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126. 맨발이 싱그러운 놀이 (14.11.26.)



  아이들은 언제나 맨발로 놀고 싶다. 맨발로 놀아도 발에 무엇이 찔리거나 박히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맨발로 놀면서 ‘발에 찔리거나 박히는 일’을 머릿속에 그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싱그럽게 놀고 싶어서 맨발이 되고, 맨발로 놀고 난 뒤에 발을 안 씻고 방바닥과 마룻바닥을 뛰느라, 온 집안이 먼지투성이가 되지만, 싱그럽게 노는 만큼 싱그럽게 자랄 수 있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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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이웃님'이 모두 997명인 모습까지 보았는데,

오늘 낮에 이 숫자가 바뀌었어요.



제가 알라딘서재에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바로 제 '글터'인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이웃님입니다.


제 글을 읽어 주는 이웃님이 있기에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풀어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알라딘서재에 언제부터 글을 썼는 지

저로서도 가물가물한데

어느새 '즐겨찾기 이웃님 1000' 숫자를 넘어섰어요.

즐겨찾기 이웃님이 아닌

여느 이웃님도 모두 고맙고 반갑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과 꿈을 가슴에 담고

즐겁게 이웃마실 누리시기를 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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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2-12 17:52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축하합니다.^^

파란놀 2015-02-13 02:19   좋아요 0 | URL
제가 이웃님한테 고마워할 일이지요 (__)

붉은돼지 2015-02-12 19:24   좋아요 0 | URL
1001번째 친구신청입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길 ㅋㅋ

뭐 반드시 어쩌고저쩌고 1001...이라는 책도 많은데...

파란놀 2015-02-13 02:19   좋아요 0 | URL
그냥 친구 추가하시면 되지요~ 고맙습니다 (__)

붉은돼지 2015-02-12 19:28   좋아요 0 | URL
1001 아니네요 ㅜㅜ

희망찬샘 2015-02-14 07:15   좋아요 0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말·넋·삶 15 ‘안 된다’와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일이 ‘안 되는’ 줄 안다면, 사람은 누구나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된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일이 ‘되는’ 줄 사람들 스스로 모를 뿐 아니라, 이러한 얼거리를 제대로 알려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누구나 삶을 스스로 못 바꿉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오랫동안 길드는 탓에 스스로 삶을 짓는 길로 못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학교와 사회에서는 으레 ‘굳은 틀’에 맞춘 지식만 퍼뜨리는데, 사람들 스스로 머릿속에 ‘굳은 틀’에 맞춘 지식만 집어넣고, 이 굳은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스스로 못 합니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하려면 ‘굳은 틀’로 된 지식이 아니라, ‘열린 생각’을 스스로 길어올려야 합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나는 안 돼’ 같은 말을 학교와 사회에서 늘 듣는데다가 집과 마을에서까지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삶이 어떻게 될까요? ‘하면 돼’나 ‘해 봐 돼’ 같은 말을 언제나 들으면서 사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어떻게 가꾸거나 지을까요?


  택시가 안 온다고 하는 곳이 있다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참말 택시가 안 옵니다. 택시를 타고 싶다면 ‘택시를 곧 타야지’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들이를 가고 싶으면 ‘이제 나들이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터에서 많이 고단하기에 며칠쯤 말미를 내고 싶으면 ‘며칠 말미를 내야지’ 하고 생각하면 돼요. 모두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을 지레 못박으니 모든 일이 안 되고 맙니다. 잘 갈아 놓은 밭에 씨앗을 심을 때에 무럭무럭 자라듯이, 잘 다스린 마음에 생각을 심을 때에 비로소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마련입니다.


  되려고 하는 사람이 됩니다. 안 되려고 하는 사람이 안 됩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이 합니다.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 안 합니다. 보려고 하는 사람이 봅니다. 안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안 봅니다. 그래서, 하려고 보면 해 볼 수 있고, 하려고 보지 않으면 해 볼 수 없습니다. ‘해’ ‘보’면 ‘되’는 까닭은, ‘하’고 ‘보’기에 ‘될’ 뿐입니다. 하려는 생각을 심으니 보려는 마음으로 가고, 하려는 생각으로 보려는 마음으로 가기에, 되는 삶을 이룹니다.


  사람이 못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안 하는’ 일은 있어도 ‘못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되려고 하면 무엇이든 되지만, 안 되려고 하기에 무엇이든 안 됩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니, 생각에 어떤 씨앗을 심는지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려는 넋이고, 생각을 어떻게 살찌우려는 숨결이며, 생각을 어떻게 키우려는 머리인지 내가 스스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더러 움직이라고 말해야 내 몸이 움직이고, 내가 나한테 하자고 외쳐야 내 몸짓이 춤으로 거듭납니다.


