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251. 2015.2.14. 기차돌이



  다섯 살 작은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며 보는 그림책에는 으레 자동차와 기차가 나온다. 이 아이는 왜 자동차와 기차한테 끌릴까? 가만히 보면, 우리 삶터에는 기차나 자동차가 아주 많다. 어디에 가나 기차와 자동차이다. 지난날에는 어디를 가든 두 다리로 걸어서 다녔으나, 이제는 어디를 가든 언제나 자동차나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나 배 따위를 타니까, 아이들도 이런 탈거리에 더 눈길이 갈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기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작은아이 책돌이는 기차 노래를 부른다. 기차를 타고 싶단다. 그래, 설날에는 아주 징허게 기차를 태워 주마.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에 여섯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기차로 여섯 시간을 태워 주마.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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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이 태어나는 첫자리



  모든 책이 태어나는 첫자리를 생각한다. 바로 아이들 손끝이다. 왜 이러한가? 왜냐하면, 책을 쓰는 모든 어른은 처음에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학문을 하거나 철학을 하거나 문학을 하거나 과학을 하기 앞서, 즐겁게 뛰논 아이로 삶을 누렸기에 비로소 모든 학문도 철학도 문학도 과학도 할 수 있다. 즐겁게 뛰논 삶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즐겁게 뛰놀면서 동무와 어울린 나날이 없다면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다.


  글 한 줄은 맑게 웃으며 놀던 어린 날에서 비롯한다. 책 한 권은 밝게 노래하며 어깨동무하던 어린 삶에서 태어난다. 모든 책이 태어나는 첫자리는 사랑이다. 모든 책이 깨어나는 끝자리는 꿈이다. 모든 책이 흐르면서 환하게 퍼지는 자리는 삶이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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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5.2.12. 큰아이―참 또박또박



  여덟 살 글순이가 깍뚜기공책에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몹시 힘차다. 아주 또박또박 잘 쓴다. 다만, 글씨 쓰는 흐름을 제대로 익히지는 못했는데, 이는 곧 바로잡아 줄 수 있다. 아귀와 손끝에 야무지게 놀리는 힘이 더없이 대견스럽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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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5.2.12. 작은아이―누나와 함께 한글



  이제 작은아이도 한글쓰기를 함께 한다. 늘 어깨너머 구경만 하던 작은아이는 연필쥐기부터 썩 익숙하지 않다. 늘 보던 눈은 있어서 처음에는 잘 잡지만, 처음 잡은 손으로 쓰자니 영 손에 익지 않아 자꾸 ‘막 잡고’ 휘두르려 한다. 얘야, 찬찬히 한 글자씩 쓰면 돼. 찬찬히 하면 다 돼.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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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54) 우려의 1


조선어사전편찬회에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최경봉-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71쪽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 걱정스런 눈길을 보낼 수밖에

→ 근심스런 눈길을 보낼 수밖에

→ 걱정스레 볼밖에

→ 걱정도 할 수밖에

→ 걱정이 될 수밖에

→ 걱정할 수밖에

 …



  “우려의 시선”은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적는 “憂慮の視線”을, 껍데기만 한글로 적었을 뿐입니다. 이를 “걱정의 눈길”로 다듬어도 알맞지 않아요. 사이에 끼어든 ‘-의’를 덜고 “걱정스런 눈길”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나 “근심스런 눈”이나 “근심하는 몸짓”쯤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까 걱정스럽다

→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 수 있다

 우려를 표시했다

→ 걱정된다고 말했다

→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려를 낳다

→ 걱정이 된다

→ 걱정스럽다


  한자말 ‘우려’를 쓰면 자꾸 ‘-의’가 들러붙습니다만, 한국말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을 넣으면 어느 자리에도 토씨 ‘-의’는 달라붙지 못합니다. 낱말부터 하나하나 옳고 바르게 가다듬을 때에, 말투도 옳고 바르게 추스릅니다. 말투를 옳고 바르게 추슬른다면, 넋과 삶 또한 옳고 바르게 흐르도록 다스릴 수 있습니다. 4338.10.17.달/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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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사전편찬회를 바라보면서도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믿으면서도 걱정스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기대(期待)를 걸면서도”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바라보면서도”나 “바라면서도”나 “믿으면서도”로 손볼 수 있습니다. “눈이 가는 길”을 한자로 적으면 ‘시선(視線)’이 되지만, 한국말로 적으면 ‘눈길’입니다.



