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4. 몸짓 하나마다



  몸짓 하나마다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마다 삶이니까요. 어떤 몸짓이든 기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몸짓이든 내 따사로운 손길이 닿으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삶이거든요. 글을 쓰고 싶으면 삶을 고이 바라보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삶을 가만히 마주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 삶이 내 사진이 되고, 내 사랑이 내 사진으로 드러나며, 내 꿈이 내 사진에서 피어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나를 마주하는 오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씁니다. 내가 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하루라면 늘 기쁘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작은 몸짓을 느낍니다. 큰 몸짓을 헤아립니다. 작은 몸짓에서 깨어나는 숨결을 느끼고, 큰 몸짓에서 일으키는 물결을 헤아립니다.


  커다란 종이에 뽑아야 더 커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종이에 뽑으니 더 작아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모두 사진입니다. 더 작게 쓰는 사진이 없고, 더 크게 쓸 사진이 없습니다. 모두 즐겁게 찍어서 다 같이 즐거이 누리는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를 읽으면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사진 한 장을 읽으면서 몸짓 하나를 다시 생각합니다. 몸짓 하나에서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몸짓 하나에 깃든 삶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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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뜯은 작은 풀



  아버지가 아침을 차리는 동안, 여덟 살 사름벼리가 마당에서 ‘풀’을 뜯었다. 사름벼리는 제 작은 손에 작은 풀을 얹고는 아버지한테 내민다. “자, 먹는 풀 뜯었어요.”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말이야, 다음에 아버지하고 함께 뜯어야겠네. 왜 그럴까? 나중에 함께 뜯으면 알 수 있어. 아무튼, 사름벼리가 뜯은 작은 풀을 작은 접시에 담아서 밥상에 올린다. 이 풀을 먹든 안 먹든 눈으로 바라보면서 배가 부르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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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



  뇌를 100퍼센트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여느 때에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뇌를 100퍼센트 쓰면 이녁은 곧바로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그러면, 누가 뇌를 100퍼센트 쓸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생각을 늘 마음에 심어서 새로운 길을 짓는 사람이라면 뇌를 100퍼센트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몸에서 스스로 막아서 뇌가 ‘더 많이 열리지 못하도’록 하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운을 마음이 시키려 한다면, 몸은 그만 터질 테니까요.


  몸이 ‘나는 터지고 말 테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몸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모두 다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마음만 혼자 ‘끝없는 끝’이나 ‘가없는 점’으로 간다면, 몸은 어떻게 될까요.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낍니다. 마음만 혼자 살 수 없고, 몸만 따로 살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살 때에, 제대로 기운이 샘솟아서 제대로 삶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수퍼맨’이나 ‘영웅’을 안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서 우리 지구별을 깨끗하게 씻어 줄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어요. 수퍼맨이나 영웅은 아무리 보아도 바보스럽기만 하고, 무언가 제대로 모르는 사람 같다고 느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요. 어떤 수퍼맨 하나가 모든 나쁜 것을 다 씻으면 삶이 재미있을까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아주 잘못 생각하는 대목이 있는데, 우두머리(지도자) 한두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를 이루자면, ‘내가 나를 다스려서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짓는 길’로 가야 합니다. 한자말 ‘민주’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임자’가 되는 길이 ‘민주’예요. “백성(서민·시민)이 주인 되기”가 ‘민주’가 아니에요.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 되어, 내 삶을 바로 내 손으로 짓는 삶”이 ‘민주’입니다.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손수 지어서, 밥과 옷과 집을 언제나 스스로 지어서 얻고 누릴 수 있을 때에, ‘홀로서기’요 ‘삶’이며 ‘민주’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뛰어나거나 훌륭하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이런 나라에는 끔찍함만 도사릴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나 ‘여왕’이나 ‘영웅’이 되어 지구별을 살릴 수 없어요. 어떤 사람도 이런 길을 안 바라요. 사람들 스스로 제 길을 찾고 살피고 알고 깨달아서 슬기롭게 삶을 지어야 합니다.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 나타나서 ‘나쁜 것’을 싹 쓸어서 없앤 뒤에 어떻게 되는가요? 사람들은 평화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싸움’을 자꾸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나쁜 짓’이나 ‘새로운 바보짓’을 자꾸 일삼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아서, 이를 스스로 바로잡거나 다스리거나 불태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만화책 《드래곤 볼》이라든지 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보아도, 이런 대목이 아주 잘 나와요. 사람들은 ‘평화’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질을 합니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스리면, 언제나 그때일 뿐, 모두 제자리(바보스러운 엉터리)로 돌아갑니다.


