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는 기찻간에서



  산들보라는 기찻간에서 창가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싶다. 그런데, 누나도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 산들보라가 혼자서 창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징징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림종이를 꺼내어 산들보라를 그려 본다. 산들보라는 아버지가 제 모습을 종이에 천천히 그리는 모습을 보더니 “창가 자리는 누나가 앉아” 하면서 “내가 여기 앉을래” 하고 덧붙인다. 이제 창가 자리 다툼은 끝난다. 두 아이는 어느 자리에 앉아도 무엇이든 하면서 놀 수 있는 줄 깨닫는다. 조치원을 떠난 기차는 대전과 익산과 전주를 지나면서 손님이 아주 많이 줄어든다. 이제 한갓지다. 이러면서 ‘빈 창가 자리’가 더 생긴다. 우리 자리는 표로 석 장이지만, 다른 자리가 널널하니, 큰아이는 아버지 옆으로 와서 창가 자리를 차지한다. 산들보라는 걸상 둘이 붙은 창가 자리를 한결 넉넉하게 누리면서 논다. 가림천을 뒤집어쓰면서 창문에 붙어서 놀다가 까꿍 하면서 튀어나오기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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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잠든 뒤에 글쓰기



  아이들이 잠든 뒤에 글을 신나게 쓴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똑같다. 여느 때에는 아이들과 신나게 복닥거리다가, 아이들이 하나둘 곯아떨어지면 포근히 자도록 돕고, 아이들이 까무룩 잠이 들면 조용히 공책을 꺼내어 펼치거나 셈틀을 켠다.


  아이들과 복닥이느라 어느 틈에 글을 쓰느냐 할 수 있지만, 아이들과 복닥이는 나날은 아이들한테서 새롭게 배우는 한편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는 고마운 한때이다. 글로 쓸 이야기는 아이들과 복닥이는 동안 저절로 태어난다. 마당과 뒤꼍을 함께 거닐면서,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으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옷가지를 개면서, 잠자리에 누이고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옷을 갈아입히고 글놀이를 함께 하면서, 함께 마실을 하고, 함께 자전거를 달리며,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글로 담을 모든 이야기가 자란다.


  아이가 없는 어른이라면 홀로 숲길을 걷거나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삶을 익힐 수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흙을 가꾸거나 나무를 돌보면서 삶을 배울 수 있다. 삶은 늘 삶으로 배운다. 삶은 늘 삶에서 피어난다. 글쓰기란 늘 삶쓰기이기 때문에, 삶이 있을 때에 글을 쓴다. 삶이 없다면 아무런 글을 못 쓴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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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24 : 음수사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 들어 보셨나요? 물을 마실 때는 반드시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김삼웅-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2014) 4쪽



  나는 ‘음수사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도 없는 이런 한자말을 누가 쓸는지 아리송한데,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라는 한문이 있다고 합니다. 물을 마실 적에는 우물을 판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쓰는 한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음수사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이 아닌 말을 한국사람이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영어로 어떤 말을 몇 줄 읊은 뒤 이런 영어를 들은 적 있느냐 물은 뒤, 이를 이야기하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한국사람이니까 영어나 한문이 익숙할 사람은 드뭅니다. 영어나 한문을 모르거나 낯설 이웃을 앞에 두고서 글자랑을 하려고 문득 드는 보기글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영어나 한문을 들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할 적에는 꼭 글자랑이 되지는 않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뜻으로 영어나 한문을 들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굳이 영어나 한문을 들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나 알아듣기 쉽도록 ‘풀이’를 하거나 ‘옮겨서(번역해서)’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 보기글이 글자랑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첫머리부터 풀이를 안 하고 옮기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갑작스레 한문을 들이밀었으니 글자랑이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보기글은 처음부터 어떤 지식이나 외국 글을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은 “물을 마실 적에는 우물을 판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뒤에서 조용히 일한 사람이 늘 있기 마련이니, 언제나 고마워 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처럼 아주 새롭게 고쳐서 써야 올바릅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예부터 물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샘터나 우물터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근원(根源)’은 ‘뿌리’로 손볼 수 있지만, 이 보기글에서는 ‘샘터’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음수사원 : x

음수(飮水) =음용수


..



 살가운 상말

 627 : 일일천추


이분들에게도 꽃 같은 청춘이 있었고, 돌아올 날을 일일천추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

《백종원-조선 사람》(삼천리,2012) 113쪽


 일일천추 기다리는

→ 오래도록 기다리는

→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 손꼽아 기다리는

→ 애타게 기다리는

→ 애태우며 기다리는

→ 가슴 태우며 기다리는

 …



  ‘일일여삼추’를 더 힘주어 나타내는 한문이 ‘일일천추’라고 합니다. 다섯 글자나 네 글자로 된 이 글월은 한문입니다.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문 ‘일일여삼추’ 같은 한문은 “하루를 세 해처럼”으로 옮겨서 써야 올바릅니다. 한문 ‘일일천추’는 “하루를 천 해처럼”으로 옮겨서 써야 올바르지요. 그러나, 굳이 이렇게 옮기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말로 손쉽게 “오래도록”이나 “오랫동안”이나 “오랜 나날”이나 “기나긴 해”처럼 적으면 돼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로 적으면 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모습을 두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이나 “손꼽아 기다리는”이나 “애타게 기다리는”이나 “애태우며 기다리는”처럼 나타내기도 합니다. 한국말로 가리키는 글월이 퍽 많습니다. 느낌을 살려서 더 짙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나타낼 수도 있어요.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실마리를 풉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분들한테도 꽃 같은 젊음이 있었고, 돌아올 날을 애태우며 기다리는 식구가 있었다


‘청춘(靑春)’은 ‘젊음’으로 손질합니다. ‘가족(家族)’은 일본 한자말이기에 ‘식구’로 바로잡거나 ‘살붙이’로 손봅니다.