  삶은 아주 쉽습니다. 안 되고 싶다면 ‘나는 안 돼’와 같은 생각을 자꾸 심으면 됩니다. 되고 싶다면 ‘나는 돼’와 같은 생각을 웃고 노래하면서 한결같이 심으면 됩니다. 4348.2.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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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인터스텔라 : 한정판 스틸북 (2disc) (+SEM 초도한정)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마이클 케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고전 문학’은 읽을 까닭이 없다. 굳이 읽으려 한다면 읽어도 되지만, 삶을 밝히고 싶은 사람은 ‘고전 문학’을 읽을 까닭이 없다. 왜냐하면, ‘고전’은 ‘낡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낡은 문학을 읽는다면 내 마음이 새로울 수 있을까? 새로울 수 없다. 우리가 읽을 문학이라면 ‘새로운 문학’이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문학은 무엇인가? 갓 나온 문학이 새로운가? 아니다. 지난해에 나온 문학이라면 새로운가? 아니다. 천 해나 만 해를 묵은 문학이라 하더라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서 새로운 넋으로 이끌 만한 문학일 때에 비로소 ‘새로운 문학’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읽을 문학은 ‘새로운 문학’이면서 ‘읽을 만한 문학’이어야지, ‘고전 문학’이라든지 ‘명작’이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여서는 삶이 발돋움할 수 없다.


  오늘날 물리학(과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고전 물리학’이고, 둘째 ‘양자 물리학’이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블랙홀 같은 구멍을 말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온갖 첨단장비를 써서 우주선을 만든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한정된 연료’로 ‘한정된 우주’만 ‘한정된 여행’을 해서 ‘한정된 정보’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참모습이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우주여행을 할 수 없고, 고전 물리학으로는 지구별을 새롭거나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엿볼 수 없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전쟁무기를 끝없이 만들어서 지구별에 전쟁과 경쟁과 경제개발만 끝없이 되풀이할밖에 없다.


  우주로 가려면 달라져야 한다. 아니, 우주로 가려면 거듭나야 한다. 아니, 우주로 가려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어떻게 해야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아주 쉽고 수수하면서 또렷하게 밝힌다. 우주로 가려면 ‘stay’를 하라고 외친다. ‘스태이’는 무엇인가? ‘있으라!’는 소리이다. ‘여기 있으라!’는 소리이다. ‘여기 나한테 있으라!’는 소리이다. 여기 이곳에서 나를 보면서, ‘내가 나’인 줄 바라보라는 소리이다.


  ‘양자 물리학’은 바로 ‘내가 나’인 줄 바라보도록 이끄는 과학이다. 양자 물리학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인 줄 바라볼 수 없으며, 내가 나인 줄 바라보지 못하기에 ‘새로 태어나’는 길로 가지 못한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데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참모습을 알 수 있을까? 슬기롭게 머리를 깨우칠 수 있을까?


  내가 나인 줄 바라보지 못했을 적에,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아저씨는 그저 ‘일류 비행사’일 뿐이다. 내가 나인 줄 바라보았을 적에,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아저씨는 그야말로 ‘내’가 되어, 또 다른 나이면서 새로운 나인 이녁 ‘딸’한테 말을 걸 수 있다. 바로 내가 나한테 말을 거는 셈이요, 내가 너한테 말을 거는 셈이다.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바로 오늘 여기’를 찾아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나인 줄 바라보면서 깨닫기에, 비로소 넷째 조각(넷째 차원, 4차원)이 열리고, 넷째 조각이 열리면서 ‘때와 곳을 넘어서’니,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며, ‘오롯한 사랑’이 된다. 오롯한 사랑이 되면, 이제부터 ‘낡은(고전)’ 것은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따사로운 숨결이 되니, 이제부터 언제나 평화이다. 전쟁도 경쟁도 경제발전도 한꺼번에 사라진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웃이 늘기를 빈다. 멋진 화면과 줄거리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슬기로운 깨달음으로 빛에서 어둠을 짓고 어둠에서 빛을 짓는 기쁜 삶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동무가 늘기를 바란다. 4348.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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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56) 무임승차


사회의 어떤 분야에든 무임승차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컴맹이라는 사실에 안달하지 않는다

《장정일-생각, 장정일 단상》(행복한책읽기,2005) 8쪽


 어떤 분야에든 무임승차는 있다

→ 어떤 곳에든 묻어가기는 있다

→ 어떤 자리든 얻어타기는 있다

→ 어떤 데이든 끼워살기는 있다

 …



  한국말사전에서 ‘무임승차’를 찾아보면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탐”으로 풀이하는데, 보기글에는 “찻삯이 없는”으로 여는 글을 싣습니다. 그러니까, ‘무임승차’라는 낱말을 풀이할 적에 처음부터 “찻삯을 내지 않고”로 적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찻삯을 안 치르고 몰래 차를 타려 한다면 ‘몰래타기’나 ‘거저타기’나 ‘얌체타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도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글쓴이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 둘레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묻어서 함께 갈’ 수 있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느낌을 나타내려 한다면, ‘무임승차’라는 한자말보다는 ‘곁살이’가 걸맞으리라 봅니다. ‘얹히기’나 ‘업히기’나 ‘도움받기’ 같은 낱말을 쓸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거저먹기’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얻어타기’를 합니다. 저한테 힘이나 슬기나 연장이 없으니 ‘도움받기’를 합니다. ‘얹혀가기’나 ‘업혀가기’를 하기도 합니다. 곁에 붙어서 냠냠 받아먹으니 ‘곁살이’입니다.


