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씻기는 손길



  저녁에 아이들을 씻긴다. 저녁에는 봄이어도 안 씻기고 싶으나, 두 아이가 모두 간지럽다고 말해서, 아차 그렇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이 아이들은 날마다 신나게 뛰노는데 요새는 날마다 씻겨야 할 텐데, 적어도 이틀에 한 차례는 씻겨야 하는데, 씻긴 지 나흘쯤 되었구나. 보일러를 돌려서 따순 말이 나오게 한다. 작은아이부터 씻기고, 큰아이를 씻긴다. 큰아이는 제가 혼자 씻으려면 몇 살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큰아이한테 “네가 스스로 씻고 싶다고 생각할 때부터 혼자 씻을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준다.


  옷을 모두 갈아입힌다. 두 아이 스스로 이를 닦도록 한다. 두 아이가 벗은 옷가지 가운데 웃옷만 빨래를 한다. 따순 물이 나오는 김에 몇 점만 빨래를 마치고, 부랴부랴 부엌을 치운 뒤, 아이들 잠자리를 살핀다. 잘 누웠구나. 예쁘네. 오줌그릇을 비우고, 물병에 물이 넉넉한지 돌아본다. 다 되었나? 그러면 이제 아버지는 저녁 훈련을 해야겠구나.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몸을 풀고, 촛불보기도 하면서 몇 가지 글도 쓴 뒤 너희들 사이로 파고들게. 먼저 자렴.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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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2) 늦꽃


 늦꽃 : ‘만화(晩花)’의 북한어

 만화(晩花)

  1. 늦은 철에 피는 꽃

  2. 제철이 지나서 늦게 피는 꽃



  철에는 ‘이른철’과 ‘늦철’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른봄·늦봄’처럼 말합니다. ‘이른여름·늦여름’처럼 말하지요.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보면 ‘늦봄’이라는 낱말은 나오지만, ‘이른봄’이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왜 안 나올까요? 사람들이 이 말을 안 쓰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낱말은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이기 때문일까요.


  한국말사전에서 ‘늦꽃’이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늦꽃’은 무엇일까요? 늦게 피는 꽃이니 ‘늦꽃’입니다. 제철에 피는 꽃이 아니고, 제철보다 늦게 피는 꽃이기에 늦꽃이에요. 남녘에서 내는 한국말사전에는 ‘늦꽃’을 “‘만화(晩花)’의 북한어”로 풀이합니다. 이 낱말은 북녘말일까요? 북녘에서만 쓰는 말일까요? 북녘에서만 써야 하는 말일까요? 북녘 아니고 남녘에서는 쓰면 안 되는 말일까요? 북녘에서만 써야 하고 남녘에서는 안 쓸 만한 낱말일까요?


  남녘 한국말사전에서 다루는 한자말 ‘만화’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이러한 한자말을 알아보거나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니까, ‘늦꽃’을 북녘말로만 삼기에는 대단히 아쉽습니다. 아니, ‘늦꽃’ 같은 낱말은 남북녘이 함께 사랑하면서 두루 쓸 낱말로 삼아야 하리라 느껴요.


 늦꽃 . 늦나무 . 늦나물

 이른꽃 . 이른나무 . 이른나물


  늦게 피는 꽃이 ‘늦꽃’이라면 때나 철이 이르게 피는 꽃이라면 ‘이른꽃’입니다. 일찍 피는 꽃도 ‘이른꽃’이라 할 만해요. 그래서, 나무나 나물을 놓고도, 일찍 자라는 나무라든지 일찍 돋는 나물을 따로 가리킬 수 있고, 늦게 자라는 나무나 늦게 돋는 나물을 가리키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한편, ‘늦둥이’가 있듯이 ‘늦사람’을 말할 수 있고, ‘이른철’과 ‘늦철’ 같은 말도 쓸 수 있어요.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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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1) 선善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사람들한테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보시리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순수한 사랑의 광대한 선善과 아름다움과 진실일 것이다

《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 112쪽


 광대한 선善과

→ 드넓은 착함과

→ 드넓게 착하고

 …



  한자를 즐기는 이들은 으레 ‘진선미(眞善美)’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참됨, 착함, 아름다움”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쓰면 된다는 뜻입니다. 한국말을 굳이 한자말로 바꾸어서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아름다움’은 한국말 그대로 씁니다. 그런데, ‘참됨’이나 ‘참’은 그만 한자말 ‘진실’로 적고, ‘착함’은 아예 한자로 ‘善’을 드러내어 적고 맙니다.


