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는 머리핀돌이



  앞머리가 흘러내려 눈을 찌르는 산들보라한테 머리핀을 둘 장만해 준다. 하나는 아버지가 고르고, 하나는 산들보라가 고른다. 머리핀을 둘 머리에 꽂은 산들보라는 이마가 훤히 드러나면서 앞머리가 눈을 안 찌른다. 달덩이 같은 얼굴이 참 예쁘구나.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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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3-18 21:41   좋아요 0 | URL
이마를 드러내니 시원하겠다....

파란놀 2015-03-19 13:05   좋아요 0 | URL
시원하고 예뻐요~
 
나보다 작은 형 푸른숲 작은 나무 5
임정진 지음, 이웅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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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6



동화에 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 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글

 이웅기 그림

 푸른숲 펴냄, 2001.11.10.



  사랑을 받는 아이는 사랑을 받는 줄 압니다. 사랑을 받는 아이는 이웃이나 동무를 따사로이 아낄 줄 압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따사로이 아낄 줄 모른다면, 이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에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랑을 아직 몰라,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스하게 손길을 내밀 줄 모르니까요.


  사랑을 알면서 따스하게 손길을 안 내미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랑을 누리면서 따스하게 손길을 안 내미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요. 누군가 이웃이나 동무한테 차갑거나 매몰차거나 딱딱하거나 모질게 군다면, 이 사람은 아직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사랑을 모르면서 하루하루 지낸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 “우리 형 앞에서 떠들면 혼나.” “왜?” “우리 형 되게 무섭거든.” 동식이는 겁먹은 표정이 된다. “근데 왜 그렇게 키가 작은 거니?” “임마, 키만 크면 다냐? 나폴레옹도 키 작았어.” 형 얘기를 하다가 결국 동식이랑 싸우고 말았다 ..  (12쪽)



  아이는 누구나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재미나게 놀기를 좋아하며, 신나게 뛰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다른 동무하고 툭탁거릴 수 있지만, 이내 툭탁거리기를 그칩니다. 왜냐하면, 툭탁거려 보았자 재미없거든요. 함께 놀 동무하고 툭탁거린들 저 스스로 재미없는데다가 마음이 무겁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 싸웁니다. 아이들이 서로 말다툼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어른들이 아이들 둘레에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어른이 싸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고 싸우는 어른을 바라봅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려고 이웃을 들볶거나 괴롭히거나 등치는 어른을 마주합니다.


  이런 흐름은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좋거나 나쁜 모습을 모두 물려받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어른한테서 무엇을 배우거나 물려받을 적에 ‘좋다’나 ‘나쁘다’고 따지지 않아요. 그냥 다 받아들여요. 어른이 거친 말을 쓰면 아이도 거친 말을 쓰고, 어른이 맑게 웃으면 아이도 맑게 웃어요.



.. “죽어야 별이 되는 거랬어요. 우리 아빠가.” “그건 그래. 하지만 잘 때는 별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잖니. 네가 자면 엄마가 하늘에서 우리 민철이 오늘 잘 나나, 오늘 많이 컸나, 오늘 착한 일 많이 했나, 내려다보시지.”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했어요.” ..  (49쪽)



  임정진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보다 작은 형》(푸른숲,2001)을 읽습니다. 짧은 동화를 여러 꼭지 묶은 《나보다 작은 형》을 보면,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나보다 작은 형〉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형’은 몸이 아픈 듯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나쁘다고 하는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아픈 형은 몸이 자라지 않는 듯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동생은 형이 부끄러울까요? 왜 형 모습을 동무한테 안 보여주려 할까요? 왜 형이 ‘아프다’고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하지 못할까요?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두 아이네 어버이가 아이들이나 이웃 앞에서 쉬쉬하기 때문일 테지요. ‘아픔 = 나쁜 것’이라고 여겨, 이를 숨기거나 감추려 하기 때문이요, ‘아픈 큰아이’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지니, 이야기에 나오는 동생은 ‘형 이야기’만 나오면 다른 동무하고 툭탁거리고 말아요.


