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5년 2월호에 실은 '사진책도서관(시골도서관)' 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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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려면 적어도 석 달을 기다립니다. 남새 씨앗이라면 석 달 뒤에 얻을 만한데, 나무 씨앗이라면 싹이 터서 줄기를 올리기까지 여러 해를 기다립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를 얻으려면 꽤 여러 해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거둔 사람은 밥알 하나를 남길 일이 없고, 능금 한 조각을 흘릴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수 심고 가꾸면서 깊고 넓게 사랑을 담았으니까요. 손수 씨앗을 심은 아이한테는 “밥알 흘리지 말고 먹으렴” 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먼저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한 권으로 한 학기나 한 해를 가르칩니다. 모든 과목을 놓고 한 학기나 한 해에 걸쳐서 천천히 가르치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과서는 쓰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 주차장이나 강당이나 체육관이나 기숙사를 두는 곳은 많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텃밭이나 논을 두는 곳은 아주 드무니까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우유팩 꽃그릇을 두어 콩씨 한 톨을 심어서 아이가 손수 돌보면서 가꾸도록 이끈다든지, 학교 둘레를 꽃밭과 나무숲으로 가꾸면 참 고우리라 봅니다.


  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를 심어서 돌보아야 합니다. 콩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와 함께 콩씨를 심어야 합니다. 팥죽을 얻으려면 팥씨를 심어야 하고, 새알심으로 쓸 쌀가루나 수숫가루를 얻자면 수수씨를 심어야지요. 그리고, 볍씨를 심어서 거두었으면 겨를 벗겨야 할 테고, 쌀가루를 쓰자면 쌀알을 곱게 빻아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면서 가르치자면 꽤 긴 나날을 보냅니다. 예부터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잘 크기를 빌’면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어요. 가만히 보면, 나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태어날 적에 심은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면, 아이가 제법 철이 들 무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사랑을 물려주어 아이가 손수 꿈을 생각할 만한 즈음에 나무 열매를 얻는 셈입니다.


  얀 리고 님이 쓴 《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라는 어린이책을 읽다가 “소비자의 수요가 늘자 농산물 생산도 늘어났는데, 이와 함께 비료 사용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많은 질산염이 빗물에 씻겨 하천으로 흘러들었는데(99쪽)” 같은 대목을 봅니다. 도시에서는 ‘농산물’이라든지 ‘수요’나 ‘생산’ 같은 말을 씁니다. 도시에서는 볍씨도 능금씨도 손수 심어서 거두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고판다고 여기고 경제성장을 헤아리니 ‘농산물 거래’와 ‘수지 타산’을 따집니다. 아무튼, 도시에서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밥 먹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논밭이 없을 뿐 아니라, 소금밭이나 뻘밭도 없어요. 도시에서는 물고기를 낚지 못하고, 소나 돼지나 닭을 치지 못합니다. 들이나 숲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와 달리 시골에는 사람이 크게 줄어드는데, 도시로 내다 팔아야 하는 곡식과 열매는 외려 더 늘어납니다. 얼마 안 되는 시골지기가 아주 많은 도시내기를 먹여살립니다. 비료를 많이 쓰고, 농약을 자꾸 치며, 기계를 더 부릴밖에 없습니다. 들과 숲에 널린 나물을 캘 틈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 다 같이 흙을 밟고 만지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들일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입을 꾹 다문 채(농약이 입에 들어가니까요) 귀는 꽉 막은 채(기곗소리가 시끄러우니까요) 일거리가 많고 넘쳐서 바쁩니다.


