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 이루는 마음



  밥물을 맞추어 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국거리를 차근차근 손질해서 차근차근 국냄비에도 불을 넣습니다. 두 가지를 끓인 뒤 가만히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떤 풀을 썰어서 밥상에 올리면 재미나면서 맛날까 하고 생각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마당과 뒤꼍에서 풀이 많이 돋아서 끼니마다 새롭게 풀을 뜯고 썰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한겨울에는 아직 새로 돋는 풀이 넉넉하지 않으니 배추나 동글배추를 썰어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때때로 갓잎을 섞습니다.


  풀을 썰고 나서 된장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마요네즈와 케찹으로 버무리기도 합니다. 무엇으로 간을 맞추거나 버무려도 다 즐겁습니다. 늘 새로우면서 기쁜 맛입니다. 두 가지 빛깔 파프리카를 썬 뒤 통통한 배춧잎을 썰고서 꽃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보들보들한 배춧잎을 썰고, 동글배추도 가늘게 썰어서 섞습니다. 오늘은 마요네즈와 케찹으로 해 보자 생각하면서 뽁뽁 뿌리는데, 어쩐지 이 빛깔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바라봅니다. 나는 내가 짓는 밥을 나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이제 노래를 부릅니다. 부엌 한쪽에 붙인 종이에 적은 노랫말을 찬찬히 읊습니다. 내가 짓는 밥과 국과 풀에 고운 숨결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내 노래는 바람을 타고 밥과 국과 풀에 스며들고, 이 노래가 스며든 밥과 국과 풀을 먹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흐뭇합니다.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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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2-16 14:5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렇게 해봐야겠어요. 함께살기님 밥상사진은 건강해 보여 항상 주의깊게 보게 됩니다.

파란놀 2015-02-16 17:18   좋아요 0 | URL
있는 그대로 먹기만 해도 즐거웁구나 싶어요
꼭 이런저런 양념을 해야 하지 않고요.
송송 삭삭 썰어서
꽃접시에 담으면
늘 그대로 멋진 밥상이 되어요~
 
死に花 (單行本)
太田 蘭三 / 角川書店 / 200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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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 영화는 디브이디가 없구나. 참 아쉽구나...

..

시니바나
死に花, Shinibana, 2004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뎅겅 베고 나서 그루터기만 남지만, 이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몸통이 모두 잘렸어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줄기가 하나 오르고, 새로운 줄기에서는 새로운 잎이 돋으며, 새로운 움이 트니, 그루터기에서도 꽃이 핀다.

  모든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줄기가 오르지는 않는다. 몸통이 뎅겅 잘린 뒤 그만 슬픔에 잠겨 죽거나 깊이 잠드는 그루터기가 있고, 몸통이 뎅겅 잘린 뒤에도 얼마든지 새 줄기를 올려서 새롭게 자라려는 그루터기가 있다.

  영화 〈그루터기꽃(시니바나死に花)〉를 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잔뜩 나오는 영화를 본다. 참말 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이가 많다. 이 영화를 찍을 무렵만 하더라도 거의 다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러한 영화를 찍었을까. 이 영화는 어떤 숨결을 속삭이려고 우리한테 찾아올까.

  겉보기로는 으리으리하다는 ‘양로원(실버타운)’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루하루 기쁜 삶일까? 으리으리하니까 기쁠까? 아니면, 으리으리한 곳에 버려진 채 사회와는 동떨어진 하루를 죽음을 바라보면서 걸어야 할까?

  삶은 돈으로 짓지 않는다. 기쁨은 돈이 끌어들이지 않는다. 사랑은 돈이 넉넉하대서 이루지 않는다. 삶과 기쁨과 사랑은 언제나 ‘어린이 같은 마음’이 되어 ‘씨앗 한 톨 심는 신나는 놀이’일 때에 스스로 일으킨다.

  아흔아홉 살을 맞이한 할아버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흔아홉 살을 기뻐할 살붙이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아흔아홉 살 할아버지네 살붙이는 어디에 있을까? 땅속에 있다. 왜 땅속에 있는가? 일본이 일으킨 엉터리 전쟁 때문에 방공호에 숨었다가 그만 네 사람이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혼자 어처구니없게 살아남았으니 할 말이 없을밖에 없다. 혼자 살아남은 채 쉰 해 남짓 목숨을 이었으니 그야말로 할 말이 없을 테지. 누구한테 말을 하나.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나.