  ‘나보다 작은 형’을 놓고 아이들이 풀고 맺는 수수한 이야기를 엮을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데, 《나보다 작은 형》은 아이들이 삶을 서로 풀고 맺는 얼거리로 엮지는 못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젖히고 오직 두 아이(형과 동생)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얼개로 나아갑니다.


  이런 얼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풀리지 않습니다. 어떤 실마리도 풀지 못해요. 두 아이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지내야 하는지 모릅니다. 두 아이는 그저 둘 사이가 더 가깝다고 느낄 뿐, 어떤 실타래도 풀어내지 못합니다.



.. 새로 이사 온 아이가 이렇게 별명을 지어 주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우리는 왜 여태까지 별명 지을 생각을 안 하고 살았을까? 난 내가 친구들 별명을 지어 주지 못한 게 조금 심통이 났어요 ..  (59쪽)



  《나보다 작은 형》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 〈빙빙 돌아라, 별 풍차〉는 상황이나 시대를 좀 엉뚱하게 맞춘 듯합니다. 요즈음 ‘풍차 수레’를 끌고 다니는 아저씨가 어디에 있을까요? 옛날 상황도 오늘날 상황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을 맞춘 다음 어머니 잃은 아이가 나오는 얼거리는 아무래도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백동전’이라는 낱말도 어느 시대를 바탕으로 삼았는지 아리송하게 할 뿐입니다.


  〈새 친구 왕만두〉는 ‘화교’인 아이와 ‘화교 아닌 아이’ 또는 ‘어버이 가운데 한쪽이 외국사람인 아이’를 보여주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별명을 붙여서 살갑게 어울린다고 하는 얼거리로 흐릅니다. 이 땅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한국사람’일 테고,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아이’입니다. 아이와 어른도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러한 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화교 아이를 보기로 삼았구나 싶은데, 이야기에 조금 더 살이 붙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가 좀 싱겁게 끝났구나 싶습니다.



.. “뭐 고민 있어요?” 램보가 걱정스레 물었어요. “응, 그게 저기, 모델을 데려오기 어려워서 패션쇼를 포기해야겠다.” “패션모델? 그건 바로 저의 꿈이었다고요! 무대에 서서 조명을 받는 거.” “너의 꿈이라고?” “그래요. 모델이 꼭 사람이어야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좋았어!” 미스터 울은 자기가 사랑하는 양들에게 멋진 양모 제품을 입혀 패션쇼를 하기로 했어요 ..  (119쪽)



  〈땡땡이, 줄줄이, 쌕쌕이〉 이야기에 나오는 ‘땡땡이’ 같은 일본말을 털지 못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국말은 ‘물방울’이나 ‘물방울무늬’입니다. 동화에 쓰는 낱말을 어떻게 살피느냐는 동화에 담는 이야기를 어떻게 헤아리느냐 하고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나보다 작은 형》을 마무리짓는 〈양들의 패션쇼〉는 한국과 아주 먼 곳에 있는 따뜻한 나라에서 사는 양들을 데려와서 벌이는 ‘패션쇼’를 보여줍니다. 사람과 양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양은 제 털(양털)로 뜨개질도 합니다. 재미난 생각힘(상상력)으로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사람과 양이 기껏 말을 섞는’데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패션쇼’밖에 없을까 싶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패션쇼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양들이 저희 꿈을 ‘패션모델’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이 어이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는 ‘양이라는 짐승을 빌어 요즘 어른들 생각’을 드러내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아이들을 길들이는 사회와 경제가 아이들을 똑같은 판박이로 만드는 얼거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동화에 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양들이 벌이는 패션쇼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양들이 패션모델을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패션쇼와 패션모델을 동화로 엮어서,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어떤 넋으로 들려줄 만할까요? 이 동화를 읽는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면 즐거울까요?


