보고 똑바로 알아차리며 슬기롭게 가꾸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4348.1.1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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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개 삽사리 우리 문화 그림책 3
이가을 지음, 곽영권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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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2



어떤 숨결이 되고 싶은가

― 사자개 삽사리

 이가을 글

 곽영권 그림

 사계절 펴냄, 2005.9.26.



  나무는 겨울에도 제자리에 우뚝 서서 찬바람을 맞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이고, 나뭇줄기에도 눈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나무는 눈이며 바람을 모두 맞아들이면서 겨울마다 더욱 씩씩하게 자랍니다.


  나무는 여름에도 한 곳에 곱게 서서 불볕을 쬡니다. 여러 날 가뭄이 들든 여러 날 장마가 지든 볕과 비를 모조리 맞습니다. 나뭇잎이 바싹 마르겠구나 싶은 날에도, 나뭇잎이 빗물에 온통 젖는 날에도, 볕과 비를 고맙게 맞아들이면서 여름마다 한결 튼튼하게 자랍니다.


  풀벌레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풀밭에서 지냅니다. 풀밭에서 바람을 쐬면서 하루를 누리고, 풀밭에서 바람 따라 하늘을 날기도 하며, 풀밭에서 밤별을 새하얗게 올려다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새는 눈이 오거나 냇물이 꽁꽁 얼거나 숲에서 지냅니다. 때로는 숲에서 벗어나 마을 언저리에서 먹이를 찾거나 보금자리를 살피려고 합니다. 서로 깃을 부비면서 추위를 견딥니다. 나뭇가지에 살며시 내려앉아 먼 곳을 바라봅니다. 노래하듯이 서로서로 부르고, 펄럭펄럭 가벼운 날갯짓으로 어디로든 날아갑니다.





.. 스님이 가만히 앞을 살펴보니 저만치 웬 사자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오래 굶었는지 배가 홀쭉한 젊은 수사자였습니다 ..  (7쪽)



  사람이 집을 짓습니다. 살 곳을 살펴서 집을 짓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살다가, 짝을 이루어 둘이 살고, 어느덧 아이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아이가 늘면서 살림이 불고, 아이가 자라면서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새로운 집을 짓더니 어느새 마을이 태어나고, 마을에는 오순도순 새로운 이야기가 퍼집니다.


  처음에는 손수 심고 가꾸면서 갈무리하는 삶입니다. 처음에는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어우러지는 삶입니다. 그런데, 함께 얼크러지면서 나누는 삶을 잊고, 누군가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려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손수 씨앗을 심지 않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고, 손수 집을 짓지 않는 사람이 거듭 나타나며, 손수 옷을 짓지 않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도시가 생겨요.


  도시에서 사람들은 ‘내 삶 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 삶 가꾸기’를 하는 듯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 주는 삶’입니다. ‘내 일을 해서 살림을 꾸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삶’입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지내는 집이든 먹는 밥이든 입는 옷이든, 모두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다. 내가 손수 지은 것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우선 이걸 좀 먹자꾸나.” 스님은 주먹밥 한 덩이를 꺼내어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사자는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밥이란다.”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요?” “그래. 논과 밭에서 나는 곡식을 익혀 만든 음식이지.”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나요?” ..  (11쪽)



  이가을 님이 글을 쓰고 곽영권 님이 그림을 그린 《사자개 삽사리》(사계절,2005)를 읽습니다. ‘삽사리’가 된 ‘사자’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사자는 어느 날 제 삶을 새롭게 보았고, 새롭게 보았기에 더는 ‘사자로 지내지 못하겠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사자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 만한 동무가 없습니다. 모두 사자를 꺼릴 뿐입니다.


  사자는 왜 사자를 그만두고 다른 숨결이 되고 싶을까요? 사자는 왜 사자로 지내는 삶을 버리려 할까요? 사자는 왜 사자 아닌 다른 넋으로 거듭나려고 할까요?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모두 목숨입니다. 무엇을 먹든 모두 목숨입니다. 지구별에서 살려면 다른 목숨을 먹어야 합니다. 채식을 하느냐 육식을 하느냐가 아닌, 다른 목숨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내 목숨이 달라집니다.




.. 스님은 지나는 길에 예불을 올리고 사자는 그러는 스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날은 스님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니, 마음을 잘 닦으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느니라.” 이야기가 밥이 되고 이야기가 잠이 되었습니다 ..  (34쪽)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마음만 있는 대서 어느 것이나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머리에서 생각이 나와서 마음에 씨앗을 심어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없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짓지 못합니다.


