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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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4



삶을 그리는 길

― 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4.11.12.



  그림을 그리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됩니다. 그리고 싶지 않은 대로 그리려 하면, 그림은 아주 어렵습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자면, 이때에도 그림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림을 그리려 하는 까닭은, 내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붓질이 서툴건 데생이 어설프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그리려 하는 이야기를 그려야 합니다.


  미술대학교가 많고, 미술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많으며, 미술학원이 많고, 미술학원에서 배운 사람은 많은데, 막상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스스로 꿈이나 사랑이 없기 때문이요, 스스로 지으려 하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솜씨나 재주를 배우는 사람은 많으나, 정작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이루려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 ‘캔버스에 칠한 색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리면 그릴수록 초조해져서, 캔버스 색은 점점 탁해졌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10쪽)

- “하야시! 자화상을 그려라!” “예? 시, 싫어요. 자화상이라니, 촌스럽.” “그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 잔말 말고 그리라면 그려!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라! 거울을 보고 그리라고!” (60∼61쪽)



  무엇을 그려야 할까요?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어야 할까요? 뛰어난 재주를 자랑해야 할까요? 미술학원에서는 ‘솜씨가 좋다’는 그림이나 작품을 길가에 늘어놓곤 합니다. 아무래도 그러할 테지요. 미술학원에서는 그저 솜씨와 재주만 닦달하니까요. 미술대학교에서는 예술을 가르치거나 북돋웁니다. 이야기나 꿈이나 사랑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대학교를 보면 ‘예술대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림’이 아닌 ‘예술’을 다루려 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학생이 되건 대학원생이 되건, 입시생이 되건 입시준비생이 되건, 모두 ‘예술’만 바라봅니다. 삶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사랑과 꿈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사랑과 꿈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아니라면 살아서 숨쉬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아닐 때에는 한결같이 흐르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잇는 그림이 아니기에 한때 반짝하듯이 솟을는지 모르나 이내 사그라듭니다.


  그림 한 점에 몇 억원이라 하는 돈으로 팔려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팔리도록 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길에 꿈과 사랑을 아름답게 여미려는 뜻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가르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랑과 꿈으로 녹여서 새롭게 빚는 숨결이 되려고 가르치는 그림입니다.



- ‘잘나고 예쁜 친구들에게 미야자키의 촌구석 화실에서 만년 추리닝 차림에 죽도나 휘두르는 조폭 같은 선생님에게 맞아 가며 매일 죽어라 데생을 했다는 말은, 그런, 그런 나의 과거는, 구질구질해서 죽어도 말하기 싫어.’ (136쪽)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그리고, 또 그리고》(애니북스.2014)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 그리는 아줌마가 스스로 되짚는 이녁 삶이 만화책에 짙게 드러납니다. 꽤 오랫동안 ‘스스로 안 밝히고 싶’던 구질구질한 이야기라 할 만하지만, 곰곰이 보면 하나도 안 구질구질합니다. ‘하야시’한테 그림을 가르친 시골마을 아저씨는 ‘그림이 무엇인지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야시한테 ‘그림을 그리는 몸짓’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다그쳐요. ‘그림을 마주하는 숨결’을 제대로 갈고닦도록 이끌지요.



- “붓빨이통은 어디다 둔 거야? 응? 이건 또 뭐야? 왜 이렇게 더러워? 잘 들어! 도구 손질도 제대로 못하는 놈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붓이든 물감이든 다 비싸니까 아껴 가며 써야지! 팔레트도 매일 손질하면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사용할 수 있어!” “저,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커요. 누가 오면 어떡해요.” “게다가 이 그림은 뭐야? 데생이 엉망이잖아! 당장 고쳐! 정중선이 어긋났잖아! 눈앞에 모델이 있는데 왜 이렇게 어긋나게 그린 거야?” (144∼145쪽)



  ‘만화가가 된 하야시’한테 그림을 가르친 시골마을 아저씨는 하야시가 ‘만화가’가 되든 다른 사람이 되든 대수롭게 여길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만화도 그림이고, 그림도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지을 수 있을 때에 그림이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그림꾼이면서 살림꾼이고,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재주꾼이나 솜씨쟁이일 뿐 아니라,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전문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주꾼이나 솜씨쟁이가 아니라 ‘살림꾼’이면서 ‘이야기꾼’인 ‘그림꾼’이 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를 보면, 하야시는 언제나 핑계를 대면서 툴툴거립니다. 모든 일에 핑계를 대려 합니다. 이녁 삶을 그대로 바라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끝무렵에도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말이 창피하다’고 여긴다는 대목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1940년대나 1920년대도 아니고 1990년대 끝무렵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 울타리에 가두거나 굴레로 짓누른 생각 때문에, 둘레에 있는 다른 사람을 괴롭힌 결을 언제쯤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너무 힘이 든다 싶으면, 1940년대나 1920년대 일본에서 ‘전쟁 미치광이 권력자한테 짓밟히면서도 만화를 그리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새롭게 두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어야 합니다. 하야시가 즐겁게 보는 만화책을 그린 앞사람이 저마다 어떤 꿈을 가슴에 품으면서 씩씩하게 한길을 걸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셋째 권부터 이런 이야기가 찬찬히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둘러댄 온갖 핑계를 하나씩 털면서 ‘내 모습 그대로 들여다보기’를 하는 나날을 뒷권에서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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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댁에 가기



