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개



  아이들과 바닷가로 마실을 가서 한창 모래밭에서 노는데, 떠돌이개 한 마리가 찾아온다. 이 개는 어디를 떠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바닷가에서는 먹이를 찾을 만하다고 여겼을까. 가까이 다가오지도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다. 꼭 알맞게 틈을 두고 해바라기를 한다. 모래밭에서 다 놀고 손을 씻은 뒤 아이들한테 샛밥을 준다. 떠돌이개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나저나 아이한테 준 샛밥은 빵조각이다. 개가 빵조각을 먹을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빵조각을 한입에 넣기 알맞게 뜯으면 되리라 느낀다. 빵조각을 뜯어서 손에 들고 다가선다. 개가 뒤로 물러난다. 옳거니, 이 개는 무엇을 겪거나 느낀 적이 있나 보구나. 바닥에 빵조각을 놓고 뒤로 물러선다. 개는 살며시 다가와서 냄새를 맡고는 입에 넣고 조금 씹다가 삼킨다. 이러기를 한참 되풀이한다. 나는 내 몫을 거의 다 개한테 주었다. 큰아이가 이 모습을 지켜보더니 “나도 개한테 줄래.” 하고는 조금씩 뜯어서 나누어 준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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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3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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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2



바람 한 줄기를 마시며

― 술 한 잔 인생 한 입 3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8.30.



  나는 어릴 적부터 냄새를 잘 못 맡았습니다. 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어린 날부터 코가 나빴습니다. 코가 나쁘니 냄새를 잘 못 맡고,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맛을 잘 못 느꼈으며,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도 있을 테지만, 내가 어릴 적 뛰놀던 곳에는 언제나 큰짐차 배기가스와 흙먼지가 뒹굴었고,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가득했으며, 집과 학교 사이에 있던 연탄공장에서 늘 탄가루로 날렸습니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늘 공장(이라기보다 공단)을 옆에 낀 삶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마 내 몸은 ‘냄새’를 받아들이기 몹시 싫어했겠구나 싶어요. 내 몸은 스스로 지키려고 냄새를 손사래쳤을 수 있습니다.



- “이런 대가족에 남자는 너 하나라. 날 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14쪽)

- ‘역시 3000엔짜리로 사 갈까.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한잔 하는데 쩨쩨하게 그런 빈티 나는 술이나 마실 수야 없지.’ (37쪽)



  코는 늘 안 좋았으나, 때때로 코가 확 트이는 때가 있습니다. 매캐하거나 갑갑한 곳이 아닌,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있는 데에 닿으면 코가 확 트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이더라도 이러한 기운을 코가 느낍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잠들었어도 ‘아, 바야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에서 벗어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으로 접어들면, 내 코는 언제 그렇게 막히고 괴로웠는가 싶도록 확 트인 채 하늘바람을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앞서, 내 몸에 깃들거나 쌓인 모든 앙금을 갈아치우려고 해요.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기쁜 숨결이 춤출 수 있도록 바람 한 줄기를 고맙게 마십니다.



- “그래도 기왕 돈 내고 들어온 건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아깝잖아요.” “카스미 씬 왜 그렇게 쩨쩨해? 그냥 잔디에서 마음껏 뒹굴대다 가는 요금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84쪽)



  라즈웰 호소키 님이 빚은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케이션즈,2012) 셋째 권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도시에서 여느 회사를 다니는 여느 일꾼입니다. 날마다 ‘술 한 잔’을 한다고 하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한 잔’이 아니라 ‘석 잔’쯤이라 할 테고, 석 잔조차 아닌 ‘서른 잔’이라고 할 만큼 술을 마십니다. 무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기쁨이 술이라고 할까요. 술이 있기에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술이 있으니 하루하루 일터에 나가며, 술이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일을 잊고 느긋하게 잠드는 이야기입니다.



- “나한테는 말이야, 스키야키는 전야제 같은 거라고. 스키야키는 술이 잘 안 들어가잖아. 금방 배도 부르고. 그렇지만, 다음날 남은 건 또 술안주로 딱이거든.” (187쪽)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바람 한 줄기는 들판을 가득 채운 나락에 깃들어, 우리가 먹는 밥이 됩니다. 바람 한 줄기는 너른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우리가 먹는 물고기마다 스밉니다. 바람 한 줄기는 능금밭과 딸기밭을 지나며, 우리가 즐기는 능금과 딸기에 서립니다.


