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40] 직업읽기 (직업선택의 십계)

―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까



  거창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다짐글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열 가지로 된 다짐글을 하나하나 읽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따르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이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테며, 이를 지키기 어렵다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나는 이 다짐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들려줄 말을 내가 새롭게 써 보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내 일 찾기’라는 글을 열 줄로 씁니다.



 * 내 일 찾기 (ㅎㄲㅅㄱ) *

 하나, 하면서 기쁜 일을 하자.

 둘, 하면서 신나는 일을 하자.

 셋, 손수 밥·옷·집 짓는 일을 하자.

 넷, 사랑스러운 일을 하자.

 다섯, 아름다운 일을 하자.

 여섯,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일을 하자.

 일곱,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을 하자.

 여덟, 숲을 짓는 일을 하자.

 아홉, 파란하늘을 보며 바람을 마시는 일을 하자.

 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 일을 하자.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직업’을 찾으라고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직업’을 찾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기쁘게 누릴 ‘일놀이’를 찾아서 마음껏 살찌우기를 바랍니다.


  거창고등학교에서 쓰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보면, 첫째로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이 첫 대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찾는데 왜 ‘월급’을 따질까요? 나는 내가 할 기쁜 일을 찾으면 될 뿐입니다. 이 일은 돈이 안 들어올 수 있고, 돈이 많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돈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기쁘게 할 일을 찾으면 됩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둘째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둘째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나는 내가 신나게 할 일을 합니다. 내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일 때에 비로소 나는 ‘내 마을’에서도, 내 고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어느 한쪽에서 슬기롭게 이바지하는 일꾼이 됩니다. 내가 신나게 하지 못하면서 톱니바퀴가 되는 일이라면, 이러한 일은 안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셋째는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라 합니다. 나는 내가 기쁘고 신나게 하면서 삶을 짓는 일을 하니까, ‘승진’하고는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아예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창고등학교에서는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사람을 헤아려서 이러한 ‘십계’를 지었구나 싶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앞으로 나아갈 길(진로)’을 밝히려 한다면,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살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요. 게다가, 시를 쓰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려는 살림꾼한테도 ‘승진’이란 없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넷째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내가 기쁘면서 신나게 누릴 일을 할 뿐입니다. 모든 조건은 다 갖추어졌을 수 있고,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조건이 있든 없든 대수롭지 않아요.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는 일을 기쁘면서 신나게 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를 더 보면,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 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다른 여섯 가지도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다짐글은 ‘삶짓기’나 ‘삶찾기’나 ‘삶사랑’하고는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갑니다. 내가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가는데, 이 길이 아름다우면 다른 사람도 함께 걸을 수 있어요. 게다가, 나는 앞날이 맑고 밝으면서 환한 길을 갑니다. 나는 굳이 어두운 길로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밝힐 길이니까요. 내가 스스로 지어서 키우는 길을 가지, ‘장래성이 있든 없든’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삶길이자 사랑길이자 꿈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끼고 좋아할 만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내 길을 거룩하게 볼 수 있고,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내 둘레에서 나를 북돋우든 말든, 내 언저리에서 나를 깎아내리든 말든, 이를 쳐다볼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길을 웃고 노래하면서 갈 뿐입니다.


  나는 언제나 한복판에 섭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별에는 한복판이나 가장자리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곳은 한복판이면서 가장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다리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곳은 ‘내 삶자리’입니다. 나는 내 삶자리에서 내 ‘삶일’을 찾고 ‘삶놀이’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곁님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 혼자만 갈 수 없어요. 함께 갑니다. 다만, 함께 가되 억지로 잡아끌면 안 되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래해야지요. 나만 믿고 따르라 해도 안 되고, 나 혼자만 가겠노라 해도 안 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노래해야지요.