 선을 행하다

→ 착한 일을 하다

→ 착하게 하다


  “善을 行하다” 같은 말마디는 겉으로는 한글이지만, 속으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겉뿐 아니라 속까지 옹글게 한국말이 되도록 고쳐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선을 행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가 아니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나 “착한 사람이 아름답다”처럼 적으면 돼요.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 온누리에는 착함과 나쁨이 있다

→ 이 땅에는 착함과 나쁨이 있다


  외마디 한자말로 쓰는 ‘선’은 “선과 악” 꼴로 무척 자주 씁니다. 이 말투는 “착함과 나쁨”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말 그대로 ‘착함’과 ‘나쁨’이니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선을 쌓다” 같은 보기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말짜임부터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쌓다”라든지 “참을 쌓다”처럼 쓰지는 않아요. 착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참은 쌓지 않습니다. 아니, 쌓을 수 없을 테지요. 눈에 보이는 것(물건)이 아니니까요. 마음으로 이루고, 마음으로 나누며, 마음으로 펼치는 넋을 가리키니, 이러한 모습을 ‘쌓다’ 같은 낱말로 나타낼 수 없어요. “착한 일을 꾸준히 하다”라든지 “착한 일을 오래 하다”처럼 써야 맞고, “늘 착하다”라든지 “언제나 착하다” 같은 말마디로 이야기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4348.3.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사람들한테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보시리라고 생각하는가? 티없는 사랑으로 드넓은 착함과 아름다움과 참이리라


‘예수께서’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예수가’나 ‘예수님이’로 다듬으면 한결 부드럽습니다. ‘당신(當身)은’은 ‘그대는’으로 손볼 수 있으나, 이 보기글에서는 덜어도 됩니다. “순수(純粹)한 사랑”은 “티없는 사랑”이나 “깨끗한 사랑”으로 다듬고, ‘광대(廣大)한’은 ‘크고 넓은’이나 ‘드넓은’이나 ‘크나큰’으로 다듬습니다. “진실(眞實)일 것이다”는 “참이리라”로 손질합니다.



선(善) :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 선을 쌓다 / 선을 행하다 /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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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5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78



봄바람이 가볍게 분다

― 미카코 5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2.12.30.



  이웃집 할아버지가 쪽파를 열 꾸러미 건네주십니다. 열 꾸러미나 되는 쪽파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으니, 울타리를 따라 한 줄로 옮겨심습니다. 우리 집도 이웃집도 모두 시골집이기에, 흙에서 캔 쪽파는 다시 흙을 파서 뿌리를 잘 덮어 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흙에 뿌리를 심으면 줄기(잎)는 다시 올라옵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내 먹을 수 있어요. 쪽파는 뿌리만 살짝 다듬어서 써도 되지만, 알뿌리를 땅속에 그대로 두면서 언제까지나 기쁘게 새로운 잎을 얻을 수 있습니다.


  쪽파가 아닌 큰파도 뿌리를 땅에 심으면 꾸준하게 새 잎을 얻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풀은 푸르게 다시 돋기 마련이라, 한 번 심으면 이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리한테 고마운 밥이 되어 줍니다. 겨울을 앞두고 꽃이 피고 씨앗이 맺도록 지켜보면, 새로운 씨앗이 퍼지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얻어요.


  들딸기도 이와 같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훑어서 먹고, 나머지를 그대로 두면 해마다 덩굴을 뻗으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베풀어요. 열매나무도 이와 같지요. 가지치기를 굳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튼튼하고 굵으면서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보면, 열매나무는 해마다 더욱 싱그럽고 맛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 ‘심장이 뛰는 건 달려서 그런 게 아니다.’ (9쪽)

-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나와 어제랑 똑같이 천천히 걸었다.’ (13쪽)



  여덟 살 큰아이와 아침에 쑥을 뜯는데,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왜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뜯어?” “응, 한곳에서만 뜯으면 이 아이들이 더 못 자라잖아. 돌아가면서 조금씩 뜯으면 더 오래 더 많이 뜯을 수 있어.”


  많이 심기에 많이 거둔다지만, 많이 거둔다고 해서 모두 다 먹지 못합니다. 모두 다 먹지 못하면 이웃하고 나누거나 다시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굳이 많이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심되, 조금 넉넉히 심으면 됩니다. 즐겁게 누릴 만큼 심고, 즐겁게 돌보면서 봄과 여름을 지냅니다. 즐겁게 돌보아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다시금 즐겁게 추위를 나면서 고마운 밥을 누려요.





-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빨간 열매.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58쪽)

- ‘카토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67쪽)

- ‘흘러가게 두는 거 그만할래. 이 빨간 구두는 어디에도 날 데려다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걷기로 했다.’ (69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 끝자락을 보면 2013년에 여섯째 권을 곧 선보인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2014년을 지나고 2015년이 되어도 《미카코》 여섯째 권은 한국말로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곧 내놓겠노라 밝힌 여섯째 권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책에 나오는 광고는 그냥 광고로 끝날까요. 아니면, 여러 해 동안 겨울잠을 자던 책이 새봄에 새롭게 나올 수 있을까요.





