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9. 뛰노는 마음


  어른이 된 사람은 집에서 뛰는 일이 드물다. 어른끼리 사는 집에서는 딱히 시끄러운 소리가 날 일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가 뛰고 싶다. 아이는 뛰고 구르면서 놀려 한다. 노래도 목청껏 부르고 싶으며, 때때로 길게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러면, 어른은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되는 곳이 보금자리일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 집일까? 뛰놀지 못하는 집에서 아이는 ‘뛰놀면 안 된다’는 삶을 보면서 배운다. 뛰놀지 못하는 보금자리에서 어버이는 ‘뛰놀지 말라’는 윽박지름을 보여주면서 가르친다. 나는 두 아이와 뛰면서 놀려 한다. 나는 두 아이와 곁님하고 노래하면서 놀려 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우러져서 뛰놀고, 어른과 아이가 같이 아끼면서 웃고 노래하려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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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52. 떡 한 점



너 한 입 나 한 입

오물오물 나눠 먹으니

떡 한 점 벌써 끝.

아쉬워라 서운해라

입맛 다시지만

빈손에는 떡가루.

언제 다시 이 맛난 떡

구경할 수 있을까.

혀끝에 남은 달콤한 내음

곱씹으며 냇물 한 움큼

들이켜고는

골짜기로 내달리며 논다.



2015.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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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방으로



  인천에서 큰아버지와 걷는다. 큰아이는 큰아버지 손을 잡고 작은아이는 혼자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면서 콩콩 달린다. 작은아이는 아주 기쁜 몸짓으로 뛰놀다가 그만 고꾸라진다.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고꾸라졌기에 볼이 바닥에 쓸리고 코가 빵바닥에 찧는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넘어지는 모습도 참으로 놀랍다고 다시금 생각하고는, “보라야, 괜찮아. 자 털고 일어서자.” 하고 부른다. 이렇게 말한 뒤 아이를 일으켜세운다. 일으켜세우기 앞서 말부터 들려준다. 작은아이는 으앙 울지만, “자, 보라야, 어제부터 네가 노래한 기차 (장난감) 사러 가야지?” 하고 한 마디 붙이니, 바로 울음을 뚝 그친다. 난 네가 울음을 그칠 줄 알았지. 길바닥에 쓸린 볼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곧 나아.” 하고 달랜다.


  작은아이는 기차 장난감을 하나 장만하고, 큰아이는 ‘로봇으로 몸을 바꾸는 자동차’ 장난감을 하나 장만한다. 두 아이는 장난감을 저희 가방에 담는다. 저희 장난감은 저희 가방에 담아 저희 등에 멘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두 아이 가방까지 아버지가 맡아서 들어야 했으나, 올해에는 두 아이가 저희 가방을 끝까지 맡아서 멘다. 아주 대견하면서 씩씩하다. 앞으로도 너희 장난감과 연필과 공책과 만화책은 너희 가방에 담아서 들고 다닐 수 있기를 빌어. 아무렴.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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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곳에 스스로 갇힌 사람



  엊그제에 아이들과 도시로 마실을 오면서 새삼스레 느낀다. 도시라는 곳에서 살려면,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날마다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든지, 잔소리가 아닌 이야기가 되도록 스스로 생각을 크게 고쳐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고작 서른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태어나든 도시에서 태어나든 아이들한테 놀이가 있었다면, 이제는 시골에서 태어나든 도시에서 태어나든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다. 아이들한테는 보육원과 어린이집 조기교육이 있으며, 보육원과 어린이집을 마치면 곧장 입시지옥 학교와 학원이 있다. 아이들한테 아무런 삶도 놀이도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없이 쳇바퀴로 굴러야 하는 감옥만 있다.