  무엇보다 나는 단두대로 안 갑니다. 나는 왕관으로도 안 갑니다. 내는 ‘죽음길’이나 ‘허울뿐인 명예’ 어느 곳으로도 안 갑니다. 나는 내 삶으로 갑니다. 오늘 나는 모레로 갑니다. 오늘 나는 내 보금자리로 갑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스스로 즐겁고 아이하고 함께 즐거우며 곁님하고도 함께 즐거운 일놀이를 누리면서 삶을 지을 때에 노래가 저절로 샘솟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일 찾기’를 해야지요. ‘직업찾기’나 ‘진로선택’이 아닌, ‘내 일 찾기·내 삶 찾기·내 길 찾기’를 하면서 사랑과 꿈을 가꿀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레 기쁜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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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3-02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지위, 돈만 보고 정하는 어른들과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지요. 아이들도 그리 생각하는게 어른들이 그리 만든거겠죠. 꿈보다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는 기회를 많이 줘야겠어요. 저도 이런 생각을 깊이 한것은 스물 몇해가 지나서 시작했으니 아이들도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요.

파란놀 2015-03-02 05:30   좋아요 0 | URL
민들레처럼 님 말씀대로,
`월급 따지지 말자`나 `지위 따지지 말자` 같은 말도,
정작 돈과 지위에 얽매인 모습이에요.

비판을 한다면서 세운 거창고 직업십계명일 테지만,
막상 `비판`은 되더라도 `스스로 짓는 새로운 삶`은 되지 못해요.

직업이 아닌 `꿈`을 그려야 하고, 이 꿈을 `삶`으로 이루도록 하는 `길`을
아이와 어른이 저마다 스스로 가꾸도록 도울 수 있는 `말`을
마음에 심을 때에,
비로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을 수 있어요.

늦깎이에 이 대목을 알아도 되고, 일찍부터 알아도 돼요.
언제 알아차리든, 이 대목을 알았으면 그때부터
씩씩하게 나아가면 기쁩니다~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1) 꽃빛


이점도가 만든 카네이션은 파스텔 레드 색상으로 기존에 없던 화색花色이다

《강현정·전성은-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메디치미디어,2015) 131쪽


 화색花色이다

→ 꽃빛이다

→ 꽃 빛깔이다

 …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화색(花色)’이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꽃빛’이라는 낱말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말사전에는 ‘풀빛’이나 ‘물빛’ 같은 낱말은 실립니다.


  흙은 ‘흙빛’입니다. 나무는 ‘나무빛’입니다. 잎은 ‘잎빛’입니다. 하늘은 ‘하늘빛’이고, 구름은 ‘구름빛’입니다. 빛깔이 어떠한가를 나타내려 하면, 한국말에서는 ‘-빛’을 뒤에 붙입니다.


  사람 살갗이 어떤 빛깔인가 헤아리면 ‘살빛’입니다. 피는 ‘핏빛’이고, 머리카락은 ‘머리빛’이나 ‘머리카락빛’이라 합니다. 빛깔을 말하려 하기에 ‘빛’이라는 낱말을 쓰는 만큼, 하얀 빛깔 종이가 아니라, 알록달록 여러 빛깔을 종이에 입히면 ‘빛종이’라 할 수 있어요.


  꽃을 바라보면서 빛을 살피기도 하지만, 무늬나 결을 살피기도 합니다. 그래서 ‘꽃무늬’나 ‘꽃결’을 이야기할 만합니다. 이 가운데 ‘꽃무늬’는 한국말사전에 나옵니다. 바람결이나 물결이나 마음결을 말하듯이, ‘꽃결’은 꽃송이를 만지거나 볼 적에 느끼는 결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꽃빛’이 아닌 ‘화색’이라 하면서 ‘花色’이라는 한자를 덧붙이는데, 이렇게 적는들 쉬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입니다. 꽃이니 ‘꽃’이라 하고, 꽃을 보며 느끼는 빛깔이니 ‘꽃빛’이라고 해야 알맞습니다. 4348.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점도가 만든 카네이션은 부드러운 빨강 빛깔로 아직까지 없던 꽃빛이다


“파스텔(pastel) 레드(red) 색상(色相)으로”는 “부드러운 빨강 빛깔로”나 “부드러운 빨강으로”로 손질하고, ‘기존(旣存)에’는 ‘아직’이나 ‘아직까지’나 ‘이제껏’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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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24 하나 둘 셋



  한국사람은 ‘셋’이라는 숫자를 무척 아낍니다. 둘이나 넷이나 하나가 아닌 ‘셋’을 그야말로 섬깁니다. ‘셋’이라는 숫자를 쓰자면, ‘하나’와 ‘둘’이 앞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셋’이라는 숫자를 사랑하는 한국사람은 ‘셋’만 외따로 쓰지 않습니다. ‘하나·둘·셋’을 나란히 씁니다.


