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보림문학선 4
오카다 준 지음, 박종진 옮김, 이세 히데코 그림 / 보림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81



함께 짓는 웃음

―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오카다 준 글

 이세 히데코 그림

 박종진 옮김

 보림 펴냄, 2006.11.16.



  아이가 웃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아이가 웁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말하면서 가만히 웃음을 짓습니다. 울던 아이는 천천히 울음을 그칩니다. 웃음은 늘 웃음으로 이어지고, 웃음꽃이 피면 눈물꽃도 어느새 웃음꽃으로 바뀝니다. 참말 웃음은 모든 앙금을 씻거나 털면서 우리 마음이 홀가분하게 태어나도록 이끕니다.


  어른이 웃습니다. 어른을 바라보는 아이가 웃습니다. 어른이 찡그립니다. 어른을 바라보는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웃습니다. 어른이 찡그리는데 아이는 왜 웃을까요? 어른이 찡그린 얼굴이 퍽 우스꽝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른더러 왜 찡그리면서 스스로 슬프거나 괴로우려 하느냐 물으면서 웃음으로 모두 털거나 씻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던 어른은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찡그린 얼굴을 풀다가, 이내 무엇인가 깨닫고는 활짝 웃습니다.



.. 공원 나무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에 쓰르라미 소리가 어우러지기 시작하면 여름방학이 슬슬 끝나 간다는 뜻이다 … 사치에는 또 어떤가 하면 공이 지나가고 2초쯤 지나서야 방망이를 휘두른다. 멍하니 방망이를 들고 있다가 운 좋게 공이 맞기라도 하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다가 곧장 2루로 내달리고 만다. 그래도 게임을 자꾸 하다 보니 소노미와 사치에를 어떻게 끼워 주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런대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  (9, 14쪽)



  웃을 만한 일이 있기에 웃습니다만, 웃을 만한 일이 없어도 스스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웃을 만한 일이 없으니 안 웃는다고 하지만, 웃을 만한 일은 늘 내가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나를 웃기지 않습니다. 익살꾼이 찾아와서 공연을 해야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밥을 짓다가 웃고, 길을 걷다가 웃습니다. 또르르 구르는 가랑잎을 보면서 웃고, 저절로 노래가 나와서 웃습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웃어요. 자가용을 타면서 웃지요. 함께 말을 섞는 동안 웃습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는 동무가 있어서 웃습니다. 나한테 이야기를 새록새록 들려주는 이웃이 있어서 환하게 웃습니다.


  그러니까 안 웃을 까닭이 없는 하루입니다. 혼자 있을 적에도 웃고, 여럿이 있을 적에도 웃습니다. 춤을 추면서 웃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다가 웃습니다. 책을 읽다가 웃고, 풀밭에 쉬를 하다가 웃습니다. 들고양이를 보면서 웃고, 구름한테 손을 흔들면서 웃습니다.


  꽃이 나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나무가 푸른 그늘을 드리우면서 웃습니다. 밭자락에 씨앗을 한 톨 심으면서 웃고, 무를 뽑거나 파를 끊으면서 웃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기도 할머니도 어머니도 동생도 모두 ‘웃는 낯’으로 자요. 찡그린 낯으로 자는 사람이 없이, 다 같이 웃는 낯으로 아늑하게 잠들어요.



.. 전에 살던 데는 보기에는 복박복닥해도 다들 한가족 같아서 마음이 편했어. 학교 끝나고 와도 외톨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지. 그랬는데 그 골목이 난데없이 사라진다는 거야. 이유는 나도 몰라 … 보트 그림자가 바다 밑바닥에 깔린 하얀 모래 위를 미끄러졌어. 노를 저을 때마다 작은 물결이 일었어. 물결이 햇빛을 온갖 모양으로 바꿔서 바닷속에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었지. 내가 재미있어 하니까 그 아이도 기쁜 눈치였지. 제대로 보트 젓는 법도 배우고 같이 수영도 하는 사이에 훌쩍 시간이 흘렀나 봐. 하늘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어 ..  (23, 48쪽)