 찻삯이 없는 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고

→ 찻삯이 없는 그한테 거저로 타게 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 찻삯이 없는 그를 그냥 태운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고

 역무원 몰래 기차에 무임승차하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돈 안 내고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차표 없이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전차를 무임승차할 수 있었고

→ 전차를 거저로 탈 수 있었고

→ 전차를 그냥 탈 수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조금 넉넉하면 기꺼이 나누고, 조금 모자라면 기꺼이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어디에서 시키거나 추켜세우지 않더라도, 조용조용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어울리면 됩니다. 4341.10.10.쇠/4348.2.1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회 어떤 곳에든 곁살이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 안달하지 않는다


“사회의 어떤 분야(分野)에든”은 “사회 어떤 곳에든”이나 “사회 어떤 자리에든”으로 다듬고, “컴맹(computer盲)이라는 사실(事實)에”는 “컴퓨터를 쓸 줄 모르나”나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나 “컴퓨터에 깜깜하다는 대목에”로 다듬습니다.



무임승차(無賃乘車) :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탐

   - 찻삯이 없는 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고 /

     역무원 몰래 기차에 무임승차하려다 들켰다 / 전차를 무임승차할 수 있었고


..



 우리 말도 익혀야지

 (73)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게리 폴슨/김옥수-다리 건너 저편에》(사계절,1997) 7쪽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해가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햇볕이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이글이글 타는 해가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해는 뜨거울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달은 차가울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라고 하는 별에서 뿜는 ‘볕’을 놓고는 뜨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해·햇볕’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해는 눈부실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는 온갖 빛깔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라고 하는 별에서 나오는 ‘살’을 놓고는 눈부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햇살’이라는 낱말을 쓰고, 곳곳에 퍼지는 햇살을 가리켜 ‘햇발’이라고 따로 쓰며, 해가 처음 솟을 적에 나오는 빛줄기(햇살)를 ‘햇귀’라고 따로 씁니다. 한편, 해에서 나오는 ‘빛’을 놓고 따로 ‘햇빛’이라고 합니다. 뜨겁다고 하려면 “뜨거운 햇볕”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이와 함께 “밝은 햇빛”과 “눈부신 햇살”처럼 써야 올발라요. 이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 보기글처럼 “뜨거운 태양”처럼 잘못 쓰기 마련입니다.


  ‘두텁다’라는 한국말은 “의리, 믿음, 관계, 인정 들이 굳고 깊다”를 뜻합니다. 종이는 두터울 수 없습니다. 믿음이나 마음이나 사랑을 두고 ‘두텁다’나 ‘도탑다’ 같은 낱말을 씁니다. 종이를 놓고는 ‘두껍다’라고만 합니다.


  한편, 이 보기글은 1997년에 처음 나온 책에 실렸고, 2007년에는 이 보기글이 “태양이 마니가 머리에 덮어 쓰고 있던 두꺼운 판지와 몸을 가리고 있던 상자를 뜨겁게 달구었다”로 바뀝니다. 2007년에 나온 새 번역에서는 “두터운 종이”를 “두꺼운 판지(板紙)”로 고칩니다. 얼핏 보자면, 새 번역은 제대로 바로잡았다고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새 번역도 엉터리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판지’라는 한자말은 “두껍게 널빤지 모양으로 만든 종이”를 가리켜요. 그러니까, “두꺼운 판지”는 겹말입니다. 그냥 “두꺼운 종이”라고 적으면 될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2007년 새 번역에서도 ‘해’를 제대로 가려서 쓰지 못해요. 한자말 ‘태양(太陽)’은 ‘해’를 가리킬 뿐이에요. ‘太陽’은 ‘sun’처럼 외국말입니다. ‘sun’을 ‘선’이나 ‘썬’으로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고, ‘太陽’도 ‘태양’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2007년에 나온 새 번역은 “햇볕이 마니가 머리에 덮어쓴 두꺼운 종이와 몸을 가리던 상자를 뜨겁게 달구었다”로 바로잡아야 알맞습니다. 4335.8.12.달/4348.2.1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햇볕이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태양(太陽)’은 ‘해’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 보기글에서는 ‘햇볕’으로 고쳐씁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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