  양로원(또는 실버타운)에서 가까운 동무로 지내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아주 튼튼해 보이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갑작스레 일찍 숨을 거둔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다른 동무 할아버지한테 꿈을 한 가지 남긴다. ‘은행털이’를 하라는 꿈을 남긴다. 할아버지들은 뜻을 모은다. 양로원(또는 실버타운)에서 할 일이 하나도 없이, 술만 마시거나 여자를 밝히거나 책만 파면서 따분한 하루였는데, 비로소 할 일이 생겼다.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그루터기 스스로 꽃을 피우려는 마음이 되기에 꽃을 피운다. 그루터기가 그저 시들시들거리다가 숨을 거둔다. 그루터기 스스로 아무런 꿈을 마음에 담지 못했기에 그대로 숨을 거둔다.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동떨어지지 않는다. 삶을 생각하기에 삶이요, 죽음을 생각하니까 죽음이다. 목숨이 붙었기에 삶이 아니다. 꿈을 짓는 생각이 있는 사람만 언제나 삶이다.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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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55. 고구마싹



아랫목에 놓고 겨우내

조금씩 굽고 삶고 쪄서

맛나게 먹는 고구마

손에 쥘 적마다

고구마싹을 밭고랑마다 놓아

잘 크렴 잘 자라렴

인사하고 북돋우던

할머니 할아버지 손길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올해에는 나도 고구마싹 놓고

땅과 하늘과 바람에 대고

두 손 모아 빌면서

고구마꿈 꾸고 싶습니다.



2015.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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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7] 어깨동무



  남녘과 북녘이 갈라지고 난 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동무’라고 하는 살갑고 오래된 낱말이 짓밟혔습니다. ‘동무’라는 낱말은 마치 북녘에서만 쓰는 낱말인듯이 정치권력이 윽박질렀어요. 이리하여 어른도 아이도 남녘에서는 ‘친구(親舊)’라는 한자말을 써야 했습니다. 남녘에서 새롭게 태어나 자라는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무’라는 낱말은 어쩐지 낯선 말로 여겨야 했어요. 그러나 ‘동무’라는 낱말은 ‘글동무’라든지 ‘소꿉동무’라든지 ‘어깨동무’라든지 ‘길동무’라는 낱말에 씩씩하게 남았습니다. ‘소꿉동무’는 그만 ‘소꿉친구’라는 낱말로도 갈렸는데, ‘길친구’나 ‘어깨친구’ 같은 엉터리 말을 쓰는 사람은 없어요. ‘어깨동무’는 어린이 잡지 이름으로도 꽤 오래 아이들 곁에 있었지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 사회에서 외치는 ‘연대(連帶)’란, 한국말로는 ‘어깨동무’입니다. 함께 어깨를 겯고 나아가려는 몸짓이란 바로 어깨동무일 테니까요. 삶을 살리면서 말을 살리고, 말을 살리면서 넋을 살려요. 넋을 살리는 사람은 꿈을 살리고, 꿈을 살리면서 시나브로 사랑을 함께 살립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어깨를 겯는 사이 우리 숨결이 기쁘게 춤을 춥니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말이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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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00) 것일 것이다 1


우리가 어떠한 정신적 자세와 태도를 유지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2004) 3쪽


 -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 -하느냐 하는 것이다

→ -하느냐 하는 대목이다

→ -하느냐이다

→ -하느냐에 달린다

→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글이나 말을 끝맺으면서 ‘-는 것이다’처럼 쓰는 분이 부쩍 늘어납니다. 이러한 글투나 말투는 한국말이라 할 수 없지만, 어느새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이 같은 말투를 쓰지 말자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하느냐 하는 것이다”처럼 ‘것’을 한 번쯤 넣는 말투는 이럭저럭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할 만할 텐데, 다시금 ‘것’을 더 넣어서 “-는 것일 것이다”처럼 쓴다면, 참으로 얄궂습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분이 이처럼 ‘것’을 겹으로 쓰면서 힘있게 뜻을 나타내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일부러 같은 말을 잇달아 적으면서 힘주어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리하여 “-는 것일 것이라는 것이다”처럼 ‘것’을 세 차례 쓰는 분도 있어요.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한국말에는 이런 말투가 없습니다. 이처럼 ‘것’을 쓰는 말투가 없는 한국말에서는 그동안 어떤 말투로 힘주어 말했을까요?