  ‘하나·둘·셋’은 ‘처음·가운데·끝’입니다. ‘하나·둘·셋’은 ‘어제·오늘·모레’입니다. ‘하나·둘·셋’은 ‘너·나·우리’입니다. ‘하나·둘·셋’은 ‘이곳(여기)·저곳(저기)·그곳(거기)’입니다. ‘하나·둘·셋’은 ‘아이·철들기·어른’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둘·셋’은 ‘삶·바람(숨결)·죽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둘·셋’은 ‘어둠·해님(별님)·빛’입니다. 그예 ‘하나·둘·셋’은 ‘씨앗·나무(풀)·열매’이지요.


  모든 것은 두 갈래로 짝을 이룹니다. ‘짝꿍’이요 ‘짝지’입니다. 그런데, 두 갈래로 짝을 이루는 것은 모두 사이에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얼핏 보자면 ‘둘’이지만, 찬찬히 헤아리면 언제나 ‘셋’입니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갈래로 우리 길을 나눈다 할 테지만, ‘삶·죽음’ 둘로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언제나 바람(숨결)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빛도 이와 같아요. 어둠과 빛 두 가지만 있지 않습니다. 어둠과 빛 사이에는 늘 ‘해님(별님)’이 나란히 있습니다.


  하나와 둘과 셋이라는 얼거리로 나아가는 삶이기에, 우리는 언제나 ‘하다(하나)’와 ‘보다(둘)’와 ‘되다(셋)’라는 세 가지 낱말을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이 세 낱말이 어느 곳에서나 반드시 깃드는, 가장 자주 쓰는 낱말입니다. 세 낱말이 없으면 한국말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세 낱말이 있어야 모든 한국말이 태어납니다.


  사내와 가시내, 또는 가시내와 사내가 만나서 두 씨앗이 만날 적에 새로운 목숨이 태어납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어우러져야 새로운 한 사람이 태어납니다. 얼핏 보면 ‘사내와 가시내’ 또는 ‘가시내와 사내’ 두 짝이지만, 이 사이에는 늘 ‘둘이 만나도록 잇는 숨결(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두 씨앗이 만나자면 ‘사랑’이라는 숨결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라고 하는 숨결은 이윽고 ‘아기’라는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두결(양자)’은 하나와 다른 하나만 있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두결을 바라보는 님(관찰자)이 있어야 움직입니다만, 두결을 바라보는 님이 생각을 심어서 씨앗으로 날릴 ‘바람(숨결)’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느끼지 못하면서 느껴야 하는 한 가지가 늘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있기에 비로소 ‘두 가지 결’은 ‘새로운 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아침과 낮과 저녁입니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늘 ‘아침·낮·저녁’으로 하루를 갈랐습니다. 세 때 사이나 앞뒤로 ‘새벽·밤’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하루를 가르는 세 때는 ‘아침·낮·저녁’입니다. 이 또한 ‘하나·둘·셋’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대목이 있으니, 한국사람한테 ‘밥때’는 ‘아침·저녁’ 두 가지일 뿐입니다. 일을 하든 놀이를 하든 무엇을 하든 ‘아침저녁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아침 = 아침밥’이기도 하고, ‘저녁 = 저녁밥’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낮 = 낮밥’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셋’과 ‘두결(양자)’이 서로 얽히는 수수께끼이자 실마리입니다.


  두결은 늘 두결이지만, 두결을 이루는 셋이라는 얼거리입니다. 그리고, 셋이라고 하는 얼거리는 언제나 셋이지만, ‘바람 타고 찾아온 씨앗(삶)’을 받으면 셋은 언제나 둘로 바뀝니다(삶짓기를 이룹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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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읽는 책, 어른이 읽는 책



  아이가 읽는 책과 어른이 읽는 책은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읽는 책과 어른만 읽는 책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읽는 책’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책’과 ‘어른한테 맞춘 책’이 있어요. 아이한테 맞춘 책이란, 아이가 읽기에 좋거나 수월하도록 엮은 책입니다. 어른한테 맞춘 책이란, 어른이 읽기에 좋거나 낫도록 엮은 책이에요.