  《바다가 아파요》를 더 읽습니다. “바다 양식에서는 주로 포식 물고기를 길러요. 그래서 다른 야생 물고기를 많이 잡아 먹이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것은 남획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요. 게다가 양식장에서 새어 나온 배설물과 병균, 화학물질, 항생제 등이 주변 바다로 흘러들죠(130쪽).” 문득 우리 집 큰아이가 떠오릅니다. 마당 한쪽에 탱자나무를 옮겨심고 나서 아이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골에서는 그림을 그릴 모습이 둘레에 가득합니다. 여름에는 마루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멧새를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겨울에는 마당에 서서 나무와 들빛을 살펴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눈이 와서 살짝 쌓이면 눈밭에서 놀다가 하얗게 바뀐 마을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동생과 함께 세발자전거로 비탈을 오르내리며 놀고 나서 이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 복숭아나무를 쓰다듬으며 인사한 뒤 손끝으로 닿는 느낌을 헤아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여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가을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봄에는 새봄맞이 작은 꽃송이 노래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콩 한 톨을 심고 나서 콩꽃이 피고 콩알이 새로 맺을 때까지 날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산 목숨’과 ‘밥 이야기’를 새롭게 배울 만하리라 느낍니다. 손수 심은 콩 한 톨로 얻은 수북한 콩알로 밥을 지을 수 있고, 콩알을 가루로 내어 다른 먹을거리를 빚을 수 있습니다. 손수 심고 거두며 손질한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쓰면, 이러한 글이 바로 ‘문학’입니다.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서 숲을 이룹니다. 숲을 이루기까지 꽤 오랜 나날이 걸려, 어쩌면 사람들은 작은 씨앗 한 톨로 이룬 숲을 못 볼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씨앗을 꾸준히 심고 돌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나이가 될 무렵에 멋진 숲을 지어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 어른이 되는 동안 철이 듭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하다가 조잘조잘 말문을 트고 씩씩하게 도끼질이나 톱질을 하기까지 꽤 오랜 나날을 기다려야 할 테지만, 철이 들어 둘레를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는 아이는 집과 마을과 이 땅을 새롭게 짓습니다. 작은 씨앗이 집과 마을을 살리고, 작은 아이가 보금자리와 지구를 살립니다.


  공해와 환경 이야기를 책으로 가르칠 수 있고, 책으로 가르치는 인문지식도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해와 환경이 무엇인지 따로 안 가르치더라도 씨앗심기를 보여준다면, 씨앗을 함께 심는다면, 풀과 꽃과 나무를 함께 돌본다면, 손수 심은 씨앗을 함께 거둔다면, 손수 심고 거둔 씨앗으로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면, 아이와 어른은 삶과 사랑과 꿈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환하게 웃으리라 느껴요.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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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21) 서식말 1 : 무엇에 대해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 국립국어원 누리집



  한국말을 다루는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흔히 쓰는 말투로 “지적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감사드립니다)”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국립국어원에 어떤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글 끝에 이 같은 말을 붙입니다. 이러한 말투는 국립국어원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흔히 쓰고, 여느 회사에서도 자주 씁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말투를 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무엇)하는 데 대해”는 번역 말투입니다. ‘감사(感謝)하다’는 한자말입니다. 번역 말투는 마땅히 한국 말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말이 있다면 구태여 한자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자말을 즐겨쓰는 분들은 으레 ‘다양성을 살리려면 한자말도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다양성을 살리려 한다면 영어도 일본말도 다 쓸 노릇이고,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도 다 쓸 노릇일 테지요.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를 왜 바로잡아서 ‘한국 말투’로 쓰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공공기관에서 ‘땡큐’나 ‘아리가또’ 같은 외국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듯이, ‘고맙습니다’라는 한국말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같은 외국말(중국말 또는 한자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국립국어원은 한국말을 다루는 곳이요, 한국말을 나라밖에도 알리는 구실을 맡는 만큼,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면서 슬기롭게 쓸 말을 보여주는 몫을 해야지요.


 ㄱ. 짚어(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ㄴ. 알려(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ㄷ. 말씀 고맙습니다

 ㄹ. 말씀 잘 들었습니다

 ㅁ. 말씀 고맙게 듣겠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서 쓴다는 ‘서식말’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틀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어떤 틀에 따라서 쓴다는 서식말일 때에도, 사랑스러우면서 슬기롭게 틀을 가꿀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아주 뛰어나면서 훌륭하고 갈고닦아서 멋지고 기쁘게 쓸 수 있습니다. 4336.3.20.나무/4348.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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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0) 서식말 2 : 출입을 하지 마십시오


관계자 외 출입하지 마십시오

- 서울 상암동 축구경기장



  “관계자 외 출입금지” 같은 푯말이 꽤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출입금지’라는 푯말로 사람들이 억눌렸습니다. 한자말로 붉게 적는 ‘금지(禁止)’는 매우 무섭거나 무시무시하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어느새 ‘마십시오’로 바뀝니다. 사회에 민주가 흐르면서 ‘딱딱한 관공서 말투’가 조금 누그러집니다.