  오늘 아침에 문득 어느 일 하나가 떠오르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바깥마실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왜 갑자기 어느 일이 떠오를까.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에 먼저 들러서 큰아버지를 뵙게 하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하루 다녀온 뒤, 일산으로 건너가서 이모와 이모부와 외삼촌과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두 만나도록 해야겠다고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를 거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두고볼 노릇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한 요 열흘 사이에 작은아이는 자꾸 ‘보라 빛깔 버스’를 이야기했다.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에 고흥과 인천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생겼다. 하루에 석 대가 오간다. 작은아이는 시외버스에 적힌 글씨를 읽지 못하지만 “저 버스 타고 싶어.” 하는 노래를 내내 불렀다. 그래, 오늘 하루 자고 나면 ‘보라 빛깔 버스’를 타고 인천에 갈 수 있겠구나. 아마 다섯 시간 남짓 걸릴 테지.


  고운 꿈을 꾸면서 잘 자렴. 아침에 모두 일찍 일어나자. 그리고, 너희 둘은 아침에 집에서 똥을 누고 가자. 아버지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굴부침개를 할 텐데, 아무쪼록 시외버스에서 맛나게 먹자.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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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산 (아만 기미코·다루이시 마코) 한림출판사 펴냄, 2007.5.15.



  사내는 파랑을 좋아하거나 가시내는 분홍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무척 낡은데,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밀어붙이기 일쑤이다. 왜 둘로 갈라야 할까. 왜 사내는 분홍이나 빨강이나 노랑을 가까이하면 안 될까. 사회는 왜 사내와 가시내를 자꾸 둘로 쪼개려 할까. 그림책 《하늘 우산》 첫머리를 보면, 아이 어머니는 이녁 아이가 가시내이니 으레 분홍 우산을 써야 하는 줄 생각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이가 제 생각을 밝히기 앞서 어머니가 이녁 생각을 먼저 밝힌다. 왜 기다리지 못할까. 왜 지켜보지 못할까. 왜 아이 눈높이로 다가서려 하지 못할까. 그런데 아이는 어머니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는 제 마음을 수수하게 밝힌다. 그러고는 제 마음에 따라 하늘빛 우산을 고른다. 하늘빛 우산을 쓰고 하늘빛이 마알간 들판을 거닐려고 한다. 하늘빛 우산처럼 하늘빛 마음이 되고, 하늘빛 꿈을 꾸면서, 하늘빛 사랑으로 동무들을 만나려고 한다. 그래, 그렇지. 아이다움이란, 아이처럼 밝은 웃음이란, 싱그러우면서 맑은 숨결이지.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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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산
아만 기미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곽혜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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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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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51. 새벽이슬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던

우리 집 마당에

별빛이 하나둘 드리우면

밤바람이 일어나고

밤새가 찾아들어

복닥복닥 소곤소곤 사이좋게

흐드러져 놀다가

달이 살살 기울 무렵

길게 하품을 하면서

풀잎에 드러누워 쉬더니

어느새 새벽이슬이 되어요.



2015.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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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노래는 직접 지으시는거예요?

파란놀 2015-02-06 05:07   좋아요 0 | URL
네,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써서 큰아이와 함께 `한글놀이`를 합니다~
시골에서 지내며 듣고 보고 겪는 이야기를
큰아이가 사랑스레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틈틈이 씁니다 ^^
 

사진 찍는 눈빛 123.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읽습니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습니다. 겨울에 책방이 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손이 시린 줄 모릅니다. 여름에 책방이 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몸에서 땀이 흐르는 줄 모릅니다. 책에 깊이 빠져들면, 추위와 더위를 모두 잊고 오로지 책과 하나가 됩니다. 이때에는 어떤 추위나 더위도 ‘책 읽는 사람’을 휘두르거나 들볶지 못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합니다.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나눕니다. 옆에서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둘레에서 가로막거나 괴롭히건 말건, 사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할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나누지요. 그래서, 사랑 앞에는 어떤 것도 놓이지 못합니다. 사랑 앞에는 오직 사랑만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수없이 터지는 곳에서도 씩씩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오직 사진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주 조용하거나 고요한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추위나 더위가 ‘사진 찍기’를 막지 못합니다. 이와 함께, ‘사진 읽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나 걸림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온갖 이론이나 비평으로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내가 읽으려는 사진’은 ‘내 마음결에 따라서 읽’기 마련입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수많은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아니어도, 마음이 따사롭거나 넉넉하다면,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모든 밥을 다 짓습니다. 그러나, 밥을 즐겁게 지으려는 마음이 못 된다면, 수십 가지나 수백 가지 밑감이 있어도 맛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밥을 겨우 지을 테지요.


  밑감이 넉넉해야 밥을 잘 짓지 않아요. 사진감(사진 찍을 소재)이 많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밑감을 다루는 손길이 밥을 낳듯이, 사진감을 마주하는 눈길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웃을 마주하고 동무와 어깨를 겯는 몸짓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책을 읽듯이, 찍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사진을 찍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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