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솜사탕 먹겠어



  시외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즈음 달려야 하는 길에서, 사름벼리는 ‘과자 한 점’ 고르라 하니 솜사탕을 고른다. 이에 작은아이도 솜사탕을 고르겠다 한다. 너희 솜사탕 하나로 되겠니? “응.” 앞으로 우리 갈 길이 아주 먼데, 솜사탕 하나로 든든하겠니? “응.” 좋아, 그러면 솜사탕 하나면 되지. 마실길을 즐겁게 가자. 솜사탕 하나와 미리 챙긴 주전부리로 먼먼 마실길을 달린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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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이것 타고 싶은데



  인천으로 마실을 가서 찬찬히 동네를 거닐 적에, 자유공원 한쪽에서 산들보라가 ‘인천시 상징인형’을 보았다. 다섯 살 산들보라는 이 인형이 돈을 넣으면 움직이는 놀잇감으로 여긴 듯하다. 그러나 얘들은 안 움직인단다. 네 아버지가 이 인형 앞으로 같이 간다 한들 얘들을 움직여 주지는 못하지. 산들보라는 이리 만지고 저리 살핀 끝에 ‘안 움직인다’는 대목을 깨닫고는 ‘타고 놀자’는 생각을 넌지시 내려놓고 그냥 논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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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책읽기



  음성에 계신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사흘을 지낸 뒤 고흥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갔다가 ‘집’에 돌아온다. 두 집 사이를 오가면서 ‘집’을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스무 살에 제금을 났으니, 이제는 ‘내 어버이 집’에서 살던 나날보다 ‘내 집’에서 사는 나날이 더 길다. 앞으로는 ‘내 집’에서 보내는 나날이 훨씬 길어지리라.


  지난날에는 한 집안에서 제금을 날 적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더 생각해 보면, 제금을 나더라도 굳이 멀리 갈 까닭이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어버이 스스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여기는 터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물려받아 두고두고 물려줄 만한 ‘숲집’을 가꿀 적에는 굳이 멀리 떨어진 데에 살 까닭이 없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제금을 나면서 한 집안에 그대로 머무는 일이 드물다. 요즈음 어버이는 아이들이 제금을 날 수 있도록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아파트나 자가용을 장만하는 돈으로 쓰려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이리하여, 이 나라에서는 아파트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끝없이 내달린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다. 도시에서 산다면,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산다면, 굳이 어버이와 아이가 제금을 날 까닭이 있을까? 한 집안을 이루면서 자가용을 함께 쓴다면, 돈을 훨씬 아낄 뿐 아니라, 아낀 돈으로 훨씬 기쁜 나날을 누리지 않을까? 어버이와 아이가 한 집안을 이루면, ‘어른이 된 아이’가 새로운 아이를 낳을 적에, 아주 홀가분하면서 부드럽고 따스하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새 아이’를 맡아서 돌보리라.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어버이 사랑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받아야 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어버이 슬기에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슬기를 배워야 한다. 여러 어른이 한 집안에서 지내는 일은 서로서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된다.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가 왜 ‘한 집안을 뿔뿔이 가르려 하는가’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슬기로움을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면서 인터넷이나 책이나 전문가나 학교 따위에서 얻으려 한다. 그러나 슬기로움은 스스로 길어올릴 수 있을 뿐, 다른 데에서는 찾을 수 없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깨닫는 슬기이지, 책이나 지식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학교에서는 아무런 슬기가 없다.


  우리가 돌아가는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느 집에서 무슨 살림을 가꾸는가. 우리는 우리 집을 어떤 보금자리로 가꾸는가.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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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86) 참기쁨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이라든가 소박한 수공예 미술품에 대한 노력, 또 민중이 예술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 바로 그것이 자연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이젠베르크/김용준 옮김-부분과 전체》(지식산업사,1982) 79, 95쪽


  ‘참다움·착함·아름다움’은 사람한테서 찾아볼 수 있는 놀랍고 훌륭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알맞고 올바르게 갖출 때에 ‘참사람’이라 할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삶을 바라보면, 참다운 삶일 때에 기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착한 사람일 때에 훌륭합니다. 사랑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사랑일 때에 따사롭습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가지려는 몸짓은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가지려 하더라도, 먼저 참답고 착하면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홀가분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참답고 착하면서 아름다운 사람일 때에, 돈이나 이름이나 힘은 시나브로 따라온다고 느낍니다.