  사자가 삽사리로 될 수 있던 까닭은 생각을 마음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처음에는 어떤 생각을 심어야 할는지 몰랐어요. 이러다가 어느 스님을 만나 함께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고기도 밥도 안 먹고 ‘이야기’를 먹고 ‘바람’을 마시면서 삶을 지을 수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고, 이 마음에 따라 몸이 달라집니다.


  사자가 삽사리로 거듭났다면, 우리도 다른 숨결로 거듭날 수 있을 테지요. 사자가 마음자리에 씨앗 한 톨 심으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씨앗 한 톨 심으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테지요.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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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1-31 11:37   좋아요 0 | URL
쉽고 아름다운 글에 빠져듭니다. 마음자리에 따뜻한 씨앗 하나 심어 뿌듯하네요.

파란놀 2015-01-31 22:32   좋아요 1 | URL
우리는 언제나 고운 씨앗을 심는 멋진 이웃이라고 느껴요~ ^^
 

'숲집 노래'를 갈무리합니다.

'숲집 노래'란 무엇인가 하면,
내가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 만든 노래를
그대로 따라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 네 식구가 시골살림을 꾸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말마디에 살포시 담으려고 하는 노래입니다.

가락까지 우리 식구가 손수 지을 수 있을 테니,
앞으로는 새로운 노래를 지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멋진 노래가 온누리에 많으니까
멋진 노래를 우리 삶으로 녹여
새로운 아름다움이 될 수 있게끔,
노랫말을 찬찬히 손질합니다.

'노랫말 바꾸어 부르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 맞추어 새로운 노래 부르기'입니다.
지난 여덟 해 동안 큰아이와 작은아이하고 함께
즐겁게 부르던 노래를 하나하나 밝히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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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 노래 2. 햇볕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되어요.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들 마음도 해를 안고서

따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눠요.



  이원수 님이 지은 글에 백창우 님이 가락을 붙인 〈햇볕〉이 있다. 워낙 아름답게 잘 짠 글이기에 굳이 손볼 대목은 없다 할 만했는데, 몇 군데에서 거슬렸다. ‘풀빛’이라는 낱말을 안 쓰고 ‘초록’을 쓴 대목이라든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같은 대목은 손을 보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온세상’을 ‘온누리’로 바로잡았다. 왜 이렇게 손을 보는가 하면, 풀잎과 나뭇잎은 ‘풀빛’일 뿐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사는 이 별은 ‘누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나 ‘초록’ 같은 한자말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낱말로는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도록 이끌지 못한다. 결이 아름다운 노래라 한다면, 너비와 깊이로도 훨씬 살뜰히 건사하면서 아이들 마음자리에 더욱 야무진 씨앗을 심도록 도울 수 있다.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어요”처럼 끝맺을 수도 있는데, 이러면 노랫가락과 어울리지 않는다. 더 생각해 보니, 아이와 어른이 서로 “따스한 마음”으로 되면, 사랑뿐 아니라 꿈과 이야기를 함께 오순도순 나누는구나 하고 깨달아, “사랑을 나눠요”로 끝맺을 때에 더 신나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를 만하다고 보았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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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 노래 1. 푸른숲서 부는 바람 (산 위에서 부는 바람)



푸른숲서 부는 바람 해맑은 바람

그 바람은 너른 바람 고마운 바람

아저씨가 밭에 가서 풀을 뜯을 때

이 바람을 쐬면서 빙긋 웃지요.


바다에서 부는 바람 상큼한 바람

그 바람은 고운 바람 즐거운 바람

아줌마가 시내에서 헤엄을 칠 때

이 바람을 보면서 노래하지요.



  노랫말을 고쳐서 부른다. 왜 고치는가? 노랫말 가운데 ‘잘못 넣은 낱말’이 있기 때문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조금 손질하면 노랫말이 훨씬 살가우면서 깊은 이야기로 바뀐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전 노랫말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인데, 바람은 “산 위에서”가 아니라 “산에서” 분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산에서 부는 바람”으로 불렀는데, 이렇게 부르면서도 어딘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다. 이 느낌이 무엇인지 여러 달 헤아린 끝에 살짝 깨달았다. 바람은 ‘산이나 강’에서 불지 않는다. 바람은 먼저 ‘뭍(숲)’에서 불고, 다음으로 ‘바다(물)’에서 분다. 우리가 쐬는 바람은 ‘뭍바람(숲바람)’과 ‘바닷바람(물바람)’ 두 가지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바람은 결이 사뭇 다르다. 이 다른 결을 아이들이 제대로 바라보면서 느끼기를 바라면서 노랫말을 제법 크게 손질했다. 아버지(아저씨)가 하는 일과 어머니(아줌마)가 짓는 사랑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러한 결이 노랫말에 재미나게 담길 수 있기를 바랐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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