  나는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남도 나를 도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도울 뿐입니. 우리는 이웃이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하고, 우리는 동무가 되어 돈을 보태어 준다든지 일손을 함께 맞잡는다든지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엮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잘 알아야 할 대목은, 내가 스스로 우뚝 서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폭삭 주저앉으면 아무도 나하고 어깨동무를 못 합니다. 나부터 우뚝 서야, 내 이웃과 동무랑 어깨동무를 합니다.


  ‘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제3의 눈을 떠서 뇌를 100퍼센트 쓰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라고 느껴요.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삶을 제대로 지으면 됩니다. 새로운 눈을 뜬 뒤 다른 사람을 도울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지으면, 내 동무와 이웃은 나를 바라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나도 눈을 새롭게 뜨면서 즐겁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를 도우려 한다면 ‘이렇게 해야 돕는 일’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면, 내 이웃과 동무도 이녁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아요.


  가만히 보니, 내가 ‘새로운 눈’을 뜰 때마다 하는 일은 수수합니다. 이를테면, 밥을 새롭게 짓습니다. 또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짧은 노래(시)’를 기쁘게 짓습니다.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서 풀을 뜯어서 나물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새로운 눈’을 안 뜰 적에는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거나 골을 부리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해요.


  나는 내 ‘새로운 눈’을 뜨면서 스스로 웃습니다. 나는 일어서면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눈을 뜨기에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기에 웃습니다. 일어서기에 웃으면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눈(제3의 눈)’을 뜨고서 우주혁명이나 지구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됩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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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오줌방울



  기침이 멎지 않고 몸이 아픈 작은아이가 저녁을 거르고 내처 잔다. 퍽 오랫동안 잠자리에만 누웠구나 싶어서, 밤 열한 시에 일으켜서 쉬를 누인다. 쉬를 누이기 앞서 “쉬 할래?” 하는 말을 여러 차례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는 없으나, 쉬가 마려워서 몸을 자꾸 비튼다고 느낀다. 살며서 안아서 마루로 나와서 쉬를 누이려는데, 작은아이 고추가 뭉쳤다가 풀리면서 내 뺨에 오줌방울이 튄다. 아, 오랜만이로구나. 네 오줌을 얼굴에 맞는 일 말이야. 작은아이는 오줌그릇이 가득 차도록 쉬를 눈다. 무척 오래 참았구나. 국물과 물을 몇 모금 마신 작은아이는 다시 잠자리에 눕고, 몇 번 기침을 하다가 조용히 곯아떨어진다. 밤새 잘 자렴. 아침에는 말끔한 몸으로 일어나렴.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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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11 05:19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어제 병원에서 독감검사하고 독감판정되어 일주일간 학교 가지말고 있으라는 진단서를 주더라구요.
큰병원인데 독감환자로 병실이 모자라서 입원도 안되고요.
일단 집에 데려왔는데 집에서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출근해야하네요. ㅠㅠ

파란놀 2015-02-11 05:54   좋아요 1 | URL
아이가 병원에 안 가고 어머니하고 함께 다녀야 하는 한 주라면,
어쩌면 아이한테는 무척 뜻깊은 한 주가 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는 스스로 튼튼하니, 독감이라 하더라도
씩씩하게 지내면서 말끔히 털리라 생각해요.
콜록거리는 사람만 가득한 병실보다는
어머니 곁이 한결 포근하면서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오늘 하루 열어 보셔요.
아이도 하양물감 님도 믿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도 오늘은 기침을 털고 씩씩하게 놀리라 믿어요 ^^
 
조선 사람 -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지음 / 삼천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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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1



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짓는가

―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글

 삼천리 펴냄, 2012.9.14.