  오카다 준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보림,2006)를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포근한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어버이가 바깥일로 바쁘다든지, 마음을 붙이고 살던 동네가 재개발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져야 한다든지, 두 어버이가 갈라서야 한다든지, 학교나 동네에서 가까운 동무가 없다든지, 여러 가지 까닭 때문에 쓸쓸하지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서로 돌보고 어루만집니다. 이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면서 즐겁게 어우러지고 함께 노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사이에 ‘아마모리’라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아마모리라는 아저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마모리라는 아저씨는 왜 아이들 사이에서 살며시 징검다리가 될까요. 웃음을 잊거나 잃은 아이들한테 아마모리 아저씨는 어떻게 새로운 웃음을 찾아 주거나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 선생님은 내 말을 다 듣고 나서도 그저 “그래?” 한마디뿐이었어. 하다못해 다짜고짜 때려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안 했어. 되레 히사오 옷차림이 어떻다는 둥, 걸핏하면 준비물을 잊어버린다는 둥 야단치는 거야. 속상해서 내가 다 눈물이 나오더라 … 나는 고집을 부리느라 무서운 꿈을 꾸고도 엄마한테 달려가지 않았어. 엄마도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침대 속에 기어 들어간 나한테 한 번도 오지 않았고. ‘이 집에는 외로운 어린아이 둘이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속으로 되뇌면서 공원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  (82, 86쪽)



  온누리에는 두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이분법이나 이원론으로 가르는 사랑이 아닌, 두 가지 사랑입니다. 첫째, 낳는 사랑입니다. 둘째, 기르는 사랑입니다. 아기를 몸에 배어 낳는 사랑이 하나요, 아기를 몸에 배어 낳지 않았으나, 아기를 제 몸에서 낳은 목숨처럼 헤아리는 사랑이 둘입니다.


  둘레에 있는 수많은 아이를 ‘내가 낳은 아이’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모든 아이를 ‘내가 기르는 아이’처럼 사랑할 수 있어요. 가시내와 사내가 서로 ‘낳은 아이를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고, ‘아이를 기르는 사랑’처럼 따스하거나 포근하게 서로 아끼며 보살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안다고 한다면, 내 몸으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사랑을 안다는 뜻인 한편, 내 몸으로 낳지 않은 아기이지만, 언제까지나 곱게 돌볼 수 있는 사랑을 안다는 뜻입니다.



.. 아마모리 씨는 곧장 아파트로 들어가 버렸어. ‘그냥 버릴 수도 없고, 이걸 어쩌지?’ 손에 쥔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어. 내 원피스처럼 노란 종이가 아주 가볍고 튼튼해 보였어. 문득 ‘이걸로 종이비행기나 접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미끄럼틀 계단에 앉아서 그때까지 한 번도 안 만들어 본 모양으로 비행기를 접었어. 종이가 저절로 비행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어 … 미끄럼틀 터널을 돌아보면서 가쓰지가 이치로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들 아마모리 씨를 알게 된 것 같다고 했지만, 난 아이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  (92∼93, 119쪽)



  서로 사랑하기에 웃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웃습니다. 내가 나를 아끼듯이 너를 아낄 수 있으니 사랑입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을 줄 아는 기쁨을 누리니 사랑입니다.


  바람이 불어 지구별이 푸릅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이 바다를 적시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숲을 보듬습니다. 나한테서 샘솟은 사랑이 너한테 가고, 너한테서 자라는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함께 짓는 웃음이란, 함께 짓는 사랑입니다. 함께 짓는 사랑이란, 함께 짓는 삶입니다. 웃음과 사랑과 삶을 함께 짓기에, 우리는 이곳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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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마실길



  고흥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간다. 설을 앞두고 인천으로 간다. 인천에 계신 큰아버지를 뵈러 간다. 그러고 나서 일산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와 이모부와 삼촌을 뵈어야지. 아이들은 꽤 먼 마실길을 가야 하지만 즐겁다. 광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는 꾸벅꾸벅 졸다가 자더니, 광주에서 물을 빼고 물을 넣고 솜사탕을 먹더니 새롭게 기운이 나는 듯하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멋지면서 즐거운 마실이 되는구나 싶다. 버스 일꾼이 문득 묻는다. “아이 둘 데리고 힘들지요?” “그냥 재미나게 다녀요.” 재미나게 다니면, 시외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싱싱 달리며 흔들흔들 춤을 출 적에 우리도 함께 춤을 춘다. 버스가 기울어지는 결에 맞추어 우리도 몸을 기울면서 까르르 웃는다. 우리는 즐겁게 고흥집을 나섰고, 다 같이 기쁘게 인천집과 일산집에서 사랑스러운 어른들을 뵐 생각이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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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를 ‘국민신문고’에 고발하다



  시골에서 산 지 다섯 해째이다. 다섯 해를 지내는 동안 곧잘 ‘군내버스 말썽’을 겪었다. 틀림없이 버스가 와야 하는데 안 온다. 한참 기다려도 안 온다. 더운 날에는 땡볕을 쬐면서 땀이 줄줄 흐르고, 추운 날에는 찬바람을 먹으면서 온몸이 얼어붙는다.


