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집으로 간다



  오늘 나는 집으로 간다. 엊저녁에 한참 생각에 잠겼다. 월요일 아침에 인천·일산 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바로 갈는지, 다른 고장을 거쳐서 돌아갈는지 가만히 헤아렸다. 다른 고장에 있는 다른 이웃을 얼마든지 만날 만하다. 아이들과 애써 먼 마실을 나왔으니 한번쯤 샛길을 거쳐서 가 볼까 싶은데, 오늘은 차분하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을 돌린다. 이곳저곳 두루 돌려는 마음이 컸으나 다음에 그리 하자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아쉽지만 곧 모든 곳을 아이들과 곁님을 이끌면서 찬찬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본다. 오늘은 이쯤에서 가볍게 마실을 마치자. 아침 여덟 시에 고양 백석에서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테니, 아침 일곱 시 무렵에 아이들을 깨워서 쉬를 누이고 가볍게 택시를 불러 버스역까지 가야지. 도시로 들어서는 길은 막히지만,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술술 뚫릴 테지. 신나게 가자. 기쁘게 집으로 가자. 4348.2.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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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아이가 뱃속 아기한테 들려주는



  여덟 살 아이가 뱃속 아기한테 그림책을 읽어 준다. 우리 집 큰아이가 일산 이모네 집으로 놀러와서 그림책을 읽어 준다. 이모가 가운데에 눕고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저마다 이모 옆에 누워서 함께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큰아이가 씩씩하게 맑은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는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 노래도 부르고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뽑는다.


  이모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언니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노랫결처럼 들으면서 웃을 테지. 뱃속 아기는 저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는 언니가 궁금할 테지. 아이가 태어나 사랑을 받으면서 천천히 자라고, 차츰 철이 들면서 몸과 마음이 여무는 아이는 어느덧 동생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숨결로 우뚝 선다. 어여쁜 숨결은 새로운 숨결한테 고운 기운을 물려준다. 새롭게 이 땅에 두 발을 디딜 아이도 사랑을 받으면서 찬찬히 자랄 테고, 나중에 제 동생이 될 아기한테 멋진 목소리로 기쁘게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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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3
강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92



푸른 별에서 파란 별로 찾아온

― 환생

 강형철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12.6.



  내가 혼자 나들이를 다닐 적에,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으레 외국사람인 줄 여기면서 영어로 무언가 묻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조차, 나를 처음 마주하는 사람은 곧잘 외국사람으로 여기며 영어로 말을 겁니다. 이러기를 스무 해 남짓 지냈어요. 영어로 나더러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묻는 말에 이제껏 한 차례도 대꾸를 한 적이 없지만, 엊저녁에도 이런 소리를 듣고는 앞으로는 대꾸를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나는 푸른 별에서 왔습니다’ 하고 영어로 말하려 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내 넋은 푸른 별에서 지구별로 왔다고 합니다. 푸른 별은 어디일까요? 나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마, 예전 삶을 잊거나 잃었을 수 있어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 예전 삶 이야기가 조용히 잠든 채 내가 깨어나는 날을 기다릴 수 있어요.



.. 한 방울의 빗물에도 / 온몸의 주름을 펴며 안아 주는 호수 ..  (눈인사)



  푸른 별에서 살던 내 넋은 왜 지구별로 왔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수많은 별 가운데 왜 지구별을 골라서 몸을 빌어 이곳에서 지낼까 하고 꿈을 꿉니다. 문득 싹이 하나 틉니다. 자그마한 씨앗에서 싹이 하나 돋습니다. 작은 싹은 무럭무럭 오르면서 줄기가 되고, 새로운 잎이 돋으면서, 새로운 꽃이 핍니다. 새로운 열매가 맺고, 새로운 열매에는 새로운 씨앗이 깃들어요. 새로운 씨앗은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다시금 새롭게 싹이 터서 무럭무럭 자라요.


  이윽고 수많은 새로운 씨앗은 새로운 나무가 됩니다. 새로운 숲이 하나 태어납니다. 이때 문득 잠에서 깹니다. 그래,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내가 지구별로 온 까닭은 지구별에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태어난 푸른 별에서는 언제나 푸른 별빛이 감돌았고, 이 별빛은 지구별에 닿아서 푸른 숲이 우거지도록 까만 씨앗을 낳았어요.


  그러니까, 지구별은 숲이 우거질 수 있는 별입니다. 지구별은 나무가 가득하여 숲내음이 넘실거릴 수 있는 별입니다. 지구별은 풀과 나무과 어깨동무하면서 숲으로 노래할 수 있는 별입니다.