- “이거, 나오 엄마가 드리래.” “그러고 보니, 둘 다 새엄마네.” (86쪽)

- “괜찮지 않을까? 이치무라 네 일이니까, 네 결정이 제일 옳아.” ‘미도리카와의 침묵은, 좋은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 같다.’ (106쪽)



  봄바람이 가볍게 붑니다. 삼월 팔일 낮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나비를 처음으로 봅니다. 벌은 지난달부터 보았고, 나비는 어제부터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나비를 어제부터 보았지만, 이 나비는 더 일찌감치 다른 곳에서 깨어났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 집 풀숲이나 나무 한쪽에서 조용히 깨어났을 수 있습니다.


  이제 무당벌레를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갓잎과 유채잎은 올해에 새로 깨어난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많습니다. 모과나무에 움이 터질 듯 말 듯 부풀고, 매화나무는 며칠 뒤면 꽃망울이 터질 듯합니다. 이웃집은 벌써 닥나무 꽃이 피었고, 이웃 여러 마을에서는 매화꽃이 가득 터지기도 했는데, 우리 집 나무는 조금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나무가 꽃을 조금 늦게 피운다면, 다른 마을 나무보다 더 오래 피우는 셈입니다. 늦꽃이 오래 간다고 할까요. 그야말로 따사로운 볕과 바람이 아침저녁을 감돌 무렵에 우리 집 나무들이 기지개를 마치고 깨어난다고 할까요.





- ‘만약에 지금,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114쪽)

- “어떤 집이 지어질까? 모른다는 건 제일 좋을 때라고 생각해. 뭐든 될 수 있다는 거니까.” (119쪽)

- “버렸다고? 어째서. 좋은 추억이었는데!” “또 그릴게. 천재소년이 아니라, 이번엔 천재가 되어 보일게.” (124쪽)



  만화책 《미카코》에 나오는 ‘이치무라 미카코’는 천천히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제껏 ‘제 마음’에 따라 걷지 않던 길이지만, 이제부터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냥저냥 휩쓸리듯이, ‘제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둘레에서 바라는 대로 떠돌며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 마음이 아닌 ‘내 마음 바라보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길을 갑니다. 내 길을 갈 적에는 내 둘레에서 깜짝 놀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 괜찮아요. 내가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해서 ‘네 생각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 셈이니, 내 둘레에서도 ‘내 생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걷는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둘레에서 내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때에는 내 둘레에 있던 사람이 나를 떠나겠지요. 그러면, 이들더러 떠나라고 하면 됩니다. 나는 너를 굳이 붙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내가 네 삶을 뒤따라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네 삶으로 가야 하고, 나는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곳으로 따라간다고 해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치무라 미카코’는 시나브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만, 이 아이와 맞물리는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는 아직 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도 앞으로 제 길을 제대로 찾고 싶습니다. 《미카코》 여섯째 권에서는 이 이야기가 더욱 넓고 깊으면서 따사로이 흐를 테지요. 아무튼, 너무 늦지 않게 여섯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기를 빕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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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그림책에 그림이 실리고, 동화책에 그림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으레 그림을 그리고, 어른도 흔히 그림을 그립니다. 미술이나 예술을 한다면서 그림을 하는 어른이 있고, 어떤 어른은 그림을 그리면서 ‘아트’라는 영어를 쓰기도 하며, 때로는 골목동네 담벼락에 길게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돈을 받으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지만, 돈은 헤아리지 않고 끝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화책과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사내 아이 ‘네로’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그림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두 눈으로 본 것 가운데 마음에 드는 모습을 그릴 때에 그림입니다. 둘째, 마음으로 본 것 가운데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내려고 그릴 때에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두 눈으로 본 모습 그리기’와 ‘마음으로 본 모습 그리기’ 두 갈래라고 할 만합니다.


  글을 쓸 때에도 이렇게 두 갈래가 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몸으로 겪은 일을 글로 쓰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마음에 품은 생각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그림을 베끼는 몸짓은 그림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시늉이나 흉내라고 합니다. 시늉이나 흉내는 그림 솜씨를 익히려고 할 수 있는 손짓은 될는지 모르나, 그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오로지 그림이어야 그림일 뿐, ‘시늉·흉내·손짓·베끼기·따라하기’는 그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두 눈으로 본 것은, 말 그대로 우리 눈으로 본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그림에는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마음으로 본 것은 다시 여러 가지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먼저, 눈으로 본 모습이 아닌 오직 마음으로 본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눈을 감았을 때에 환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잠이 들어 꿈을 꾸면서 본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이루거나 바라는 것을 떠올릴 적에 마음속에 피어나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모습’은 네 가지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크게 보면 두 갈래이고, 두 갈래 가운데 ‘마음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은 네 가지라 할 테니까, 아무래도 그림책은 ‘눈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보다 ‘마음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빚은 그림책’이 훨씬 많으리라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두 갈래 그림책이 함께 있어야 하고, 이야기책(동화책)도 이 두 갈래로 쓴 책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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