  순천 기차역에 기차표를 미리 끊은 날은 택시를 불러서 읍내까지 간다. 따로 기차표를 끊지 않은 날은 다른 큰길로 한참 걸어가서 다른 군내버스를 한참 기다린 뒤에 탄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 어귀로는 두 시간에 한 대씩 군내버스가 지나가지만, 이 킬로미터쯤 걸어가는 다른 큰길에는 한 시간에 한 대씩 군내버스가 지나가니까.


  오늘 아침에는 아이들과 함께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는데 25분이 넘도록, 그리고 28분째가 되도록 버스가 안 온다. 할머니 한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은 ‘버스가 안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큰길로 걸어가신다. 우리도 다른 큰길로 걸어갈까 하다가 오늘은 도무지 이를 참을 수 없어서 걸어가지 않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온다. 먼저 몸을 녹인다. 몸이 녹은 뒤 인터넷을 켠다. ‘국민신문고’라는 데에 민원을 넣는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꽤 긴 글을 쓴다. 다니기로 한 때에 아무 말도 없이 안 다녀서 골탕을 먹이는 군내버스 회사와 군청 담당부서 공무원이 모두 ‘벌금(피해배상)’을 물어야 한다는 민원을 넣는다.


  시골에서 버스를 모는 일꾼을 나쁘게 볼 마음이 없다. 나쁘게 보려고 이들한테 벌금을 물리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하루에 몇 번 오가지 않는 길인데, 이 몇 번 오가지 않는 길에서조차 그분들 마음대로 버스를 안 몬다면, 시골사람은 뭐가 될까? 시골사람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짓을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 시골마을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버스회사 일꾼한테 어머니나 아버지라면 이렇게 버스를 몰 수 있을까? 오늘도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한참 찬바람 먹고 오들오들 떨다가 한참 먼 길을 ‘힘겨운 다리’로 걸어가신다. 이 뒷모습을 보면서 더없이 어처구니없어서, 지난 다섯 해 동안 묵힌 앙금(나는 다섯 해뿐이지만, 이 마을 어르신한테는 쉰 해가 넘었을 앙금)을 ‘국민신문고 항의’ 글로 풀어낸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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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5 18:23   좋아요 0 | URL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이 답답하네요.

파란놀 2015-02-06 05:08   좋아요 0 | URL
`탈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버스 일꾼이 지레 하면서...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다가
저희 식구는 으레 고단한 일을 겪어요.
참... 거석한 노릇입니다...

카스피 2015-02-06 23:37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시골정류장의 시간표만 믿고 있다고 차가 안와서 고생한 기억이 새삼 나는군요.요즘 서울에는 정류장마다 버스가 언제오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상당히 편리합니다만,시골에서 불가능하죠.
비록 돈이 잘 안벌릴지라도(쓸데없이 군수등이 자기치적자랑에 괜한 세금쓰지말고 시골버스나 지원해주었음 좋겠네요)시골분들을 위해 시간표대로만 버스가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파란놀 2015-02-07 03:45   좋아요 0 | URL
늦게 오더라도 `오기로 한 때`에 버스가 와야 할 테지요... 버스가 안 오는 일은 없어야 할 테고요...
 

서로 기댈 수 있는 아이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가 먼저 잠든다. 이내 큰아이도 잠든다.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잔다. 큰아이는 잠들다가 깨다가 되풀이를 하지만, 작은아이는 코코 깊이 잔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자다가도 누나 어깨에 기대고, 누나는 동생이 머리를 기대면 처음에는 무거워 하다가도 토닥토닥 잘 다독여 준다. 두 아이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두 아이는 서로 아낄 수 있는 동무로 함께 논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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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5 18:27   좋아요 0 | URL
저도 큰 딸아이가 이제 막 네살, 작은 아들녀석이 곧 돌이네요. 아직 딸아이가 어려 동생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서로 아끼는 동무가 되겠죠? ^^

파란놀 2015-02-06 05:06   좋아요 1 | URL
미워한다기보다는, 아기라서 말을 못 알아들으니 여러모로 힘들어서 그러할 수 있어요. 곁에서 따스하게 알려주면 큰아이는 아주 너르며 깊은 마음이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민들레처럼 님은 슬기롭게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산들보라는 달리면서 먹는다


  읍내마실을 나와서 빵 한 조각을 손에 쥐고서 기쁘게 웃는 산들보라는, 콩콩콩 달리다가 한 점 먹고, 다시 콩콩콩 달린다. 빵 한 조각으로 기쁘니, 네 마음은 언제나 파랗게 고운 하느님이로구나.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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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2-06 23:3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빵 좋아하는데 얼핏보니 고로케갔군요^^

파란놀 2015-02-07 05:5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