  동화에는 언제나 사랑을 담는다고 느낍니다. 사랑은 기쁠 수 있고 슬플 수 있습니다. 기쁘든 슬프든 모두 사랑이 됩니다. 사랑이라는 자리로 가면, 기쁨도 슬픔도 모두 녹아서 차분하면서 고요하게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동화에 담는 사랑이란, 온누리를 넉넉하고 따사롭게 품에 안는 숨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보다 작은 형》이라는 동화책은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그린 작품이라고 할 만할까요. 요모조모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꾸미기는 했는데, 맛깔스러운 이야기는 따사롭거나 넉넉한 사랑으로 다가섰을까요.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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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3) 백白- 1


할머니는 5분 동안 등에서 아기를 내려놓는 대가로 백동전 다섯 개를 아저씨 손에 놓아 주고 돌아갔습니다

《임정진-나보다 작은 형》(푸른숲,2001) 33쪽


 백동전 다섯 개

→ 흰동전 다섯 닢

→ 하얀 동전 다섯 닢

→ 반짝이는 동전 다섯 닢

→ 하얗게 반짝이는 동전 다섯 닢

 …



  동화책에 나오는 ‘백동전’이라는 낱말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백동전(白銅錢)’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백통전’의 원말”이라 나오고, ‘백통전’은 “= 백통돈”이라 나오며, ‘백통돈(白銅-)’은 “백통으로 만든 돈”이라 나옵니다. ‘백통(白銅)’은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 은백색으로 화폐나 장식품 따위에 쓴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백동전’이란 ‘은백색 동전’이라는 소리이니, 이 보기글에서는 ‘은빛 동전’이나 ‘새하얀 동전’이나 ‘하얗게 반짝이는 동전’으로 손볼 만합니다. ‘은백색(銀白色)’은 “은의 빛깔과 같은 흰색”을 뜻하고, ‘은색(銀色)’은 “은의 빛깔과 같이 반짝이는 색”을 뜻하거든요.


  조금 더 헤아린다면, ‘백동전’은 그냥 ‘흰동전’이나 ‘하얀 동전’이라고 손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銅錢)’은 한국말로 ‘쇠돈’이기도 합니다. 더 손보고 싶다면 ‘흰쇠돈’으로까지 손볼 수 있어요.


 백구두 → 흰구두

 백장미 → 흰장미

 백포도주 → 흰포도술


  다음으로 ‘白-’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면 그대로 쓸 수 있으나, ‘흰-’이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굳이 ‘白-’이라는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이 ‘흰-’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흰고니’와 ‘까만고니’처럼 쓰면 되고, ‘흰오리’와 ‘까만오리’처럼 쓰면 됩니다. ‘흰털’과 ‘까만털’이라든지 ‘흰옷’과 ‘검은옷’처럼 쓰면 되지요. 한국사람이 한겨레를 일컬을 적에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아니라 ‘흰옷겨레’처럼 적으면 한결 알아보기에 쉬우면서 고운 말이 됩니다. 4348.3.18.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할머니는 5분 동안 등에서 아기를 내려놓는 삯으로 새하얀 동전 다섯 닢을 아저씨 손에 놓아 주고 돌아갔습니다


“내려놓는 대가(代價)로”는 “내려놓는 값으로”나 “내려놓는 삯으로”로 손질하고, “다섯 개(個)”는 “다섯 닢”으로 손질합니다.