.. 도토리 두 발로 껴안고 / 앞니 두 개로 / 뇸뇸거리는 다람쥐 ..  (은적운 13)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보면 어떤 빛깔일까요? 숲빛이 가득해서 푸른 빛깔일까요? 아니면 바닷빛을 뿜으면서 파란 빛깔일까? 지구별이 파랗게 보인다면, 바닷빛이 파랑이기 때문일 텐데, 바닷물에는 딱히 아무런 빛깔이 없어요. 바닷물은 맑습니다. 바닷물이나 냇물은 모두 맑아서 모든 빛깔을 받아들여요. 숲에서는 맑으면서 푸른 물입니다. 새파란 하늘만 있는 드넓은 바다에서는 파란 물입니다. 지구는 아무래도 바다가 한결 넓으니, 지구 바깥에서는 ‘파란 별’로 보일 만해요. 하늘빛을 닮은 바닷물이요, 하늘과 바다가 파랑으로 한몸이 되어 빛나는 지구라고 할까요. 파란 지구별에 푸른 숲이 얼크러져서 곱게 빛난다고 할까요.



..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  (환생)



  강형철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환생》(실천문학사,2013)을 읽습니다. 강형철 님이 손수 짓는 삶을 싯말 하나로 읊고, 강형철 님을 낳고 기른 어머니가 늙어서 ‘늙은 아이’가 된 강형철 님이 어머니를 보살피고 헤아리는 삶을 누리는 하루를 싯말 둘로 읊습니다. 시집 《환생》은 다시 태어나서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누리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 그 이름도 곱고 고운 장미아파트 / 동 이름도 순 조선말로 가동과 나동 / 사이 / 그러니까 한 이십여 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 ‘베란다 담뱃불’을 돋운 것에 / 약간 미안해하며 고개 돌린 사람에게 ..  (차나 한 잔)



  우리 몸은 푸릅니다. 우리 몸은 숲에서 난 것을 받아들여서 기운을 얻거든요. 우리 마음은 파랗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늘을 흐르는 바람을 맞아들여서 기운을 얻어요. 밥을 먹으면서 몸이 푸르고, 바람을 마시면서 마음이 파랗습니다. 우리 몸에는 푸른 기운과 파란 기운이 함께 얽히고, 두 가지 기운은 빨간 빛깔로 흐르는 물(피)이 사이에 깃들면서 고운 숨결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머리는 생각을 지어서 마음에 심는데, 우리 머리가 지은 생각은 노란 해님처럼 빛나면서 까만 씨앗이 되어요. 우리 마음에는 머리가 지은 노란 해님처럼 빛나는 까만 씨앗이 깃들고, 이 씨앗은 하얗게 깨어납니다. 몸과 마음에서 온갖 빛깔 무지개가 태어난다고 할까요.



.. 바람 지나간 자리 / 가을이면 익힐 / 포도송이 닮은 열매 / 눈짓처럼 감춰 두고 ..  (노래-담쟁이덩굴)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내 몸을 생각합니다.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고 덮으면서 내 마음을 헤아립니다. 내가 태어난 별을 그리고, 내가 삶을 짓는 별을 돌아봅니다. 푸른 별에서 파란 별로 찾아온 내 넋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곱다랗게 노래하려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 이웃이 쓴 시를 읽으면서 하하 웃습니다. 나 스스로 시를 새롭게 써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나긋나긋 노래합니다. 내 동무가 쓴 시를 읽으면서 깔깔 웃습니다. 나 스스로 시를 다시금 새롭게 써서 우리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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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82) 손놀이터 . 솜씨자리 (공방/작업실)


  ‘공방(工房)’이나 ‘작업실(作業室)’이라는 말을 요즈음 두루 씁니다. 이 가운데 ‘공방’은 “공예품 따위를 만드는 곳”을 뜻하고, ‘작업실’은 “일을 하는 방”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이러한 낱말뜻처럼 “무엇인가 만드는 곳”을 가리켜 ‘공방’이라 하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을 가리켜 ‘작업실’이라 합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또 그릇을 빚거나 조각을 깎거나 나무를 다룰 적에도 으레 ‘공방·작업실’ 같은 낱말을 씁니다.