  마음껏 뛰놀지 못한다면, 아이로서는 어디이든 감옥일 수밖에 없다. 둘레를 살펴보라. 아이들이 집에서 뛰거나 구를 수 있는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하루 내내 신나게 뛰거나 구르면서 놀 수 있는가? 아이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어도 될 만한 동네가 이 나라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이 느긋하게 돌을 치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딱지를 치거나 고무줄을 잡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연을 날릴 만한 빈터도 골목도 들도 없다. 도시나 시골이나 똑같다. 예전에 어른들은 샅바조차 없어도 어디에서나 씨름을 놀거나 닭싸움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제 어른들이 이런 놀이조차 할 만한 데란 없다. 오늘날 도시나 시골 모두, 어른한테는 술집과 찻집과 노래방과 맛집 따위밖에 없다. 아이한테는? 아이한테는 그저 학교와 학원뿐이다. 공원에 간들 풀밭에 앉을 수 있겠는가. 공원에서 나무 옆에 드러누워 낮잠을 잘 수 있겠는가. 이런 곳에서 무슨 생각이 자라고, 무슨 꿈을 키우며, 무슨 사랑을 속삭이겠는가.


  감옥에서도 책은 읽고, 글은 쓰며, 공부도 하고, 명상도 할 테며, 몸도 씻고, 똥오줌도 누며,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전화도 하고, 뭐 이런저런 것은 다 하리라. 그러나, 감옥에서는 씨앗을 심지 못하고, 나무를 기르지 못하며, 삶을 돌보지 못한다. 어떤 번듯한 일자리가 있거나, 자가용을 굴리거나, 문화예술을 누린다고 해서 삶이 아니다. 삶이 되려면, 꿈을 생각으로 지을 수 있어야 하며, 삶을 노래하듯이 춤추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꿈을 생각으로 짓지 못하는 곳이라면 감옥이고, 삶을 노래하듯이 춤추는 하루가 되지 못한다면 그예 감옥일 뿐이다.


  우리는 도시라는 곳에 스스로 갇힌다. 우리는 도시라는 곳에 아이들을 가둔다. 도시를 감옥으로 삼으면서, 시골도 감옥으로 바꾸려고 애쓴다. 시골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나 기찻길이나 송전탑을 함부로 쏟아붓고, 시골마을에 핵발전소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공장이나 ‘공장 같은 돼지우리·닭우리·소우리’를 잔뜩 세운다. 지구별은 아름다운 숲이 될 수도 있지만, 끔찍한 감옥이 될 수도 있다. 지구별에서 도시와 시골 모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악스러운 감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감옥에 갇힌 채 또 다른 감옥을 자꾸 스스로 세워서 더 깊은 감옥에 갇힌 삶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군 뒤, 이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아름다운 새로운 쉼터를 사랑스레 지을 수 있다. 어느 길로 갈 때에 노래와 춤과 이야기와 웃음이 흐를까?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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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시인선 15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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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6



시와 그물

―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글

 문학동네 펴냄, 2012.2.25.



  시골집에서 시골사람으로 지내면서 느끼지 못한 대목을 도시로 나들이를 와서 느낍니다. 시골집에서는 아이들더러 ‘얘들아, 마루에서 뛰지 말고 마당에서 뛰렴’ 하고 타이를 수 있으나, 도시에서는 아이들더러 바깥에 나가서 뛰놀라고 이르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골목이나 빈터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도 이웃 아이도 골목이나 빈터에서 뛰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야, 도시에 있는 외할머니나 이모나 큰아버지나 여러 이웃한테 찾아가니까, 골목이나 빈터에서 놀 겨를이 없기도 할 테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는데, 어느 골목이나 빈터에도 아이들 그림자가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골목에서 몰아냈습니다. 정치권력이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기자나 작가 같은 사람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어른이 똘똘 뭉쳐서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만 몰아넣으면서, 먼 옛날부터 마을과 빈터와 숲과 냇가에서 놀던 아이들한테서 놀이를 죄다 빼앗았습니다.



.. 갈대나 물결 / 새나 바람 / 평수 많은 밤 // 어디서 오는지 ..  (호수)



  도시를 거닐다 보면, 골목이나 빈터는 어김없이 주차장입니다. 좀 놀 만하다 싶은 자리는 으레 자가용이 차지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인라인조차 타기 벅찹니다. 자동차 때문에 아예 엄두를 못 냅니다. 자전거도 마음 놓고 타지 못합니다. 공원이라도 있으면 겨우 이런저런 끄트머리에서 바퀴를 조금 굴리다가 그칩니다.