  우리는 술을 빌어 바람을 마십니다. 밥을 빌어 바람을 먹습니다. 고기와 열매를 빌어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다른 목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다른 목숨을 살린 숨결이요 바람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흐르는 바람이 뭇목숨을 살리고, 뭇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이 목숨과 저 목숨 사이를 잇습니다. 모든 술맛과 물맛과 밥맛이란 바람맛입니다. 바람 한 줄기를 먹으면서 오늘 하루가 흐릅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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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네 손을 펼치렴



  네가 손을 펼쳐야 네 손을 내가 잡습니다. 내가 손을 펼쳐야 내 손을 내 이웃이 잡습니다. 너와 내가 서로 손을 펼치지 않으면, 우리는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너와 내가 서로 손을 펼칠 때에, 우리는 손을 잡기도 하고 손바닥을 맞대기도 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너와 내가 춤을 추려면 손을 활짝 펴고 만나야 합니다. 너와 내가 춤을 추듯이 삶을 지으려면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손을 펼치고, 마음을 펼치면서, 사랑을 펼칩니다. 삶을 펼치고, 꿈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펼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한꺼번에 두어 걸음이나 서너 걸음을 나아가지 않습니다. 한달음에 열이나 스무 걸음씩 건너뛰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기쁘게 걷습니다.


  가시밭길이기에 더 고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걷든 스스로 고단하다고 여기니 고단합니다. 꽃길이기에 더 싱그럽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걷든 스스로 싱그럽다고 여기니 싱그럽습니다. 그러니까, 남이 보기에는 가시밭길이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여느 길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꽃길이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따분한 길입니다.


  내 삶은 늘 내가 손수 일굽니다. 내 밭은 늘 내가 손수 짓습니다. 내 말은 늘 내가 손수 가꿉니다. 내 이야기는 늘 내가 손수 들려줍니다. 내 밥은 늘 내가 손수 차려서 먹습니다. 어느 것이든 언제나 내 마음이 움직이면서 이루는 삶입니다. 좋거나 나쁜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삶이 있습니다. 반갑거나 서운한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이 있습니다.


  신지아 님이 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라는 책이 있습니다. 살결이 빠알간 빛깔로 물든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신지아 님은 어릴 적에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어린 날을 돌아봅니다. 나한테는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가 있었을까요? 나한테는 여러 놀이동무와 이야기동무가 있었는데, 이들은 나한테 마음동무였을까요? 그리고, 나는 다른 아이들한테 마음동무나 이야기동무가 될 만했을까요?


  신지아 님은 어릴 적에 정신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신병원에서 얼굴을 마주한 의사 아저씨한테 “엄마가 날 왜 여기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안 가요. 내가 돌았대요. 학교에서 조퇴하면 인왕산으로 달려갔고, 꽃을 보고 풀 냄새를 맡고, 하늘을 가슴에 안고 낮잠을 자면 너무나 좋아요. 학교 가기 싫은 것이 돈 건가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요. 저는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재미없어요(85쪽).”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인왕산을 오르내렸군요. 인왕산에서 꽃과 풀과 나무를 만났군요. 하늘과 비와 바람과 벼락을 사귀었군요.


  학교에서 보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재미없을밖에 없었겠군요. 풀내음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없고, 꽃송이 같은 웃음을 보여주는 동무가 없으며, 하늘바람 같은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없으면, 삶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아이들은 무척 재미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풀도 꽃도 나무도 없는 채 하루를 보내야 해요. 하늘도 못 보고 구름이나 비나 눈이나 바람을 못 느끼는 채 하루가 지나가요. 햇볕 한 줌 제대로 쬐면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나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바람 한 줄기가 온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채 하루를 지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 팔다리를 뒤흔드는 몸짓을 지켜보면서, 이런 몸짓이 마치 ‘춤’이라도 되는 양 따라하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노래하거나 춤추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가수’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겠노라’ 외치는 아이만 잔뜩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언제 어디에서나 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드물고, 텔레비전에서 떠도는 춤과 노래를 똑같은 몸짓으로 되풀이하는 아이만 많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지껄이는 갖가지 거칠거나 막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담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도 똑같은걸요. 어른도 여느 때에 참으로 거칠거나 막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담아요.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이런 거친 말과 막된 말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배워요.


  사랑을 배우는 아이가 드뭅니다. 꿈을 물려받는 아이가 드뭅니다. “내 삶을 통해서 내 몸과 마음 그 자체가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다이아몬드였다(178쪽).” 같은 생각을 마음에 씨앗 한 톨로 심으면서 하루를 오롯이 누리려고 하는 아이가 몹시 드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와 시험공부에 파묻힙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교과서와 시험공부에 파묻습니다.