일일천추(一日千秋) : ‘일일여삼추’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는 뜻으로,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을 이르는 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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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8. 오늘 누리는 어제



  사진을 찍는 자리는 늘 ‘오늘 이곳’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를 한자말을 빌어 ‘현장’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현장에 있어야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현장에 없으면 어느 누구도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하지요.


  요즈음은 현장에 없어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사진을 ‘만든다’고 해야 할 텐데, ‘콜라주’를 하듯이 요리조리 오려붙여서 ‘사진 만들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장에 갈 수 없는 몸이니, 어느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들 말과 글과 그림과 사진과 영상으로 살피면서, 이녁 나름대로 ‘가 보지 않은 현장을 다시 엮는 얼거리’로 사진을 만듭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오늘 이곳에서 손수 찍는 사진’이 조금씩 줄면서, ‘오늘 이곳에 없고 손수 찍지 않아도, 다른 사람 손길을 빌어서 만드는 사진’이 차츰 늘어납니다. 게다가 ‘내가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찍은 모습’을 여러 날이나 여러 달에 걸쳐 그러모아서 이 모습을 조각 하나로 여긴 뒤, 수많은 조각을 이어붙이거나 엮여서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 꾸준하게 늘어납니다.


  찍어도 사진이 되고, 만들어도 사진이 됩니다. 찍어도 ‘오늘’이 어느덧 ‘어제’로 흘러가고, 만들어도 ‘오늘’이 어느새 ‘어제’로 흘러갑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사진은 모두 ‘어제 모습’입니다. 다만, 오늘 누리는 사진이 모두 ‘어제 모습’이어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기 단추를 찰칵 하고 눌렀기에, ‘어제가 된 오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오늘 그대로 있는 모습을 아로새기면서, 이 모습을 모레(앞날)에도 고스란히 누리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은 언제나 어제가 되지만, 이 어제는 늘 오늘 누리고, 오늘 누릴 어제는 모레에 비로소 어제가 됩니다. 어제와 오늘과 모레는 다 다른 때입니다. 그렇지만 다 다른 세 가지 때는 늘 한몸이 되어 흐릅니다. 다 다른 때가 다 같은 때가 되어 흐릅니다.


  사진을 이루는 틀을 살피고, 사진이 태어나는 얼거리를 느끼며, 사진이 자라는 자리를 헤아리려면, 어제와 오늘과 모레가 어떻게 얽히는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밥을 먹는 동안 밥그릇이 비고, 밥그릇이 빌수록 몸에는 새로운 숨결이 찹니다. 새로운 숨결이 차도록 하는 까닭은 앞으로 새로운 기운을 내어 새로운 일이나 놀이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날(모레)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습니다. 앞날(모레)을 꿈꾸면서 오늘을 사진으로 찍어 어제가 되도록 합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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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7. 오늘 하루도 하나씩



  날마다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에 한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한 달에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달 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그러모은 사진 장수’는 다릅니다.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무척 많이 있다’고 할 만하며,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얼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사진이 무척 많은 사람은 사진을 잘 찍거나 멋스럽거나 놀랍거나 대단할까요? 사진이 얼마 없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거나 멋이 없거나 안 놀랍거나 안 대단할까요?


  사진책 한 권은 두꺼울 수 있습니다. 사진책 한 권은 얇을 수 있습니다. 사진 천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엮을 만하고, 사진 백 장이나 스무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묶을 만합니다.


  사진책에 사진을 더 많이 써야 사진책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이천 장쯤 담은 사진책인데,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볼 수 없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갈 수 없습니다. 사진을 스무 장만 담은 사진책이지만,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내내 볼 수 있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가만히 기울어집니다.


  여러 달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조금씩 숨결이 모여서 어느 하루에 열매를 맺습니다. 하루에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다고 한다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열매를 맺는’지 ‘열매는 안 맺는’데 그저 사진기 단추를 눌러대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어떤 흐름을 보여주려고 여러 장 찍을 수 있어요. 그러나, 흐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굳이 열 장이나 서른 장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꼭 석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또는 흐름을 다문 한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흐름이란 그냥 흐름이 아닌 ‘삶’입니다. 삶을 보여주려는 사진이라면, 한두 장으로는 어림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열 장이나 스무 장을 자꾸 찍으려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 삶’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백 해를 산다면, 한 해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백 장입니다. 한 달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천이백 장입니다. 한 주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육천 장에 이릅니다. 하루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사만이천 장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새로운 밥을 먹고 새로운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이러한 ‘흐름’을 모두 보여주려 한다면, 또 ‘흐름’을 낱낱이 보여주려 한다면, ‘백 해를 산 사람’을 사진으로 보여줄 적에는 ‘백 해를 들여야 읽을 수 있을 만큼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모든 움직임과 몸짓을 사진으로 다 찍어야 비로소 ‘흐름’을 짚는 사진이 되는 셈입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닙니다. 사진은 동영상도 아닙니다. 사진은 책 하나로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꾸러미가 되기도 하고, 다문 종이 한 장짜리로 간추려서 들려주는 노랫가락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야기꾸러미가 되려면 먼저 노랫가락이 되어야 합니다. 수수께끼이면서 실마리가 되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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