  아이가 부르는 노래와 어른이 부르는 노래는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부르는 노래와 어른만 부르는 노래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부르는 노래’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노래’와 ‘어른한테 맞춘 노래’가 있어요. 책과 노래는 서로 같습니다. 밥과 옷도 서로 같습니다. 어느 한쪽만 누리거나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과 어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영화와 어른이 볼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린이한테 모든 것을 다 맡기거나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꿈을 키우면서 사랑을 북돋아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어린이문학에 ‘꿈과 사랑과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린이문학에 전쟁 미치광이 이야기를 굳이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남녀 사이에 벌이는 살곶이 이야기를 구태여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때리고 맞고 죽이고 죽는 이야기를 애써 그리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문학에 담으려고 하는 이야기는 ‘삶’입니다. ‘죽음’이 아닌 삶입니다. 그렇다고 죽음과 등지거나 죽음을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삶을 가꾸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문학이라는 뜻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고, ‘삶을 노래하는 길’을 보여주며, ‘삶을 누리는 길’을 보여주지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문학이면 됩니다. ‘생활동화’나 ‘과학동화’나 ‘철학동화’나 ‘교훈동화’ 같은 것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을 밝히고 꿈을 가꾸며 사랑을 북돋우는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는 ‘생활·과학·철학·교훈’이 모두 맑고 밝으면서 차분하고 깊게 스며들어요. 이런 것(소재)만 도드라지게 다룰 까닭이 없고, 이런 것(소재)만 두드러지게 다루려 할 적에 ‘참다운 어린이문학’과는 동떨어진 장삿속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니까 ‘뽀로로’만 좋아하거나 ‘도라에몽’에 까르르 웃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라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재미있으면서 신납니다. 아이들이니까 ‘유치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삶과 꿈과 사랑을 다 압니다. 아이들도 다 아는 삶과 꿈과 사랑을 깊고 넓으면서 맑고 밝게 여미어 보여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문학이고 책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보여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른문학도 이와 같아요.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다루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하며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문학도 뭣도 아무것도 아닐 뿐입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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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3-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 배웁니다^ ^ 저녁하기 전 잠시 들어와 좋은 글 보고 즐거운마음으로 밥하러 갑니다.^ ^

파란놀 2015-03-01 1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앤의다락방 님이 쓰신 어느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가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니
이러한 글이 태어났어요.
아이들과 아름답게 하루하루 누리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기쁘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느껴요~
 

엄지손가락을 벨 뻔하다



  아침을 짓다가 엄지손가락을 벨 뻔했다. 집 둘레에서 뜯은 갓풀을 썰고 오리고기도 썰어서 볶음밥을 하려는데, 고기를 썰다가 그만 엄지손가락까지 함께 썰려 했다. 칼날이 엄지손톱을 꾸욱 누를 즈음 ‘아차’ 하고 곧바로 깨달으면서 오른손에서 칼을 놓았고, 천천히 칼을 치우면서 왼손을 드는데, 엄지손톱만 파이고 끝난다. 한숨을 몰아쉰다. 그래도 한참 아프다. 피는 안 나오지만 몹시 아프다. 고기를 썰 적에 ‘힘 빼고 썰기’를 하니까 그나마 엄지손가락을 안 베었다. 아니, 엄지손가락을 안 썰었다. 고깃결에 맞추어 위에서 아래로 꾸욱 하고 누르면서 고기썰기를 했기에 그나마 엄지손가락을 자르지 않았구나 싶다. 오른손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어 눌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참으로 끔찍한 노릇이다. 욱씬거리는 왼손을 들면서 ‘미안하다, 고맙다, 괜찮다’는 말을 쉴새없이 한다. 손가락 끝자리마다 손톱이 있는 까닭을 새삼스레 생각한다. 손톱이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가.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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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3-01 13:44   좋아요 0 | URL
큰일날뻔 하셨네요~ 크게 다치지않아 다행입니다.아침밥상이 무척 먹음직스럽습니다^ ^

파란놀 2015-03-01 14:18   좋아요 0 | URL
이 사진은 저녁밥상이었어요.
요새는 참으로 조촐한 밥상만 차려요 ^^;
참말 손톱이 두꺼웁기 때문에
손가락이 안 베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