  아이들이 몸을 쓸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숨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넋을 살찌울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꿀 바탕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며칠 지내면서 아이들한테 해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길에서 달리지 마라’와 ‘집에서 뛰지 마라’와 ‘전철에서 노래 부르지 말거나 목소리를 낮추어라’와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아라’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을 쉬잖고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잔소리뿐입니다.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이도 고달프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어버이도 고단합니다. 우리 아이들이야 며칠 머물다가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아이들은 하루 내내 잔소리에 시달리다가 아예 ‘뛰놀기’와 ‘노래하기’를 몽땅 잊거나 잃을밖에 없습니다.



.. 산 넘어온 비가 / 산 넘어간다 / 비단옷으로 와서 / 무명옷으로 간다 ..  (장마 끝물)



  장석남 님이 빚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인천을 거쳐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는 길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타이르다가, 어르다가, 미리 썰어서 통에 담은 감을 내밀다가, 한 쪽 두 쪽 읽습니다.


  장석남 님은 고요더러 내빼지 말라고 말하지만, 도시에는 고요가 없습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도시에는 시끄러움과 부산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도시에 개구쟁이 놀이나 말괄량이 노래가 있지는 않아요. 기쁜 노래라든지 즐거운 춤사위가 있지도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가수나 배우나 이런저런 전문가와 작가와 기자는 죄다 서울에 모여서 일하거나 산다지만, 막상 서울에서 노래나 춤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마주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마주하자면 ‘돈’을 들여야 합니다.



.. 옥수수밭가에 와 살고부터 / 나는 지금 옥수수밭가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  (옥수수밭의 살림)



  먼 옛날부터 놀이는 몸에서 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습니다. 먼 옛날부터 춤과 노래는 삶에서 삶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습니다. 먼 옛날부터 전문 노래꾼이나 춤꾼이나 이야기꾼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래꾼이면서 춤꾼이고 이야기꾼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림꾼이면서 사랑꾼이자 숲지기요 들지기요 집지기입니다. 예부터 모든 사람이 집과 옷과 밥을 손수 지어서 삶을 가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 거의 모든 사람은 집을 지을 줄 모르고, 옷이나 밥을 짓는 길을 모릅니다.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시멘트를 이기는 몸짓이 아닌, 수백 해를 이을 보금자리로 집을 짓는 몸짓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대단한 요리나 맛집이 아니라, 삶을 북돋우는 밥을 날마다 웃으면서 기쁘게 차리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밥을 지으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거든요. 쌀을 씻거나 밥을 안치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빨래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노래를 즐기거나, 아이를 가만가만 재우면서 노래를 누리는 어버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 내 신발 속 파도 소리 / 내 단춧구멍 속 파도 소리 / 모든 풍문도 음악도 다 이긴 / 나의 파도 소리 ..  (파도 소리)



  텔레비전 유행노래가 아니라, 내 삶에서 저절로 샘솟는 춤과 노래를 아이한테 물려주는 어버이는, 참다운 어른은 이 땅 어느 곳에서 살림을 가꾸는지 궁금합니다. 돈이 아니면 시도 시집도 없는 오늘날이고, 돈이 될 만하지 않으면 시집을 낼 수 없는 오늘날이며, 돈을 벌지 않으면 시를 쓸 살림이 안 되는 오늘날입니다.


  예부터 모든 사람이 시골지기요 흙지기이고 삶지기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글을 알거나 한문을 익혀야 쓰는 시가 아니라, 삶을 짓는 사람은 누구나 ‘일하면서 스스로 노래를 불렀’고, 일하며 부르는 노래(일노래, 노동요, 민요)가 바로 시입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일하며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놀이노래를 짓고, 놀이노래를 부르며 놀던 아이들이 자라서 일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씩씩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흐름과 이음고리는 어느새 끊어졌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나 영어에 미친 정책이나 입시지옥 같은 핑곗거리(?)도 많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돈’만 바라보는 삶이 되면서, 모든 춤과 노래와 이야기를 텔레비전과 몇몇 전문가한테 떠넘기고 말았습니다.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무엇을 길어올리려는 그물일까요?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어떤 이야기를 손수 낚아서 이 땅 이웃한테 들려주려는 선물일까요?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글쓴이 장석남 님이 이녁 삶을 스스로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할 만할까요? 그러면, 장석남 님한테는 삶이 무엇이고, 어른 몸뚱이인 오늘날 어느 만큼 홀가분하게 이 땅에서 뛰노는 하루일는지요?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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