 만드는 곳 : 만듦터 . 만듦자리 . 만듦집

 짓는 곳 : 짓는방 . 짓는집 . 짓는곳 . 짓는자리

 빚는 곳 : 빚는방 . 빚는집 . 빚는곳 . 빚는자리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 봅니다. 만드는 곳이라면 말 그대로 ‘만듦터’나 ‘만듦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예부터 ‘집짓기·옷짓기’처럼 ‘짓다’라는 낱말을 썼어요. 집을 만들거나 옷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짓는집’이나 ‘짓는곳’ 같은 낱말을 쓸 만하지요. 그릇은 빚는다고 하니, 도예나 공예를 하는 분이라면 ‘빚는집’이나 ‘빚는자리’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지음자리 . 지음터 . 지음집

 빚음자리 . 빚음터 . 빚음집

 새로움집 . 새로움터 . 새터


  말꼴을 조금씩 손질합니다. ‘지음자리’나 ‘빚음자리’ 같은 낱말이 태어납니다. 실마리를 풀면, 짓거나 빚을 적에는 무엇이나 새롭게 나오도록 하기에, ‘새로움집’이나 ‘새터’라 할 수 있습니다.


 손짓기방 . 손짓기집 . 손짓기자리

 손빚기방 . 손빚기집 . 손빚기자리

 손지음방 . 손지음집 . 손지음자리

 손빚음방 . 손빚음집 . 손빚음자리


  새롭게 짓거나 빚는 얼거리를 생각합니다. 새롭게 짓거나 빚을 적에는 언제나 손을 씁니다. 손을 써서 온갖 것을 짓거나 빚습니다. 이리하여 ‘손짓기’나 ‘손빚기’라는 낱말이 태어나요. 자, 이 다음에는 어떤 말로 또 실타래를 풀 만할까요?


 손일터 . 손일집 . 손꿈터 . 손꿈자리

 손놀이터 . 손놀이집


  손으로 일합니다. 손을 놀립니다. 손을 놀리는 몸짓이기에 ‘손놀림’이라고도 하지요. 이리하여, ‘손일터’나 ‘손놀이터’ 같은 낱말이 태어나고, 손으로 일하거나 놀이한다고 할 적에는 손으로 꿈을 지을 테니 ‘손꿈터’나 ‘손꿈지음터’나 ‘손사랑터’처럼 새로운 말을 자꾸자꾸 쓸 수 있어요.


 솜씨방 . 솜씨집 . 솜씨자리 . 솜씨터

 솜씨놀이 . 솜씨짓기. 솜씨짓기집 . 솜씨지음집


  이름은 한 가지로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마음을 살려서 알맞고 아름답게 이름을 쓰면 됩니다. 틀에 갇히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일터와 놀이터로 삼아서 조그마한 터전을 가꾸려 하는 만큼, 이러한 삶을 헤아려서 알맞고 사랑스레 이름을 쓰면 돼요.


  우리는 손놀이를 하는 곳에서 솜씨를 나눕니다. 저마다 손일을 하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손꿈을 짓고 손사랑을 펼칩니다. 손길을 닿아 손꽃이 피고, 손결이 흘러 솜씨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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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9 00:13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말결을 알고 새로운 말을 만들면 좋지만 그러지 않을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안습, 레알, 멘붕 등 마구 만들어내는 새로운 말들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파란놀 2015-02-09 03:12   좋아요 1 | URL
안습 레알 멘붕 같은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닙니다.
이런 말은 하나도 `새롭지` 않아요.
바보스레 쓰면서 바보스레 퍼지는 말이에요.

`새로움`과 `바보스러움`을 가릴 수 있으면 돼요.
남들이 아무렇게나 엉터리로 꾸며서 쓰는 말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나쁜 일은 아니에요.
그저 바보스러울 뿐이랍니다.

유행말은 그냥 유행말일 뿐이면서 바보스러움이 드러나는 말이고,
삶을 녹여서 빚는 말은 삶을 녹여서 빚는 말이면서 수수하게 즐거운 말이에요.

모든 말은 우리가 늘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줄 알면 됩니다~
 

마실길에 마감글 써서 보내기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면서 마감글을 쓴다. 마감날이 하루 더 있으나 오늘 글을 끝맺는다. 아이들과 즐겁게 함께 읽는 그림책 한 권을 놓고 ‘새로운 느낌’을 담아서 쓸 글인데, 늘 시골에서만 지내다가 퍽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도시로 마실을 나오면서, 여러 가지 느낌과 생각을 갈무리해서 쓴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도시로 마실을 와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일조차 모두 ‘새로 겪는 일’이다. 너덧 시간 남짓 달리는 시외버스도 ‘새로 겪는 일’이다. 할머니 댁이나 이모 댁에서 ‘콩콩 뛰면서 놀 수 없는 일’도 ‘새로 겪는 일’이다. 모두 새로 겪는 일이다. 이 모두를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거나 바라볼 수 있고, 이 모두를 지겹거나 짜증스럽거나 싫게 바라볼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든 내 눈길이다. 내 삶이고 내 이야기이다.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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