  한겨울에 시골집에서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서울쯤 되는 도시에서라면 이렇게 지내지 못할는지 모르나, 고흥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바깥에서도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다만, 읍내나 면소재지로 마실을 갈 적에는 긴바지를 입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길 때문에 긴바지를 입는다기보다 ‘그냥 옷’이니까 긴바지를 입고 나갑니다. 집에서는 ‘그저 반바지’차림으로 있습니다.


  한겨울 고흥에서 바깥은 영 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우리 집은 바람이 잘 드나들어 방 온도가 15∼16도쯤 되고, 조금 포근한 날에는 17∼18도쯤 됩니다. 바깥 날씨가 영 도 밑이라면 긴바지를 입을 만하지만, 영 도 밑이 아니라면 반바지를 입어도 춥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두툼한 바지를 입어도 이 겨울에 추워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몸이 다르거든요. 이를테면,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지낸다면 두툼한 솜옷을 입어도 추울 만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사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지낸다면 어떠할까요? 이들도 한국에서 두툼한 솜옷이나 가죽옷을 입으려 할까요?



.. 조선 인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79명은 일본 천황으로부터 공작, 후작, 백작 같은 귀족 작위와 7백만 엔이 넘는 ‘은사금’과 ‘표창’을 받았다 … 조선에서 일본에 필요한 식량과 원료를 확보하고, 총독부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토지세를 유지하며, 통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토지를 직접 소유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에는 무엇보다 토지의 가격이 싼 반면에 지주가 거둬들이는 소작료는 몹시 높았기에 투자할 절호의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  (51, 55쪽)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전라남도 바닷마을과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강릉과 목포에서 짓는 삶은 서로 다릅니다. 남녘과 북녘이 짓는 삶은 다르고, 중국과 일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그러니, 나라와 겨레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삶터마다 다 다릅니다. 내가 이렇게 한대서 너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이 밥을 먹으니 내가 이 밥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네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게 네 머리카락 모습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머리카락 모습처럼 길게 기르거나 짧게 쳐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른 우리 삶을 저마다 즐겁게 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말’을 쓰면서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평화입니다.



.. 일본의 젊은 세대들한테서, “조선 사람이 왜 일본에 살고 있는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60만 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은 주로 토지를 수탈당했거나 징용, 징병으로 일본에 끌려오거나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 조선인 사회에는 연장자 앞에서는 담배나 술 따위를 멀리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젊은 일본인 경관이나 관리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되는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이, 이봐” 하고 반말을 일삼았다 ..  (59, 94쪽)



  백종원 님이 쓴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삼천리,2012)를 읽습니다. ‘재일조선인 1세’로서 겪은 20세기 이야기가 이 책에서 흐릅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온 나날 이야기가 이 책에서 흐릅니다.


  백종원 님은 한 마디로 말합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조선 사람’이고, 어느 곳에서 살든 ‘조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조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훌륭하거나 뛰어날까요? 아닙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덜떨어지거나 어리숙할까요? 아닙니다.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낫지 않고, 일본 사람이 중국 사람보다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이고, 저마다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 만철은 유능한 조사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기관은 소련이나 중국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산업과 교통에서 기후, 풍토, 수질, 질병, 민족, 종교, 풍속, 관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를 상세하게 연구했는데, 연간 예산이 옛 도쿄제국대학에 필적할 정도로 방대했다고 한다 … 우리 중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관동군 병영에 실제로 입소하여 군사교련을 받게 되어 있었다. 만철 연선의 궁주령 병영에서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때, 나는 학우 몇 명을 모아 배속 장교에 대한 욕을 잔뜩 적은 항의 글 나무패를 병영 한 귀퉁이에 세워 두었다. 그런데 우리 조와 교대한 조의 선생한테 발각되어 교무회의에서 문제가 되었다 ..  (103, 106쪽)



  일본은 그만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이웃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일본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짓은 나와 너 모두를 괴롭혀요. 오늘날에도 일본 정치조직은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수많은 이웃사람을 괴롭히지요. 그리고, 이러한 바보짓은 고스란히 저 스스로를 겨냥해요.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괴롭히는’ 꼴이거든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아끼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아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일삼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아름답게 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눌려야 했던 여러 나라 여러 겨레도 괴로운 일이었으나, 군홧발로 이웃을 짓누르는 사람은 바로 제 스스로 짓누르는 셈입니다. 스스로 괴로운 짓을 하면서 스스로 괴로운 줄 모르거나 잊는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치와 사회를 보면, 그네들 스스로 어떤 짓을 했는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 제대로 알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 못하니 제대로 살지 못해요.