  오늘날에는 ‘참살이’라고 하는 낱말이 불거집니다. 사람들 삶이 그리 참답지 않다 보니, 영어로는 ‘웰빙’이고, 이를 한국말로 옮겨 ‘참살이’처럼 씁니다. 그런데, ‘참살이’라는 말이 퍼지기 앞서, 꽤 많은 사람들은 ‘거짓삶’을 떨치고 ‘참삶’으로 깨어나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빈 껍데기에 매달리지 말고, 내 속살을 스스로 알차게 갖추는 참삶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학교교육에서는 ‘거짓교육’이 아닌 ‘참교육’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어요. 민주도 ‘참민주’여야 하고, 평화도 ‘참평화’여야 한다고 했지요. 아무렴 그렇습니다. 겉보기로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사회 얼거리가 아니라, 참답게 민주여야 할 테지요. 전쟁무기와 군대를 내세우는 거짓스러운 평화가 아니가 참다운 평화여야 할 테지요.


 참기쁨 . 참모습 . 참마음 . 참사랑 . 참노래 . 참사람 . 참생각

 참뜻 . 참삶 . 참넋 . 참꿈 . 참말 . 참글 . 참길 . 참빛 . 참나


  ‘참-’이라는 낱말을 앞에 붙이는 낱말 가운데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 있고, 아직 안 실린 낱말이 있습니다. 애써 모든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하지 않을 테고, 한국말사전에서 다루든 안 다루든 우리 스스로 즐겁게 쓸 수 있으면 됩니다. 이를테면, ‘참잔치’라든지 ‘참놀이’라든지 ‘참일’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쓸 만합니다. ‘참말·거짓말’처럼 ‘참글·거짓글’을 쓸 만해요. 나 스스로 참다운 넋으로 걷는 길이라면 ‘참길’이요, 옳지 않은 길을 바보스레 간다면 ‘거짓길’이에요.


  마음은 ‘참마음·거짓마음’으로 갈리고, 사랑은 ‘참사랑·거짓사랑’으로 나뉩니다. 기쁨을 놓고는, 그냥 기쁨이라고 할 수 있는 한편, ‘참기쁨’처럼 새롭게 쓰면서 더욱 밝고 아름다운 느낌을 나타낼 수 있어요.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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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새책이란 ‘새로 나온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책을 ‘새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책을 너무 좁게 바라본 셈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이라 하지만, 처음 나온 때가 꽤 오래된 책이 있어요. 겉모습만 보면서 새책인지 아닌지 가르면, 책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새책을 넓게 바라보는 눈길은 무엇일까요?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야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새롭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새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새책방에 가서 헌책만 잔뜩 사들일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번드레레하지만, 속에 담은 줄거리나 알맹이는 낡거나 오래될 수 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이 겉만 번드레레하다면 헌책입니다.


  우리는 헌책방에 가서 새책을 잔뜩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낡고 오래되었으나 줄거리와 알맹이는 새로울 수 있어요. 몇 번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운 이야기라 할 때에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합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보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글을 씁니다. 어느 날도 새로움을 못 보는 사람은 언제나 아무 글도 못 씁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 때에 새로움을 맞이합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지 않는다면, 둘레에서 아무리 부추기거나 북돋아도 새로움은 찾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이 출퇴근을 하기에 새로움이 없다고 할 만할까요? 전철과 버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시달리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하루가 되어 새로운 기쁨을 누리면서 나눕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언제나 따분하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하루가 되어 ‘새책’을 못 보고 못 읽습니다.


  시끄러운 찻길에서도 책을 펼쳐서 읽는 사람은 두 갈래일 테지요. 하나는 ‘낡은 책’을 억지스레 붙잡으면서 무언가 거머쥐거나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책’을 홀가분하게 펼치면서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사람입니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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