 -하느냐에 따라 달린다고 하겠다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다시금 말하겠다

 -하느냐를 더 생각할 노릇이다

 -하느냐를 새삼스레 돌아볼 일이다


  말끝에 여러모로 다른 낱말을 넣으면서 힘주어 말합니다. ‘것’을 넣지는 않습니다. 말끝을 이어서 새로운 낱말을 붙일 때에 비로소 ‘제대로 힘주어 외치는 투’가 됩니다. 4338.3.24.나무/4348.2.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몸짓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몸짓을 잇느냐 하는 대목이다


한자말 ‘자세(姿勢)’는 “사물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하고, ‘태도(態度)’는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 두 한자말은 똑같은 한 가지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자세 = 마음가짐’이라 하면서, ‘태도 =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라고 한다면, ‘태도 = 마음가짐이 드러난 마음가짐’이란 소리이니,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말풀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한편, 말뜻이 터무니없는 두 한자말을 나란히 쓰는 보기글도 얄궂습니다. “정신적(精神的) 자세와 태도”는 “마음과 몸짓”으로 손질합니다. ‘유지(維持)하느냐’는 ‘지키느냐’나 ‘잇느냐’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45) 것일 것이다 2


아마 유명한 ‘57 버라이어티’와 유사한 모든 것을 낙인찍는 잘못된 관습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나탄 라이언스/윤택기 옮김-사진가의 사진론》(눈빛,1990) 21쪽


 잘못된 관습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느낀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



  “것일 것이다”처럼 쓰기에 더 힘주어 나타내는 말투가 되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은 “비롯되었다고 본다”처럼 쓰면 됩니다.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처럼 써도 됩니다. “비롯되었다고 굳게 믿는다”처럼 쓰거나 “틀림없이 비롯되었다고 본다”처럼 써도 되어요. 4339.4.26.물/4348.2.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마 잘 알려진 ‘57 버라이어티’와 비슷한 모든 것을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본다


‘유명(有名)한’보다는 ‘잘 알려진’이나 ‘널리 알려진’으로 손보고, ‘유사(類似)한’은 ‘비슷한’으로 손봅니다. ‘낙인(烙印) 찍는’은 ‘못박는’이나 ‘몰아넣는’이나 ‘몰아세우는’으로 손질하고, ‘관습(慣習)’은 ‘버릇’으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87) 것일 것이다 3


여름철에 큰바위 밑에서 능구렁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것은 무당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능구렁이의 울음소리로 착각한 것일 것이다

《백남극·심재한-뱀》(지성사,1999) 43쪽


 능구렁이의 울음소리로 착각한 것일 것이다

→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잘못 알아서이다

→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잘못 알아들은 셈이다

→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잘못 알아들은 탓이다

→ 능구렁이 울음소리라고 엉뚱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 자리에서는 “착각한 것이다”로 끝맺을 만합니다. 적어도 이렇게 끝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ㄴ 것이다” 꼴도 아닌 “-ㄴ 것일 것이다” 꼴로 말끝을 늘어뜨립니다.


  말끝을 늘어뜨리면서 힘주어 말하려 한다면, “엉뚱하게 생각하고 그리 들었겠지”라든지 “잘못 들어서 그랬을 테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9.7.12.물/4348.2.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름철에 큰바위 밑에서 능구렁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면 무당개구리 울음소리를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잘못 알아들은 셈이다


“능구렁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로 썼으면 “무당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무당개구리 울음소리”라고 쓸 줄 아는 셈입니다. “능구렁이의 울음소리”도 “능구렁이 울음소리”로 손봅니다. ‘착각(錯覺)한’은 ‘잘못 안’이나 ‘잘못 본’이나 ‘잘못 생각한’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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