.. 나는 조선인 소학교의 학생이었으나 이런 동화정책에 아이 나름으로 저항했다. 당시 일본 교장이 〈교육칙어〉를 암송하라고 강요했는데, 우리들은 그 첫 부분 “짐이 생각하기에”를 우리 말 발음으로 그럴싸하게 바꾸어 “친할머니가 콩을 달달 볶길래 한입 먹었더니 배탈이 나서”로 개사했다. 일본인 교장이 근엄한 얼굴로 칙어를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고쳐 만든 ‘칙어’를 작은 목소리로 읊었는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졌다 … 우리 조선인 학생들은 한가로이 찻집에나 처박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지로 내몰리지 않으면 안 될 조선의 학생들에게 한마디 위로라든가 의미 있는 말은커녕, 일본의 지배자들과 한목소리로 ‘성전승리’를 위한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야말로 ‘조선인으로 영광’이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최남선은 뒷날 괴뢰 ‘만주국’의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건국대학의 교수가 되고, 이광수는 ‘황도문화’를 선전하는 문인보국회에 들어갈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  (134, 181쪽)



  네가 나를 때렸으니 ‘네가 잘못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맞은 사람은 두 발 뻗고 잠들어도, 때린 사람은 두 발을 못 뻗으며 잠도 못 자기 마련입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은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으며, 남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언제나 웃으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무기로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아요. 전쟁무기로는 전쟁만 끌어들입니다. 전쟁무기로 이웃을 괴롭힌 사람은 전쟁무기를 죄다 버리면서 스스로 삶을 뉘우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일본 정치와 사회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네들 스스로 전쟁무기를 못 버리기도 하면서, 그네들 스스로 삶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도 비슷해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전쟁무기를 엄청나게 끌어안습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도 군대와 전쟁무기를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부터 평화와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한국 정치와 사회부터 참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 일본 제국주의의 패배라는 근본적인 변혁기에 즈음하여 이은 씨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상담하기 위해 만수사에 온 듯했다. 그런데 스님은 “당신은 열한 살에 인질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조선이 멸망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은 없소. 하지만 우리 민족이 수난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당신은 왕족 대우를 받아 육군 대장도 되고 참담한 민족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이 점을 당신은 스스로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스님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민족 앞에 사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조선으로 돌아가 똥거름도 지고 백성으로서 농사를 짓고, 방자 씨는 보육원이나 유치원의 보모가 되어 열심히 조선의 아이들을 돌본다면 민족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이오.” ..  (233∼234쪽)



  정치나 사회가 발돋움하는 길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끌어들여서 경제성장을 해도 이럭저럭 발돋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는 겉치레일 뿐입니다. 정치나 사회가 참답게 발돋움을 하자면,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텃밭을 일구어야 하고, 국회의원이나 의사나 신문기자도 텃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텃밭이 집집마다 있어야 하고, 모든 집에는 마당이 있어서 나무를 심어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집집마다 있는 텃밭과 마당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뜯으며 나무를 보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낮을 보내며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정치나 사회가 발돋움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삽니다.


  임금님이니까 똥거름을 안 져도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이니까 농사를 안 지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이니까 나물을 안 뜯어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자나 기술자이니까 나무를 안 심어도 되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회가 뒷걸음을 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을 거머쥐는 이들은 모두 흙과 등을 집니다. 권력과 돈과 이름을 거느리는 이들은 모두 시골과 등을 돌립니다. 글을 깨작거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풀도 꽃도 나무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는데다가, 별도 해도 바람도 구름도 안 쳐다봅니다.



.. 조선에 대한 멸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지만, 이는 에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후 ‘정한론’ 속에서 퍼지며 청일·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점점 더 커지게 된 사회적 풍조라고 생각된다 ..  (258쪽)



  이야기책 《조선 사람》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고향으로 삼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제 뿌리를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태어난 뿌리를 함께 사랑하려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이 지구별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가슴에 ‘평화’라는 이야기를 새겨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를 바라는 숨결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참말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삶짓기입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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