백(白)- : ‘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 백구두 / 백장미 / 백포도주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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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 뚝딱



  부침개는 재미있다. 밀가루 조금 있고, 마당에서 풀을 뜯을 수 있으면, 여기에 고구마 반 토막을 알맞게 썰어서 얹으면, 어느새 뚝딱 한 접시 맛나게 차리는 샛밥이 된다. 아이들이 입이 심심하다고 할 적에 기쁘게 먹을 수 있는 한입거리가 된다. 아이들은 반죽을 섞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침개를 하는 흐름을 살핀다. 기름을 아주 조금 두르거나 아예 안 두른 뒤 여린불로 달구듯이 익히는 부침개가 천천히 익으면 온 집안에 향긋한 냄새가 퍼진다. 아이들은 반죽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냄새를 맡으면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가위로 척척 썰어서 꽃접시에 올리면 활짝 웃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고작 몇 분 만에 부침개 한 접시를 내놓으면서, 참말 밥짓기란 아기자기한 사랑을 실어서 두 손으로 이루는 매우 놀라운 살림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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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는 메뚜기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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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0



아름다운 이웃을 찾아서 나들이

― 길을 가는 메뚜기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1998.4.15.



  우리 집에 찾아오는 새를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저 새는 어디에서 살며 우리 마을까지 찾아와 뒤꼍 나무에 앉다가 어디로 갈까? 저 새는 하늘을 날며 무엇을 보고, 오늘까지 살며 어느 곳을 날아다녀 보았을까?


  우리 집에는 해마다 사월에 제비가 찾아옵니다. 제비는 사월부터 팔월 끝자락까지 우리 집 처마 밑에서 머뭅니다. 제비는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한국으로 왔다가, 다시 태평양을 가로질러 중국으로 갑니다. 해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나들이를 다닌다고 할 텐데, 아주 조그마한 몸이지만 그야말로 씩씩하게 바다를 가로지릅니다.


  제비 말고도 수없이 많은 새들이 지구별 이쪽에서 저쪽으로 씩씩하게 날아다닙니다. 대단히 먼 길을 아무렇지 않다고 할 만큼 날아다녀요. 사람은 새처럼 하늘을 날지 않는데, 새처럼 날지는 않아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걷습니다. 무척 멀다 싶은 길도 씩씩하게 걷습니다. 이른바 ‘순례’라고도 하고, ‘여행’이라고도 합니다.



.. 메뚜기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어요. “길을 찾아 내야지. 그 길이 어디로 뻗어 있든, 난 그 길을 따라 갈 거야.” 하고 메뚜기를 말했어요 ..  (6쪽)



  내처 걷기만 한다면, 사람은 한 시간에 십 킬로미터도 걸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걷자면 둘레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걸어야 시간마나 십 킬로미터씩 걸을 테지요. 길을 가다가 다리도 쉬고, 둘레를 돌아보며, 나무그늘에서 나무노래도 듣다가, 길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자면, 한 시간에 오 킬로미터 길도 많이 걷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쩌면 어느 한 자리에 주저앉아 며칠 동안 머물 수 있고, 어느 한 자리에서 몇 달을 지낼 수 있으며, 아예 눌러앉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길이나 마실길이라고 할 적에는 일부러 ‘빨리’ 다니거나 ‘서둘러’ 다니지 않습니다. 빨리 다니거나 서둘러 다닌다면 여행이나 마실이 아닙니다. 빨리 다니거나 서둘러 다니는 몸짓은 쳇바퀴입니다. 재미없어요. 그예 앞만 쳐다보고 나아가는 길이란, 나 스스로 아무런 이야기를 짓지 못하면서 멍하니 몸을 움직이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 “이건 규칙이야. 이 호수를 건너려면 반드시 이 나룻배로 건너야 해.” 하고 모기가 말했어요. “하지만 모기 선생님. 저는 쉽게 저 건너편으로 훌쩍 뛰어넘을 수가 있는걸요.” 하고 메뚜기는 말했어요 ..  (35쪽)



  아놀드 로벨 님이 빚은 작은 그림책 《길을 가는 메뚜기》(비룡소,1998)를 읽습니다. 1978년에 처음 나온 책이라 하니 꽤 묵었습니다. 1998년 한국이 아닌 1978년 한국을 헤아린다면, 그무렵에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마실길 걷기’는 아주 마땅했습니다. 누구나 으레 걸었고, 한두 시간쯤 가볍게 걸었어요. 꽤 무거운 짐을 이거나 지고 여러 시간 걷기 일쑤였습니다.