  그런데, ‘출입(出入)’이라고 하는 한자말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드나들다’입니다. ‘들고 나다’라든지 ‘나고 들다’처럼 쓰는 한국말입니다. ‘출입문’은 한국말로 ‘나들문’입니다. 전철을 타고 내리려고 드나드는 길목이라든지, 고속도로에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길목을 가리킬 적에 으레 ‘나들목’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ㄱ. 드나들지 마십시오

 ㄴ. 아무나 들어오지 마셔요

 ㄷ. 이곳 관계자만 들어오는 곳입니다

 ㄹ. 이곳 일꾼만 드나드는 곳입니다

 ㅁ. 이곳에 오지 마셔요


  ‘出入’을 한글로 ‘출입’처럼 적더라도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출구’와 ‘입구’도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말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입니다. ‘출입구’ 같은 외국말은 ‘드나드는 곳’으로 바로잡을 만합니다. 또는 ‘나들목’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관계자 외 출입하지 마십시오”로 한 번 손질했다면, 더 손질해서 “관계자 말고 드나들지 마십시오”로 적을 만합니다. 더 손질해서 “아무나 드나들지 마십시오”나 “함부로 들어오지 마셔요”처럼 적을 수 있어요.


  힘껏 내디딘 한 걸음을 더욱 힘껏 새롭게 내딛으면서, 아름다운 서식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5.6.10.달/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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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13 12:46   좋아요 0 | URL
감사 보단 고맙습니다. 별표 치고 갑니다. ^^

파란놀 2015-02-13 15:22   좋아요 1 | URL
`무엇보다` 어떤 말이 나아서 어떤 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참다운 뜻과 까닭이 있기 때문에
`낡은 말`을 털어서,
언제나 새로운 말을 쓸 뿐이랍니다.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2-13 16:07   좋아요 0 | URL
어느 땐 감사가 더 극진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고맙다.는 조금 더 아래 의 말 같죠.
전하기만 하면 그 뿐..이 아니기에 가능함 고맙다.를 쓰려 의식해 왔는데 그래도 한계를 느껴버려요 . 있을까요.? 고맙다 를 대신할 좀 더 극진 한 표현 이...?

파란놀 2015-02-13 16:18   좋아요 1 | URL

`말`이 무엇이고, `한국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사회의식과 고정관념으로 스며든 대로 바라보면
어떤 말이든 제대로 못 쓰기 마련입니다.

http://blog.aladin.co.kr/hbooks/7380137

이 글에 `고맙다`라는 낱말을 놓고 글을 썼으니
찬찬히 읽어 보시고 그장소 님 스스로
잘 헤아려 보시기를 바라요.

모든 실마리는 스스로 찾아야 보이는 법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고맙다는 한국말이고
감사는 외국말(중국말)입니다.
땡큐는 영어일 뿐인데, 땡큐가 `고맙다`보다 위나 아래일 수 없지요.

[그장소] 2015-02-13 16:36   좋아요 0 | URL
외국말..ㅋ 국산으로 갈아타겠습니다.
연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품등 정기적인
차량 정비를 보면 외제차는 어지간한 고소득이 아닌한 밑빠진 독 물붓기...임을...
알기에 B,M,W 강 추! ^^

파란놀 2015-02-13 16:37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것도 멋진 생각입니다.
`베엠베와 다르면서도 새롭고 멋진 연비`가 나는
국산을 타도 아름답고 사랑스레 달릴 수 있어요~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42) 답을 주다


오후 3시 배는 12시 넘어서 확실한 답을 준다고 해서

《박세욱-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86쪽


 확실한 답을 준다고 해서

→ 제대로 말해 준다고 해서

→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

→ 뜰지 안 뜰지 알 수 있다고 해서

 …



  이 보기글에서 말하는 “확실한 답”이란 “배가 뜰는지 뜨지 않을는지 똑부러지게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똑부러지게 알려준다고 해서”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라든지 “잊지 않고 꼭 말해 준다고 해서”라든지 “제대로 말해 준다고 해서”처럼 손보아도 됩니다.


  요즈음에는 “연락 주셔요”나 “전화 주셔요” 같은 말마디를 쓰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연락이나 전화를 ‘주셔요(주세요)’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연락해 주셔요”나 “전화해 주셔요”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에서는 “심부름 다녀왔습니다”에서 ‘-을’을 덜듯이 토씨를 흔히 덜기는 하지만, “생각할 일이다”에서 ‘-할’을 덜어서 “생각 일이다”처럼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답(答)’이란 ‘말’이나 ‘대꾸’입니다. “말을 준다”거나 “대꾸를 준다”고 하지 않아요. “말을 하다(말하다)”나 “대꾸를 하다(대꾸하다)”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한자말 ‘답’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 이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확실히 답해 준다고 해서”나 “확실히 답한다고 해서”처럼 적어야 합니다. ‘말(대꾸)’이든 ‘답(대답)’이든 ‘주다’라는 낱말로는 가리킬 수 없다는 대목을 잘 헤아려야겠습니다. 4339.4.17.달/4348.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낮 세 시 배는 열두 시 넘어서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


“오후(午後) 3시”는 “낮 세 시”로 손보고, ‘확실(確實)한’은 ‘틀림없이’나 ‘뚜렷이’나 ‘똑똑히’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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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02) 서로 상대에게


배움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상대에게 힘을 준다

《파멜라 메츠/이현주 옮김-배움의 도》(민들레,2003) 28쪽


 서로 상대에게 힘을 준다

→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준다 (?)