우려(憂慮) : 근심하거나 걱정함

  - 우려를 낳다 / 우려를 표시했다 /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96) 우려의 2


최근의 어떤 매우 상세한 보고는 깊은 우려의 원인을 제공한다

《폴 인그램/홍성녕 옮김-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알마,2008) 108쪽


 깊은 우려의 원인을 제공한다

→ 몹시 걱정스럽게 한다

→ 몹시 걱정스럽다 할 만하다

→ 대단히 근심스러울 뿐이다

→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하다

→ 더할 나위 없이 근심스럽다

 …



  수학을 익히고, 사회과학을 파며, 역사학을 들추는 분들 가운데 ‘한국말’을 차근차근 익히거나 파거나 들추는 분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교육학을 배우고, 인문학을 살피며, 자연과학에 몸담는 분들 가운데 ‘한국사람이 쓸 글’을 알뜰살뜰 배우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분을 만나기 힘듭니다. 모두 이녁이 파고드는 학문 한 가지는 잘할는지 모릅니다만, 이웃이나 동무나 뒷사람한테 알맞고 쉬우며 넉넉하게 물려줄 수 있게끔 ‘학문이나 사상이나 철학을 한국말과 한국 말투로 살뜰히 엮어내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일그러진 말과 글로 학문을 하여 책을 내거나 옮기면, 일그러진 말과 글로 ‘어느 학문을 배우고’ 맙니다. 처음 가르치는 분이 일그러진 말과 글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아무리 훌륭하고 슬기로운 학문을 갈고닦는다고 하여도, 내 학문을 ‘일그러진 말과 글’로 풀어놓을밖에 없습니다.


  학문이라는 ‘뜻(목적)’은 이루었을지라도, 학문을 함께 나누는 ‘삶(실천)’은 이루지 못하는 셈입니다. ‘생각(이론)’은 누구보다 튼튼히 다져 놓았을 터이나, 생각을 풀어놓으며 이웃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삶’하고는 동떨어지는 셈입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거나 반갑다고 하여도, 신문기사나 방송소식이 ‘일그러진 말과 글’로 되었다면, 좋은 이야기와 반가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들한테 일그러진 말과 글을 길들게 하고 맙니다. 목사님과 신부님과 스님 말씀이 아무리 거룩하고 훌륭하더라도, 이녁이 쓰는 말마디가 일그러진 채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믿음이라는 한길을 걷는 사람들 말과 생각 또한 일그러질밖에 없습니다.


  어느 학문을 하건, 알맞고 바르며 살갑게 말하거나 글을 써서 내 생각과 뜻과 마음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함께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말을 바르게 나누고 글을 곧게 여밀 수 있게끔 북돋워야 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한테조차 영어를 어김없이 가르치는데, 이에 앞서 한국말을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중·고등학생한테도, 또 대학생한테도, 또 여느 회사원과 일꾼한테도, 한국말을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면서 쓰도록 도와주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4341.11.8.흙/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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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어떤 이야기를 보면 몹시 걱정스럽다 할 만하다


‘최근(最近)의’는 ‘요사이’나 ‘요즈음’으로 다듬고, ‘상세(詳細)한’은 ‘낱낱이 밝힌’이나 ‘낱낱이 적은’으로 다듬습니다. ‘보고’는 ‘補考’일는지 ‘報告’일는지 헷갈리지만, 아마 ‘報告’일 듯한데, ‘보고서’와 뜻이 같은 ‘보고’는 ‘글’로 손볼 수 있어요. 이 보기글에서는 ‘이야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원인(原因)을 제공(提供)한다”는 앞말과 묶어서 아예 털어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17) 우려의 3


한국 언론의 정파주의가 깊어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 커지고 있다

《손석춘-민중언론학의 논리》(철수와영희,2015) 246쪽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근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



  한국말 ‘근심·걱정’은 ‘근심하다·걱정하다’나 ‘근심스럽다·걱정스럽다’로 살려서 씁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헤아리니 “걱정의 목소리”나 “근심의 목소리”처럼 잘못 쓸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한자말 ‘우려’를 한국사람이 쓸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우려하는 목소리”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이런 한자말은 말끔히 털고, 한국말로 쉽고 바르며 아름답게 “걱정하는 목소리”나 “근심하는 목소리”처럼 적으면 됩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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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서 정파주의가 깊어 간다고 걱정하는 목소리 언론계를 비롯하여 학계에서 커진다


“한국 언론의 정파주의”는 “한국 언론에서 정파주의”로 손질하고, “깊어 가고 있다는”은 “깊어 간다는”으로 손질합니다. “언론계는 물론(勿論)”은 “언론계를 비롯하여”로 손보고, “커지고 있다”는 “커진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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