  요새는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여러 시간을 걸어다니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이럴 까닭이 없을 테지요. 택시가 있고 자가용이 있습니다. 버스도 많을 뿐 아니라, 택배가 있어요. 짐을 이거나 지면서 걷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아이를 안거나 업은 채 걷는 사람도 드뭅니다. 아이를 안고 여러 시간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이를 차에 안 태우고 걸려서 여러 시간에 걸쳐 마실을 다니는 어른이 있을까요?



.. “날마다 날마다 우리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곤 한단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게 좋아.” 하고 나비 세 마리는 말했어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난단다. 우리는 세 번씩 머리를 긁지.” 하고 첫 번째 나비가 말했어요 ..  (46쪽)



  《길을 가는 메뚜기》에 나오는 메뚜기는 새로운 길을 가려 합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길을 가려 합니다. 늘 아는 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마음이 되어 새로운 꿈을 키우려 합니다.


  메뚜기는 여러 이웃을 만납니다. 메뚜기가 만나는 이웃은 모두 ‘어느 한 자리’에 머물면서 지냅니다. 다른 곳으로 다니려고 하는 이웃을 만나지 못합니다. 무당벌레도 파리도 모기도 나비도 잠자리도, 그저 어느 테두리에서만 맴돌며 지내요. 이러면서 저마다 ‘늘 맴도는 테두리’가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즐거울까 생각해 봅니다. 한 자리에 머무는 삶이 즐거울까요? 여러 자리를 떠도는 삶이 즐거울까요? 그야말로 아름답고 사랑스레 가꾼 ‘보금자리숲’이 있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나들이를 다니지 않아도 될 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숲이 있어도, 다른 이웃이 저마다 가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숲을 둘러보러 다니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자리에 머물더라도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레 짓는 삶입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닐 적에도 대단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웃을 만나러 움직이는 삶입니다. 내 나름대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고, 내 눈길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북돋우는 길을 걷습니다.



.. 메뚜기는 하늘에 있는 잠자리 두 마리를 보았어요. “메뚜기, 너 참 안됐구나. 우리는 빠르게 날아다니는데 너는 걷기만 하잖아. 참 안된 일이야.” 하고 잠자리들이 말했어요. “뭐가 안된 일이니! 나는 걷는 걸 좋아하는데.” … 메뚜기는 피곤했어요. 폭신폭신한 자리에 누웠지요. 메뚜기는 알았어요. 아침이면 길이 여전히 있고, 길을 따라 가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  (55, 62쪽)



   아름다운 이웃을 찾아서 나들이를 합니다. 나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새로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랑스러운 동무를 사귀려고 마실을 합니다. 나 스스로 그대한테 사랑스러운 동무가 되고자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발길을 옮깁니다.


  나는 네가 반갑고, 너는 내가 반갑습니다. 나는 너를 새로 만나고, 너는 나를 새로 만납니다. 우리 함께 손을 잡아요. 내가 너한테 찾아왔듯이 너도 나한테 찾아오기를 바라요. 천천히 두 다리로 걷고 또 걸어서, 열흘이나 보름이나 달포나 서너 달에 걸쳐서 천천히 찾아오기를 바라요. 나도 그대한테 열흘이나 보름이나 달포나 서너 달에 걸쳐서 천천히 찾아갈게요. 그리고, 우리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요. 내가 그대한테 달포에 걸쳐서 천천히 거닐며 찾아갔으니, 우리 달포에 걸쳐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그대가 나한테 한 해에 걸쳐서 천천히 거닐어 찾아왔으니, 우리 한 해에 걸쳐서 이야기잔치를 열어요.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부르는 마실길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사랑을 짓는 보금자리입니다. 오늘도 새삼스레 꿈을 꾸는 마실길입니다. 늘 새삼스레 사랑을 길어올리는 보금자리입니다.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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