→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된다

→ 서로 힘이 된다

→ 서로서로 힘이 된다

 …



  한자말 ‘상대(相對)’는 “서로 마주 대함. 또는 그런 대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서로’입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서로 상대에게”는 “서로 서로에게”처럼 쓴 꼴이면서, 얄궂은 겹말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한테”처럼 고쳐쓰든 “서로서로”처럼 손질하든 “서로”처럼 단출하게 적든 해야 올발라요.


  이 보기글은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준다”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준다”고 하는 말마디가 아리송합니다. “배움이 진행되는 동안”이라고 하는 말마디도 알쏭달쏭합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여러모로 뒤죽박죽입니다. 배움은 ‘진행된다’고 하지 않고, 그저 ‘배운다’고 해야겠지요. “배우는 동안”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된다”고 해야겠지요. 함께 배우면서 서로 기댈 만한 사이가 되어 서로 힘이 된다고 해야 할 테지요. 4338.4.6.물/4348.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배우는 동안 서로서로 힘이 된다


“배움이 진행(進行)되는 동안”은 “배우는 동안”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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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으려 한다면



  눈먼 사랑이 있고, 눈뜬 사랑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어디에 눈이 멀지 않습니다. ‘눈먼 모습’이라면 사랑이 아닌 ‘좋아함’입니다. 눈이 멀기에 무턱대고 좋아하거나 따르려 합니다. 그리고, 눈이 멀기에 그저 좋은 쪽으로만 가려 하고, 눈이 먼 탓에 그리운 어느 곳으로 가고야 맙니다. 사랑이 되면, 눈이 멀지 않습니다. 고요하면서 차분하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저절로 갑니다. 그러면 ‘눈뜬 모습’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되면 저절로 눈을 뜹니다. 사랑이면서 눈을 떠요. 다시 말하자면, 눈먼 모습은 사랑이 아닌 모습이고, 눈뜬 모습이 바로 사랑인 모습입니다.


  사랑을 굳이 두 가지로 바라보자면, 사랑에는 ‘낳는 사랑’과 ‘기르는 사랑’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낳는 사랑이고, 아버지는 언제나 기르는 사랑이지요. 사회에서 흔히 ‘입양’을 하는 어버이가 있는데, 이러한 어버이도 ‘기르는 사랑’입니다. 낳든 기르든 모두 사랑이기에, 이러한 사랑길로 걸어갈 수 있다면 모두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를 낳습니다.


  사랑을 읽으려 한다면, 내가 손수 낳는 사랑인지 아니면 손수 기르는 사랑인지 살필 노릇입니다. 낳거나 기르거나 모두 아름답습니다. 모두 사랑이기에 아름답습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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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려고 읽는 책



  책을 읽는 사람은 달라집니다. 오늘까지 이만큼 알았으면 오늘부터 여기에 하나를 더 얹어서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갈 적에도 달라진다고 할 만합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모습도 달라진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을 겉으로만 읽는다면 ‘달라지기’만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속으로 읽는다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달라지기와 새로워지기는 서로 같은 듯하면서 같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어제와 같지 않을 적에는 ‘달라지기’요, 속생각이 어제 모습을 내려놓고 고운 꽃처럼 피어날 적에는 ‘새로워지기’입니다.


  책을 읽어 머릿속에 지식을 담는다면 ‘달라지기’입니다. 책을 읽어서 느끼고 배우고 제대로 삶을 바라볼 수 있으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어 살림을 하나하나 손수 짓는 길로 나아간다면 비로소 ‘새로워지기’입니다.


  누군가는 그저 ‘달라지’려고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제까지 입은 껍데기를 벗고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뜻으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달라지기만 한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달라지고 또 달라지면서 ‘나도 이제 허물을 벗고 나비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싶구나’ 하는 꿈을 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작은 허물을 벗고 큰 허물을 벗으면서 그대로 애벌레인 채 있는 ‘달라지기’만으로는 새로운 삶이 안 되는 줄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면, 이제 모든 허물을 벗고 나비로 새롭게 깨어날 때입니다.


  허물벗기는 한 차례만 해도 되고 열 차례나 백 차례를 해도 됩니다. 허물벗기를 적게 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허물벗기를 많이 하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허물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숨결로 태어나려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새롭게 깨어나고 태어나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나비처럼 환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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