  삼월이 무르익는 시골에는 쑥내음이 고루 퍼집니다. 다만, 모든 시골자락에 쑥내음이 퍼지지는 않습니다. 마늘밭을 건사하는 마을 어르신은 바야흐로 경운기 몰고 농약을 치느라 부산합니다. 군청에서는 ‘불조심’을 외치면서 아침 낮 저녁에 걸쳐 ‘불 피우지 말자’라든지 ‘논둑과 밭둑 태우지 말자’ 같은 이야기를 마을방송으로 끊임없이 날마다 시끄럽게 떠듭니다.


  나는 우리 집 큰아이와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는 동안 우리 집에서 쑥내음을 듬뿍 들이켜고, 우리 몸과 옷에 쑥내가 가득 뱁니다. 그런데, 마을 한쪽에서는 농약이 퍼지고,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은 군청에서 떠드는 ‘녹음테이프 마을방송’ 소리로 귀가 아픕니다.


  신지아 님은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면 사랑을 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344쪽).”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아낄 때에 지구별이 나를 아껴 줍니다. 내가 나를 보살필 때에 지구별이 나를 보살펴 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지구별을 감도는 바람이 나를 사랑해 줍니다.


  봄은 달력 숫자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사람들 옷차림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짧은치마라든지 새빨갛거나 샛노란 옷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저잣거리 쑥떡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내 마음에서 옵니다. 봄은 따스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서 오고, 봄은 너그러운 몸짓으로 홀가분하게 함께하는 춤사위에서 옵니다.


  우리 가슴에서 봄이 자랍니다. 우리 가슴에서 여름과 가을이 자랍니다. 우리 가슴에서 겨울이 찾아와 고요하고 고즈넉하게 쉽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펼쳐서 기쁨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 가슴을 열어서 손을 펼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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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일공일삼 15
크리스티안 뒤셴 지음,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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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85



어떤 말을 하고 싶니

―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크리스티안 뒤셴 글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비룡소 펴냄, 2001.11.30.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내 둘레로 퍼집니다. 내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담고 살붙이와 이웃한테 천천히 퍼지고,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두루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나한테 돌아옵니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네 마음입니다. 네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네 둘레로 퍼져요. 네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싣고 네 살붙이와 이웃한테 가만히 퍼지며,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샅샅이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너한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네 말은 네가 너한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은 모두 우리 스스로 읊는 말인 셈입니다.



.. 베베르의 아빠는 언제나 쾌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또 그토록 반짝이는 눈을 가진다는 건 흔치 않아요. 아빠는 세상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비웃곤 하죠. 또 아빠는 말 태워 주기, 칠면조처럼 달리기, 거꾸로 사다리 태워 주기 등 온갖 엉뚱한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 엄마를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베베르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매우 슬프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베베르에게는 엄마를 대신해 주기에 충분한 누나들이 많이 있습니다 ..  (8, 11쪽)



  가는 말이 고울 적에 오는 말이 곱습니다. 내가 스스로 고운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곱습니다. 가는 말이 거칠 적에 오는 말이 거칩니다. 내가 스스로 거친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거칠어요.


  다만, 고운 말을 하기에 마음이 꼭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거친 말을 하니까 마음이 꼭 안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채 말만 곱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채 말만 거칠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치레로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겉치레 말을 돌려받습니다. 속마음을 따스히 가꾸며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속마음이 따스한 말을 돌려받아요.


  이것을 해 주기에 이것을 받는 얼거리가 아닙니다. 내가 나한테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내가 스스로 사랑을 거둡니다. 내가 나한테 기쁨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내가 스스로 기쁨을 거두어요.



.. 플라비 아줌마는 베베르의 집에 있는 나이프, 냅킨, 냄비, 화분, 국자, 소금 그릇 등 물건들의 엄청난 수를 알게 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플라비 아줌마는 이 집을 베베르와 함께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또, 수백 개의 불필요한 물건들, 단추 모음이나 가지각색 병들의 수를 베베르와 같이 세면서 놀 수 있다면 좋아했을 거예요 … “플라비 아줌마는 또 이렇게 말했어. ‘골목길의 꽃들은 꼭 정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고 벽의 칠은 다 떨어져 나갔지. 한 번은 참새 백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도 보았단다.” ..  (32, 41쪽)



   크리스티안 뒤셴 님이 쓴 어린이문학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비룡소,2001)를 읽습니다. 마흔한째 아이입니다. 베베르를 낳은 아버지는 막내 베베르를 낳기 앞서 마흔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나이로는 할아버지이지만, 베베르한테는 언제나 아버지라고 합니다.


  베베르는 아버지가 다섯째로 혼인을 해서 새로운 어머니를 맞아들이는 모습이 반갑지 않다고 합니다. 새로운 어머니하고 말을 안 섞기로 합니다. 제 밑으로 새로운 동생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커다란 집안에 아이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은 달갑지 않다고 합니다.


  베베르네 누나한테 동생은 어떤 숨결이었을까요. 베베르네 누나들은 동생이 생길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떤 누나는 베베르한테 거의 할머니뻘이 될 텐데,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지낼까요.



.. 플라비 아줌마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플라비 아줌마와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베베르는 자기가 아줌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누군가가 자기 집에 들어와서, 바로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바로 옆을 지나다니고, 함께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수가 있을까? 플라비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좀더 많은 걸 알고 있을 텐데’ ..  (61, 64쪽)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집에 살기에 따순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테지만, 한집에 살면서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는 사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에 살기에 넉넉한 마음이 되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할 테지만, 이웃집에 살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지내기도 합니다.


  말을 섞지 않고도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며, 서로 마음을 기울여서 만나지 않으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짓지 못합니다. 우리는 남남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요, 똑같은 하늘숨을 마시는 사이인걸요.



.. 며칠 전부터 베베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베르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사람들이 옛날이야기를 찾으려고 할 때, 꼭 보고 싶어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베베르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베르는 리본으로 묶인 책 몇 권을 만들었고, 그것을 엄마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  (93쪽)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에 나오는 베베르한테 동생이 생길까요? 베베르는 동생을 맞이하고 싶지 않을까요, 아니면 마음속으로는 저한테 ‘많디많은 누나’ 말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어서 동생한테 이것저것 알려주고 보여주면서 기쁘게 웃고 싶을까요. 베베르는 ‘죽은 어머니’만 그리면서 살고 싶을까요, 아니면 오늘 이곳에서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을까요.


  내가 손을 내밀어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따스한 말 한 마디를 심으면서 사랑이 자랍니다. 내가 기쁜 꿈을 심으면서 사랑이 퍼집니다.


  사랑은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말은 사랑처럼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참으로 말입니다. 주면 줄수록 커지면서 환하게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재미나고 기쁘며 신나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예부터 이야기는 ‘이야기꽃’이라고 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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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미국말 41 : 봄seeing



다만 사물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 변화는 봄seeing을 통해서 온다

《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 127쪽


 봄seeing을 통해서 온다

→ 보아야 온다

→ 바라보아야 온다

→ 볼 때에 온다

 …



  이 보기글에서는 ‘봄’이라는 낱말에 ‘seeing’이라는 영어를 붙입니다. 영어 ‘seeing’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봄, 보기, 시각(視覺), 시력”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어를 붙일 때에 한결 알아보기에 나을까요? 보기글에 붙인 영어를 찾아보면 ‘봄’이라고 나오는데, 굳이 이 영어를 붙여야 했을까요?


  따로 군말을 붙여야 한다면, ‘바라보기’나 ‘쳐다보기’처럼 쓰면 됩니다. 더군다나, 보기글 바로 앞에는 “보아야 한다”처럼 적어요. 그러니까, “보아야 한다”를 적은 뒤에 바로 나오는 ‘봄’은 ‘보다’를 가리키는 줄 쉽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더 살피면, “봄을 통해서”라고 나옵니다. 바로 앞에서는 “보아야 한다”라고만 적었으니, 바로 앞도 “봄을 통하여야 한다”로 고쳐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그나저나, ‘보아야’라 적지 않고 “봄을 통해서”라고 적으면 뜻이나 느낌이 얼마나 달라질는지요? 이렇게 쓰는 말투도 한국말이라고 할 만할는지요?


  한 가지를 더 살펴봅니다. 한자말 ‘변화’는 ‘바뀜’이나 ‘달라짐’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 글월은 “바뀜은 봄을 통해서 온다”인 셈입니다. “바뀜은 보아야 온다”로 고쳐쓰더라도 여러모로 어설픕니다. 한국말이 될 수 없는 말입니다. “바뀌려면 보아야 한다”나 “달라지려면 보아야 한다”로 다시 고쳐쓰든지, “바라보아야 바뀐다”나 “보아야 달라진다”로 새롭게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4348.3.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만 모든 것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 바라볼 때에 달라진다

다만 무엇이든 다르게 보아야 한다. 달라지려면 보아야 한다


‘사물(事物)’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나 ‘무엇이든’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변화(變化)는’은 ‘바뀌려면’이나 ‘달라지려면’으로 손질하고, “봄을 통(通)해서”는 “보아야”나 “바라보아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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